경기도 광주시 관음리
| 경기도 광주시 관음리 가마터 |
|
| 클래스 | Place |
|---|---|
| 아이디 | 광주시_관음리_기마터 |
| 대표명칭 | 경기도 광주시 관음리 가마터 |
| 한글명칭 | 경기도 광주시 관음리 가마터 |
| 한자 | 京畿道 光州市 觀音里 窯址 |
| 유형 | 유적 |
| 세부유형 | 도지가 가마 |
| 시대 | 조선 |
| 위도 | 37.450711435832346 |
| 경도 | 127.34335664344255 |
설명
관음리는 관음사라는 절이 있어 관음골 혹은 관음동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상, 하 관음동과 광복동 일부를 병합해서 관음리라 하였다. 관음리의 도장동陶庄洞은 토속어로 도장골이라고 하는데, 사옹원 소속 사기장이집단이 살던 곳으로 추정되며 '도장陶庄'이 아니고 동음이의어의 '도장陶匠'이였을 것으로 본다.[1]
관음리는 경안천의 지류인 우산천을 끼고 있는 수운이 용이한 지리적 요충지로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장기간에 거쳐 분원 가마가 운영된 곳이다. 관음리 8호 백자가마터 인근에서는 다량의 자기편과 굽통, 굽칼, 갑발편을 비롯하여 수비찌꺼기가 발견되어 수비시설을 포함한 공방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방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발, 잔, 접시, 병, 호, 뚜껑, 고족배, 제기를 비롯한 원통형 갑발과 삿갓형 갑발뚜껑이 수습되었다. 관요발굴조사에서는 드물게 발견된 공방지와 완전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철제 굽칼은 16세기 백자생산체계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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