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번천리
| 경기도 광주시 번천리 가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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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스 | Place |
|---|---|
| 아이디 | 광주시_번천리_가마터 |
| 대표명칭 | 경기도 광주시 번천리 가마터 |
| 한글명칭 | 경기도 광주시 번천리 가마터 |
| 한자 | 京畿道 光州市 窯址 |
| 유형 | 유적 |
| 세부유형 | 도지가 가마 |
| 시대 | 조선 |
| 위도 | 37.44667999999971 |
| 경도 | 127.26406839999966 |
설명
(1) 번천리는 토속어로 '벌대'라고 한다. 원래는 초월에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내곡, 관청수, 송현을 상번천리라 하고, 음곡, 양지촌은 하번천이라 하여 중부면에 예속시켰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번천리를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된 광주 동쪽의 '벌을천 상품자기소'가 있던 곳이라 하였다. 조선조 사옹원 관요로써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번천리 요지는 15세기 전반부터 16세기의 다양한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다.
(2) 번천리는 1452년에 간행된 『세종실록』 「지리지」에 분원가마가 설치되기 이전 이미 상품자기소가 있었다고 기록된 곳으로 현재 분청사기가마터를 비롯한 백자가마터 22개소가 분포되어 있다. 죽절굽에 태토빚음을 받쳐 여러 점을 포개구운 조질백자를 중심으로 생산했으며 인근 폐기물퇴적에서 다량의 갑발과 ‘天’, ‘地’, ‘玄’ 명문백자가 발견되어 양질백자를 생산했던 갑번가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15~16세기의 분원가마터에는 양질백자가마와 조질백자가마가 서로 약 2~10m정도 거리를 두고 2~3기가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동시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무갑리, 도마리 등 조선전기 여러 가마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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