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D200605
궁평리출토_백자음각_四陶명_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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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궁평리출토_백자음각_四陶명_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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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조선 |
상세설명
궁평리는 우리 토속어로 '궁뜰'이라고 한다. 가마터는 모두 2개소의 집단요지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조 사옹원의 관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선조말기의 민요지이다. 즉 17세기말-18세기초의 가마와 19세기 가마가 중복되어 나타난다. 궁평리의 도자기는 반상기에 굵은 모래나 황갈색의 흙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한 조질백자가 주를 이룬다.[1]
백색의 치밀질 태토에 담청색 투명유를 고르게 시유한 백자접시로 기측선은 저부에서 완만한 곡선으로 올라가는 형태이다. 역삼각형굽 안바닥에는 '四陶'를 세로로 유면음각하였는데 궁평리 1, 2호 발굴조사에서는 '甲子(1684)' 등 간지가 새겨진 음각명문과 함께 '二陶', '三陶' 등 숫자와 '陶'자를 조합한 명문이 출토된 바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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