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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소장품정보 |사진=GCD200558.png |사진출처=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대표명칭=궁평리출토_백자청화_죽문_발 |고유번호=GCD200558 |소장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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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동체 하단에서 수직에 가까운 곡선으로 올라가 구연에 이르는 형태로 굽 안바닥을 깊게 도려낸 전형적인 19세기 백자발이다. 그릇 안바닥과 외측면에 청화문양을 장식하였으며, 외측면의 구연에 청화로 2줄의 횡선을 두르고 간략화된 죽문을 몰골법으로 그려넣었다. 내저면에는 굵은모래의 흔적이 확인되며 굽 접지면에 흙물을 바르고 굵은모래를 받쳐 포개구운 조질백자이다. | + | 탄벌리는 원래 숯가마골이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서 숯을 구웠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가마터는 탄벌리 마을 최상단부에 있는 '사기막골'에 모두 5-6개소가 있다. 탄벌동의 명문은 丙午(1606), 丁未(1607), ?戌, ?申(1608), 己酉(1609), 辛亥(1611), 壬子(1612)가 발견된 바 있어 탄벌동의 운영년대가 1606-1612년경으로 비정되어 왔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ref></br> |
| − | + | 동체 하단에서 수직에 가까운 곡선으로 올라가 구연에 이르는 형태로 굽 안바닥을 깊게 도려낸 전형적인 19세기 백자발이다. 그릇 안바닥과 외측면에 청화문양을 장식하였으며, 외측면의 구연에 청화로 2줄의 횡선을 두르고 간략화된 죽문을 몰골법으로 그려넣었다. 내저면에는 굵은모래의 흔적이 확인되며 굽 접지면에 흙물을 바르고 굵은모래를 받쳐 포개구운 조질백자이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ref></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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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584156 디비피아 조선 초기 명나라 청화백자의 유입과 수용 고찰</br> |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584156 디비피아 조선 초기 명나라 청화백자의 유입과 수용 고찰</br> | ||
2021년 10월 2일 (토) 13:26 판
| 궁평리출토_백자청화_죽문_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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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궁평리출토_백자청화_죽문_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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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시기 | 조선 |
상세설명
탄벌리는 원래 숯가마골이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서 숯을 구웠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가마터는 탄벌리 마을 최상단부에 있는 '사기막골'에 모두 5-6개소가 있다. 탄벌동의 명문은 丙午(1606), 丁未(1607), ?戌, ?申(1608), 己酉(1609), 辛亥(1611), 壬子(1612)가 발견된 바 있어 탄벌동의 운영년대가 1606-1612년경으로 비정되어 왔다.[1]
동체 하단에서 수직에 가까운 곡선으로 올라가 구연에 이르는 형태로 굽 안바닥을 깊게 도려낸 전형적인 19세기 백자발이다. 그릇 안바닥과 외측면에 청화문양을 장식하였으며, 외측면의 구연에 청화로 2줄의 횡선을 두르고 간략화된 죽문을 몰골법으로 그려넣었다. 내저면에는 굵은모래의 흔적이 확인되며 굽 접지면에 흙물을 바르고 굵은모래를 받쳐 포개구운 조질백자이다.[2]
네트워크 그래프
주석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584156 디비피아 조선 초기 명나라 청화백자의 유입과 수용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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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998785 朝鮮 15ㆍ16세기 靑畵白磁의 製作과 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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