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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7일 (화) 20:40 판
| 관음리출토_백자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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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관음리출토_백자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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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시기 | 조선 |
상세설명
관음리는 경안천의 지류인 우산천을 끼고 있는 수운이 용이한 지리적 요충지로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장기간에 거쳐 분원 가마가 운영된 곳이다. 본 유물이 출토 된 관음리 8호 백자가마터 인근에서는 다량의 자기편과 굽통, 굽칼, 갑발편을 비롯하여 수비찌꺼기가 발견되어 수비시설을 포함한 공방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
반상기는 격식을 갖추어 밥상을 차릴 수 있게 만든 한 벌로 구성된 식기이다. 본 유물은 반상기 가운데 대접(냉수 그릇)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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