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D200558"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소장품정보 |사진=GCD200558.png |사진출처=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대표명칭=궁평리출토_백자청화_죽문_발 |고유번호=GCD200558 |소장처=...)
 
(네트워크 그래프)
 
(다른 사용자 한 명의 중간 판 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5번째 줄: 15번째 줄:
  
 
==상세설명==
 
==상세설명==
동체 하단에서 수직에 가까운 곡선으로 올라가 구연에 이르는 형태로 굽 안바닥을 깊게 도려낸 전형적인 19세기 백자발이다. 그릇 안바닥과 외측면에 청화문양을 장식하였으며, 외측면의 구연에 청화로 2줄의 횡선을 두르고 간략화된 죽문을 몰골법으로 그려넣었다. 내저면에는 굵은모래의 흔적이 확인되며 굽 접지면에 흙물을 바르고 굵은모래를 받쳐 포개구운 조질백자이다.
+
궁평리는 우리 토속어로 '궁뜰'이라고 한다. 가마터는 모두 2개소의 집단요지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조 사옹원의 관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선조말기의 민요지이다. 즉 17세기말-18세기초의 가마와 19세기 가마가 중복되어 나타난다. 궁평리의 도자기는 반상기에 굵은 모래나 황갈색의 흙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한 조질백자가 주를 이룬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ref></br>
 
+
동체 하단에서 수직에 가까운 곡선으로 올라가 구연에 이르는 형태로 굽 안바닥을 깊게 도려낸 전형적인 19세기 백자발이다. 그릇 안바닥과 외측면에 청화문양을 장식하였으며, 외측면의 구연에 청화로 2줄의 횡선을 두르고 간략화된 죽문을 몰골법으로 그려넣었다. 내저면에는 굵은모래의 흔적이 확인되며 굽 접지면에 흙물을 바르고 굵은모래를 받쳐 포개구운 조질백자이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ref></br>
==지식요소==
 
청화기법</br>
 
명나라</br>
 
  
 
==네트워크 그래프==
 
==네트워크 그래프==
 
 
<html>
 
<html>
<iframe width="96%" height="500px" src="http://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meta&key=GCD200558"></iframe>
+
<iframe width="65%" height="500px" src="https://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meta&key=GCD200558"></iframe>
 
<br/>
 
<br/>
<input type="button" value="전체화면" onclick="location.href='http://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meta&key=GCD200558'">  
+
<input type="button" value="전체화면" onclick="location.href='https://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meta&key=GCD200558'">  
 
</html>
 
</html>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584156 디비피아 조선 초기 명나라 청화백자의 유입과 수용 고찰</br>
+
=='''주석'''==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6634506 한양도성 출토 15~16세기 청화백자의 조형적 특징과 성격</br>
+
<references/>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420042 조선후기 청화백자 산수문양의 전개양상</br>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8839871 조선 후기 청화백자 문양과 민화와의 상관성 고찰</br>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2481450 18~20세기초 中國 靈芝草花文 靑畵白磁의 유행과 전파</br>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998785 朝鮮 15ㆍ16세기 靑畵白磁의 製作과 使用</br>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526678 조선 전기 청화백자에 그려진 어조문 (魚藻文)의 특징과 함의</br>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511127 조선후기 봉황문(鳳凰紋) 청화백자를 통해 본 분원(分院)의 청화백자 제작과 화본(畫本)</br>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453289 조선 말 청화백자에 장식된 외국산 직물 문양의 연원과 유입과정</br>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584156 조선 초기 명나라 청화백자의 유입과 수용 고찰</br>
 

2024년 4월 19일 (금) 11:12 기준 최신판

궁평리출토_백자청화_죽문_발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대표명칭 궁평리출토_백자청화_죽문_발
제작시기 조선



상세설명

궁평리는 우리 토속어로 '궁뜰'이라고 한다. 가마터는 모두 2개소의 집단요지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조 사옹원의 관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선조말기의 민요지이다. 즉 17세기말-18세기초의 가마와 19세기 가마가 중복되어 나타난다. 궁평리의 도자기는 반상기에 굵은 모래나 황갈색의 흙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한 조질백자가 주를 이룬다.[1]
동체 하단에서 수직에 가까운 곡선으로 올라가 구연에 이르는 형태로 굽 안바닥을 깊게 도려낸 전형적인 19세기 백자발이다. 그릇 안바닥과 외측면에 청화문양을 장식하였으며, 외측면의 구연에 청화로 2줄의 횡선을 두르고 간략화된 죽문을 몰골법으로 그려넣었다. 내저면에는 굵은모래의 흔적이 확인되며 굽 접지면에 흙물을 바르고 굵은모래를 받쳐 포개구운 조질백자이다.[2]

네트워크 그래프


주석

  1.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
  2.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