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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소장품정보 |사진=GCD201133.png |사진출처=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대표명칭=송정동출토_백자음각_庚(1650)左十七명_잔 |고유번호=GCD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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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상세설명==
술이나 물과 같은 액체류를 담는 백자 잔이다. 동체 하단에서 꺾여 사선으로 올라가 구연에서 외반하는 형태로 내저면은 편평하며 동체 하단부의 꺾이는 지점에 굽 지름보다 큰 원각이 있다. 굽은 수직굽으로 접지면과 안바닥에 가는모래가 붙어 있으며 굽 안바닥에는 '庚(1650)左十七'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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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리 요지는 지금까지 5개소가 보고되었다. 1640-1648년까지의 간지가 출토되었으며 유물은 백자반상기, 문방구, 제기뿐만 아니라 철화백자와 나비문이 시문된 청화백자 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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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리가마는 1640년 분원이 설치된 이후 10년이 지난 1649년 초봄, 광주 동면 송치松峙(지금의 송정동)로 이설하였다는 운영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전해진다. 확인된 4기의 가마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2-1호와 2-4호는 길이 22m이상, 너비 180∼300cm로 아궁이와 4개의 번조실, 굴뚝부로 갈수록 약간 넓어지는 반지하식 등요이며 번조실 앞쪽 우측에 출입구가 나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번조실 중심에 불기둥을 둔 조선전기 가마와 달리 불턱으로 경계를 구분하고 번조실 내부에 2~3개의 방형 불기둥을 두었는데, 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발달된 구조로 여겨진다. 가마 외에도 인근에서 추가로 2기의 가마폐기물퇴적과 공방지가 발견되어 여러 가마가 함께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굽 안바닥에 새겨진 辛巳(1641년)~戊子(1648년)에 해당하는<左/右+간지> 명문과 기존에 발견된 庚辰(1640년) 간지를 통해 기록에서처럼 1640~48년까지 운영된 지역임이 증명되었다. 유물은 백자반상기를 중심으로 대발, 합, 병, 호, 문방구, 돈, 명기, 장군, 향로, 제기 등이 만들어졌다. 병,편병 등 특수기종을 중심으로 철화문이 장식되었으며 17세기 가마터에서는 처음으로 나비문이 시문된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 2014 경기도자박물관 발굴유물특별전 >, 광주: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4</ref></br>
==지식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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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나 물과 같은 액체류를 담는 백자 잔이다. 동체 하단에서 꺾여 사선으로 올라가 구연에서 외반하는 형태로 내저면은 편평하며 동체 하단부의 꺾이는 지점에 굽 지름보다 큰 원각이 있다. 굽은 수직굽으로 접지면과 안바닥에 가는모래가 붙어 있으며 굽 안바닥에는 '庚(1650)左十七'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21책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21</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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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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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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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2021년 10월 1일 (금) 01:01 판

송정동출토_백자음각_庚(1650)左十七명_잔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대표명칭 송정동출토_백자음각_庚(1650)左十七명_잔
제작시기 조선



상세설명

선동리 요지는 지금까지 5개소가 보고되었다. 1640-1648년까지의 간지가 출토되었으며 유물은 백자반상기, 문방구, 제기뿐만 아니라 철화백자와 나비문이 시문된 청화백자 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1] 선동리가마는 1640년 분원이 설치된 이후 10년이 지난 1649년 초봄, 광주 동면 송치松峙(지금의 송정동)로 이설하였다는 운영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전해진다. 확인된 4기의 가마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2-1호와 2-4호는 길이 22m이상, 너비 180∼300cm로 아궁이와 4개의 번조실, 굴뚝부로 갈수록 약간 넓어지는 반지하식 등요이며 번조실 앞쪽 우측에 출입구가 나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번조실 중심에 불기둥을 둔 조선전기 가마와 달리 불턱으로 경계를 구분하고 번조실 내부에 2~3개의 방형 불기둥을 두었는데, 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발달된 구조로 여겨진다. 가마 외에도 인근에서 추가로 2기의 가마폐기물퇴적과 공방지가 발견되어 여러 가마가 함께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굽 안바닥에 새겨진 辛巳(1641년)~戊子(1648년)에 해당하는<左/右+간지> 명문과 기존에 발견된 庚辰(1640년) 간지를 통해 기록에서처럼 1640~48년까지 운영된 지역임이 증명되었다. 유물은 백자반상기를 중심으로 대발, 합, 병, 호, 문방구, 돈, 명기, 장군, 향로, 제기 등이 만들어졌다. 병,편병 등 특수기종을 중심으로 철화문이 장식되었으며 17세기 가마터에서는 처음으로 나비문이 시문된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2]
술이나 물과 같은 액체류를 담는 백자 잔이다. 동체 하단에서 꺾여 사선으로 올라가 구연에서 외반하는 형태로 내저면은 편평하며 동체 하단부의 꺾이는 지점에 굽 지름보다 큰 원각이 있다. 굽은 수직굽으로 접지면과 안바닥에 가는모래가 붙어 있으며 굽 안바닥에는 '庚(1650)左十七'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3]

네트워크 그래프


주석

  1.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
  2.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 2014 경기도자박물관 발굴유물특별전 >, 광주: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4
  3.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21책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