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불교사원 스토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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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6일 (화) 00:59 기준 최신판

대문 참고자료

Theme

한양경관 속의 랜드마크, 사찰 -왕실 원찰-
사찰은 출가자들에게는 수행의 공간이 되고, 세속의 중생들에게는 죽은 자의 명복을 빌거나 간절한 소원을 발원하는 기도처이며,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평안을 비는 축원의 공간으로 각종 법회들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행사의 개최지였다. 특히 유교적 이미지로 각인된 조선왕조의 도읍인 한양 한복판에도 흥천사, 흥덕사, 원각사 등 화려하고 거대한 왕실의 원찰들이 위치했었다.

Synopsis

Storyline

Episode 1: 수도 한양의 첫 번째 조선왕실 사찰, 흥천사

태조는 1394년 10월에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1397년 흥천사를 창건하였다. 흥천사는 태조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의 능침사이다. 흥천사는 현재의 서울 중구 정동 자리에 조성되었는데, 현 덕수초등학교, 조선일보사 그리고 서울시의회별관 일대로 경북궁에서 광화문으로 나와 육조거리가 끝나는 곳에서 서남쪽으로 작은 물 건너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Episode 2: 태상왕 태조가 희사하여 창건한 사찰, 흥덕사

흥덕사는 태종대 태상왕이던 태조가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왕자의 난으로 희생되었던 태조의 아들 방번, 방석과 사위 이제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창건하였다. 해당 사찰의 위치는 창덕궁 북쪽 성균관 근처, 즉 성균관과 혜화문 사이였던 것으로 이야기된다.

Episode 3: 청기와가 얹어진 도성의 사찰: 원각사

청기와는 궁궐에서도 주요 전각인 근정전과 사정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세조의 원찰인 원각사와 장의사 전각에도 청기와가 얹어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이들 사찰 전각이 궁궐만큼 높은 위계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원각사는 현재의 탑골공원 자리로 10층의 다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원각사를 창건할 때 8만 장의 청기와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320여 칸에 달하는 청기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양 전경>에서 낮은 민가 사이로 우뚝 솟은 원각사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pisode 4: 평등한 세계관을 지향하는 불교 교리와 도성 안의 비구니절

Episode 5: 왕실여성들의 전국적인 불사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