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E001466"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ongy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소장품정보 |사진=GCE001466.png |사진출처=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대표명칭=선동리출토_백자발 |고유번호=GCE001466 |소장처=경기도자박...)
 
 
(다른 사용자 한 명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2번째 줄: 2번째 줄:
 
|사진=GCE001466.png
 
|사진=GCE001466.png
 
|사진출처=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사진출처=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대표명칭=선동리출토_백자발
+
|클래스=Object
|고유번호=GCE001466
+
|아이디=GCE001466
|소장처=경기도자박물관
+
|웹사이트=
|지정번호=
+
|대표명칭=백자발
|지정일=
+
|한글명칭=백자발
|분류=도자기/백자
+
|한자=
|시대=조선
+
|소장품등록번호=발굴-1466
 +
|높이=11.1
 +
|=굽지름6.0
 +
|너비=
 +
|명문=
 
|제작시기=조선
 
|제작시기=조선
|수량/면적=1점/높이 11.1, 굽지름 6.0 (cm)
 
|웹사이트=
 
 
}}
 
}}
 
 
==상세설명==
 
==상세설명==
 
+
선동리 요지는 지금까지 5개소가 보고되었다. 1640-1648년까지의 간지가 출토되었으며 유물은 백자반상기, 문방구, 제기뿐만 아니라 철화백자와 나비문이 시문된 청화백자 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ref>
 
+
선동리가마는 1640년 분원이 설치된 이후 10년이 지난 1649년 초봄, 광주 동면 송치松峙(지금의 송정동)로 이설하였다는 운영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전해진다. 또한, 굽 안바닥에 새겨진 辛巳(1641년)~戊子(1648년)에 해당하는<左/右+간지> 명문과 기존에 발견된 庚辰(1640년) 간지를 통해 기록에서처럼 1640~48년까지 운영된 지역임이 증명되었다. 유물은 백자반상기를 중심으로 대발, 합, 병, 호, 문방구, 돈, 명기, 장군, 향로, 제기 등이 만들어졌다. 병,편병 등 특수기종을 중심으로 철화문이 장식되었으며 17세기 가마터에서는 처음으로 나비문이 시문된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ref>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 2014 경기도자박물관 발굴유물특별전 >, 광주: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4</ref></br>
==지식요소==
 
</br>
 
  
 
==네트워크 그래프==
 
==네트워크 그래프==
  
 
<html>
 
<html>
<iframe width="96%" height="500px" src="http://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meta&key=GCE001466"></iframe>
+
<iframe width="65%" height="500px" src="https://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jsp&key=GCE001466"></iframe>
 
<br/>
 
<br/>
<input type="button" value="전체화면" onclick="location.href='http://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meta&key=GCE001466'">  
+
<input type="button" value="전체화면" onclick="location.href='https://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jsp&key=GCE001466'">  
 
</html>
 
</html>
 +
=='''주석'''==
 +
<references/>

2024년 4월 19일 (금) 10:11 기준 최신판

백자발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클래스 Object
아이디 GCE001466
대표명칭 백자발
한글명칭 백자발
소장품등록번호 발굴-1466
높이 11.1
굽지름6.0
제작시기 조선



상세설명

선동리 요지는 지금까지 5개소가 보고되었다. 1640-1648년까지의 간지가 출토되었으며 유물은 백자반상기, 문방구, 제기뿐만 아니라 철화백자와 나비문이 시문된 청화백자 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1] 선동리가마는 1640년 분원이 설치된 이후 10년이 지난 1649년 초봄, 광주 동면 송치松峙(지금의 송정동)로 이설하였다는 운영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전해진다. 또한, 굽 안바닥에 새겨진 辛巳(1641년)~戊子(1648년)에 해당하는<左/右+간지> 명문과 기존에 발견된 庚辰(1640년) 간지를 통해 기록에서처럼 1640~48년까지 운영된 지역임이 증명되었다. 유물은 백자반상기를 중심으로 대발, 합, 병, 호, 문방구, 돈, 명기, 장군, 향로, 제기 등이 만들어졌다. 병,편병 등 특수기종을 중심으로 철화문이 장식되었으며 17세기 가마터에서는 처음으로 나비문이 시문된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2]

네트워크 그래프


주석

  1.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
  2.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 2014 경기도자박물관 발굴유물특별전 >, 광주: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