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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9일 (금) 09:58 기준 최신판
{{소장품정보 |사진=
막대형요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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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 Obje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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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 | GCD201043 |
대표명칭 | 막대형요도구 |
한글명칭 | 막대형요도구 |
소장품등록번호 | 기증2-1043 |
높이 | 2.1 |
폭 | 길이15.4 |
제작시기 | 조선 |
상세설명
신대리에는 15*17세기에 운영된 분원 가마터가 29개소 남아 있다. 2008년 도로공사 중 처음 발견된 신대리 29호 가마는 조선 전기 가마의 구조 및 제작기술을 살펴보는 데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큰 유적으로 현재 경기도자박물관내로 이전하여 야외전시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연지어문을 흑상감한 대발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회청색의 백자들로, 4~5개의 태토빚음을 받쳐 포개구운 조질 그릇들이다. 기종은 주을 이루는 일상기명과 함께 화형잔, 양이잔, 고족배, 병, 호 등의 특수기종, 그리고 도침, 굽통 등 각종 작업도구가 발견되었다. 1665년경 조선왕실은 과거 15세기에 백자생산 이력이 있는 신대리로 분원을 이전하였다. 신대리 18호 요지는 2008년 발굴조사에서 17세기에 운영되었던 가마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대부분 회청색 백자로 사군자문과 운문, 용문, ‘+’자문 등을 장식한 철화백자, 소량의 명문백자가 수습되었다. 대발, 호, 병, 제기, 벼루 등 특수기종을 비롯한 오목굽의 조질 반상기종이 주생산품으로, 신대리의 조질백자는 동시기의 지방백자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 상호영향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1]
네트워크 그래프
주석
-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21책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