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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ed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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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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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lt;br /&gt;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는 제2의 홍대 문화 거점지로 대학로가 거듭날 수 있도록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이화사거리에서 시작되어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어지는 대학로의 랜드마크로서 새로운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음&amp;lt;ref&amp;gt;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http://www.hongikartcenter.com/main.do&amp;lt;/ref&amp;gt;&lt;br /&gt;
*황순원의 작품  &amp;lt;모든 영광은&amp;gt;이 연극화 되어 이곳에서 공연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5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연건동 128-8&lt;br /&gt;
&lt;br /&gt;
==='''시설'''===&lt;br /&gt;
*702석 규모의 대극장과 150석 규모의 블랙박스형 소극장, 자연채광의 대형 전시실 4개관을 갖춘 대학로 최대 규모&amp;lt;ref&amp;gt;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http://www.hongikartcenter.com/main.do&amp;lt;/ref&amp;gt;&lt;br /&gt;
*B3~B6까지 418대의 차량 수용이 가능한 지하 주차장&amp;lt;ref&amp;gt;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http://www.hongikartcenter.com/main.do&amp;lt;/ref&amp;gt;&lt;br /&gt;
*아트센터 건물 앞은 김영원 조각가의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사람형상의 거대한 조각상이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을 융합한 예술공간이자, 시민들의 위한 열린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음&amp;lt;ref&amp;gt;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http://www.hongikartcenter.com/main.do&amp;lt;/ref&amp;gt;&lt;br /&gt;
*지하 1~2층에는 총 756평에 달하는 4개의 전시장&amp;lt;ref&amp;gt;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http://www.hongikartcenter.com/main.do&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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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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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lt;br /&gt;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는 제2의 홍대 문화 거점지로 대학로가 거듭날 수 있도록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이화사거리에서 시작되어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어지는 대학로의 랜드마크로서 새로운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음&amp;lt;ref&amp;gt;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http://www.hongikartcenter.com/main.do&amp;lt;/ref&amp;gt;&lt;br /&gt;
*황순원의 작품  &amp;lt;모든 영광은&amp;gt;이 연극화 되어 이곳에서 공연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5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연건동 128-8&lt;br /&gt;
&lt;br /&gt;
==='''시설'''===&lt;br /&gt;
*702석 규모의 대극장과 150석 규모의 블랙박스형 소극장, 자연채광의 대형 전시실 4개관을 갖춘 대학로 최대 규모&lt;br /&gt;
*B3~B6까지 418대의 차량 수용이 가능한 지하 주차장&lt;br /&gt;
*아트센터 건물 앞은 김영원 조각가의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사람형상의 거대한 조각상이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을 융합한 예술공간이자, 시민들의 위한 열린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음&lt;br /&gt;
*지하 1~2층에는 총 756평에 달하는 4개의 전시장&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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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고등학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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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서울고등학교'''===&lt;br /&gt;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며, 1946년 9월, 황순원이 월남 후 이곳에 국어 교사로 취임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19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526-1&lt;br /&gt;
&lt;br /&gt;
==='''면적'''===&lt;br /&gt;
#교사부지 : 51,634㎡&lt;br /&gt;
#운  동  장 : 22,110㎡&lt;br /&gt;
#총 : 73,744㎡ (22,347평)&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년도 || 사건&lt;br /&gt;
|-&lt;br /&gt;
| 1946. 2. 1 || 신설중학교 초대 교장에 김원규 선생이 취임하여 개교 사무를 옛 경희궁터에서 개시&lt;br /&gt;
|-&lt;br /&gt;
| 1946. 3. 5 || 개교식 및 입학식을 거행(12학급, 학생 552명, 교사 34명)&lt;br /&gt;
|-&lt;br /&gt;
| 1947. 6. ||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확정&lt;br /&gt;
|-&lt;br /&gt;
| 1950. 6.28 || 6·25 동란으로 무기 휴교&lt;br /&gt;
|-&lt;br /&gt;
| 1951. 9. 1 || 학제 변경으로 서울중학교(3년제)와 서울고등학교(3년제)로 분리. 김원규 교장 선생 양교 교장을 겸임(중학교 15학급, 고등학교 21학급)&lt;br /&gt;
|-&lt;br /&gt;
| 1951.12.31. || 서울중학교를 ‘서대문중학교’로 교명 개칭&lt;br /&gt;
|-&lt;br /&gt;
| 1952. 4. 8 || 서울 잔류 학생과 서울의 지방 학생을 위하여 서울중고등학교 서울분교를 개교하고, 고한권 교감이 업무 관장&lt;br /&gt;
|-&lt;br /&gt;
| 1953. 7. 1 || ‘서대문중학교’를 ‘서울중학교’로 교명 환원&lt;br /&gt;
|-&lt;br /&gt;
| 1953.10. 1. || 정부 환도로 전교 개교(본관, 후관은 영국군 사용, 강당 체육관에서 칸막이 수업)&lt;br /&gt;
|-&lt;br /&gt;
| 1958.11. || 제1회 경희문학상 제정&lt;br /&gt;
|-&lt;br /&gt;
| 1971. 2.28 ||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서울중학교 폐교(총 20회, 8,850명의 졸업생 배출)&lt;br /&gt;
|-&lt;br /&gt;
| 1971. 7. 3. || 재단법인 인왕장학재단 설립&lt;br /&gt;
|-&lt;br /&gt;
| 1974. 9. 1 ||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개교(11학급)&lt;br /&gt;
|-&lt;br /&gt;
| 1980. 6.9 || 	서초구 신축 교사로 이전, 입교식. 수업 개시&lt;br /&gt;
|-&lt;br /&gt;
| 1997.10.27 || 서울시교육청 지정 시범학교 발표(독후감 발표 및 토론대회를 통한 독서 효과의 극대화 방안)&lt;br /&gt;
|-&lt;br /&gt;
| 2007.12.18 || 학력신장 우수학교 수상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7.12.24 || 전국 교육과정 최우수학교(종합분야)선정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수상&lt;br /&gt;
|-&lt;br /&gt;
| 2008. 12.26. || 독서토론논술교육/과학교육 서울특별시 우수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 2. 6 || 미국 자매학교 월트 휘트먼 고교 방문&lt;br /&gt;
|-&lt;br /&gt;
| 2009.10.26 || 교과부 지정 과학중점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12. 2. || 학생생활지도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24. || 학교평가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31 || 학교체육활동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0. 1.22 || 과학중점학교 자율학교 지정&lt;br /&gt;
|-&lt;br /&gt;
| 2010. 8.27 || 일본자매기관 아키다현 교육청과 연계와 협력에 관한 협정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0.10.16 || 서울고 동문 6.25전쟁 참전 기념비 제막식&lt;br /&gt;
|-&lt;br /&gt;
| 2010.12. 7 || 중국자매학교 북경 육재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2.12.24 || 유네스코학교 승인&lt;br /&gt;
|-&lt;br /&gt;
| 2012.12.20 || 2012학년도 서울시교육청 학교평가(교육경영)우수학교 대상, 2012학년도 학교체육교육 우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lt;br /&gt;
|-&lt;br /&gt;
| 2012.12.31 || 2012학년도 강남교육지원청 진로교육 우수학교 대상&lt;br /&gt;
|-&lt;br /&gt;
| 2013. 2.27 || 소련 블라디보스톡 제2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3.12.16 || 2013학년도 교육과정(체육)거점학교 교육감(최우수) 표창&lt;br /&gt;
|-&lt;br /&gt;
| 2013.12.27 || 2013학년도 국제교류 우수사례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3.17 || 2013 학교평가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12.31 || 2014 교육활동(교육과정)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5. 2.12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교육부장관 표창&lt;br /&gt;
|-&lt;br /&gt;
| 2018. 6. 12 || 일본 건국고교와 자매학교 결연식&lt;br /&gt;
|-&lt;br /&gt;
| 2019. 2. 5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9. 2. 7.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5. 16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11. 20 || 러시아 자매학교 가스포럼고등학교와 상호 협정서 조인식	&lt;br /&gt;
|}&amp;lt;ref&amp;gt;서울고등학교, http://seoul.sen.hs.kr/index.do&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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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고등학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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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30T15:46: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서울고등학교'''===&lt;br /&gt;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며, 1946년 9월, 황순원이 월남 후 이곳에 국어 교사로 취임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19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526-1&lt;br /&gt;
&lt;br /&gt;
==='''면적'''===&lt;br /&gt;
#교사부지 : 51,634㎡&lt;br /&gt;
#운  동  장 : 22,110㎡&lt;br /&gt;
#총 : 73,744㎡ (22,347평)&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년도 || 사건&lt;br /&gt;
|-&lt;br /&gt;
| 1946. 2. 1 || 신설중학교 초대 교장에 김원규 선생이 취임하여 개교 사무를 옛 경희궁터에서 개시&lt;br /&gt;
|-&lt;br /&gt;
| 1946. 3. 5 || 개교식 및 입학식을 거행(12학급, 학생 552명, 교사 34명)&lt;br /&gt;
|-&lt;br /&gt;
| 1947. 6. ||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확정&lt;br /&gt;
|-&lt;br /&gt;
| 1950. 6.28 || 6·25 동란으로 무기 휴교&lt;br /&gt;
|-&lt;br /&gt;
| 1951. 9. 1 || 학제 변경으로 서울중학교(3년제)와 서울고등학교(3년제)로 분리. 김원규 교장 선생 양교 교장을 겸임(중학교 15학급, 고등학교 21학급)&lt;br /&gt;
|-&lt;br /&gt;
| 1951.12.31. || 서울중학교를 ‘서대문중학교’로 교명 개칭&lt;br /&gt;
|-&lt;br /&gt;
| 1952. 4. 8 || 서울 잔류 학생과 서울의 지방 학생을 위하여 서울중고등학교 서울분교를 개교하고, 고한권 교감이 업무 관장&lt;br /&gt;
|-&lt;br /&gt;
| 1953. 7. 1 || ‘서대문중학교’를 ‘서울중학교’로 교명 환원&lt;br /&gt;
|-&lt;br /&gt;
| 1953.10. 1. || 정부 환도로 전교 개교(본관, 후관은 영국군 사용, 강당 체육관에서 칸막이 수업)&lt;br /&gt;
|-&lt;br /&gt;
| 1958.11. || 제1회 경희문학상 제정&lt;br /&gt;
|-&lt;br /&gt;
| 1971. 2.28 ||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서울중학교 폐교(총 20회, 8,850명의 졸업생 배출)&lt;br /&gt;
|-&lt;br /&gt;
| 1971. 7. 3. || 재단법인 인왕장학재단 설립&lt;br /&gt;
|-&lt;br /&gt;
| 1974. 9. 1 ||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개교(11학급)&lt;br /&gt;
|-&lt;br /&gt;
| 1980. 6.9 || 	서초구 신축 교사로 이전, 입교식. 수업 개시&lt;br /&gt;
|-&lt;br /&gt;
| 1997.10.27 || 서울시교육청 지정 시범학교 발표(독후감 발표 및 토론대회를 통한 독서 효과의 극대화 방안)&lt;br /&gt;
|-&lt;br /&gt;
| 2007.12.18 || 학력신장 우수학교 수상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7.12.24 || 전국 교육과정 최우수학교(종합분야)선정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수상&lt;br /&gt;
|-&lt;br /&gt;
| 2008. 12.26. || 독서토론논술교육/과학교육 서울특별시 우수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 2. 6 || 미국 자매학교 월트 휘트먼 고교 방문&lt;br /&gt;
|-&lt;br /&gt;
| 2009.10.26 || 교과부 지정 과학중점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12. 2. || 학생생활지도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24. || 학교평가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31 || 학교체육활동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0. 1.22 || 과학중점학교 자율학교 지정&lt;br /&gt;
|-&lt;br /&gt;
| 2010. 8.27 || 일본자매기관 아키다현 교육청과 연계와 협력에 관한 협정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0.10.16 || 서울고 동문 6.25전쟁 참전 기념비 제막식&lt;br /&gt;
|-&lt;br /&gt;
| 2010.12. 7 || 중국자매학교 북경 육재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2.12.24 || 유네스코학교 승인&lt;br /&gt;
|-&lt;br /&gt;
| 2012.12.20 || 2012학년도 서울시교육청 학교평가(교육경영)우수학교 대상, 2012학년도 학교체육교육 우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lt;br /&gt;
|-&lt;br /&gt;
| 2012.12.31 || 2012학년도 강남교육지원청 진로교육 우수학교 대상&lt;br /&gt;
|-&lt;br /&gt;
| 2013. 2.27 || 소련 블라디보스톡 제2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3.12.16 || 2013학년도 교육과정(체육)거점학교 교육감(최우수) 표창&lt;br /&gt;
|-&lt;br /&gt;
| 2013.12.27 || 2013학년도 국제교류 우수사례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3.17 || 2013 학교평가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12.31 || 2014 교육활동(교육과정)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5. 2.12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교육부장관 표창&lt;br /&gt;
|-&lt;br /&gt;
| 2018. 6. 12 || 일본 건국고교와 자매학교 결연식&lt;br /&gt;
|-&lt;br /&gt;
| 2019. 2. 5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표창&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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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2. 7.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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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5. 16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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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11. 20 || 러시아 자매학교 가스포럼고등학교와 상호 협정서 조인식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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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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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lt;br /&gt;
&lt;br /&gt;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amp;lt;ref&amp;gt;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amp;quot;국내외 정세에 대처하여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고, 국내외 경제난국의 타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제세책을 뒷받침하며, 사회안정의 확보로 정치발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 부조리 및 각종 사회악의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amp;quot;&amp;lt;ref&amp;gt;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amp;lt;ref&amp;gt;『나무위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2020&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amp;lt;ref&amp;gt;doopedia, 『두산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amp;lt;ref&amp;gt;『나무위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2020&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80년대 어느 가을에, 황순원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갔다 와서는 강태근을 러시아집으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국보위 위원의 자리를 권유받은 것에 대해 강태근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더러 국보위 위원이 돼 달라고 하더군. 흠, 나는 못 한다고 했고… 서정주는 수락했지.” 그러고 나서 “자네 이광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강태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강태근이 작품과 사람 평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혼이 떠났으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거야. 참회한다고 「돌베개」를 썼지만 그건, 참회가 아니라, 자기합리화고, 변명이고, 위선이야!”라고 수락한 서정주에 대한 거센 비판을 가했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강태근,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194p&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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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lt;br /&gt;
&lt;br /&gt;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amp;lt;ref&amp;gt;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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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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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quot;국내외 정세에 대처하여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고, 국내외 경제난국의 타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제세책을 뒷받침하며, 사회안정의 확보로 정치발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 부조리 및 각종 사회악의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amp;quot;&amp;lt;ref&amp;gt;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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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amp;lt;ref&amp;gt;doopedia, 『두산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amp;lt;ref&amp;gt;『나무위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2020&amp;lt;/ref&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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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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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80년대 어느 가을에, 황순원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갔다 와서는 강태근을 러시아집으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국보위 위원의 자리를 권유받은 것에 대해 강태근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더러 국보위 위원이 돼 달라고 하더군. 흠, 나는 못 한다고 했고… 서정주는 수락했지.” 그러고 나서 “자네 이광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강태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강태근이 작품과 사람 평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혼이 떠났으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거야. 참회한다고 「돌베개」를 썼지만 그건, 참회가 아니라, 자기합리화고, 변명이고, 위선이야!”라고 수락한 서정주에 대한 거센 비판을 가했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강태근,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194p&amp;lt;/ref&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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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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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amp;lt;ref&amp;gt;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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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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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amp;lt;ref&amp;gt;doopedia, 『두산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amp;lt;ref&amp;gt;『나무위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2020&amp;lt;/ref&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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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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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amp;lt;ref&amp;gt;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amp;lt;/ref&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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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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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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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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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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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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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새 문서:  ==='''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는 제2의 홍대 문화 거점지로 대학로가 거듭날 수 있도록 이바지하기 위...&lt;/p&gt;
&lt;hr /&gt;
&lt;div&gt;&lt;br /&gt;
==='''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lt;br /&gt;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는 제2의 홍대 문화 거점지로 대학로가 거듭날 수 있도록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이화사거리에서 시작되어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어지는 대학로의 랜드마크로서 새로운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음&lt;br /&gt;
*황순원의 작품  &amp;lt;모든 영광은&amp;gt;이 연극화 되어 이곳에서 공연됨. &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5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연건동 128-8&lt;br /&gt;
&lt;br /&gt;
==='''시설'''===&lt;br /&gt;
*702석 규모의 대극장과 150석 규모의 블랙박스형 소극장, 자연채광의 대형 전시실 4개관을 갖춘 대학로 최대 규모&lt;br /&gt;
*B3~B6까지 418대의 차량 수용이 가능한 지하 주차장&lt;br /&gt;
*아트센터 건물 앞은 김영원 조각가의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사람형상의 거대한 조각상이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을 융합한 예술공간이자, 시민들의 위한 열린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음&lt;br /&gt;
*지하 1~2층에는 총 756평에 달하는 4개의 전시장&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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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고등학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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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서울고등학교'''===&lt;br /&gt;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며, 1946년 9월, 황순원이 월남 후 이곳에 국어 교사로 취임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19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526-1&lt;br /&gt;
&lt;br /&gt;
==='''면적'''===&lt;br /&gt;
#교사부지 : 51,634㎡&lt;br /&gt;
#운  동  장 : 22,110㎡&lt;br /&gt;
#총 : 73,744㎡ (22,347평)&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년도 || 사건&lt;br /&gt;
|-&lt;br /&gt;
| 1946. 2. 1 || 신설중학교 초대 교장에 김원규 선생이 취임하여 개교 사무를 옛 경희궁터에서 개시&lt;br /&gt;
|-&lt;br /&gt;
| 1946. 3. 5 || 개교식 및 입학식을 거행(12학급, 학생 552명, 교사 34명)&lt;br /&gt;
|-&lt;br /&gt;
| 1947. 6. ||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확정&lt;br /&gt;
|-&lt;br /&gt;
| 1950. 6.28 || 6·25 동란으로 무기 휴교&lt;br /&gt;
|-&lt;br /&gt;
| 1951. 9. 1 || 학제 변경으로 서울중학교(3년제)와 서울고등학교(3년제)로 분리. 김원규 교장 선생 양교 교장을 겸임(중학교 15학급, 고등학교 21학급)&lt;br /&gt;
|-&lt;br /&gt;
| 1951.12.31. || 서울중학교를 ‘서대문중학교’로 교명 개칭&lt;br /&gt;
|-&lt;br /&gt;
| 1952. 4. 8 || 서울 잔류 학생과 서울의 지방 학생을 위하여 서울중고등학교 서울분교를 개교하고, 고한권 교감이 업무 관장&lt;br /&gt;
|-&lt;br /&gt;
| 1953. 7. 1 || ‘서대문중학교’를 ‘서울중학교’로 교명 환원&lt;br /&gt;
|-&lt;br /&gt;
| 1953.10. 1. || 정부 환도로 전교 개교(본관, 후관은 영국군 사용, 강당 체육관에서 칸막이 수업)&lt;br /&gt;
|-&lt;br /&gt;
| 1958.11. || 제1회 경희문학상 제정&lt;br /&gt;
|-&lt;br /&gt;
| 1971. 2.28 ||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서울중학교 폐교(총 20회, 8,850명의 졸업생 배출)&lt;br /&gt;
|-&lt;br /&gt;
| 1971. 7. 3. || 재단법인 인왕장학재단 설립&lt;br /&gt;
|-&lt;br /&gt;
| 1974. 9. 1 ||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개교(11학급)&lt;br /&gt;
|-&lt;br /&gt;
| 1980. 6.9 || 	서초구 신축 교사로 이전, 입교식. 수업 개시&lt;br /&gt;
|-&lt;br /&gt;
| 1997.10.27 || 서울시교육청 지정 시범학교 발표(독후감 발표 및 토론대회를 통한 독서 효과의 극대화 방안)&lt;br /&gt;
|-&lt;br /&gt;
| 2007.12.18 || 학력신장 우수학교 수상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7.12.24 || 전국 교육과정 최우수학교(종합분야)선정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수상&lt;br /&gt;
|-&lt;br /&gt;
| 2008. 12.26. || 독서토론논술교육/과학교육 서울특별시 우수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 2. 6 || 미국 자매학교 월트 휘트먼 고교 방문&lt;br /&gt;
|-&lt;br /&gt;
| 2009.10.26 || 교과부 지정 과학중점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12. 2. || 학생생활지도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24. || 학교평가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31 || 학교체육활동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0. 1.22 || 과학중점학교 자율학교 지정&lt;br /&gt;
|-&lt;br /&gt;
| 2010. 8.27 || 일본자매기관 아키다현 교육청과 연계와 협력에 관한 협정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0.10.16 || 서울고 동문 6.25전쟁 참전 기념비 제막식&lt;br /&gt;
|-&lt;br /&gt;
| 2010.12. 7 || 중국자매학교 북경 육재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2.12.24 || 유네스코학교 승인&lt;br /&gt;
|-&lt;br /&gt;
| 2012.12.20 || 2012학년도 서울시교육청 학교평가(교육경영)우수학교 대상, 2012학년도 학교체육교육 우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lt;br /&gt;
|-&lt;br /&gt;
| 2012.12.31 || 2012학년도 강남교육지원청 진로교육 우수학교 대상&lt;br /&gt;
|-&lt;br /&gt;
| 2013. 2.27 || 소련 블라디보스톡 제2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3.12.16 || 2013학년도 교육과정(체육)거점학교 교육감(최우수) 표창&lt;br /&gt;
|-&lt;br /&gt;
| 2013.12.27 || 2013학년도 국제교류 우수사례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3.17 || 2013 학교평가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12.31 || 2014 교육활동(교육과정)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5. 2.12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교육부장관 표창&lt;br /&gt;
|-&lt;br /&gt;
| 2018. 6. 12 || 일본 건국고교와 자매학교 결연식&lt;br /&gt;
|-&lt;br /&gt;
| 2019. 2. 5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9. 2. 7.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5. 16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11. 20 || 러시아 자매학교 가스포럼고등학교와 상호 협정서 조인식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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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고등학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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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12:06: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서울고등학교'''===&lt;br /&gt;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며, 1946년 9월, 황순원이 월남 후 이곳에 국어 교사로 취임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19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526-1&lt;br /&gt;
&lt;br /&gt;
==='''면적'''===&lt;br /&gt;
#교사부지 : 51,634㎡&lt;br /&gt;
#운  동  장 : 22,110㎡&lt;br /&gt;
#총 : 73,744㎡ (22,347평)&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년도 || 사건&lt;br /&gt;
|-&lt;br /&gt;
| 1946. 2. 1 || 신설중학교 초대 교장에 김원규 선생이 취임하여 개교 사무를 옛 경희궁터에서 개시&lt;br /&gt;
|-&lt;br /&gt;
| 1946. 3. 5 || 개교식 및 입학식을 거행(12학급, 학생 552명, 교사 34명)&lt;br /&gt;
|-&lt;br /&gt;
| 1947. 6. ||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확정&lt;br /&gt;
|-&lt;br /&gt;
| 1950. 6.28 || 6·25 동란으로 무기 휴교&lt;br /&gt;
|-&lt;br /&gt;
| 1951. 9. 1 || 학제 변경으로 서울중학교(3년제)와 서울고등학교(3년제)로 분리. 김원규 교장 선생 양교 교장을 겸임(중학교 15학급, 고등학교 21학급)&lt;br /&gt;
|-&lt;br /&gt;
| 1951.12.31. || 서울중학교를 ‘서대문중학교’로 교명 개칭&lt;br /&gt;
|-&lt;br /&gt;
| 1952. 4. 8 || 서울 잔류 학생과 서울의 지방 학생을 위하여 서울중고등학교 서울분교를 개교하고, 고한권 교감이 업무 관장&lt;br /&gt;
|-&lt;br /&gt;
| 1953. 7. 1 || ‘서대문중학교’를 ‘서울중학교’로 교명 환원&lt;br /&gt;
|-&lt;br /&gt;
| 1953.10. 1. || 정부 환도로 전교 개교(본관, 후관은 영국군 사용, 강당 체육관에서 칸막이 수업)&lt;br /&gt;
|-&lt;br /&gt;
| 1958.11. || 제1회 경희문학상 제정&lt;br /&gt;
|-&lt;br /&gt;
| 1971. 2.28 ||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서울중학교 폐교(총 20회, 8,850명의 졸업생 배출)&lt;br /&gt;
|-&lt;br /&gt;
| 1971. 7. 3. || 재단법인 인왕장학재단 설립&lt;br /&gt;
|-&lt;br /&gt;
| 1974. 9. 1 ||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개교(11학급)&lt;br /&gt;
|-&lt;br /&gt;
| 1980. 6.9 || 	서초구 신축 교사로 이전, 입교식. 수업 개시&lt;br /&gt;
|-&lt;br /&gt;
| 1997.10.27 || 서울시교육청 지정 시범학교 발표(독후감 발표 및 토론대회를 통한 독서 효과의 극대화 방안)&lt;br /&gt;
|-&lt;br /&gt;
| 2007.12.18 || 학력신장 우수학교 수상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7.12.24 || 전국 교육과정 최우수학교(종합분야)선정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수상&lt;br /&gt;
|-&lt;br /&gt;
| 2008. 12.26. || 독서토론논술교육/과학교육 서울특별시 우수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 2. 6 || 미국 자매학교 월트 휘트먼 고교 방문&lt;br /&gt;
|-&lt;br /&gt;
| 2009.10.26 || 교과부 지정 과학중점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12. 2. || 학생생활지도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24. || 학교평가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31 || 학교체육활동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0. 1.22 || 과학중점학교 자율학교 지정&lt;br /&gt;
|-&lt;br /&gt;
| 2010. 8.27 || 일본자매기관 아키다현 교육청과 연계와 협력에 관한 협정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0.10.16 || 서울고 동문 6.25전쟁 참전 기념비 제막식&lt;br /&gt;
|-&lt;br /&gt;
| 2010.12. 7 || 중국자매학교 북경 육재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2.12.24 || 유네스코학교 승인&lt;br /&gt;
|-&lt;br /&gt;
| 2012.12.20 || 2012학년도 서울시교육청 학교평가(교육경영)우수학교 대상, 2012학년도 학교체육교육 우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lt;br /&gt;
|-&lt;br /&gt;
| 2012.12.31 || 2012학년도 강남교육지원청 진로교육 우수학교 대상&lt;br /&gt;
|-&lt;br /&gt;
| 2013. 2.27 || 소련 블라디보스톡 제2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3.12.16 || 2013학년도 교육과정(체육)거점학교 교육감(최우수) 표창&lt;br /&gt;
|-&lt;br /&gt;
| 2013.12.27 || 2013학년도 국제교류 우수사례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3.17 || 2013 학교평가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12.31 || 2014 교육활동(교육과정)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5. 2.12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교육부장관 표창&lt;br /&gt;
|-&lt;br /&gt;
| 2018. 6. 12 || 일본 건국고교와 자매학교 결연식&lt;br /&gt;
|-&lt;br /&gt;
| 2019. 2. 5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9. 2. 7.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5. 16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11. 20 || 러시아 자매학교 가스포럼고등학교와 상호 협정서 조인식	&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 시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84%9C%EC%9A%B8%EA%B3%A0%EB%93%B1%ED%95%99%EA%B5%90&amp;diff=14708</id>
		<title>서울고등학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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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12:04: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서울고등학교'''===&lt;br /&gt;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다. &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19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526-1&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교사부지 : 51,634㎡&lt;br /&gt;
#운  동  장 : 22,110㎡&lt;br /&gt;
#총 : 73,744㎡ (22,347평)&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년도 || 사건&lt;br /&gt;
|-&lt;br /&gt;
| 1946. 2. 1 || 신설중학교 초대 교장에 김원규 선생이 취임하여 개교 사무를 옛 경희궁터에서 개시&lt;br /&gt;
|-&lt;br /&gt;
| 1946. 3. 5 || 개교식 및 입학식을 거행(12학급, 학생 552명, 교사 34명)&lt;br /&gt;
|-&lt;br /&gt;
| 1947. 6. ||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확정&lt;br /&gt;
|-&lt;br /&gt;
| 1950. 6.28 || 6·25 동란으로 무기 휴교&lt;br /&gt;
|-&lt;br /&gt;
| 1951. 9. 1 || 학제 변경으로 서울중학교(3년제)와 서울고등학교(3년제)로 분리. 김원규 교장 선생 양교 교장을 겸임(중학교 15학급, 고등학교 21학급)&lt;br /&gt;
|-&lt;br /&gt;
| 1951.12.31. || 서울중학교를 ‘서대문중학교’로 교명 개칭&lt;br /&gt;
|-&lt;br /&gt;
| 1952. 4. 8 || 서울 잔류 학생과 서울의 지방 학생을 위하여 서울중고등학교 서울분교를 개교하고, 고한권 교감이 업무 관장&lt;br /&gt;
|-&lt;br /&gt;
| 1953. 7. 1 || ‘서대문중학교’를 ‘서울중학교’로 교명 환원&lt;br /&gt;
|-&lt;br /&gt;
| 1953.10. 1. || 정부 환도로 전교 개교(본관, 후관은 영국군 사용, 강당 체육관에서 칸막이 수업)&lt;br /&gt;
|-&lt;br /&gt;
| 1958.11. || 제1회 경희문학상 제정&lt;br /&gt;
|-&lt;br /&gt;
| 1971. 2.28 ||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서울중학교 폐교(총 20회, 8,850명의 졸업생 배출)&lt;br /&gt;
|-&lt;br /&gt;
| 1971. 7. 3. || 재단법인 인왕장학재단 설립&lt;br /&gt;
|-&lt;br /&gt;
| 1974. 9. 1 ||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개교(11학급)&lt;br /&gt;
|-&lt;br /&gt;
| 1980. 6.9 || 	서초구 신축 교사로 이전, 입교식. 수업 개시&lt;br /&gt;
|-&lt;br /&gt;
| 1997.10.27 || 서울시교육청 지정 시범학교 발표(독후감 발표 및 토론대회를 통한 독서 효과의 극대화 방안)&lt;br /&gt;
|-&lt;br /&gt;
| 2007.12.18 || 학력신장 우수학교 수상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7.12.24 || 전국 교육과정 최우수학교(종합분야)선정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수상&lt;br /&gt;
|-&lt;br /&gt;
| 2008. 12.26. || 독서토론논술교육/과학교육 서울특별시 우수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 2. 6 || 미국 자매학교 월트 휘트먼 고교 방문&lt;br /&gt;
|-&lt;br /&gt;
| 2009.10.26 || 교과부 지정 과학중점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12. 2. || 학생생활지도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24. || 학교평가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31 || 학교체육활동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0. 1.22 || 과학중점학교 자율학교 지정&lt;br /&gt;
|-&lt;br /&gt;
| 2010. 8.27 || 일본자매기관 아키다현 교육청과 연계와 협력에 관한 협정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0.10.16 || 서울고 동문 6.25전쟁 참전 기념비 제막식&lt;br /&gt;
|-&lt;br /&gt;
| 2010.12. 7 || 중국자매학교 북경 육재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2.12.24 || 유네스코학교 승인&lt;br /&gt;
|-&lt;br /&gt;
| 2012.12.20 || 2012학년도 서울시교육청 학교평가(교육경영)우수학교 대상, 2012학년도 학교체육교육 우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lt;br /&gt;
|-&lt;br /&gt;
| 2012.12.31 || 2012학년도 강남교육지원청 진로교육 우수학교 대상&lt;br /&gt;
|-&lt;br /&gt;
| 2013. 2.27 || 소련 블라디보스톡 제2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3.12.16 || 2013학년도 교육과정(체육)거점학교 교육감(최우수) 표창&lt;br /&gt;
|-&lt;br /&gt;
| 2013.12.27 || 2013학년도 국제교류 우수사례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3.17 || 2013 학교평가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12.31 || 2014 교육활동(교육과정)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5. 2.12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교육부장관 표창&lt;br /&gt;
|-&lt;br /&gt;
| 2018. 6. 12 || 일본 건국고교와 자매학교 결연식&lt;br /&gt;
|-&lt;br /&gt;
| 2019. 2. 5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9. 2. 7.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5. 16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11. 20 || 러시아 자매학교 가스포럼고등학교와 상호 협정서 조인식	&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 시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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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고등학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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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12:02: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새 문서:  ==='''서울고등학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다.   ==='''위치'''===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197 *지번 주...&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서울고등학교'''===&lt;br /&gt;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다. &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197&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526-1&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년도 || 사건&lt;br /&gt;
|-&lt;br /&gt;
| 1946. 2. 1 || 신설중학교 초대 교장에 김원규 선생이 취임하여 개교 사무를 옛 경희궁터에서 개시&lt;br /&gt;
|-&lt;br /&gt;
| 1946. 3. 5 || 개교식 및 입학식을 거행(12학급, 학생 552명, 교사 34명)&lt;br /&gt;
|-&lt;br /&gt;
| 1947. 6. ||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확정&lt;br /&gt;
|-&lt;br /&gt;
| 1950. 6.28 || 6·25 동란으로 무기 휴교&lt;br /&gt;
|-&lt;br /&gt;
| 1951. 9. 1 || 학제 변경으로 서울중학교(3년제)와 서울고등학교(3년제)로 분리. 김원규 교장 선생 양교 교장을 겸임(중학교 15학급, 고등학교 21학급)&lt;br /&gt;
|-&lt;br /&gt;
| 1951.12.31. || 서울중학교를 ‘서대문중학교’로 교명 개칭&lt;br /&gt;
|-&lt;br /&gt;
| 1952. 4. 8 || 서울 잔류 학생과 서울의 지방 학생을 위하여 서울중고등학교 서울분교를 개교하고, 고한권 교감이 업무 관장&lt;br /&gt;
|-&lt;br /&gt;
| 1953. 7. 1 || ‘서대문중학교’를 ‘서울중학교’로 교명 환원&lt;br /&gt;
|-&lt;br /&gt;
| 1953.10. 1. || 정부 환도로 전교 개교(본관, 후관은 영국군 사용, 강당 체육관에서 칸막이 수업)&lt;br /&gt;
|-&lt;br /&gt;
| 1958.11. || 제1회 경희문학상 제정&lt;br /&gt;
|-&lt;br /&gt;
| 1971. 2.28 ||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서울중학교 폐교(총 20회, 8,850명의 졸업생 배출)&lt;br /&gt;
|-&lt;br /&gt;
| 1971. 7. 3. || 재단법인 인왕장학재단 설립&lt;br /&gt;
|-&lt;br /&gt;
| 1974. 9. 1 ||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개교(11학급)&lt;br /&gt;
|-&lt;br /&gt;
| 1980. 6.9 || 	서초구 신축 교사로 이전, 입교식. 수업 개시&lt;br /&gt;
|-&lt;br /&gt;
| 1997.10.27 || 서울시교육청 지정 시범학교 발표(독후감 발표 및 토론대회를 통한 독서 효과의 극대화 방안)&lt;br /&gt;
|-&lt;br /&gt;
| 2007.12.18 || 학력신장 우수학교 수상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7.12.24 || 전국 교육과정 최우수학교(종합분야)선정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수상&lt;br /&gt;
|-&lt;br /&gt;
| 2008. 12.26. || 독서토론논술교육/과학교육 서울특별시 우수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 2. 6 || 미국 자매학교 월트 휘트먼 고교 방문&lt;br /&gt;
|-&lt;br /&gt;
| 2009.10.26 || 교과부 지정 과학중점학교 선정&lt;br /&gt;
|-&lt;br /&gt;
| 2009.12. 2. || 학생생활지도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24. || 학교평가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09.12.31 || 학교체육활동 우수학교 서울시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0. 1.22 || 과학중점학교 자율학교 지정&lt;br /&gt;
|-&lt;br /&gt;
| 2010. 8.27 || 일본자매기관 아키다현 교육청과 연계와 협력에 관한 협정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0.10.16 || 서울고 동문 6.25전쟁 참전 기념비 제막식&lt;br /&gt;
|-&lt;br /&gt;
| 2010.12. 7 || 중국자매학교 북경 육재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2.12.24 || 유네스코학교 승인&lt;br /&gt;
|-&lt;br /&gt;
| 2012.12.20 || 2012학년도 서울시교육청 학교평가(교육경영)우수학교 대상, 2012학년도 학교체육교육 우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lt;br /&gt;
|-&lt;br /&gt;
| 2012.12.31 || 2012학년도 강남교육지원청 진로교육 우수학교 대상&lt;br /&gt;
|-&lt;br /&gt;
| 2013. 2.27 || 소련 블라디보스톡 제2학교와 상호협정서 조인식&lt;br /&gt;
|-&lt;br /&gt;
| 2013.12.16 || 2013학년도 교육과정(체육)거점학교 교육감(최우수) 표창&lt;br /&gt;
|-&lt;br /&gt;
| 2013.12.27 || 2013학년도 국제교류 우수사례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3.17 || 2013 학교평가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lt;br /&gt;
|-&lt;br /&gt;
| 2014. 12.31 || 2014 교육활동(교육과정)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5. 2.12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교육부장관 표창&lt;br /&gt;
|-&lt;br /&gt;
| 2018. 6. 12 || 일본 건국고교와 자매학교 결연식&lt;br /&gt;
|-&lt;br /&gt;
| 2019. 2. 5 || 교육과정혁신형(과학중점) 창의경영학교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표창&lt;br /&gt;
|-&lt;br /&gt;
| 2019. 2. 7.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5. 16 || 외국어교육/과학교육 우수학교 표창&lt;br /&gt;
|-&lt;br /&gt;
| 2019. 11. 20 || 러시아 자매학교 가스포럼고등학교와 상호 협정서 조인식	&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 시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84%9C%EC%9A%B8_%EC%82%AC%EB%8B%B9%EB%8F%99_%EB%8C%80%EB%A6%BC%EC%95%84%ED%8C%8C%ED%8A%B8&amp;diff=14671</id>
		<title>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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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11:30:5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대림아파트'''===&lt;br /&gt;
청량리 신현대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하여 부인과 거주. 이곳에서 대학원생 대상 수업을 몇 차례 진행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로 17길 52&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169-8&lt;br /&gt;
&lt;br /&gt;
==='''정보'''===&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목록 || 정보&lt;br /&gt;
|-&lt;br /&gt;
| 입주 년도 || 1990/08&lt;br /&gt;
|-&lt;br /&gt;
| 공급 면적 || 80,103,145 (㎡)&lt;br /&gt;
|-&lt;br /&gt;
| 총세대수 || 1,152 가구&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 시설'''===&lt;br /&gt;
#*대림아파트는 주변 우성, 극동아, 대아 4397세대와 삼성래미안, 롯데 낙천대 1차, 2차 등 아파트 대단지에 위치 한 웰빙 아파트.&lt;br /&gt;
#*관악산과 풍부한 녹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산책로와 약수터, 정자, 작은 트랙이 구비되어 있어 운동하기에 좋음. &lt;br /&gt;
#*강남, 남부고속터미널 및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하고 있으며, 올림픽대로, 남부순환도로와 인접하여 교통 조건 좋음. 7호선 환승역인 이수역과 7호선 남성역이 바로 앞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도 용이함.&lt;br /&gt;
#*미국학교 식 영어교육을 지향하는 전문 영어 교육기관인 남성초등학교도 근처에 있음.&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5%AD%EB%B3%B4%EC%9C%84&amp;diff=14624</id>
		<title>국보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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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10:41: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lt;br /&gt;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lt;br /&gt;
&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amp;quot;국내외 정세에 대처하여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고, 국내외 경제난국의 타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제세책을 뒷받침하며, 사회안정의 확보로 정치발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 부조리 및 각종 사회악의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amp;quot;&lt;br /&gt;
|}&lt;br /&gt;
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lt;br /&gt;
&lt;br /&gt;
==='''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80년대 어느 가을에, 황순원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갔다 와서는 강태근을 러시아집으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국보위 위원의 자리를 권유받은 것에 대해 강태근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더러 국보위 위원이 돼 달라고 하더군. 흠, 나는 못 한다고 했고… 서정주는 수락했지.” 그러고 나서 “자네 이광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강태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강태근이 작품과 사람 평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혼이 떠났으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거야. 참회한다고 「돌베개」를 썼지만 그건, 참회가 아니라, 자기합리화고, 변명이고, 위선이야!”라고 수락한 서정주에 대한 거센 비판을 가했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강태근,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194p&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5%AD%EB%B3%B4%EC%9C%84&amp;diff=14623</id>
		<title>국보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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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10:40: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lt;br /&gt;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lt;br /&gt;
&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80년대 어느 가을에, 황순원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갔다 와서는 강태근을 러시아집으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국보위 위원의 자리'''&amp;quot;국내외 정세에 대처하여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고, 국내외 경제난국의 타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제세책을 뒷받침하며, 사회안정의 확보로 정치발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 부조리 및 각종 사회악의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amp;quot;&lt;br /&gt;
|}&lt;br /&gt;
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lt;br /&gt;
&lt;br /&gt;
==='''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80년대 어느 가을에, 황순원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갔다 와서는 강태근을 러시아집으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국보위 위원의 자리를 권유받은 것에 대해 강태근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더러 국보위 위원이 돼 달라고 하더군. 흠, 나는 못 한다고 했고… 서정주는 수락했지.” 그러고 나서 “자네 이광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강태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강태근이 작품과 사람 평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혼이 떠났으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거야. 참회한다고 「돌베개」를 썼지만 그건, 참회가 아니라, 자기합리화고, 변명이고, 위선이야!”라고 수락한 서정주에 대한 거센 비판을 가했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강태근,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194p&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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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보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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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lt;br /&gt;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lt;br /&gt;
&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amp;quot;국내외 정세에 대처하여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고, 국내외 경제난국의 타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제세책을 뒷받침하며, 사회안정의 확보로 정치발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 부조리 및 각종 사회악의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lt;br /&gt;
&lt;br /&gt;
==='''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80년대 어느 가을에, 황순원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갔다 와서는 강태근을 러시아집으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국보위 위원의 자리를 권유받은 것에 대해 강태근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더러 국보위 위원이 돼 달라고 하더군. 흠, 나는 못 한다고 했고… 서정주는 수락했지.” 그러고 나서 “자네 이광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강태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강태근이 작품과 사람 평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혼이 떠났으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거야. 참회한다고 「돌베개」를 썼지만 그건, 참회가 아니라, 자기합리화고, 변명이고, 위선이야!”라고 수락한 서정주에 대한 거센 비판을 가했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강태근,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194p&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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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lt;br /&gt;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lt;br /&gt;
&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amp;quot;국내외 정세에 대처하여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고, 국내외 경제난국의 타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제세책을 뒷받침하며, 사회안정의 확보로 정치발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 부조리 및 각종 사회악의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lt;br /&gt;
&lt;br /&gt;
==='''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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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80년대 어느 가을에, 황순원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갔다 와서는 강태근을 러시아집으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국보위 위원의 자리를 권유받은 것에 대해 강태근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더러 국보위 위원이 돼 달라고 하더군. 흠, 나는 못 한다고 했고… 서정주는 수락했지.” 그러고 나서 “자네 이광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강태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강태근이 작품과 사람 평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혼이 떠났으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거야. 참회한다고 「돌베개」를 썼지만 그건, 참회가 아니라, 자기합리화고, 변명이고, 위선이야!”라고 수락한 서정주에 대한 거센 비판을 가했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강태근,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194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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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lt;br /&gt;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lt;br /&gt;
&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mp;quot;국내외 정세에 대처하여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고, 국내외 경제난국의 타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제세책을 뒷받침하며, 사회안정의 확보로 정치발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 부조리 및 각종 사회악의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amp;quot;&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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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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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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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lt;br /&gt;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80년 5월 31일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문, 보좌기관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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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말하자면 전국 비상 계엄을 발동한 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자문과 보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보태세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타도로 인한 국가 기강 확립 등도 아까 말했듯 설치 목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연히 장기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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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lt;br /&gt;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후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10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1980년 10월 28일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해서 입법권까지 장악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상임위원장 전두환이 정치가, 기업가, 군인, 언론인, 교수, 종교인 등 모든 상위계층을 총망라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다음해 1981년 4월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간 200여 건의 법률안을 의결하였다.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노동개악 등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바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통과시킨 법률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악법들이었다. 심지어 국보위는 제5공화국 헌법에 &amp;quot;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amp;quot;는 내용의 부칙까지 달아서 군부독재를 확고히 하였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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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황순원과 국보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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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80년대 어느 가을에, 황순원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갔다 와서는 강태근을 러시아집으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국보위 위원의 자리를 권유받은 것에 대해 강태근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더러 국보위 위원이 돼 달라고 하더군. 흠, 나는 못 한다고 했고… 서정주는 수락했지.” 그러고 나서 “자네 이광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강태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강태근이 작품과 사람 평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혼이 떠났으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거야. 참회한다고 「돌베개」를 썼지만 그건, 참회가 아니라, 자기합리화고, 변명이고, 위선이야!”라고 수락한 서정주에 대한 거센 비판을 가했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강태근,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194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국보위 위원 자리를 권유 받은 이야기를 하며 불쾌한 기분과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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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82%BC%EC%9D%BC%EA%B3%B5%EC%9B%90&amp;diff=14613</id>
		<title>삼일공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82%BC%EC%9D%BC%EA%B3%B5%EC%9B%90&amp;diff=14613"/>
				<updated>2020-06-24T10:12: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새 문서: ==='''삼일공원'''=== 서울 사당동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대림 아파트에 살던 시절 부인과 매일 산책을 즐긴 곳....&lt;/p&gt;
&lt;hr /&gt;
&lt;div&gt;==='''삼일공원'''===&lt;br /&gt;
서울 사당동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대림 아파트]]에 살던 시절 부인과 매일 산책을 즐긴 곳. 연작시 「산책길에서」의 배경이 됨.&lt;br /&gt;
&lt;br /&gt;
#'''「산책길에서」'''&lt;br /&gt;
#*산책길에서1&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아파트 단지에 붙어 길죽한 공원이 있어&lt;br /&gt;
&lt;br /&gt;
마누라와 나는 아침 식전마다 여기를 산책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른 봄에는 개나리가 피고&lt;br /&gt;
&lt;br /&gt;
다음에는 철쭉이 피고&lt;br /&gt;
&lt;br /&gt;
다음에는 넝쿨장미가 피고&lt;br /&gt;
&lt;br /&gt;
신록이 우거진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개나리와 철쭉과 넝쿨장미와 신록이&lt;br /&gt;
&lt;br /&gt;
각각 내게 묻는다&lt;br /&gt;
&lt;br /&gt;
이른하고도 적잖이 나이를 더하는 동안&lt;br /&gt;
&lt;br /&gt;
얼마나 자기와 무심히 지냈는가고&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대답을 잃어 멋없이 심호흡만을 한다.&lt;br /&gt;
|}&lt;br /&gt;
#*산책길에서2&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맨손체조를 마치고&lt;br /&gt;
&lt;br /&gt;
마누라와 나는 벤치에 앉는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비둘기 두마리가&lt;br /&gt;
&lt;br /&gt;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오간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건들바람에&lt;br /&gt;
&lt;br /&gt;
여린 나뭇잎이 이리저리 흔들린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마누라에게서 애엄마처럼&lt;br /&gt;
&lt;br /&gt;
젖냄새가 풍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다리는 단비가 쉬&lt;br /&gt;
&lt;br /&gt;
올것만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 동작구 사당로23길 93 삼일(3~1)공원&lt;br /&gt;
*지번 주소 : 서울 사당동 산24-17&lt;br /&gt;
&lt;br /&gt;
==='''정보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규모 || 3만 6,660㎡&lt;br /&gt;
|-&lt;br /&gt;
| 지정 날짜 || 1967년 5월 15일&lt;br /&gt;
|-&lt;br /&gt;
| 조성 시기 || 1989년 ~ 1990년&lt;br /&gt;
|-&lt;br /&gt;
| 시설 || 관리사무소, 경로당, 3.1광장, 운동시설, 배드민턴장, 사당청소년회관, 놀이터, 분수대 등&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유래'''===&lt;br /&gt;
한국 최초의 여성 기자인 최은희 씨가 3.1운동 당시 여성 참가자는,&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fae7b5;&amp;quot;&lt;br /&gt;
|-&lt;br /&gt;
! &amp;quot;직접 일병의 총칼에 대결했던 홍안의 소녀들이 이제는 귀가 멀고, 눈이 어둡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되었으나 나머지 기백을 다시 모아 망각 속에서 사그러져 가는 그날의 분노와 저항을 되새기면서 쇠잔한 몸이지만 나머지 생애에서 무엇을 조국에 바칠 수 있을까&amp;quot;&lt;br /&gt;
|}&lt;br /&gt;
하는 마음으로 1967년 4월 15일 동아일보에 &amp;quot;독립공원을 설립해야 한다&amp;quot;는 글을 투고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 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84%9C%EC%9A%B8_%EC%82%AC%EB%8B%B9%EB%8F%99_%EB%8C%80%EB%A6%BC%EC%95%84%ED%8C%8C%ED%8A%B8&amp;diff=14605</id>
		<title>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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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9:57: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대림아파트'''===&lt;br /&gt;
청량리 신현대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하여 부인과 거주. 이곳에서 대학원생 대상 수업을 몇 차례 진행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로 17길 52&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169-8&lt;br /&gt;
&lt;br /&gt;
==='''지번'''===&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 || 정보&lt;br /&gt;
|-&lt;br /&gt;
| 입주 년도 || 1990/08&lt;br /&gt;
|-&lt;br /&gt;
| 공급 면적 || 80,103,145 (㎡)&lt;br /&gt;
|-&lt;br /&gt;
| 총세대수 || 1,152 가구&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 시설'''===&lt;br /&gt;
#*대림아파트는 주변 우성, 극동아, 대아 4397세대와 삼성래미안, 롯데 낙천대 1차, 2차 등 아파트 대단지에 위치 한 웰빙 아파트.&lt;br /&gt;
#*관악산과 풍부한 녹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산책로와 약수터, 정자, 작은 트랙이 구비되어 있어 운동하기에 좋음. &lt;br /&gt;
#*강남, 남부고속터미널 및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하고 있으며, 올림픽대로, 남부순환도로와 인접하여 교통 조건 좋음. 7호선 환승역인 이수역과 7호선 남성역이 바로 앞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도 용이함.&lt;br /&gt;
#*미국학교 식 영어교육을 지향하는 전문 영어 교육기관인 남성초등학교도 근처에 있음.&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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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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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9:33: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새 문서:  ==='''대림아파트'''=== 청량리 신현대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하여 부인과 거주. 이곳에서 대학원생 대상 수업을 몇 차례 진행함.  ==='''위...&lt;/p&gt;
&lt;hr /&gt;
&lt;div&gt;&lt;br /&gt;
==='''대림아파트'''===&lt;br /&gt;
청량리 신현대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하여 부인과 거주. 이곳에서 대학원생 대상 수업을 몇 차례 진행함.&lt;br /&gt;
&lt;br /&gt;
==='''위치'''===&lt;br /&gt;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로 17길 52&lt;br /&gt;
#*지번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169-8&lt;br /&gt;
&lt;br /&gt;
==='''지번'''===&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 || 정보&lt;br /&gt;
|-&lt;br /&gt;
| 입주 년도 || 1990/08&lt;br /&gt;
|-&lt;br /&gt;
| 공급 면적 || 80,103,145 (㎡)&lt;br /&gt;
|-&lt;br /&gt;
| 총세대수 || 1,152 가구&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 시설'''===&lt;br /&gt;
#*대림아파트는 주변 우성, 극동아, 대아 4397세대와 삼성래미안, 롯데 낙천대 1차, 2차 등 아파트 대단지에 위치 한 웰빙 아파트.&lt;br /&gt;
#*관악산과 풍부한 녹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산책로와 약수터, 정자, 작은 트랙이 구비되어 있어 운동하기에 좋음. &lt;br /&gt;
#*강남, 남부고속터미널 및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하고 있으며, 올림픽대로, 남부순환도로와 인접하여 교통 조건 좋음. 7호선 환승역인 이수역과 7호선 남성역이 바로 앞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도 용이함.&lt;br /&gt;
#*미국학교 식 영어교육을 지향하는 전문 영어 교육기관인 남성초등학교도 근처에 있음.&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HwangsunwonAndPlace&amp;diff=12596</id>
		<title>HwangsunwonAndPlac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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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08T15:03: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__목차__&lt;br /&gt;
&lt;br /&gt;
경희대학교 공간 데이터, 황순원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들&lt;br /&gt;
=='''Map'''==&lt;br /&gt;
{{#display_map: &lt;br /&gt;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lt;br /&gt;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lt;br /&gt;
39.039278, 125.762528~[[평양]]~;&lt;br /&gt;
39.198343, 125.696870~[[평양 숭덕소학교]]~;&lt;br /&gt;
39.697722, 125.206722~[[정주 오산중학교]]~;&lt;br /&gt;
39.002579, 125.746633~[[평양 숭실중학교]]~;&lt;br /&gt;
39.080448, 125.767993~[[평양경찰서]]~;&lt;br /&gt;
39.048914, 125.754427~[[모란봉]]~;&lt;br /&gt;
39.036109, 125.749708~[[북새거리]]~;&lt;br /&gt;
39.052971, 125.726270~[[서평양역]]~;&lt;br /&gt;
39.022666, 125.756802~[[대동문]]~;&lt;br /&gt;
39.005091, 125.736439~[[본평양역]]~;&lt;br /&gt;
39.012218, 125.757089~[[대동강(대동교)]]~;&lt;br /&gt;
38.993281, 125.724698~[[평천리]]~;&lt;br /&gt;
39.098046, 125.630766~[[평안도 양짓골]]~;&lt;br /&gt;
39.621185, 125.663402~[[평안남도 안주]]~;&lt;br /&gt;
37.483972, 127.005472~[[서울고등학교]]~;&lt;br /&gt;
37.566344, 126.977916~[[서울]]~;&lt;br /&gt;
37.429444, 127.255139~[[경기도 광주]]~;&lt;br /&gt;
35.179778, 129.075000~[[부산 임시 학교]]~;&lt;br /&gt;
35.180518, 129.075606~[[부산]]~;&lt;br /&gt;
37.595528, 127.052806~[[경희대학교]]~;&lt;br /&gt;
37.491742, 127.487600~[[양평]]~;&lt;br /&gt;
37.594833, 127.378139~[[양평 황순원 문학촌]]~;&lt;br /&gt;
37.589833, 127.057944~[[회기 막걸리집]]~;&lt;br /&gt;
37.589623, 127.057591~[[러시아집]]~;&lt;br /&gt;
37.486806, 126.972583~[[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lt;br /&gt;
37.476083, 126.972778~[[서울 사당동 예술인마을]]~;&lt;br /&gt;
37.485778, 126.974556~[[삼일공원]]~;&lt;br /&gt;
35.098757, 129.032220~[[부산 밀다원]]~;&lt;br /&gt;
37.589527, 127.051960~[[서울 청량리 신현대아파트]]~;&lt;br /&gt;
37.591049, 127.052027~[[서울 쌍과부집]]~;&lt;br /&gt;
38.071774, 127.977470~[[강원도 양구 학마을 (학조리)]]~;&lt;br /&gt;
35.100545, 129.020398~[[토성동 경남중학교]]~;&lt;br /&gt;
35.101745, 129.028266~[[국제시장]]~;&lt;br /&gt;
35.099069, 129.029068~[[남포동 동아극장 앞거리]]~;&lt;br /&gt;
35.103325, 129.019951~[[부민동 개천둑]]~;&lt;br /&gt;
37.894377, 128.823377~[[강릉 주문진읍]]~;&lt;br /&gt;
35.709821, 139.718574~[[와세다 제2고등학원]]~;&lt;br /&gt;
35.708325, 139.719952~[[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lt;br /&gt;
37.580868, 126.996865~[[서울대 병원 영안실]]~;&lt;br /&gt;
36.829985, 127.302190~[[충남 천안시 병천면 풍산공원묘원]]~;&lt;br /&gt;
37.576486, 127.001456~[[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lt;br /&gt;
37.580937, 126.997001~[[서울대병원 장례식장]]~;&lt;br /&gt;
37.530889, 126.923278~[[여의도 순복음교회]]~;&lt;br /&gt;
35.709821, 139.718574~[[와세다 제2고등학원]]~;&lt;br /&gt;
35.709736, 139.718668~[[와세다 대학교]]~;&lt;br /&gt;
35.680450, 139.769097~[[도쿄]]&lt;br /&gt;
&lt;br /&gt;
&lt;br /&gt;
 |width=100%&lt;br /&gt;
 |height=800&lt;br /&gt;
 |service=leaflet&lt;br /&gt;
}}&lt;br /&gt;
&lt;br /&gt;
=='''Network Graph'''==&lt;br /&gt;
{{NetworkGraph | title=HwangsunwonAndPlace2.lst}}&lt;br /&gt;
{{버튼클릭|[[HwangsunwonAndPlace2.lst|lst 페이지로 가기]]}}&lt;br /&gt;
&lt;br /&gt;
=='''Data'''==&lt;br /&gt;
==='''Node''' Data===&lt;br /&gt;
===='''Person''' &amp;lt;small&amp;gt;인물&amp;lt;/small&amp;gt;====&lt;br /&gt;
*황순원&lt;br /&gt;
*서덕순&lt;br /&gt;
*김종회&lt;br /&gt;
*강태근&lt;br /&gt;
*이광수&lt;br /&gt;
*서정주&lt;br /&gt;
*조영식&lt;br /&gt;
&lt;br /&gt;
===='''Group''' &amp;lt;small&amp;gt;단체&amp;lt;/small&amp;gt;====&lt;br /&gt;
*경희대 국어국문학과&lt;br /&gt;
*와세다대 문학부 영문과&lt;br /&gt;
*동경학생예술좌&lt;br /&gt;
&lt;br /&gt;
===='''Place''' &amp;lt;small&amp;gt;장소&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font-weight:bold; font-size:14px; font-family:Arial, Helvetica, sans-serif !important;;&amp;quot;&lt;br /&gt;
|- style=&amp;quot;font-weight:normal;&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font-size:48px; font-family:Impact, Charcoal, sans-serif !important;;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Place-Description&amp;lt;sup&amp;gt;&amp;lt;small&amp;gt;&amp;lt;small&amp;gt;&amp;lt;small&amp;gt;&amp;lt;small&amp;gt;'''''[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8HnFwg98rcd2wLfOc8NT0HF24aqpRr-ibBIXM4OV4gs/edit#gid=0 정리 시트 바로가기&amp;gt;]'''''&amp;lt;/small&amp;gt;&amp;lt;/small&amp;gt;&amp;lt;/small&amp;gt;&amp;lt;/small&amp;gt;&amp;lt;/sup&amp;g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 vertical-align:middle; font-family:'Arial Black', Gadget, sans-serif !important;; background-color:#FFD966; &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order: 4px solid #ebb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 vertical-align:middle; font-family:'Arial Black', Gadget, sans-serif !important;; background-color:#FFD966;&amp;quot;&lt;br /&gt;
| Place1&lt;br /&gt;
| Place2&lt;br /&gt;
| Latitued-Longitude&lt;br /&gt;
| Description&lt;br /&gt;
|- style=&amp;quot;font-weight:bold;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text-align:center; background-color:#ffffff; vertical-align:top; &amp;quot; | 북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color:#222;&amp;quot; |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lt;br /&gt;
| style=&amp;quot;font-size:13px;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1915년 3월 26일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이후 일제의 간섭을 피해 1943년부터 1945년 9월까지 고향에 머무른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 color:#222;&amp;quot; |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lt;br /&gt;
| style=&amp;quot;font-size:13px;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황순원의 외가 마을이자 「목넘이마을의 개」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황순원이 만 4세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1년 6개월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면서 어머니 장찬붕과 단둘이 시골집에서 고독하게 지냈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평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39278, 125.762528&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1921년 만 6세 때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했다. 1945년 9월부터 다시 평양에 머물렀으나 공산 치하에서 지주 계급으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1946년에 가족들과 함께 월남한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 color:#222;&amp;quot; | 평양 숭덕소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198343, 125.696870&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만 8세 때 입학했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예체능 교욱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났다. 체증을 다스리기 위해 이 때부터 일흔이 넘을 때까지 소주를 마셨으며, 그 뒤로 몸이 쇠하여서 타계할 때까지 매일 화이트와인 '마주앙'을 마셨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 color:#222;&amp;quot; | 정주 오산중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697722, 125.206722&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1929년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재학하였다. 여기에서 만난 교장 선생님 남강 이승훈은 그의 단편소설 「아버지」의 영감이 되었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 color:#222;&amp;quot; | 평양 숭실중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02579, 125.746633&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오산중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전입학하였다. 1931년 「나의 꿈」이라는 시를 통해 등단하였다. 1934년 졸업하였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 color:#222;&amp;quot; | 평양경찰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80448, 125.767993&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와세다 제2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중, 여름 방학 때 귀향했다가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려고 동경에서 시집을 발간했다'는 사유로 평양경찰서에서 29일간 구류를 살았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모란봉&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48914, 125.754427&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노새」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북새거리&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36109, 125.749708&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노새」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서평양역&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52971, 125.726270&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노새」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대동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22666, 125.756802&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노새」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본평양역&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05091, 125.736439&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노새」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대동강(대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12218, 125.757089&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노새」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평천리&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8.993281, 125.724698&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노새」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평안도 양짓골&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098046, 125.630766&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카인의 후예」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order-bottom: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평안남도 안주&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621185, 125.663402&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땅울림」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font-weight:bold;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text-align:center; background-color:#ffffff; vertical-align:top; &amp;quot; | 남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amp;quot; | 서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66344, 126.977916&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모든 영광은」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 color:#222;&amp;quot; | 서울고등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3972, 127.005472&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1946년 월남 후 9월에 국어 교사로 취임한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광주(경기도)&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29444, 127.255139&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6.25전쟁이 일어나자 제자의 도움을 받아 경기도 광주로 피난하였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부산&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180518, 129.075606&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하여 피난살이를 하였다. 「모든 영광은」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부산 임시 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179778, 129.075000&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중 임시 학교의 교사로 일했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경희대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5528, 127.052806&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1957년 만 42세가 되던 해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직장을 옮겼다. 황순원은 특별한 보직 없이 23년 6개월간 평교수로, 그 이후에는 말년까지 명예교수로 남아 후학들을 가르쳤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양평군&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91742, 127.487600&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료 교수 및 학생들과 더불어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 소재 취재, 단기 여행, 야유회, 답사, 학생인솔 MT, 낚시 등을 자주 다녔다. 단편소설 「나무와 돌, 그리고」는 양평 군내 용문산 은행나무를 직접적인 소재로 하고 있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양평 황순원 문학촌&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4833, 127.378139&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소나기마을이 완공된 뒤 황순원이 제자들과 함께 찾아가기도 했다. 황순원은 이후 소나기마을을 김종회에게 맡겼고 이에 따라 김종회가 소나기마을의 관장이 되었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회기 막걸리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89833, 127.057944&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한 달에 한 번 막걸리집에서 수업을 하였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러시아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89623, 127.057591&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84년 가을, 제자와 술을 마셨다. 러시아집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들이 교수님들을 모시고 잘 들르는 간이음식점이었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6806, 126.972583&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청량리 신현대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하여 부인과 거주하였다. 이곳에서도 대학원생 대상 수업을 몇 차례 진행하였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삼일공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5778, 126.974556&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부인과 매일 산책을 즐겼다. 연작시 「산책길에서」의 배경이 되었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서울 청량리 신현대아파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89527, 127.051960&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제자들(대학원생들)이 찾아와 수업을 들었으며, 양정길 여사(부인)께서 다과를 내어주셨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서울 쌍과부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1049, 127.052027&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제자들과 함께 자주 갔던 술집으로, 낮술을 하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강원도 양구 학마을 (학조리)&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8.071774, 127.977470&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학」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토성동 경남중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100545, 129.020398&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곡예사」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국제시장&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101745, 129.028266&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곡예사」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남포동 동아극장 앞거리&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099069, 129.029068&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곡예사」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부민동 개천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103325, 129.019951&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곡예사」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강릉 주문진읍&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894377, 128.823377&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필묵장수」 작중 배경&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서울대병원 영안실&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80868, 126.996865&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황순원의 빈소였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풍산공원묘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6.829985, 127.302190&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황순원의 유해 안장지(장지)이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80937, 126.997001&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2000년 9월 18일 황순원의 영결식이 가족장으로 치뤄졌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여의도 순복음교회&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30889, 126.923278&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황순원은 일요일마다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갔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order-bottom: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order-boto: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576486, 127.001456&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극단 '돌파구'는 2018년 11월 3일부터 11월 11일까지 황순원의 단편소설 「모든 영광은」을 원작으로 한 연극 &amp;lt;모든 영광은&amp;gt;을 선보였다.&lt;br /&gt;
|- style=&amp;quot;font-weight:bold;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text-align:center; vertical-align:top; &amp;quot; | 일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amp;quot; | 와세다 제2고등학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709821, 139.718574&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1934년 입학하였다.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연구단체 &amp;lt;동경학생예술좌&amp;gt;를 창립한 뒤 작품집 『방가』를 간행하였다. 1936년 졸업하였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8e5;&amp;quot;&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와세다 대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709736, 139.718668&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1936년 와세다 대학교의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lt;br /&gt;
|- style=&amp;quot;border-left: 4px solid #ebb000; border-bottom: 4px solid #ebb000; 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bold;&amp;quot; | 도쿄&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680450, 139.769097&lt;br /&gt;
| style=&amp;quot;border-right: 4px solid #ebb000; 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거리의 부사」 작중 배경&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국내=====&lt;br /&gt;
======북한======&lt;br /&gt;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lt;br /&gt;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lt;br /&gt;
*'''[[평양 숭덕소학교]] (숭덕리 39.118314, 126.172372)''' (39.198343, 125.696870)&lt;br /&gt;
*[[정주 오산학교]] (정주시: 39.697722, 125.206722)&lt;br /&gt;
*[[평양 숭실중학교]]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lt;br /&gt;
*[[평양경찰서]]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 -&amp;gt; 평양 숭실학교와 좌표가 같음&lt;br /&gt;
*모란봉	(39.048914, 125.754427)&lt;br /&gt;
*북새거리(39.036109, 125.749708)&lt;br /&gt;
*서평양역(39.052971, 125.726270)&lt;br /&gt;
*대동문	(39.022666, 125.756802)&lt;br /&gt;
*본평양역(39.005091, 125.736439)&lt;br /&gt;
*대동강(대동교)(39.012218, 125.757089)&lt;br /&gt;
*평천리	(38.993281, 125.724698)&lt;br /&gt;
*평안도 양짓골(39.098046, 125.630766)&lt;br /&gt;
*평안남도 안주(39.621185, 125.663402)&lt;br /&gt;
&lt;br /&gt;
======남한======&lt;br /&gt;
*'''[[서울고등학교]] (37.483972, 127.005472)'''&lt;br /&gt;
*[[경기도 광주]] (37.429444, 127.255139)&lt;br /&gt;
*[[부산 임시 학교]] (35.179778, 129.075000)&lt;br /&gt;
* 쌍과부집 (37.591049, 127.052027)&lt;br /&gt;
*[[경희대학교]] (37.595528, 127.052806)&lt;br /&gt;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현 문과대학)]] (37.597196, 127.054475)&lt;br /&gt;
*양평군(37.491742, 127.487600)&lt;br /&gt;
*'''[[양평 황순원 문학촌]] (37.594833, 127.378139)'''&lt;br /&gt;
*회기 막걸리집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러시아집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청량리 신현대 아파트]] (청량리 : 37.589652, 127.051808)&lt;br /&gt;
*'''[[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37.486806, 126.972583)'''&lt;br /&gt;
*'''[[서울 사당동 예술인마을]] (37.476083, 126.972778)'''&lt;br /&gt;
*'''[[삼일공원]] (37.485778, 126.974556)'''&lt;br /&gt;
*[[부산 밀다원]] (35.098757, 129.032220)&lt;br /&gt;
*[[서울대 병원 영안실]] (37.580868, 126.996865) ; 황순원 빈소&lt;br /&gt;
*[[충남 천안시 병천면 풍산공원묘원]] (36.829985, 127.302190): 황순원 유해 안장지 (장지)&lt;br /&gt;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7.580937, 126.997001): 황순원 영결식&lt;br /&gt;
*[[여의도 순복음교회]] (37.530889, 126.923278) : 황순원 교회&lt;br /&gt;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37.576486, 127.001456)&lt;br /&gt;
*강릉 주문진읍(37.894377, 128.823377)&lt;br /&gt;
*부민동 개천둑(35.103325, 129.019951)&lt;br /&gt;
*남포동 동아극장 앞거리(35.099069, 129.029068)&lt;br /&gt;
*국제시장(35.101745, 129.028266)&lt;br /&gt;
*부산(35.180518, 129.075606)&lt;br /&gt;
*광주(경기도)	(37.429444, 127.255139)&lt;br /&gt;
*서울(37.566344, 126.977916)&lt;br /&gt;
*강원도 양구 학마을 (학조리)	(38.071774, 127.977470)&lt;br /&gt;
*토성동 경남중학교	(35.100545, 129.020398)&lt;br /&gt;
*풍산공원묘원	(36.829985, 127.302190) : 황순원 안장지&lt;br /&gt;
&lt;br /&gt;
=====해외=====&lt;br /&gt;
======일본======&lt;br /&gt;
*[[와세다 제2고등학원]] (35.709821, 139.718574)&lt;br /&gt;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 (35.708325, 139.719952)&lt;br /&gt;
*[[도쿄]](35.680450, 139.769097)&lt;br /&gt;
&lt;br /&gt;
===='''Event''' &amp;lt;small&amp;gt;사건&amp;lt;/small&amp;gt;====&lt;br /&gt;
*평양경찰서 구류&lt;br /&gt;
*막걸리 강의&lt;br /&gt;
*국보위 사건&lt;br /&gt;
*자택 강의&lt;br /&gt;
*제자들과의 낮술&lt;br /&gt;
&lt;br /&gt;
===='''Record''' &amp;lt;small&amp;gt;기록&amp;lt;/small&amp;gt;====&lt;br /&gt;
*『황순원 문학과 소나기마을』&lt;br /&gt;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lt;br /&gt;
&lt;br /&gt;
===='''Works''' &amp;lt;small&amp;gt;작품&amp;lt;/small&amp;gt;====&lt;br /&gt;
*노새&lt;br /&gt;
*카인의 후예  &lt;br /&gt;
*땅울림    &lt;br /&gt;
* 학    &lt;br /&gt;
*곡예사  &lt;br /&gt;
*필묵장수 &lt;br /&gt;
*목넘이마을의 개   &lt;br /&gt;
*소나기 &lt;br /&gt;
*나무와 돌, 그리고&lt;br /&gt;
*모든 영광은&lt;br /&gt;
*산책길에서&lt;br /&gt;
*거리의 부사&lt;br /&gt;
&lt;br /&gt;
===='''Interview''' &amp;lt;small&amp;gt;인터뷰&amp;lt;/small&amp;gt;====&lt;br /&gt;
=====황순원_관련_인터뷰(2020.05.27)======&lt;br /&gt;
*러시아집&lt;br /&gt;
*제자들과의 낮술&lt;br /&gt;
*자택 강의 &lt;br /&gt;
*서울 쌍과부집 &lt;br /&gt;
*마주앙 &lt;br /&gt;
*노래:평양정거장&lt;br /&gt;
&lt;br /&gt;
===='''ETC''' &amp;lt;small&amp;gt;기타&amp;lt;/small&amp;gt;====&lt;br /&gt;
====='''Products''' &amp;lt;small&amp;gt;물건&amp;lt;/small&amp;gt;=====&lt;br /&gt;
*소주&lt;br /&gt;
*마주앙&lt;br /&gt;
&lt;br /&gt;
====='''Song''' &amp;lt;small&amp;gt;노래&amp;lt;/small&amp;gt;=====&lt;br /&gt;
*노래:평양정거장&lt;br /&gt;
&lt;br /&gt;
====='''Secondary Creation''' &amp;lt;small&amp;gt;2차 창작&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Link''' Data===&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wasBorn'''&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서 태어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wasDied'''&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서 사망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moved'''&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로 이사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defectedToSouth'''&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로 월남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tookRefuge'''&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로 피난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MovedInto'''&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로 옮겨지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hasLivedIn'''&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서 살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LocatedIn'''&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 위치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wentOnToNextSchool'''&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로 진학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hasStudiedIn'''&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서 공부했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hasWorkedIn'''&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서 일했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changeSchools'''&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로 전학가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tookWalk'''&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서 산책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wasMemberOf'''&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구성원이었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ManagerOf'''&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를 관리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collaboratedTo'''&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와 협업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criticised'''&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를 비판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mentions'''&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를 언급하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와 관련있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출전'''==&lt;br /&gt;
*황순원, 『소년, 소녀를 만나다: 황순원의 「소나기」 이어쓰기』, 문학과지성사, 2016.&amp;lt;br/&amp;gt;&lt;br /&gt;
*&amp;quot;記憶の中の早稲田.&amp;quot; 早稲田大学 校友会, www.wasedaalumni.jp/memory, 2020-05-27 접속&amp;lt;br/&amp;gt;&lt;br /&gt;
*&amp;quot;밀다원(密茶苑).&amp;quot; 부산역사문화대전, 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05631, 2020-05-27 접속.&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HwangsunwonAndPlace&amp;diff=11944</id>
		<title>HwangsunwonAndPlac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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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30T14:22: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__목차__&lt;br /&gt;
&lt;br /&gt;
경희대학교 공간 데이터, 황순원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들&lt;br /&gt;
=='''Map'''==&lt;br /&gt;
{{#display_map: &lt;br /&gt;
 39.697722, 125.206722~[[정주 오산학교]]~;&lt;br /&gt;
 37.595528, 127.052806~[[경희대학교]]~;&lt;br /&gt;
 35.709821, 139.718574~[[와세다 제2고등학원]]~;&lt;br /&gt;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lt;br /&gt;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lt;br /&gt;
39.118314, 126.172372~[[평양 숭덕소학교]]~;&lt;br /&gt;
 39.198343, 125.696870~[[숭덕리]]~;&lt;br /&gt;
 39.039278, 125.762528~[[평양 숭실중학교]]~;&lt;br /&gt;
 39.039278, 125.762528~[[평양경찰서]]~;&lt;br /&gt;
37.483972, 127.005472~[[서울고등학교]]~;&lt;br /&gt;
37.429444, 127.255139~[[경기도 광주]]~;&lt;br /&gt;
35.179778, 129.075000~[[부산 임시 학교]]~;&lt;br /&gt;
37.595528, 127.052806~[[경희대학교]]~;&lt;br /&gt;
37.597196, 127.054475~[[경희대학교 문리대학 (현 문과대학)]]~;&lt;br /&gt;
37.594833, 127.378139~[[양평 황순원 문학촌]]~;&lt;br /&gt;
37.486806, 126.972583~[[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lt;br /&gt;
37.476083, 126.972778~[[서울 사당동 예술인마을]]~;&lt;br /&gt;
37.485778, 126.974556~[[삼일공원]]~;&lt;br /&gt;
35.098757, 129.032220~[[부산 밀다원]]~;&lt;br /&gt;
37.589527, 127.051960~[[청량리신현대아파트]]~;&lt;br /&gt;
37.591049, 127.052027~쌍과부집~;&lt;br /&gt;
&lt;br /&gt;
&lt;br /&gt;
 |width=100%&lt;br /&gt;
 |height=800&lt;br /&gt;
 |service=leaflet&lt;br /&gt;
}}&lt;br /&gt;
&lt;br /&gt;
=='''Network Graph'''==&lt;br /&gt;
{{NetworkGraph | title=HwangsunwonAndPlace.lst}}&lt;br /&gt;
{{버튼클릭|[[HwangsunwonAndPlace.lst|lst 페이지로 가기]]}}&lt;br /&gt;
&lt;br /&gt;
=='''Data'''==&lt;br /&gt;
==='''Node''' Data===&lt;br /&gt;
===='''Person''' &amp;lt;small&amp;gt;인물&amp;lt;/small&amp;gt;====&lt;br /&gt;
*김말봉&lt;br /&gt;
*김동리&lt;br /&gt;
*김환기&lt;br /&gt;
*김소운&lt;br /&gt;
*강태근&lt;br /&gt;
*고원정&lt;br /&gt;
*김광섭&lt;br /&gt;
*김동원&lt;br /&gt;
*김용성&lt;br /&gt;
*김종회&lt;br /&gt;
*김진수&lt;br /&gt;
*김형경&lt;br /&gt;
*남관&lt;br /&gt;
*박기원&lt;br /&gt;
*박덕규&lt;br /&gt;
*박인환&lt;br /&gt;
*양정길&lt;br /&gt;
*유시화&lt;br /&gt;
*이봉구&lt;br /&gt;
*이승훈&lt;br /&gt;
*이한직&lt;br /&gt;
*이해랑&lt;br /&gt;
*장찬붕&lt;br /&gt;
*전상국&lt;br /&gt;
*정호승&lt;br /&gt;
*조병화&lt;br /&gt;
*조연현&lt;br /&gt;
*조태일&lt;br /&gt;
*조해일&lt;br /&gt;
*주요섭&lt;br /&gt;
*하재봉&lt;br /&gt;
*홍성원&lt;br /&gt;
*황남규&lt;br /&gt;
*황동규&lt;br /&gt;
*황선혜&lt;br /&gt;
*황순원&lt;br /&gt;
*황진규&lt;br /&gt;
*황찬영&lt;br /&gt;
&lt;br /&gt;
===='''Group''' &amp;lt;small&amp;gt;단체&amp;lt;/small&amp;gt;====&lt;br /&gt;
*동경학생예술좌&lt;br /&gt;
*경희대 사단&lt;br /&gt;
*대한민국예술원&lt;br /&gt;
*소나기마을건립추진위원회&lt;br /&gt;
&lt;br /&gt;
===='''Place''' &amp;lt;small&amp;gt;장소&amp;lt;/small&amp;gt;====&lt;br /&gt;
&amp;lt;big&amp;gt;'''[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8HnFwg98rcd2wLfOc8NT0HF24aqpRr-ibBIXM4OV4gs/edit#gid=0 Place-Event 정리 시트 바로가기]'''&amp;lt;/big&amp;gt;&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font-weight:bold; font-size:14px; font-family:Arial, Helvetica, sans-serif !important;;&amp;quot;&lt;br /&gt;
|- style=&amp;quot;font-weight:normal;&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font-size:36px; font-family:Impact, Charcoal, sans-serif !important;;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Place-Even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 vertical-align:middle; font-family:'Arial Black', Gadget, sans-serif !important;; background-color:rgb(255, 217, 102);&amp;quot;&lt;br /&gt;
| Place1&lt;br /&gt;
| Place2&lt;br /&gt;
| Latitued-Longitude&lt;br /&gt;
| Event&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북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출생, 1943년부터 해방 전까지 머무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rowspan=&amp;quot;6&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작가의 외가 마을이자 &amp;lt;목넘이마을의 개&amp;gt;배경&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평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1921년 이사, 1945년 9월~1946년까지 머무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양 숭덕소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숭덕리 39.118314, 126.172372&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입학. 이 때부터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color:rgb(34, 34, 34);&amp;quot; | 정주 오산중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정주시: 39.697722, 125.206722&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1929년 입학. 남강 이승훈(교장)-단편 &amp;lt;아버지&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양 숭실중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전입학&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양경찰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여름 방학 때 귀향했다는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려고 동경에서 시집을 발간했다는 사유로 평양경찰서에서 29일간 구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남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 color:rgb(34, 34, 34);&amp;quot; | 서울고등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3972, 127.005472&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1946년 월남 후 9월에 영어교사로 취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rowspan=&amp;quot;1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amp;quot; | 경기도 광주&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29444, 127.255139&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6.25전쟁 때 제자의 도움을 받아 피난한 곳&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부산 임시 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5.179778, 129.075000&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피난 중 임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경희대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5528, 127.052806&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1957년부터 평교수로 일함. 이후 명예교수&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양평 황순원 문학촌&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4833, 127.378139&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소나기마을을 김종회에게 맡김.&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회기 막걸리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한 달에 한 번 막걸리집에서 수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러시아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84년 가을 제자와 술 (경희대 국문과 대학원생들이 교수님들을 모시고 잘 들르는 간이음식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6806, 126.972583&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부인과 거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서울 사당동 예술인마을&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476083, 126.972778&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삼일공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5778, 126.974556&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부인과 매일 산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부산 밀다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5.098757, 129.032220&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서울 청량리 신현대아파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589527, 127.051960&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제자들이 찾아와 부인분께서 다과를 내어주시고 수업을 들었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서울 쌍과부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1049, 127.052027 (여기였을것)&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제자들과 함께 자주 갔던 술집으로 낮술을 하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심&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일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와세다 제2고등학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709821, 139.71857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1934년 입학&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709821, 139.71857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1936년 입학&lt;br /&gt;
|}&lt;br /&gt;
&lt;br /&gt;
=====국내=====&lt;br /&gt;
======북한======&lt;br /&gt;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lt;br /&gt;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lt;br /&gt;
*'''[[평양 숭덕소학교]] (숭덕리 39.118314, 126.172372)''' (39.198343, 125.696870)&lt;br /&gt;
*[[정주 오산학교]] (정주시: 39.697722, 125.206722)&lt;br /&gt;
*[[평양 숭실중학교]]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lt;br /&gt;
*[[평양경찰서]]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 -&amp;gt; 평양 숭실학교와 좌표가 같음&lt;br /&gt;
&lt;br /&gt;
======남한======&lt;br /&gt;
*'''[[서울고등학교]] (37.483972, 127.005472)'''&lt;br /&gt;
*[[경기도 광주]] (37.429444, 127.255139)&lt;br /&gt;
*[[부산 임시 학교]] (35.179778, 129.075000)&lt;br /&gt;
* 쌍과부집 (37.591049, 127.052027)&lt;br /&gt;
*[[경희대학교]] (37.595528, 127.052806)&lt;br /&gt;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현 문과대학)]] (37.597196, 127.054475)&lt;br /&gt;
*'''[[양평 황순원 문학촌]] (37.594833, 127.378139)'''&lt;br /&gt;
*회기 막걸리집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러시아집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청량리 신현대 아파트]] (청량리 : 37.589652, 127.051808)&lt;br /&gt;
*'''[[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37.486806, 126.972583)'''&lt;br /&gt;
*'''[[서울 사당동 예술인마을]] (37.476083, 126.972778)'''&lt;br /&gt;
*'''[[삼일공원]] (37.485778, 126.974556)'''&lt;br /&gt;
*[[부산 밀다원]] (35.098757, 129.032220)&lt;br /&gt;
&lt;br /&gt;
=====해외=====&lt;br /&gt;
======일본======&lt;br /&gt;
*[[와세다 제2고등학원]] (35.709821, 139.718574)&lt;br /&gt;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 (35.709821, 139.718574)&lt;br /&gt;
&lt;br /&gt;
===='''Event''' &amp;lt;small&amp;gt;사건&amp;lt;/small&amp;gt;====&lt;br /&gt;
*출생&lt;br /&gt;
*소설 &amp;lt;목넘이마을의 개&amp;gt; 집필&lt;br /&gt;
*소학교 입학과 소주 마시기 시작&lt;br /&gt;
*소학교 전입학&lt;br /&gt;
*조선 총독부 검열 피하기 위해 평양경찰서에서 29일 간 구류&lt;br /&gt;
*월남 후 영어교사로 취임&lt;br /&gt;
*6.25 전쟁과 피난&lt;br /&gt;
*전쟁 중 임시 교사로 활동&lt;br /&gt;
*경희대학교 평교수 재직&lt;br /&gt;
*소나기 마을을 김종회에게 맡김&lt;br /&gt;
*한달에 한 번 막걸리 수업&lt;br /&gt;
*제자들과의 술자리(국보위 이야기)&lt;br /&gt;
*부인과 매일 산책&lt;br /&gt;
*제자들과 잦은 술자리&lt;br /&gt;
*황순원 문학제&lt;br /&gt;
*정례모임&lt;br /&gt;
*소설 &amp;lt;소나기&amp;gt;와 &amp;lt;움직이는 성&amp;gt;&lt;br /&gt;
*이사와 작품 집필 : &amp;lt;맹산할머니&amp;gt; &amp;lt;물 한 모금&amp;gt; &amp;lt;독 짓는 늙은이&amp;gt; &amp;lt;눈&amp;gt;&lt;br /&gt;
&lt;br /&gt;
===='''Record''' &amp;lt;small&amp;gt;기록&amp;lt;/small&amp;gt;====&lt;br /&gt;
*『황순원 문학과 소나기마을』&lt;br /&gt;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lt;br /&gt;
&lt;br /&gt;
===='''Concept''' &amp;lt;small&amp;gt;개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ink''' Data===&lt;br /&gt;
=='''출전'''==&lt;br /&gt;
*황순원, 『소년, 소녀를 만나다: 황순원의 「소나기」 이어쓰기』, 문학과지성사, 2016.&amp;lt;br/&amp;gt;&lt;br /&gt;
*&amp;quot;記憶の中の早稲田.&amp;quot; 早稲田大学 校友会, www.wasedaalumni.jp/memory, 2020-05-27 접속&amp;lt;br/&amp;gt;&lt;br /&gt;
*&amp;quot;밀다원(密茶苑).&amp;quot; 부산역사문화대전, 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05631, 2020-05-27 접속.&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HwangsunwonAndPlace&amp;diff=11943</id>
		<title>HwangsunwonAndPlac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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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30T13:30: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__목차__&lt;br /&gt;
&lt;br /&gt;
경희대학교 공간 데이터, 황순원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들&lt;br /&gt;
=='''Map'''==&lt;br /&gt;
{{#display_map: &lt;br /&gt;
 39.697722, 125.206722~[[정주 오산학교]]~;&lt;br /&gt;
 37.595528, 127.052806~[[경희대학교]]~;&lt;br /&gt;
 35.709821, 139.718574~[[와세다 제2고등학원]]~;&lt;br /&gt;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lt;br /&gt;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lt;br /&gt;
39.118314, 126.172372~[[평양 숭덕소학교]]~;&lt;br /&gt;
 39.198343, 125.696870~[[숭덕리]]~;&lt;br /&gt;
 39.039278, 125.762528~[[평양 숭실중학교]]~;&lt;br /&gt;
 39.039278, 125.762528~[[평양경찰서]]~;&lt;br /&gt;
37.483972, 127.005472~[[서울고등학교]]~;&lt;br /&gt;
37.429444, 127.255139~[[경기도 광주]]~;&lt;br /&gt;
35.179778, 129.075000~[[부산 임시 학교]]~;&lt;br /&gt;
37.595528, 127.052806~[[경희대학교]]~;&lt;br /&gt;
37.597196, 127.054475~[[경희대학교 문리대학 (현 문과대학)]]~;&lt;br /&gt;
37.594833, 127.378139~[[양평 황순원 문학촌]]~;&lt;br /&gt;
37.486806, 126.972583~[[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lt;br /&gt;
37.476083, 126.972778~[[서울 사당동 예술인마을]]~;&lt;br /&gt;
37.485778, 126.974556~[[삼일공원]]~;&lt;br /&gt;
35.098757, 129.032220~[[부산 밀다원]]~;&lt;br /&gt;
37.589527, 127.051960~[[청량리신현대아파트]]~;&lt;br /&gt;
37.591049, 127.052027~쌍과부집~;&lt;br /&gt;
&lt;br /&gt;
&lt;br /&gt;
 |width=100%&lt;br /&gt;
 |height=800&lt;br /&gt;
 |service=leaflet&lt;br /&gt;
}}&lt;br /&gt;
&lt;br /&gt;
=='''Network Graph'''==&lt;br /&gt;
{{NetworkGraph | title=HwangsunwonAndPlace.lst}}&lt;br /&gt;
{{버튼클릭|[[HwangsunwonAndPlace.lst|lst 페이지로 가기]]}}&lt;br /&gt;
&lt;br /&gt;
=='''Data'''==&lt;br /&gt;
==='''Node''' Data===&lt;br /&gt;
===='''Person''' &amp;lt;small&amp;gt;인물&amp;lt;/small&amp;gt;====&lt;br /&gt;
*김말봉&lt;br /&gt;
*김동리&lt;br /&gt;
*김환기&lt;br /&gt;
*김소운&lt;br /&gt;
*강태근&lt;br /&gt;
*고원정&lt;br /&gt;
*김광섭&lt;br /&gt;
*김동원&lt;br /&gt;
*김용성&lt;br /&gt;
*김종회&lt;br /&gt;
*김진수&lt;br /&gt;
*김형경&lt;br /&gt;
*남관&lt;br /&gt;
*박기원&lt;br /&gt;
*박덕규&lt;br /&gt;
*박인환&lt;br /&gt;
*양정길&lt;br /&gt;
*유시화&lt;br /&gt;
*이봉구&lt;br /&gt;
*이승훈&lt;br /&gt;
*이한직&lt;br /&gt;
*이해랑&lt;br /&gt;
*장찬붕&lt;br /&gt;
*전상국&lt;br /&gt;
*정호승&lt;br /&gt;
*조병화&lt;br /&gt;
*조연현&lt;br /&gt;
*조태일&lt;br /&gt;
*조해일&lt;br /&gt;
*주요섭&lt;br /&gt;
*하재봉&lt;br /&gt;
*홍성원&lt;br /&gt;
*황남규&lt;br /&gt;
*황동규&lt;br /&gt;
*황선혜&lt;br /&gt;
*황순원&lt;br /&gt;
*황진규&lt;br /&gt;
*황찬영&lt;br /&gt;
&lt;br /&gt;
===='''Group''' &amp;lt;small&amp;gt;단체&amp;lt;/small&amp;gt;====&lt;br /&gt;
*동경학생예술좌&lt;br /&gt;
*경희대 사단&lt;br /&gt;
*대한민국예술원&lt;br /&gt;
*소나기마을건립추진위원회&lt;br /&gt;
&lt;br /&gt;
===='''Place''' &amp;lt;small&amp;gt;장소&amp;lt;/small&amp;gt;====&lt;br /&gt;
&amp;lt;big&amp;gt;'''[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8HnFwg98rcd2wLfOc8NT0HF24aqpRr-ibBIXM4OV4gs/edit#gid=0 Place-Event 정리 시트 바로가기]'''&amp;lt;/big&amp;gt;&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font-weight:bold; font-size:14px; font-family:Arial, Helvetica, sans-serif !important;;&amp;quot;&lt;br /&gt;
|- style=&amp;quot;font-weight:normal;&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font-size:36px; font-family:Impact, Charcoal, sans-serif !important;;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Place-Even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 vertical-align:middle; font-family:'Arial Black', Gadget, sans-serif !important;; background-color:rgb(255, 217, 102);&amp;quot;&lt;br /&gt;
| Place1&lt;br /&gt;
| Place2&lt;br /&gt;
| Latitued-Longitude&lt;br /&gt;
| Event&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북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출생, 1943년부터 해방 전까지 머무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rowspan=&amp;quot;6&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작가의 외가 마을이자 &amp;lt;목넘이마을의 개&amp;gt;배경&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평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1921년 이사, 1945년 9월~1946년까지 머무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양 숭덕소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숭덕리 39.118314, 126.172372&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입학. 이 때부터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color:rgb(34, 34, 34);&amp;quot; | 정주 오산중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정주시: 39.697722, 125.206722&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1929년 입학. 남강 이승훈(교장)-단편 &amp;lt;아버지&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양 숭실중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전입학&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color:rgb(34, 34, 34);&amp;quot; | 평양경찰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여름 방학 때 귀향했다는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려고 동경에서 시집을 발간했다는 사유로 평양경찰서에서 29일간 구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남한&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 color:rgb(34, 34, 34);&amp;quot; | 서울고등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3972, 127.005472&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1946년 월남 후 9월에 영어교사로 취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rowspan=&amp;quot;1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amp;quot; | 경기도 광주&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7.429444, 127.255139&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6.25전쟁 때 제자의 도움을 받아 피난한 곳&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부산 임시 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5.179778, 129.075000&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피난 중 임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경희대학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5528, 127.052806&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1957년부터 평교수로 일함. 이후 명예교수&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양평 황순원 문학촌&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4833, 127.378139&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소나기마을을 김종회에게 맡김.&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회기 막걸리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한 달에 한 번 막걸리집에서 수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러시아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84년 가을 제자와 술 (경희대 국문과 대학원생들이 교수님들을 모시고 잘 들르는 간이음식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6806, 126.972583&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부인과 거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서울 사당동 예술인마을&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476083, 126.972778&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삼일공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485778, 126.974556&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부인과 매일 산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부산 밀다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5.098757, 129.032220&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서울 청량리 신현대아파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589527, 127.051960&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제자들이 찾아와 부인분께서 다과를 내어주시고 수업을 들었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amp;quot; | 서울 쌍과부집&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37.591049, 127.052027 (여기였을것)&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background-color:#ffffff; font-weight:normal;&amp;quot; | 제자들과 함께 자주 갔던 술집으로 낮술을 하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심&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일본&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와세다 제2고등학원&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709821, 139.71857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1934년 입학&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ffffff;&amp;quot;&lt;br /&gt;
|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 | &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background-color:rgb(255, 242, 204);&amp;quot; |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font-weight:normal;&amp;quot; | 35.709821, 139.718574&lt;br /&gt;
| style=&amp;quot;vertical-align:bottom; font-weight:normal;&amp;quot; | 1936년 입학&lt;br /&gt;
|}&lt;br /&gt;
&lt;br /&gt;
=====국내=====&lt;br /&gt;
======북한======&lt;br /&gt;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 (39.146414342306926, 125.65819479727567)'''&lt;br /&gt;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 (39.148014090016645, 125.66730838168604)'''&lt;br /&gt;
*'''[[평양 숭덕소학교]] (숭덕리 39.118314, 126.172372)''' (39.198343, 125.696870)&lt;br /&gt;
*[[정주 오산학교]] (정주시: 39.697722, 125.206722)&lt;br /&gt;
*[[평양 숭실중학교]]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lt;br /&gt;
*[[평양경찰서]] (평양직할시: 39.039278, 125.762528) -&amp;gt; 평양 숭실학교와 좌표가 같음&lt;br /&gt;
&lt;br /&gt;
======남한======&lt;br /&gt;
*'''[[서울고등학교]] (37.483972, 127.005472)'''&lt;br /&gt;
*[[경기도 광주]] (37.429444, 127.255139)&lt;br /&gt;
*[[부산 임시 학교]] (35.179778, 129.075000)&lt;br /&gt;
* 쌍과부집 (37.591049, 127.052027)&lt;br /&gt;
*[[경희대학교]] (37.595528, 127.052806)&lt;br /&gt;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현 문과대학)]] (37.597196, 127.054475)&lt;br /&gt;
*'''[[양평 황순원 문학촌]] (37.594833, 127.378139)'''&lt;br /&gt;
*회기 막걸리집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러시아집 (회기역: 37.589833, 127.057944)&lt;br /&gt;
*[[청량리 신현대 아파트]] (청량리 : 37.589652, 127.051808)&lt;br /&gt;
*'''[[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37.486806, 126.972583)'''&lt;br /&gt;
*'''[[서울 사당동 예술인마을]] (37.476083, 126.972778)'''&lt;br /&gt;
*'''[[삼일공원]] (37.485778, 126.974556)'''&lt;br /&gt;
*[[부산 밀다원]] (35.098757, 129.032220)&lt;br /&gt;
&lt;br /&gt;
=====해외=====&lt;br /&gt;
======일본======&lt;br /&gt;
*[[와세다 제2고등학원]] (35.709821, 139.718574)&lt;br /&gt;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 (35.709821, 139.718574)&lt;br /&gt;
&lt;br /&gt;
===='''Event''' &amp;lt;small&amp;gt;사건&amp;lt;/small&amp;gt;====&lt;br /&gt;
*황순원 문학제&lt;br /&gt;
*정례모임&lt;br /&gt;
*막걸리 강의&lt;br /&gt;
*국보위 사건(?)&lt;br /&gt;
*소설 &amp;lt;소나기&amp;gt;와 &amp;lt;움직이는 성&amp;gt;&lt;br /&gt;
*이사와 작품 집필 : &amp;lt;맹산할머니&amp;gt; &amp;lt;물 한 모금&amp;gt; &amp;lt;독 짓는 늙은이&amp;gt; &amp;lt;눈&amp;gt;&lt;br /&gt;
===='''Record''' &amp;lt;small&amp;gt;기록&amp;lt;/small&amp;gt;====&lt;br /&gt;
*『황순원 문학과 소나기마을』&lt;br /&gt;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lt;br /&gt;
&lt;br /&gt;
===='''Concept''' &amp;lt;small&amp;gt;개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ink''' Data===&lt;br /&gt;
=='''출전'''==&lt;br /&gt;
*황순원, 『소년, 소녀를 만나다: 황순원의 「소나기」 이어쓰기』, 문학과지성사, 2016.&amp;lt;br/&amp;gt;&lt;br /&gt;
*&amp;quot;記憶の中の早稲田.&amp;quot; 早稲田大学 校友会, www.wasedaalumni.jp/memory, 2020-05-27 접속&amp;lt;br/&amp;gt;&lt;br /&gt;
*&amp;quot;밀다원(密茶苑).&amp;quot; 부산역사문화대전, 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05631, 2020-05-27 접속.&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WalkerhillAndParkchunghee.lst&amp;diff=11007</id>
		<title>WalkerhillAndParkchunghee.ls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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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20T07:54: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WalkerhillAndParkchunghee.lst&lt;br /&gt;
&lt;br /&gt;
#Class&lt;br /&gt;
Person		black	circle&lt;br /&gt;
Group		green	circle&lt;br /&gt;
Place		orange	circle&lt;br /&gt;
Event		red		circle&lt;br /&gt;
Record		blue	circle&lt;br /&gt;
Concept		gray		circle&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isFamilyTo			가족이다			arrow	2&lt;br /&gt;
hasHusband			남편이다			arrow	2&lt;br /&gt;
hasWife				아내이다			arrow	2&lt;br /&gt;
hasSister				자매이다			arrow	2&lt;br /&gt;
hasBrother			형제이다			arrow	2&lt;br /&gt;
hasSon				아들이다			arrow	2&lt;br /&gt;
hasDaughter			딸이다			arrow	2&lt;br /&gt;
knows				친분이_있다		arrow	2&lt;br /&gt;
isSuperiorOf			부하로_두다		arrow	2&lt;br /&gt;
isOwnerOf			소유하다			arrow	2&lt;br /&gt;
isManagerOf			관리하다			arrow	2&lt;br /&gt;
isMemberOf			의_구성원이다	arrow	2&lt;br /&gt;
creator				창작자이다		arrow	2&lt;br /&gt;
isPerformedAt			에서_열리다		arrow	2&lt;br /&gt;
PerformedAt                   에서_공연하다        arrow        2&lt;br /&gt;
isLocatedIn			에_위치하다		arrow	2&lt;br /&gt;
staysIn				에_머무르다		arrow	2&lt;br /&gt;
isPreviousInSequence	의_전신이다		arrow	2&lt;br /&gt;
isPartOf				의_부분이다		arrow	2&lt;br /&gt;
isNamesakeOf		의_이름을따다	arrow	2&lt;br /&gt;
mentions				을_언급하다		arrow	2&lt;br /&gt;
likes					을_좋아하다		arrow	2&lt;br /&gt;
isAbout				에_관한것이다	arrow	2&lt;br /&gt;
isRelatedTo			와_관련있다		arrow	2&lt;br /&gt;
belongTo                         속하다                     arrow        2&lt;br /&gt;
isclosestof                       의_최측근이다        arrow        2&lt;br /&gt;
attend                              참석하다                  arrow        2&lt;br /&gt;
request	요청하다	arrow	2&lt;br /&gt;
descendTo                      로_전락하다               arrow        2&lt;br /&gt;
&lt;br /&gt;
#Nodes&lt;br /&gt;
워커힐호텔		Place			워커힐호텔				https://namu.wiki/w/그랜드%20워커힐%20서울			http://dh.aks.ac.kr/~red/wiki/images/a/a0/WalkerhillHotel.jpg			2&lt;br /&gt;
비스타홀			Place			비스타홀					null			null			1&lt;br /&gt;
청계고가도로		Place			청계고가도로				null			null			1&lt;br /&gt;
워커힐힐탑바		Place			워커힐힐탑바				null			null			1&lt;br /&gt;
남영동대공분실	Place			남영동대공분실			null			null			1&lt;br /&gt;
퍼시픽홀                  Place                       퍼시픽홀                                 null                  null                   1&lt;br /&gt;
&lt;br /&gt;
월튼해리스워커	Person			월튼해리스워커			https://ko.wikipedia.org/wiki/월턴_워커			http://dh.aks.ac.kr/~red/wiki/images/9/9a/WaltonHarrisWalker.jpg			2&lt;br /&gt;
샘워커			Person			샘워커					https://ko.wikipedia.org/wiki/%EC%83%98_S._%EC%9B%8C%EC%BB%A4&lt;br /&gt;
박정희			Person			박정희					https://ko.wikipedia.org/wiki/박정희			http://dh.aks.ac.kr/~red/wiki/images/f/f0/Parkchunghee.png			2&lt;br /&gt;
김종필			Person			김종필					https://ko.wikipedia.org/wiki/김종필			http://dh.aks.ac.kr/~red/wiki/images/7/79/Kimjongpil.png			2&lt;br /&gt;
설경동			Person			설경동					https://ko.wikipedia.org/wiki/설경동			http://dh.aks.ac.kr/~red/wiki/images/4/41/%EC%84%A4%EA%B2%BD%EB%8F%99.jpg			2&lt;br /&gt;
이수광			Person			이수광					null			http://dh.aks.ac.kr/~red/wiki/images/e/e9/이수광.jpg			2&lt;br /&gt;
김수근			Person			김수근					null			null			1&lt;br /&gt;
최종건			Person			최종건					null			null			1&lt;br /&gt;
이후락			Person			이후락					null			null			1&lt;br /&gt;
김형욱			Person			김형욱					null			null			1&lt;br /&gt;
김재권			Person			김재권					null			null			1&lt;br /&gt;
성김				Person			성김						null			null			1&lt;br /&gt;
임택근			Person			임택근					null			null			1&lt;br /&gt;
김대중			Person			김대중					null			null			1&lt;br /&gt;
박근혜			Person			박근혜					null			null			1&lt;br /&gt;
박지만			Person			박지만					null			null			1&lt;br /&gt;
손정목			Person			손정목					null			null			1&lt;br /&gt;
이미자			Person			이미자					null			null			1&lt;br /&gt;
한형모			Person			한형모					null			null			1&lt;br /&gt;
노무현			Person			노무현					null			null			1&lt;br /&gt;
박상희			Person			박상희					null			null			1&lt;br /&gt;
박영옥			Person			박영옥					null			null			1&lt;br /&gt;
이동욱			Person			이동욱					null			null			1&lt;br /&gt;
최예원			Person			최예원					null			null			1&lt;br /&gt;
임현자			Person			임현자					null			null			1&lt;br /&gt;
임재범			Person			임재범					null			null			1&lt;br /&gt;
손지창			Person			손지창					null			null			1&lt;br /&gt;
김영철                     Person                     김영철                                     null                  null                   1&lt;br /&gt;
루이암스트롱         Person                     루이암스트롱                           null                  null                   1&lt;br /&gt;
이병희                     Person                     이병희                                     null                  null                   1&lt;br /&gt;
박춘식                     Person                     박춘식                                     null                  null                   1&lt;br /&gt;
석정선                     Person                     석정선                                     null                  null                   1&lt;br /&gt;
임병주                     Person                     임병주                                     null &lt;br /&gt;
신두영                     Person                     신두영                                     null                  null                   1&lt;br /&gt;
린든_B_존슨	Person	린든_B_존슨	null	null	1&lt;br /&gt;
레이디_버드_존슨	Person	레이디_버드_존슨	null	null	1&lt;br /&gt;
중앙정보부		Group			중앙정보부				https://namu.wiki/w/중앙정보부			http://dh.aks.ac.kr/~red/wiki/images/9/9d/KoreanCentralIntelligenceAgency.jpg			2&lt;br /&gt;
주한유엔군		Group			주한유엔군				https://namu.wiki/w/유엔군사령부			http://dh.aks.ac.kr/~red/wiki/images/5/57/UnitedNationsForces.png			2&lt;br /&gt;
미8군			Group			미8군					https://ko.wikipedia.org/wiki/제8군_(미국)			http://dh.aks.ac.kr/~red/wiki/images/e/ed/EighthUnitedStatesArmy.jpg			1&lt;br /&gt;
대한전선			Group			대한전선					https://ko.wikipedia.org/wiki/대한전선			http://dh.aks.ac.kr/~red/wiki/images/1/1b/대한전선.jpg			2&lt;br /&gt;
워커힐_부지		Group			워커힐_부지				null			http://dh.aks.ac.kr/~red/wiki/images/c/cf/워커힐부지.jpg			2&lt;br /&gt;
동아일보			Group			동아일보					null			null			1&lt;br /&gt;
한겨레신문		Group			한겨레신문				null			null			1&lt;br /&gt;
선경그룹			Group			선경그룹					null			null			1&lt;br /&gt;
SK그룹			Group			SK그룹					null			null			1&lt;br /&gt;
교통부			Group			교통부					https://namu.wiki/w/교통부			null			1&lt;br /&gt;
관광공사			Group			관광공사					null			null			1&lt;br /&gt;
크립토AG                Group                      크립토AG				http://dh.aks.ac.kr/~red/wiki/index.php/%ED%81%AC%EB%A6%BD%ED%86%A0AG			null			1&lt;br /&gt;
CIA                          Group                      CIA                                          https://ko.wikipedia.org/wiki/중앙정보국			null			1&lt;br /&gt;
BND                        Group                      BND                                         https://ko.wikipedia.org/wiki/연방정보원_(독일)			null			1&lt;br /&gt;
&lt;br /&gt;
대한민국12비사		Record		대한민국12비사			null			http://dh.aks.ac.kr/~red/wiki/images/4/47/대한민국12비사.jpg			2&lt;br /&gt;
워커힐의혹보도		Record		워커힐의혹보도			null			null			1&lt;br /&gt;
서울도시계획이야기	Record		서울도시계획이야기		null			null			1&lt;br /&gt;
워커힐에서만납시다	Record		워커힐에서만납시다		https://www.koreafilm.or.kr/movie/PM_005548	null			1&lt;br /&gt;
엘레지의여왕			Record		엘레지의여왕				null			null			1&lt;br /&gt;
동백아가씨			Record		동백아가씨				null			null			1&lt;br /&gt;
근_현대_국가주도_호텔의_건설과_자본주의_유입에_따른_변화			Record		근_현대_국가주도_호텔의_건설과_자본주의_유입에_따른_변화				null			null			1&lt;br /&gt;
&lt;br /&gt;
워커힐사건			Event	워커힐사건				null			null			1&lt;br /&gt;
동아일보백지광고사태	Event	동아일보백지광고사태		null			null			1&lt;br /&gt;
통제권환수연설		Event	통제권환수연설			null			null			1&lt;br /&gt;
김대중납치사건		Event	김대중납치사건			null			null			1&lt;br /&gt;
박지만결혼식			Event	박지만결혼식			null			null			1&lt;br /&gt;
워커힐_하니비_쇼           Event       워커힐_하니비_쇼                  null                   null                  1&lt;br /&gt;
제2차남북적십자회담만찬회       Event       제2차남북적십자회담만찬회       http://dh.aks.ac.kr/~red/wiki/index.php/%EC%A0%9C2%EC%B0%A8_%EB%82%A8%EB%B6%81%EC%A0%81%EC%8B%AD%EC%9E%90%ED%9A%8C%EB%8B%B4_%EB%A7%8C%EC%B0%AC%ED%9A%8C       http://dh.aks.ac.kr/~red/wiki/images/1/14/%EB%A7%8C%EC%B0%AC%ED%9A%8C.PNG       1&lt;br /&gt;
선경그룹의_워커힐_인수_사건			Event	선경그룹의_워커힐_인수_사건			null			null			1&lt;br /&gt;
워커힐개관식                 Event	워커힐개관식				null			null			1&lt;br /&gt;
천안함폭침사건                 Event	천안함폭침사건				null			null			1&lt;br /&gt;
한국의_베트남_파병	Event	한국의_베트남_파병	null	null	1&lt;br /&gt;
박정희의_워커힐_유흥_파티	Event	박정희의_워커힐_유흥_파티	null	null	1&lt;br /&gt;
베트남_전쟁	Event	베트남_전쟁	null	null	1&lt;br /&gt;
전시작전통제권		Concept		전시작전통제권		null			null			1&lt;br /&gt;
외화벌이				Concept		외화벌이				null			null			1&lt;br /&gt;
&lt;br /&gt;
&lt;br /&gt;
#Links&lt;br /&gt;
워커힐호텔		월튼해리스워커	isNamesakeOf&lt;br /&gt;
&lt;br /&gt;
샘워커			월튼해리스워커	hasSon&lt;br /&gt;
&lt;br /&gt;
박정희			박상희			hasBrother&lt;br /&gt;
박상희			박영옥			hasDaughter&lt;br /&gt;
박영옥			김종필			hasHusband&lt;br /&gt;
&lt;br /&gt;
이후락			이동욱			hasSon&lt;br /&gt;
최종건			최예원			hasDaughter&lt;br /&gt;
이동욱			최예원			hasWife&lt;br /&gt;
박정희			박근혜			hasDaughter&lt;br /&gt;
박정희			박지만			hasSon&lt;br /&gt;
&lt;br /&gt;
김재권			임현자			hasWife&lt;br /&gt;
김재권			성김				hasSon&lt;br /&gt;
임현자			성김				hasSon&lt;br /&gt;
임택근			임현자			hasSister	&lt;br /&gt;
임택근			임재범			hasSon&lt;br /&gt;
임택근			손지창			hasSon&lt;br /&gt;
&lt;br /&gt;
김형욱			김재권			knows&lt;br /&gt;
박근혜			성김				knows&lt;br /&gt;
김종필			김수근			knows&lt;br /&gt;
&lt;br /&gt;
김재권			워커힐호텔		isManagerOf&lt;br /&gt;
김종필			중앙정보부		isManagerOf&lt;br /&gt;
이후락			중앙정보부		isManagerOf&lt;br /&gt;
김형욱			중앙정보부		isManagerOf&lt;br /&gt;
석정선			중앙정보부		isMemberOf&lt;br /&gt;
임병주			중앙정보부		isMemberOf&lt;br /&gt;
임병주			워커힐호텔		isManagerOf&lt;br /&gt;
월튼해리스워커	미8군			isManagerOf&lt;br /&gt;
샘워커			미8군       		isMemberOf&lt;br /&gt;
루이암스트롱          미8군                       isRelatedTo&lt;br /&gt;
최종건			선경그룹			isOwnerOf&lt;br /&gt;
이병희			중앙정보부		isMemberOf&lt;br /&gt;
이병희			최종건			knows&lt;br /&gt;
선경그룹			SK그룹			isPreviousInSequence&lt;br /&gt;
루이암스트롱          워커힐개관식          isRelatedTo&lt;br /&gt;
중앙정보부		외화벌이			isRelatedTo&lt;br /&gt;
주한유엔군		외화벌이			isRelatedTo&lt;br /&gt;
미8군			주한유엔군		isPartOf&lt;br /&gt;
설경동			대한전선			isOwnerOf&lt;br /&gt;
설경동			워커힐_부지		isOwnerOf&lt;br /&gt;
SK그룹			워커힐호텔		isOwnerOf&lt;br /&gt;
선경그룹			선경그룹의_워커힐_인수_사건			isRelatedTo&lt;br /&gt;
CIA                          크립토AG                isOwnerOf&lt;br /&gt;
BND                        크립토AG                isOwnerOf&lt;br /&gt;
크립토AG                김대중납치사건      isRelatedTo&lt;br /&gt;
&lt;br /&gt;
비스타홀			워커힐호텔		isLocatedIn&lt;br /&gt;
워커힐힐탑바		워커힐호텔		isLocatedIn&lt;br /&gt;
퍼시픽홀                 워커힐호텔              isLocatedIn&lt;br /&gt;
워커힐개관식          워커힐호텔              isPerformedAt&lt;br /&gt;
워커힐_하니비_쇼  퍼시픽홀                  isPerformedAt&lt;br /&gt;
루이암스트롱          퍼시픽홀                 PerformedAt&lt;br /&gt;
워커힐_부지		워커힐호텔		isPartOf&lt;br /&gt;
대한민국12비사	설경동			mentions&lt;br /&gt;
근_현대_국가주도_호텔의_건설과_자본주의_유입에_따른_변화	선경그룹의_워커힐_인수_사건			mentions&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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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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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Visualization==&lt;br /&gt;
{{버튼클릭|[[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과 박정희 페이지로 가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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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Network Graph Scrip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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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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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19T08:27: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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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하니쇼의 쇠퇴'''===&lt;br /&gt;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워커힐쇼는 사실상 쇠퇴기에 접어든다. 단체 외래관광객과 중장년층 내국인에 편중된 고객구조의 취약성은 개관 이래 전통적인 민속쇼와 레뷔쇼라는 혼합쇼의 질적 한계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발전과 경쟁력 확보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amp;lt;ref&amp;gt;이상연, 『공연관광 효시 워커힐쇼의 사적 변천과정 고찰』, 중앙대학교, 2015, 109p&amp;lt;/ref&amp;gt;. 게다가 2002년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내한팀의 한국 초연을 시작으로 태양의 서커스의 한국 공연,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시장 확대와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제작으로 워커힐쇼의 질적 수준과 예술성을 능가하는 공연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소형 극장들의 건립 확대와 뮤지컬 전용극장이 오픈되는 상황은 워커힐쇼의 내국인 관객이탈을 더욱 가속화했다.&amp;lt;ref&amp;gt;위의 논문, 111p&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워커힐쇼는 만성적인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보였다. 2006년에는 드라마 대장금을 모티브로 한 대향연이 제작되었고, 2009년에는 사물놀이, 승무, 탈놀이, 오고무 등 한국의 전통무용으로 구성된 동방의 빛을 선보였다. 그러나 동방의 빛 역시 흥행에 실패했고, 워커힐은 2010년 꽃의 전설을 통해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였다.&lt;br /&gt;
*2010년 초연된 꽃의 전설은 워커힐에서 자체 기획, 제작한 워커힐쇼 최초의 단독 민속공연이었으며, 한국 전통무용과 연희에 마샬아츠와 비보잉 등을 접목한 공연이었다. 이후 내용을 개편한 꽃의 전설 2가 2011년부터 공연되었지만 여전히 관객 수는 증가하지 않았다. 결국 누적된 적자와 관객 감소로 인해 2012년 3월 꽃의 전설2는 막을 내렸고, 이것이 워커힐쇼의 마지막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66</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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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19T08:26: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html&amp;gt;&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00&amp;quot; height=&amp;quot;3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QitE7JprC9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하니쇼의 쇠퇴'''===&lt;br /&gt;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워커힐쇼는 사실상 쇠퇴기에 접어든다. 단체 외래관광객과 중장년층 내국인에 편중된 고객구조의 취약성은 개관 이래 전통적인 민속쇼와 레뷔쇼라는 혼합쇼의 질적 한계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발전과 경쟁력 확보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amp;lt;ref&amp;gt;이상연, 『공연관광 효시 워커힐쇼의 사적 변천과정 고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예술경영전공 석사학위 논문, 2015, 109p&amp;lt;/ref&amp;gt;. 게다가 2002년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내한팀의 한국 초연을 시작으로 태양의 서커스의 한국 공연,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시장 확대와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제작으로 워커힐쇼의 질적 수준과 예술성을 능가하는 공연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소형 극장들의 건립 확대와 뮤지컬 전용극장이 오픈되는 상황은 워커힐쇼의 내국인 관객이탈을 더욱 가속화했다.&amp;lt;ref&amp;gt;위의 논문, 111p&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워커힐쇼는 만성적인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보였다. 2006년에는 드라마 대장금을 모티브로 한 대향연이 제작되었고, 2009년에는 사물놀이, 승무, 탈놀이, 오고무 등 한국의 전통무용으로 구성된 동방의 빛을 선보였다. 그러나 동방의 빛 역시 흥행에 실패했고, 워커힐은 2010년 꽃의 전설을 통해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였다.&lt;br /&gt;
*2010년 초연된 꽃의 전설은 워커힐에서 자체 기획, 제작한 워커힐쇼 최초의 단독 민속공연이었으며, 한국 전통무용과 연희에 마샬아츠와 비보잉 등을 접목한 공연이었다. 이후 내용을 개편한 꽃의 전설 2가 2011년부터 공연되었지만 여전히 관객 수는 증가하지 않았다. 결국 누적된 적자와 관객 감소로 인해 2012년 3월 꽃의 전설2는 막을 내렸고, 이것이 워커힐쇼의 마지막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59</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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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19T08:15: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html&amp;gt;&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00&amp;quot; height=&amp;quot;3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QitE7JprC9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하니쇼의 쇠퇴'''===&lt;br /&gt;
워커힐호텔은 애초의 기대만큼 경영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lt;br /&gt;
#'''유엔군 장병들은 워커힐에서 휴가를 별로 즐기지 않았다.'''&lt;br /&gt;
#*일본 언론에 의한 과장보도로 워커힐은 몸을 파는 색시들로 채워져 있다고 오해한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워커힐에서의 휴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국제적 규모의 현대식 호텔이었기 때문에 방값도 술값도 비쌌고 무엇보다 같이 할 아가씨가 없었다. 반나체로 춤을 추는 화려한 쇼를 보고난 뒤에는 외로운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lt;br /&gt;
#'''바, 카지노, 쇼무대, 풀장 이외에는 이렇다 할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lt;br /&gt;
#*계획 당시에 구상된 한강의 뱃놀이와 낚시터, 궁술사격장, 사이클링 등 레저스포츠 시설과 부유한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비행기장의 건설은 4대 의혹 사건이 말썽이 되면서 축소되고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lt;br /&gt;
#'''아직 한국관광이 널리 홍보되지 않았고 따라서 외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lt;br /&gt;
#*워커힐을 이용한 외국인은 1965년에는 10만 명을 넘겼으나 1970년에도 겨우 12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lt;br /&gt;
#'''접근이 어려웠다.'''&lt;br /&gt;
#*1960년대는 강변도로도 아직 없었고 천호대로는 착수도 되지 않았다. 워커힐을 가려면 일단 도심부로 들어가서 을지로, 왕십리, 성동교, 광나루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워커힐이 준공 개관될 당시 지금 한양대학교 앞에 있는 성동교는 넓이가 5.6m밖에 안되었다. 거기서 광나루까지 가는 광나루길은 넓이가 겨우 10m이었으며 그것도 워커힐 개관에 맞추어 부랴부랴 포장될 정도였으니 교통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lt;br /&gt;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lt;br /&gt;
#*19만평이라는 광대한 부지에 30개에 달하는 건물과 각종 시설이 흩어져있어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1963년 개관 당시 직원 수가 555명이나 되었으니 그 연간 인건비만 따져 봐도 엄청난 액수였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57</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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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19T08:14: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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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굵은 글씨'''==='''하니쇼의 쇠퇴'''===&lt;br /&gt;
워커힐호텔은 애초의 기대만큼 경영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lt;br /&gt;
#'''유엔군 장병들은 워커힐에서 휴가를 별로 즐기지 않았다.'''&lt;br /&gt;
#*일본 언론에 의한 과장보도로 워커힐은 몸을 파는 색시들로 채워져 있다고 오해한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워커힐에서의 휴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국제적 규모의 현대식 호텔이었기 때문에 방값도 술값도 비쌌고 무엇보다 같이 할 아가씨가 없었다. 반나체로 춤을 추는 화려한 쇼를 보고난 뒤에는 외로운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lt;br /&gt;
#'''바, 카지노, 쇼무대, 풀장 이외에는 이렇다 할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lt;br /&gt;
#*계획 당시에 구상된 한강의 뱃놀이와 낚시터, 궁술사격장, 사이클링 등 레저스포츠 시설과 부유한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비행기장의 건설은 4대 의혹 사건이 말썽이 되면서 축소되고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lt;br /&gt;
#'''아직 한국관광이 널리 홍보되지 않았고 따라서 외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lt;br /&gt;
#*워커힐을 이용한 외국인은 1965년에는 10만 명을 넘겼으나 1970년에도 겨우 12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lt;br /&gt;
#'''접근이 어려웠다.'''&lt;br /&gt;
#*1960년대는 강변도로도 아직 없었고 천호대로는 착수도 되지 않았다. 워커힐을 가려면 일단 도심부로 들어가서 을지로, 왕십리, 성동교, 광나루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워커힐이 준공 개관될 당시 지금 한양대학교 앞에 있는 성동교는 넓이가 5.6m밖에 안되었다. 거기서 광나루까지 가는 광나루길은 넓이가 겨우 10m이었으며 그것도 워커힐 개관에 맞추어 부랴부랴 포장될 정도였으니 교통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lt;br /&gt;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lt;br /&gt;
#*19만평이라는 광대한 부지에 30개에 달하는 건물과 각종 시설이 흩어져있어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1963년 개관 당시 직원 수가 555명이나 되었으니 그 연간 인건비만 따져 봐도 엄청난 액수였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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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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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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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하니쇼의 쇠퇴'''===&lt;br /&gt;
워커힐호텔은 애초의 기대만큼 경영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lt;br /&gt;
'''#유엔군 장병들은 워커힐에서 휴가를 별로 즐기지 않았다.'''&lt;br /&gt;
#*일본 언론에 의한 과장보도로 워커힐은 몸을 파는 색시들로 채워져 있다고 오해한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워커힐에서의 휴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국제적 규모의 현대식 호텔이었기 때문에 방값도 술값도 비쌌고 무엇보다 같이 할 아가씨가 없었다. 반나체로 춤을 추는 화려한 쇼를 보고난 뒤에는 외로운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lt;br /&gt;
'''# 바, 카지노, 쇼무대, 풀장 이외에는 이렇다 할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lt;br /&gt;
#*계획 당시에 구상된 한강의 뱃놀이와 낚시터, 궁술사격장, 사이클링 등 레저스포츠 시설과 부유한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비행기장의 건설은 4대 의혹 사건이 말썽이 되면서 축소되고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lt;br /&gt;
'''#아직 한국관광이 널리 홍보되지 않았고 따라서 외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lt;br /&gt;
#*워커힐을 이용한 외국인은 1965년에는 10만 명을 넘겼으나 1970년에도 겨우 12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lt;br /&gt;
'''#접근이 어려웠다.'''&lt;br /&gt;
#*1960년대는 강변도로도 아직 없었고 천호대로는 착수도 되지 않았다. 워커힐을 가려면 일단 도심부로 들어가서 을지로, 왕십리, 성동교, 광나루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워커힐이 준공 개관될 당시 지금 한양대학교 앞에 있는 성동교는 넓이가 5.6m밖에 안되었다. 거기서 광나루까지 가는 광나루길은 넓이가 겨우 10m이었으며 그것도 워커힐 개관에 맞추어 부랴부랴 포장될 정도였으니 교통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lt;br /&gt;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lt;br /&gt;
#*19만평이라는 광대한 부지에 30개에 달하는 건물과 각종 시설이 흩어져있어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1963년 개관 당시 직원 수가 555명이나 되었으니 그 연간 인건비만 따져 봐도 엄청난 액수였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54</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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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19T08:12: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html&amp;gt;&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00&amp;quot; height=&amp;quot;3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QitE7JprC9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하니쇼의 쇠퇴'''===&lt;br /&gt;
워커힐호텔은 애초의 기대만큼 경영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lt;br /&gt;
#첫째 : 유엔군 장병들은 워커힐에서 휴가를 별로 즐기지 않았다. &lt;br /&gt;
#*일본 언론에 의한 과장보도로 워커힐은 몸을 파는 색시들로 채워져 있다고 오해한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워커힐에서의 휴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국제적 규모의 현대식 호텔이었기 때문에 방값도 술값도 비쌌고 무엇보다 같이 할 아가씨가 없었다. 반나체로 춤을 추는 화려한 쇼를 보고난 뒤에는 외로운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lt;br /&gt;
#둘째 : 바, 카지노, 쇼무대, 풀장 이외에는 이렇다 할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lt;br /&gt;
#*계획 당시에 구상된 한강의 뱃놀이와 낚시터, 궁술사격장, 사이클링 등 레저스포츠 시설과 부유한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비행기장의 건설은 4대 의혹 사건이 말썽이 되면서 축소되고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lt;br /&gt;
#셋째 : 아직 한국관광이 널리 홍보되지 않았고 따라서 외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lt;br /&gt;
#*워커힐을 이용한 외국인은 1965년에는 10만 명을 넘겼으나 1970년에도 겨우 12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lt;br /&gt;
#넷째 : 접근이 어려웠다.&lt;br /&gt;
#*1960년대는 강변도로도 아직 없었고 천호대로는 착수도 되지 않았다. 워커힐을 가려면 일단 도심부로 들어가서 을지로, 왕십리, 성동교, 광나루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워커힐이 준공 개관될 당시 지금 한양대학교 앞에 있는 성동교는 넓이가 5.6m밖에 안되었다. 거기서 광나루까지 가는 광나루길은 넓이가 겨우 10m이었으며 그것도 워커힐 개관에 맞추어 부랴부랴 포장될 정도였으니 교통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lt;br /&gt;
#다섯째 :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lt;br /&gt;
#*19만평이라는 광대한 부지에 30개에 달하는 건물과 각종 시설이 흩어져있어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1963년 개관 당시 직원 수가 555명이나 되었으니 그 연간 인건비만 따져 봐도 엄청난 액수였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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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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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19T08:11: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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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하니쇼의 쇠퇴'''===&lt;br /&gt;
워커힐호텔은 애초의 기대만큼 경영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lt;br /&gt;
#첫째 : 유엔군 장병들은 워커힐에서 휴가를 별로 즐기지 않았다. &lt;br /&gt;
일본 언론에 의한 과장보도로 워커힐은 몸을 파는 색시들로 채워져 있다고 오해한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워커힐에서의 휴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국제적 규모의 현대식 호텔이었기 때문에 방값도 술값도 비쌌고 무엇보다 같이 할 아가씨가 없었다. 반나체로 춤을 추는 화려한 쇼를 보고난 뒤에는 외로운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lt;br /&gt;
#둘째 : 바, 카지노, 쇼무대, 풀장 이외에는 이렇다 할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lt;br /&gt;
계획 당시에 구상된 한강의 뱃놀이와 낚시터, 궁술사격장, 사이클링 등 레저스포츠 시설과 부유한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비행기장의 건설은 4대 의혹 사건이 말썽이 되면서 축소되고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lt;br /&gt;
#셋째 : 아직 한국관광이 널리 홍보되지 않았고 따라서 외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lt;br /&gt;
워커힐을 이용한 외국인은 1965년에는 10만 명을 넘겼으나 1970년에도 겨우 12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lt;br /&gt;
#넷째 : 접근이 어려웠다.&lt;br /&gt;
1960년대는 강변도로도 아직 없었고 천호대로는 착수도 되지 않았다. 워커힐을 가려면 일단 도심부로 들어가서 을지로, 왕십리, 성동교, 광나루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워커힐이 준공 개관될 당시 지금 한양대학교 앞에 있는 성동교는 넓이가 5.6m밖에 안되었다. 거기서 광나루까지 가는 광나루길은 넓이가 겨우 10m이었으며 그것도 워커힐 개관에 맞추어 부랴부랴 포장될 정도였으니 교통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lt;br /&gt;
#다섯째 :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lt;br /&gt;
19만평이라는 광대한 부지에 30개에 달하는 건물과 각종 시설이 흩어져있어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1963년 개관 당시 직원 수가 555명이나 되었으니 그 연간 인건비만 따져 봐도 엄청난 액수였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50</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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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amp;lt;html&amp;gt;&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500&amp;quot; height=&amp;quot;3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QitE7JprC9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하니쇼의 쇠퇴'''===&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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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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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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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워커힐 호텔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48</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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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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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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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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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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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 18세~21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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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 추가 참고자료===&lt;br /&gt;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1101033130025002 하니비쇼 &amp;lt;문화일보&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47</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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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신장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lt;br /&gt;
*워커힐호텔의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것은 일급 연예인이라는 징표가 됐기에 한국의 연예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갔다.&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44</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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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박정희의 워커힐 유흥 파티|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키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42</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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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키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41</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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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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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lt;br /&gt;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키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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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40</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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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하니비쇼의 라인댄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lt;br /&gt;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키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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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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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lt;br /&gt;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조건 || 기준&lt;br /&gt;
|-&lt;br /&gt;
| 키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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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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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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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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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lt;br /&gt;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lt;br /&gt;
! 1열 || 2열&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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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 162cm 이상&lt;br /&gt;
|-&lt;br /&gt;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lt;br /&gt;
|-&lt;br /&gt;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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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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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lt;h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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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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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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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lt;br /&gt;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 ! 1열 || 2열 |- | 키 || 162cm 이상 |-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 |- | 나이 || 18세~21세|}&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35</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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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입단 조건 '''===&lt;br /&gt;
&lt;br /&gt;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난다 할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lt;br /&gt;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amp;quot; ! 1열 || 2열 |- | 키 || 162cm 이상 |- | 학력 || 고등학교 졸업 이상 |- | 나이 || 18세~21세|} &lt;br /&gt;
&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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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34</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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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lt;br /&gt;
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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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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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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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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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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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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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32</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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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최수빈: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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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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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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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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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8C%EC%BB%A4%ED%9E%90_%ED%95%98%EB%8B%88%EB%B9%84_%EC%87%BC&amp;diff=10731</id>
		<title>워커힐 하니비 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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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5-19T07:14:5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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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html&amp;gt;&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56&amp;quot; height=&amp;quot;238&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QitE7JprC9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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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쇼란?'''===&lt;br /&gt;
&lt;br /&gt;
#'''하니비쇼''' &amp;lt;small&amp;gt;''Honey Bee Show''&amp;lt;/small&amp;gt; &lt;br /&gt;
#*1962년 12월 26일 워커힐 호텔이 준공되면서, 준공기념공연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lt;br /&gt;
#*외국쇼와 국내 연예인의 현대 및 민속을 곁들여 편성한 것이다.&lt;br /&gt;
#*스테이지쇼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입체감 있는 무대와 하니비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lt;br /&gt;
#*개관은 1963년 4월8일에 이루어졌는데 기념으로 당시에 세계적인 재즈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공연이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mall&amp;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둥근 무대가 발밑에서 기어오른다. 바로 그 앞에서 두서너 테이블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 꿈쩍 안 할 수 없다. 다리통들이 쭉쭉 뻗은 것, 말같은 궁둥이에 닭털을 치뽑은 것, 머리에도 닭털, 새털로 감고 팬티만 살짝 입은 것이 모두 손을 치켜들고 한발을 꿇고 엎드리고 서고 한 자세를 만들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다.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미녀도 이 정도로 살덩이를 노출시켜 놓으면 식상에 걸린다. 그것도 하나둘이 발가벗어야지 서른개나 발가벗고 보면 흥미고 나발이고 하기 전에 여자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훨씬 남자들보다 아니 나보다 완력들이 강해보인다. 한 대 맞으면 터질 것같이 팡팡하다. 그게 일제히 흔들흔들하기 시작한다. 원형무대가 빙글빙글 도는데 따라 손과 발의 흔들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나중에는 발을, 다리를, 허벅지를 짝짝 올려 공간을 찬다. 하얀 구두가 번쩍인다...'''''  &amp;lt;/div&amp;gt;&amp;lt;ref&amp;gt;박승희, 『서울의 밤』,  라이온북스, 271p&amp;lt;/ref&amp;gt;&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목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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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이후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졌고,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하는 것이었다. 공사판을 벌이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군사정권은 마침 당시 미군들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대부분 일본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남아 달러를 소비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 미군은 미군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한국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 윤락시설의 이름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로 정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에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박정희가 유흥 파티를 위해 자주 이용하게 된다.&amp;lt;/font&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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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최수빈</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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