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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ed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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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광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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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600&amp;quot; height=&amp;quot;4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YRIafv0Lhg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TV책방 북소리] 성북동 비둘기, 문학 속 공간 읽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광섭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는 1948년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lt;br /&gt;
&lt;br /&gt;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lt;br /&gt;
&lt;br /&gt;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lt;br /&gt;
&lt;br /&gt;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lt;br /&gt;
&lt;br /&gt;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김광섭 이승만.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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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광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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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5:38: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 일생과 업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600&amp;quot; height=&amp;quot;4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YRIafv0Lhg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김광섭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는 1948년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lt;br /&gt;
&lt;br /&gt;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lt;br /&gt;
&lt;br /&gt;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lt;br /&gt;
&lt;br /&gt;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lt;br /&gt;
&lt;br /&gt;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파일: 김광섭 이승만.PNG]]&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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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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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광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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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5:37:5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600&amp;quot; height=&amp;quot;4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YRIafv0Lhg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김광섭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는 1948년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lt;br /&gt;
&lt;br /&gt;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lt;br /&gt;
&lt;br /&gt;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lt;br /&gt;
&lt;br /&gt;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lt;br /&gt;
&lt;br /&gt;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파일:김광섭 이승만.PNG]]&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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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광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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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600&amp;quot; height=&amp;quot;4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YRIafv0Lhg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김광섭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는 1948년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lt;br /&gt;
&lt;br /&gt;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lt;br /&gt;
&lt;br /&gt;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lt;br /&gt;
&lt;br /&gt;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lt;br /&gt;
&lt;br /&gt;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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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광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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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5:33: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600&amp;quot; height=&amp;quot;4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YRIafv0Lhg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시인 김광섭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948녀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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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600&amp;quot; height=&amp;quot;400&amp;quot; src=&amp;quot;https://youtu.be/YRIafv0Lhg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시인 김광섭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948녀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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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5:29: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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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시인 김광섭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948녀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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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광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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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5:27: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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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시인 김광섭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948녀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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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광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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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5:26: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김광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생과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amp;lt;극예술연구회&amp;gt;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lt;br /&gt;
&lt;br /&gt;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lt;br /&gt;
&lt;br /&gt;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대표작으로는 &amp;lt;저녁에&amp;gt;와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가 있는데&lt;br /&gt;
&lt;br /&gt;
&amp;lt;저녁에&amp;gt;는 1969년 &amp;lt;월간중앙&amp;gt;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성북동 비둘기&amp;gt;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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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시인 김광섭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948녀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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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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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57: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lt;br /&gt;
&lt;br /&gt;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amp;quot;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라는 단편을 쓰기도 하였다. 황순원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마지막 잔.PNG]]&lt;br /&gt;
&lt;br /&gt;
&lt;br /&gt;
*제자 김종회 교수가 기억하는 바 황순원은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사고나 따뜻하고 순후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면모는 작품세계 가운데서도 처처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 있다.&lt;br /&gt;
&lt;br /&gt;
선생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설가 김수영: &amp;quot;박태진의 소개로 원응서 씨를 찾아갔을 때 문화예술사의 편집실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풀이 죽은 회색빛 래글런 오버에 거무죽죽한 회색 중절모를 쓰고 창문 앞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첫눈에, '저 치도 나만큼 가난하고 나만큼 고독하고 나만큼 울분이 많고 나만큼 뗑깡이 심한 치겠두나.' 하고 느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자유시장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그는 어떻게 나를 알았던지 다짜고짜로 내 팔을 끌고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소주를 마구 마시더니, 내가 안내한 찻집에 가서는 내 입에다 미친 듯이 입을 맞추면서 창가에 늘어놓은 화분의 화초를 모조리 뿌리째 뽑아 내꼰쳤다.&amp;quo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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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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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55: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lt;br /&gt;
&lt;br /&gt;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라는 단편을 쓰기도 하였다. 황순원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마지막 잔.PNG]]&lt;br /&gt;
&lt;br /&gt;
&lt;br /&gt;
*제자 김종회 교수가 기억하는 바 황순원은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사고나 따뜻하고 순후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면모는 작품세계 가운데서도 처처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 있다.&lt;br /&gt;
&lt;br /&gt;
선생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설가 김수영: 박태진의 소개로 원응서 씨를 찾아갔을 때 문화예술사의 편집실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풀이 죽은 회색빛 래글런 오버에 거무죽죽한 회색 중절모를 쓰고 창문 앞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첫눈에, '저 치도 나만큼 가난하고 나만큼 고독하고 나만큼 울분이 많고 나만큼 뗑깡이 심한 치겠두나.' 하고 느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자유시장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그는 어떻게 나를 알았던지 다짜고짜로 내 팔을 끌고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소주를 마구 마시더니, 내가 안내한 찻집에 가서는 내 입에다 미친 듯이 입을 맞추면서 창가에 늘어놓은 화분의 화초를 모조리 뿌리째 뽑아 내꼰쳤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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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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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50: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lt;br /&gt;
&lt;br /&gt;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라는 단편을 쓰기도 하였다. 황순원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마지막 잔.PNG]]&lt;br /&gt;
&lt;br /&gt;
&lt;br /&gt;
*제자 김종회 교수가 기억하는 바 황순원은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사고나 따뜻하고 순후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면모는 작품세계 가운데서도 처처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 있다.&lt;br /&gt;
&lt;br /&gt;
선생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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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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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49: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lt;br /&gt;
&lt;br /&gt;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라는 단편을 쓰기도 하였다. 황순원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마지막 잔.PNG]]&lt;br /&gt;
&lt;br /&gt;
&lt;br /&gt;
*제자 김종회 교수가 기억하는 바 황순원은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사고나 따뜻하고 순후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면모는 작품세계 가운데서도 처처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 있다.&lt;br /&gt;
&lt;br /&gt;
선생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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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lt;br /&gt;
&lt;br /&gt;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라는 단편을 쓰기도 하였다. 황순원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마지막 잔.png]]&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HwangsunwonAndPeople&amp;diff=14454</id>
		<title>HwangsunwonAndPeop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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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48: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Visualization'''==&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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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Data'''==&lt;br /&gt;
==='''Node''' Data===&lt;br /&gt;
===='''Person''' &amp;lt;small&amp;gt;인물&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황순원은 191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1934년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국에 있다가 1934년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후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일본에 머무르다 귀국하여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 등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지내다가 1946년 월남하였다. 이후 경희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195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70년대경 전국소설가협회에서 가입을 권유하나 문학단체가 생리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더구나 이름만 걸어 놓는 고문 직은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여 직접적인 관계보다는 간접적인 관계를 가진다.&amp;lt;ref&amp;gt;[https://news.joins.com/article/3646126 황순원과 소설가협회 중앙SUNDAY 기사 참조.]&amp;lt;/ref&amp;gt;이후 1980년 경희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으며, 2000년 9월 14일 향년 86세로 별세하였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99%A9%EC%88%9C%EC%9B%90&amp;amp;ridx=0&amp;amp;tot=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위 황순원의 생애는 특히 초기에 한국-일본유학-귀국-월남의 과정을 거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으로의 유학, 특히 향후 공산국가인 북한에서 남한으로 월남한 과거는 황순원의 정체성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아래 인물데이터 분류는 혈연을 제외한 동경학생예술좌부터  전국소설가협회까지 황순원 삶의 궤적상 시간순서에 따라 정리하여 이러한 황순원의 삶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혈연'''=====&lt;br /&gt;
*[[양정길]]&lt;br /&gt;
*황남규&lt;br /&gt;
*[[황동규]]&lt;br /&gt;
*황선혜&lt;br /&gt;
*[[황시내]]&lt;br /&gt;
*황정규&lt;br /&gt;
*[[황찬영]]&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lt;br /&gt;
&lt;br /&gt;
[[파일:동경학생.jpeg]]&lt;br /&gt;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는 1934년 6월 24일에 동경 유학생들이 신극운동을 위하여 동경에서 창단한 학생 연극 단체로서 ‘건전한 연극발전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표로 하였다. 단원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니혼대학[日本大學]·호세대학[法政大學] 등에서 문학·연극·영화 등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로 구성되었다.&lt;br /&gt;
&lt;br /&gt;
그해 11월, 이 단체의 명의로 첫 시집 방가(放歌)를 간행&lt;br /&gt;
&lt;br /&gt;
&lt;br /&gt;
*[[김동원]]&lt;br /&gt;
*김영화&lt;br /&gt;
*김용하&lt;br /&gt;
*마완영&lt;br /&gt;
*[[박동근]]&lt;br /&gt;
*유종렬&lt;br /&gt;
*이상&lt;br /&gt;
*이진순&lt;br /&gt;
*이해랑&lt;br /&gt;
*임호권&lt;br /&gt;
*[[주영섭]]&lt;br /&gt;
*허남실&lt;br /&gt;
*한적선&lt;br /&gt;
&lt;br /&gt;
====='''국민보도연맹'''=====&lt;br /&gt;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이나, 6·25전쟁으로 1950년 6월 말부터 9월경까지 수만 명 이상의 국민보도연맹원이 군과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A%B5%AD%EB%AF%BC%EB%B3%B4%EB%8F%84%EC%97%B0%EB%A7%B9&amp;amp;ridx=0&amp;amp;tot=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amp;lt;/ref&amp;gt;  황순원은 특히 월남했기에 가입을 피할 수 없었다. 황순원 외에도 양주동(국어학자), 정인택(문학가동맹), 김용환(화가), 신막(음악가동맹), 김기림(시인), 백철(문학평론가)과 같은 문학 관련인들도 가입했다.&amp;lt;ref&amp;gt;「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 부산·경남지역」 24p 인용: “1949년 11월 한 달을 좌익세력 자수전향기간으로 설정하고 11월 30일로 마감한 결과, 전향자수는 전국적으로 약 4만 명에 이르렀다. 그 중에는 양주동(국어학자), 정인택(문학가동맹), 김용환(화가), 신막(음악가동맹), 황순원(소설가), 김기림(시인), 백철(문학평론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많았으며,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김기림]]&lt;br /&gt;
*김용환&lt;br /&gt;
*백철&lt;br /&gt;
*신막&lt;br /&gt;
*[[양주동]]&lt;br /&gt;
*정인택&lt;br /&gt;
&lt;br /&gt;
====='''대한민국예술원'''=====&lt;br /&gt;
예술의 향상 발전을 도모하고 예술가를 우대하기 위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이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C%80%ED%95%9C%EB%AF%BC%EA%B5%AD%EC%98%88%EC%88%A0%EC%9B%90&amp;amp;ridx=0&amp;amp;tot=300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amp;lt;/ref&amp;gt;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여 그 발전을 도모하고 과학자와 예술가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제정 공포된 문화보호법'에 따라 1954년 7월 17일 창설되었다. &amp;lt;ref&amp;gt;[http://www.naa.go.kr/site/main/content/greetings 대한민국예술원 사이트 소갯말]&amp;lt;/ref&amp;gt; 황순원은 1957년 대한민국예술원에 입회했는데, 당시 대한민국예술원회장이 박종화였다. 박종화는 한국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이었는데, 한국문학과협회는 우익 성향이다.&amp;lt;ref&amp;gt;[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95%9C%EA%B5%AD%EB%AC%B8%ED%95%99%EA%B0%80%ED%98%91%ED%9A%8C&amp;amp;ridx=0&amp;amp;tot=270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추가로 박현수 문학연구원의 논문 「한국 전후 서정시의 성격과 층위 연구」 189p에도 한국문학가협회가 당시 좌파적 성향의 문인모임에 대항하여 출범했음을 언급한다. 위 각주에 링크된 중앙SUNDAY의 기사내용처럼 기본적으로 모임이나 단체 같은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황순원은 월남으로 인해 자신의 좌파적 정체성을 부정해야 할 상황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예술원 가입을 피할 수 없었지 않았나 추측해본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박종화]]&lt;br /&gt;
&lt;br /&gt;
======'''대한민국예술원상'''======&lt;br /&gt;
황순원은 1961년에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아래는 공동수상자의 목록이다.&lt;br /&gt;
&lt;br /&gt;
*박태준 (음악, 음악 연세대 교수)&lt;br /&gt;
*변기종 (연극·영화·무용, 연극 국립극장 연기부장)&lt;br /&gt;
*이종우 (미술, 미술 홍익대 교수)&lt;br /&gt;
&lt;br /&gt;
======'''예술원보'''======&lt;br /&gt;
대한민국예술원은 기본적으로 매년(항상 매년 나오진 못했다.) 간행물인 예술원보를 발행했다. 여기에 황순원은 원고를 4번 투고했는데, 황순원이 원고를 투고한 예술원보의 완성에 협력했던 이들의 목록을 예술원보 호수별로 아래에 나열해놓았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라 설명이 추가되지 않은 이들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아니며 보통 당호 예술원보에 원고를 투고했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lt;br /&gt;
&lt;br /&gt;
======'''예술원보 제5호(1960)'''======&lt;br /&gt;
*김광섭: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동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성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작곡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원복: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피아노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현승&lt;br /&gt;
*김화진&lt;br /&gt;
*나운영&lt;br /&gt;
*모윤숙: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두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이후 1996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목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이후 1966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영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종화: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연극•영화•무용 분과, 연극(연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서정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신석초: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염상섭: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병기&lt;br /&gt;
*이상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미술 분과, 동양화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숭녕&lt;br /&gt;
*이해랑: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연극•영화•무용 분과, 연극(연출)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혜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국악 분야로 이후 1975년에 입회했다.&lt;br /&gt;
*장만영&lt;br /&gt;
*장우성: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미술 분과, 동양화 분야로 이후 1970년에 입회했다.&lt;br /&gt;
*전영택&lt;br /&gt;
*조연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평론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최현배&lt;br /&gt;
*황순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lt;br /&gt;
======'''예술원보 제9호(1965)'''======&lt;br /&gt;
*곽종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평론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동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도상봉: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미술 분과, 서양화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모윤숙: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영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종화: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연극•영화•무용 분과, 연극(연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서정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신석초: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유치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경성&lt;br /&gt;
*이광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연극•영화•무용 분과, 연극(극작)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은상: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주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국악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흥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작곡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장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미술 분과, 서양화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조연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평론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황순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lt;br /&gt;
======'''예술원보 제11호(1967)'''======&lt;br /&gt;
*김광섭: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동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성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작곡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세형: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작곡 분야로 1966년에 입회했다.&lt;br /&gt;
*김인승: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미술 분과, 서양화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모윤숙: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목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6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종화: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연극•영화•무용 분과, 연극(연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백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평론 분야로 1966년에 입회했다.&lt;br /&gt;
*서정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성경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국악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신석초: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경성&lt;br /&gt;
*이병규&lt;br /&gt;
*이은상: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6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흥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작곡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황순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lt;br /&gt;
======'''예술원보 제14호(1970)'''======&lt;br /&gt;
*김동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모윤숙: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종화: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박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연극•영화•무용 분과, 연극(연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배길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미술 분과, 서예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백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평론 분야로 1966년에 입회했다.&lt;br /&gt;
*[[서정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성경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음악 분과, 국악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신석초]]: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0년에 입회했다.&lt;br /&gt;
*[[유치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연극•영화•무용 분과, 연극(극작)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이은상: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시 분야로 1966년에 입회했다.&lt;br /&gt;
*조연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평론 분야로 1954년에 입회했다.&lt;br /&gt;
*황순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분과, 소설 분야로 1957년에 입회했다.&lt;br /&gt;
&lt;br /&gt;
====='''경희대학교'''=====&lt;br /&gt;
황순원은 1957년부터 1980년 정년퇴임 시까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서 후학들을 가르쳤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희대 제자들'''======&lt;br /&gt;
*고원정&lt;br /&gt;
*김종회&lt;br /&gt;
*[[류시화]]&lt;br /&gt;
*이문재&lt;br /&gt;
*이성부&lt;br /&gt;
*전상국&lt;br /&gt;
*정호승&lt;br /&gt;
*조세희&lt;br /&gt;
*한수산&lt;br /&gt;
*[[김용성]]&lt;br /&gt;
*[[조해일]]&lt;br /&gt;
*[[이유범]]&lt;br /&gt;
*[[박덕규]]&lt;br /&gt;
*[[김형경]]&lt;br /&gt;
*이혜경&lt;br /&gt;
*서하진&lt;br /&gt;
*박이도&lt;br /&gt;
*신봉승&lt;br /&gt;
*김정수&lt;br /&gt;
*서정범&lt;br /&gt;
*이연철&lt;br /&gt;
*유재주&lt;br /&gt;
&lt;br /&gt;
======'''동료 문인들'''======&lt;br /&gt;
*[[안영]]&lt;br /&gt;
*[[김광섭]]&lt;br /&gt;
*[[김진수]]&lt;br /&gt;
*[[조병화]]&lt;br /&gt;
*[[주요섭]]&lt;br /&gt;
*[[원응서]]&lt;br /&gt;
&lt;br /&gt;
====='''한국소설가협회'''=====&lt;br /&gt;
*김동리&lt;br /&gt;
*김정한&lt;br /&gt;
*김팔봉&lt;br /&gt;
*박영준&lt;br /&gt;
*박종화&lt;br /&gt;
*박화성&lt;br /&gt;
*유주현&lt;br /&gt;
*이범선&lt;br /&gt;
*정을병&lt;br /&gt;
&lt;br /&gt;
====='''전국소설가협회'''=====&lt;br /&gt;
*강용준&lt;br /&gt;
*곽학송&lt;br /&gt;
*김송&lt;br /&gt;
*박경수&lt;br /&gt;
*안수길&lt;br /&gt;
*유현종&lt;br /&gt;
*이원수&lt;br /&gt;
*최정희&lt;br /&gt;
&lt;br /&gt;
===='''Group''' &amp;lt;small&amp;gt;단체&amp;lt;/small&amp;gt;====&lt;br /&gt;
*국민보도연맹&lt;br /&gt;
*대한민국예술원&lt;br /&gt;
*동경학생예술좌&lt;br /&gt;
*전국소설가협회&lt;br /&gt;
*한국소설가협회&lt;br /&gt;
&lt;br /&gt;
===='''Place''' &amp;lt;small&amp;gt;장소&amp;lt;/small&amp;gt;====&lt;br /&gt;
*경희대학교&lt;br /&gt;
*일본 와세다대학교&lt;br /&gt;
*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lt;br /&gt;
&lt;br /&gt;
===='''Event''' &amp;lt;small&amp;gt;사건&amp;lt;/small&amp;gt;====&lt;br /&gt;
*대한민국예술원상&lt;br /&gt;
&lt;br /&gt;
===='''Text''' &amp;lt;small&amp;gt;문헌&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lt;br /&gt;
*삼사문학&lt;br /&gt;
*소년, 소녀를 만나다&lt;br /&gt;
*예술원보&lt;br /&gt;
*옛사랑으로 돌아오라&lt;br /&gt;
&lt;br /&gt;
===='''Text''' &amp;lt;small&amp;gt;작품&amp;lt;/small&amp;gt;====&lt;br /&gt;
*아버지&lt;br /&gt;
*곡예사&lt;br /&gt;
*참외&lt;br /&gt;
&lt;br /&gt;
==='''Link''' Data===&lt;br /&gt;
===='''Person''' → '''Person'''====&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FamilyTo'''&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가족이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hasHusband'''&amp;lt;/span&amp;gt; &amp;lt;small&amp;gt;(A는 B를 남편으로 삼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hasWife'''&amp;lt;/span&amp;gt; &amp;lt;small&amp;gt;(A는 B를 아내로 삼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hasBrother'''&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형제이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hasSon'''&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를 아들로 두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hasDaughter'''&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를 딸로 두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knows'''&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를 지인으로 두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StudentOf'''&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제자이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ColleagueOf'''&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동료이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Person''' → '''Place'''====&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staysIn'''&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서 머무르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worksAt'''&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서 일하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Person''' → '''Group'''====&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OwnerOf'''&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소유주이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ManagerOf'''&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관리자이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MemberOf'''&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구성원이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Group''' → '''Group'''====&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PreviousInSequence'''&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전신이다)&amp;lt;/small&amp;gt;&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PartOf'''&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의 일부분이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Place''' → '''Place'''====&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LocatedIn'''&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 위치하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Thing''' → '''Thing'''====&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와 관련있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Thing''' → '''Person'''====&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RewardedTo'''&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에게 상으로 주어지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Person''' → '''Thing'''====&lt;br /&gt;
*A &amp;lt;span style=&amp;quot;color: #000099&amp;quot;&amp;gt;'''isRelatedTo'''&amp;lt;/span&amp;gt; B &amp;lt;small&amp;gt;(A는 B와 관련있다)&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미정리: 추천 관계어====&lt;br /&gt;
*isDescendTo(전락하다)&lt;br /&gt;
*belongTo(속하다)&lt;br /&gt;
*isOpposedTo(반대했다)&lt;br /&gt;
*isWantedTo(원했다)&lt;br /&gt;
&lt;br /&gt;
=='''References''' &amp;lt;small&amp;gt;'''각주'''&amp;lt;/small&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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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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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47: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lt;br /&gt;
&lt;br /&gt;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라는 단편을 쓰기도 하였다. 황순원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파일:마지막 잔.png]]&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90%EC%9D%91%EC%84%9C&amp;diff=14452</id>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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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46: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lt;br /&gt;
&lt;br /&gt;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amp;lt;마지막 잔&amp;gt;(1974)이라는 단편을 쓰기도 하였다. 황순원은 주석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바닥의 마지막 잔 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을 지켜가며 숙연해 하곤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파일:마지막 잔.jpg]]&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90%EC%9D%91%EC%84%9C&amp;diff=14451</id>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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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44: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lt;br /&gt;
&lt;br /&gt;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90%EC%9D%91%EC%84%9C&amp;diff=14450</id>
		<title>원응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B%90%EC%9D%91%EC%84%9C&amp;diff=14450"/>
				<updated>2020-06-24T04:43: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 일화==&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amp;lt;목넘이 마을의 개&amp;gt;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문학평론가 김종회: 황순원은 1951년 두 번째 작품집 &amp;lt;기러기&amp;gt;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들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월남 전의 황순원은 평양 기림리의 집에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절친한 친구 원응서에게 작품을 낭독해 주곤 했다. 당시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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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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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41: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의 장정을 맡은 이중섭은,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 흐르는 죽음의 공포감, 불쾌감, 우울의 이상, 괴기미 등을 표지의 앞뒷면에 걸쳐 그의 붓결로 나타내었다. &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amp;gt;은 원응서가 중앙출판사 대표로 있을 때 자기 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 장정을 이중섭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목넘이 마을의 개]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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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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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34: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목넘이 마을의 개]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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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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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응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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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32: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 업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원응서.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평양 출생  번역문학가. (1914-1973)&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lt;br /&gt;
&lt;br /&gt;
*1914년 평양 출신의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월남 문인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리쿄 대학 영미 학부를 졸업했고,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문예지 &amp;lt;문학의 주간&amp;gt;을 역임하였고,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 번역 작품으로는 &amp;lt;나의 사랑 안드리스&amp;gt;, &amp;lt;제인 에어&amp;gt;, &amp;lt;25시&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된 에드거 앨런 포 소설집인 데에다가 화가 이중섭의 솜씨로 장정된 책이다.&lt;br /&gt;
&lt;br /&gt;
원응서의 《황금충》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8편이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첫 번역 치고도 대표작을 고루 번역해서 모았다. 속표지에는 [포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고 영문으로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나온 1953년판을 번역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추리소설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번역이​며, 이중섭 장정이라는 사실로도 돋보이는 책이다.&lt;br /&gt;
&lt;br /&gt;
[[파일:황금충.png]]&lt;br /&gt;
&lt;br /&gt;
&amp;lt;황금충의 표지&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이 창간한 &amp;lt;문학예술&amp;gt;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주요섭]], 박남수, 김이석은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원응서와 황순원은 절친한 사이였다.&lt;br /&gt;
&lt;br /&gt;
소나기의 결미에 원래의 원고에서는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는 끝 문장이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 원응서 선생이 그것은 사족이니 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사정은 [목넘이 마을의 개]에서도 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친구요 좋은 독자를 가진 복을 누린 경우.&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UnderstandingOfDigitalHumanities&amp;diff=14443</id>
		<title>UnderstandingOfDigitalHumanitie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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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4:22: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Information'''===&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개설기관&amp;lt;/span&amp;gt; : [http://human.khu.ac.kr/ 경희대학교 문과대학]&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강좌명&amp;lt;/span&amp;gt; : 디지털 인문학의 이해(Understanding of Digital Humanities)&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학수번호-분반&amp;lt;/span&amp;gt; : KL3222-00&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이수구분&amp;lt;/span&amp;gt; : 전공선택&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개설학과(학점)&amp;lt;/span&amp;gt; : 국어국문학과(3)&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강의시간&amp;lt;/span&amp;gt; : 수요일 15:00-17:45&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강의실&amp;lt;/span&amp;gt; : 문과대 301&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강사&amp;lt;/span&amp;gt; : [http://redint.info 류인태]&lt;br /&gt;
&lt;br /&gt;
==='''Overview'''===&lt;br /&gt;
====Summary====&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현재까지도 디지털 인문학 연구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는 상황입니다. 디지털 베이스의 컴퓨터 기술과 웹 환경을 인문학 연구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여러 방면의 사례를 통칭하는 표현일 뿐, 단일 학문으로서의 일반적 규약이나 보편적으로 검증 가능한 형식의 방법론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로 인해 '학문'으로서 디지털 인문학을 바라보기에는 여전히 그 한계가 뚜렷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컴퓨터 기술과 웹 환경이 끊임없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체계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지층으로서 디지털 데이터 환경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점차 증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미 우리 일상에 디지털, 컴퓨터, 데이터, 웹, 인공지능 등의 키워드가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 강의는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급격한 변화 가운데서, 컴퓨터 기술과 웹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여러 인문학 연구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디지털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맥락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컴퓨터 기술과 웹 환경을 이용해 데이터를 편찬하고 큐레이션하는 과정을 실습함으로써, 디지털 인문학 연구의 실제가 무엇인지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Objectives====&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이 강의의 목표는 '디지털 인문학'이라 불리는 새로운 인문학 연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그동안 이루어진 디지털 인문학 방면의 여러 연구를 살펴볼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해당 연구들에 적용되는 보편적 문제의식 또는 방법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꾸준히 토론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웹 환경에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데이터 편찬 및 큐레이션 과정을 실습함으로써 디지털 인문학 연구 방법론에 대한 실질적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미디어위키(MediaWiki) 전자문서 작성', '프로테제(Protege)를 이용한 온톨로지(Ontology) 설계', '네트워크 그래프(Network Graph) 편찬' 등 그 과정에서 이루어질 세부 내용들은 인문학 연구와 디지털 미디어가 만나는 접점으로서 적용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개개의 수강생이 흥미를 품고 있던 인문학 방면의 관심사를 디지털 데이터로 편찬해봄으로써, 전통적 인문학이 지니고 있던 가치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통해 되돌아보는 경험 또한 해보게 될 것입니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Teaching Method====&lt;br /&gt;
*이론 강의 : 2주차, 8주차, 9주차&lt;br /&gt;
*실습 : 3주차, 10주차, 11주차, 12주차.&lt;br /&gt;
*발표와 토론 : 4주차, 5주차, 6주차, 13주차, 14주차.&lt;br /&gt;
&lt;br /&gt;
====Reference Materials====&lt;br /&gt;
*단행본&lt;br /&gt;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674300 김현, 임영상, 김바로, 『디지털 인문학 입문』, HUEBooks, 2016.]&lt;br /&gt;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016886 박치완, 김기홍, 유제상, 세바스티안 뮐러 외, 『디지털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꿈꿀권리, 2015.]&lt;br /&gt;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518083 이재연, 송인재, 문수현, 권윤경, 박은재, 이주영, 『세계 디지털 인문학의 현황과 전망』, 커뮤니케이션북스, 2019.]&lt;br /&gt;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450616 김택우, 『데이터 인문학』, 한빛미디어, 2019.]&lt;br /&gt;
*논문&lt;br /&gt;
**[http://www.riss.kr/link?id=T15384743 류인태, 「데이터로 읽는 17세기 재지사족의 일상 : 『지암일기(1692~1699)』 데이터베이스 편찬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9.]&lt;br /&gt;
**[http://www.riss.kr/link?id=A105224890 류인태, 「디지털 인문학과 한문학 연구 -고문헌 자료 대상 국내 디지털 인문학 연구 사례를 중심으로-」, 『漢文學論集』49, 근역한문학회, 2018.]&lt;br /&gt;
**[http://www.riss.kr/link?id=A101896187 류인태, 「디지털 환경에서의 인문 지식 연구에 관한 小考 ― 修信使 자료 DB 편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열상고전연구』50, 열상고전연구회, 2016.]&lt;br /&gt;
**[http://www.riss.kr/link?id=A105229099 김현, 안승준, 류인태, 「데이터 기반 인문학 연구 방법의 모색: 문중 고문서 아카이브와 디지털 인문학의 만남」, 『횡단인문학』1, 숙명인문학연구소, 2018.]&lt;br /&gt;
**[http://www.riss.kr/link?id=T15021005 한미경, 「내한 개신교 선교사 편지(1884-1942)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기반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9.]&lt;br /&gt;
**[http://www.riss.kr/link?id=T14450321 박순, 「고전문학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편찬 연구 : 누정기(樓亭記) 자료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7.]&lt;br /&gt;
**[http://www.riss.kr/link?id=T15127421 김지선, 「19세기 여항전기집 수록 인물 관계망 구현 및 분석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9.]&lt;br /&gt;
**[http://www.riss.kr/link?id=A105580163 김현종, 「 『大東地志』 「程里考」에 기반한 조선후기의 1리(里)」, 『대한지리학회지』53, 대한지리학회, 2018.]&lt;br /&gt;
&lt;br /&gt;
====Evaluation Standard====&lt;br /&gt;
*총점 : '''100'''%&lt;br /&gt;
*출석 : '''10'''% (특별한 이유없이 결석하지 않을 경우 감점 없음)&lt;br /&gt;
*발표 : '''30'''% (중간 발표와 기말 발표로 나누어 평가, 발표는 '''팀 기준'''으로 이루어짐)&lt;br /&gt;
**중간발표 : '''15'''% (A : 15, B : 13, C : 11, D : 9)&lt;br /&gt;
**기말발표 : '''15'''% (A : 15, B : 13, C : 11, D : 9)&lt;br /&gt;
*과제 : '''60'''% (중간 과제와 기말 과제로 나누어 평가, 과제는 '''개인 기준'''으로 이루어짐)&lt;br /&gt;
**중간과제 : '''30'''% (A : 30, B : 26, C : 22, D :18)&lt;br /&gt;
**기말과제 : '''30'''% (A : 30, B : 26, C : 22, D :18)&lt;br /&gt;
&lt;br /&gt;
====Assignment====&lt;br /&gt;
*중간고사 이전 1회, 중간고사 이후 1회의 발표를 한다.&lt;br /&gt;
**중간고사 이전에는 디지털 인문학 연구 사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그에 대한 리뷰 내용을 발표한다.&lt;br /&gt;
**중간고사 이후에는 단일 연구 주제를 선택해 온톨로지를 설계하고 데이터를 편찬한 내용을 발표한다.&lt;br /&gt;
*중간 과제 평가는 상황에 따라 시험 or 과제를 유동적으로 실시한다.&lt;br /&gt;
*기말 과제 평가는 기말발표 내용에 대한 리뷰에 근거해 그에 대한 내용을 보완한 결과물 평가로 대신한다.&lt;br /&gt;
&lt;br /&gt;
====Other Things====&lt;br /&gt;
*본 강의는 웹 환경에서의 컴퓨터 기술이 기본적으로 활용되기에 수강생 개개인의 노트북 지참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lt;br /&gt;
&lt;br /&gt;
==='''Students'''===&lt;br /&gt;
====A Team====&lt;br /&gt;
{{버튼클릭|[[화병천]]}} {{버튼클릭|[[소정이|소정이]]}}&lt;br /&gt;
&lt;br /&gt;
====B Team====&lt;br /&gt;
{{버튼클릭|[[신연주]]}} {{버튼클릭|[[유흥빈|유홍빈]]}} {{버튼클릭|[[Alica|알리카]]}}&lt;br /&gt;
&lt;br /&gt;
====C Team====&lt;br /&gt;
{{버튼클릭|[[고유민]]}} {{버튼클릭|[[조성빈]]}} {{버튼클릭|[[마동준]]}} {{버튼클릭|[[장준규]]}}&lt;br /&gt;
====D Team====&lt;br /&gt;
{{버튼클릭|[[박성하]]}} {{버튼클릭|[[안정아]]}} {{버튼클릭|[[전동은]]}} {{버튼클릭|[[장시연]]}}&lt;br /&gt;
====E Team====&lt;br /&gt;
{{버튼클릭|[[도지현]]}} {{버튼클릭|[[박도현]]}} {{버튼클릭|[[최수빈]]}} {{버튼클릭|[[윤희권]]}}&lt;br /&gt;
====F Team====&lt;br /&gt;
{{버튼클릭|[[조가영]]}} {{버튼클릭|[[이하진]]}} {{버튼클릭|[[김수리]]}} {{버튼클릭|[[임수현]]}}&lt;br /&gt;
&lt;br /&gt;
{{NetworkGraph | title=디지털인문학의이해_수강생.lst}}&lt;br /&gt;
&lt;br /&gt;
==='''Plan'''===&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width:90%; 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style=&amp;quot;width:10%; text-align: center&amp;quot;|'''본래주차'''|| style=&amp;quot;width:10%; text-align: center&amp;quot;|'''변경주차'''|| style=&amp;quot;width:5%; text-align: center&amp;quot;|'''날짜'''|| style=&amp;quot;width:55%; text-align: center&amp;quot;|'''강의 내용'''|| style=&amp;quot;width:20%; text-align: center&amp;quot;|'''강의 형식''' &lt;br /&gt;
|-&lt;br /&gt;
|01주차 || - || 03/04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개강연기&amp;lt;/span&amp;gt;  || -&lt;br /&gt;
|-&lt;br /&gt;
|02주차 || - || 03/11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개강연기&amp;lt;/span&amp;gt;  || -&lt;br /&gt;
|-&lt;br /&gt;
|03주차 || 01주차 || 03/18 || 오리엔테이션&amp;lt;ref&amp;gt;'''03.16'''부터 '''03.20'''까지 수강정정기간&amp;lt;/ref&amp;gt; || 강의 소개(영상)&lt;br /&gt;
|-&lt;br /&gt;
|04주차 || 02주차 || 03/25 ||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란 무엇인가” ('''PPT''') || 이론 강의(영상)&lt;br /&gt;
|-&lt;br /&gt;
|05주차 || 03주차 || 04/01 || '''미디어위키(Mediawiki)''' 전자문서 작성 실습 || 실습 &lt;br /&gt;
|-&lt;br /&gt;
|06주차 || 04주차 || 04/08 || 디지털 인문학 연구 Review 1 : '''Archive''' &amp;amp; '''Database''' || 발표와 토론&lt;br /&gt;
|-&lt;br /&gt;
|07주차 || 05주차 || 04/15 || 디지털 인문학 연구 Review 2 : '''Mapping''' &amp;amp; '''Network'''&amp;lt;ref&amp;gt;'''04.15'''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공휴일)이며, 이로 인해 보강계획 필요&amp;lt;/ref&amp;gt; || 발표와 토론&lt;br /&gt;
|-&lt;br /&gt;
|08주차 || 06주차 || 04/22 || 디지털 인문학 연구 Review 3 : '''Miscellaneous Visualization'''  || 발표와 토론&lt;br /&gt;
|-&lt;br /&gt;
|09주차 || 07주차 || 04/29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중간고사'''&amp;lt;/span&amp;gt;  || 평가 &lt;br /&gt;
|-&lt;br /&gt;
|10주차 || 08주차 || 05/06 || “데이터 모델링과 온톨로지(Ontology)” ('''PPT''') || 이론 강의 &lt;br /&gt;
|-&lt;br /&gt;
|11주차 || 09주차 || 05/13 || 예제를 통한 데이터 편찬 실습 : '''워커힐 호텔과 박정희''' || 실습&lt;br /&gt;
|-&lt;br /&gt;
|12주차 || 10주차 || 05/20 ||  데이터 설계: 프로테제(Protege) 활용  || 이론과 실습&lt;br /&gt;
|-&lt;br /&gt;
|13주차 || 11주차 || 05/27 || 데이터 수집: 웹 크룰링과 웹 스크래핑  || 이론과 실습&lt;br /&gt;
|-&lt;br /&gt;
|14주차 || 12주차 || 06/03 || 온톨로지 설계 및 데이터 편찬 실습1 : 개별 주제 선택 || 실습 &lt;br /&gt;
|-&lt;br /&gt;
|15주차 || 13주차 || 06/10 || 온톨로지 설계 및 데이터 편찬 실습2 : 개별 주제 선택 || 실습 &lt;br /&gt;
|-&lt;br /&gt;
|16주차 || 14주차 || 06/17 || 온톨로지 설계 및 데이터 편찬 실습 사례 발표 1 || 발표와 토론 &lt;br /&gt;
|-&lt;br /&gt;
|17주차 || 15주차 || 06/24 || 온톨로지 설계 및 데이터 편찬 실습 사례 발표 2 || 발표와 토론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Repor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Research Topics'''===&lt;br /&gt;
====전반기====&lt;br /&gt;
*'''04월 08일''' 발표&lt;br /&gt;
**1차 15:00-15:30 : [[Chinese Text Project]], '''A'''조 발표자 : [[화병천]]&lt;br /&gt;
**2차 15:40-16:10 : [[The Joyce Project]], '''E'''조 발표자 : [[박도현]]&lt;br /&gt;
**3차 16:30-17:00 : [[Witches]], '''F'''조 발표자 : [[김수리]]&lt;br /&gt;
**4차 17:10-17:40 : [[What Jane Saw]], '''D'''조 발표자 : [[안정아]]&lt;br /&gt;
&lt;br /&gt;
*'''04월 15일''' 발표&lt;br /&gt;
**1차 15:00-15:30 : [[Grim London]] '''C'''조 발표자 : [[조성빈]]&lt;br /&gt;
**2차 15:40-16:10 : [[Formosa]] '''B'''조 발표자 : [[유흥빈|유홍빈]]&lt;br /&gt;
**3차 16:30-17:00 : [[Linked Jazz]] '''D'''조 발표자 : [[전동은]]&lt;br /&gt;
&lt;br /&gt;
*'''04월 22일''' 발표&lt;br /&gt;
**1차 15:00-15:30 : [[The Museum of the World]] '''C'''조 발표자 : [[장준규]]&lt;br /&gt;
**2차 15:40-16:10 : [[Lit Long]] '''E'''조 발표자 : [[최수빈]]&lt;br /&gt;
**3차 16:30-17:00 : [[Chinese Iconography Thesaurus]] '''AB'''조 발표자 : [[Alica|알리카]]&lt;br /&gt;
**4차 17:10-17:40 : [[Kindred Britain]] '''F'''조 발표자 : [[조가영]]&lt;br /&gt;
====후반기====&lt;br /&gt;
*[[WalkerhillAndParkchunghee|워커힐과 박정희]]&lt;br /&gt;
&lt;br /&gt;
*황순원의 문학세계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rddYPwQm2nuxJKx_cVJy41oNz6wRS990GX35p9QMI_w/edit?usp=sharing 전체 데이터 테이블])&lt;br /&gt;
**[[HwangsunwonAndPeople|황순원과 주변인물]] : 인물 데이터 '''F'''조&lt;br /&gt;
***기말발표페이지: [[황순원의생애와주변인물]]&lt;br /&gt;
**[[HwangsunwonAndPlace|황순원과 삶의공간]] : 경희대학교 공간 데이터, 황순원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들 '''E'''조&lt;br /&gt;
***기말발표페이지: [[황순원의공간과문학세계]]&lt;br /&gt;
**[[HwangsunwonAndWorks|황순원과 주요작품]] : 작품 데이터 '''D'''조&lt;br /&gt;
***기말발표페이지: [[황순원의작품과문예주기]]&lt;br /&gt;
**[[HwangsunwonLiteratureAward|황순원 문학상]] : 황순원 문학상 관련 데이터 '''C'''조&lt;br /&gt;
***기말발표페이지: [[황순원문학상의역사와논란]]&lt;br /&gt;
&lt;br /&gt;
*평화의전당&lt;br /&gt;
**[[GrandPeacePalace|평화의전당]] : 평화의 전당 공연 데이터 '''AB'''조&lt;br /&gt;
***기말발표페이지: [[2008-2020년평화의전당공연]]&lt;br /&gt;
&lt;br /&gt;
====개인 기말과제====&lt;br /&gt;
*AB조&lt;br /&gt;
{{버튼클릭|[[데미안 라이스]]}} {{버튼클릭|[[카를라 브루니]]}} {{버튼클릭|[[신운뉴욕예술단]]}} {{버튼클릭|[[브루노 펠티에]]}} {{버튼클릭|[[안전지대]]}} {{버튼클릭|[[유키 구라모토]]}} {{버튼클릭|[[더글라스 케네디]]}} {{버튼클릭|[[로버트 루트번스타인]]}}&lt;br /&gt;
&lt;br /&gt;
{{버튼클릭|[[정여울]]}} {{버튼클릭|[[한결]]}} {{버튼클릭|[[정준일]]}} {{버튼클릭|[[변진섭]]}} {{버튼클릭|[[이승환]]}} {{버튼클릭|[[임태경]]}} {{버튼클릭|[[김동률]]}} {{버튼클릭|[[케냐 지라니 어린이합창단 내한공연]]}}&lt;br /&gt;
&lt;br /&gt;
{{버튼클릭|[[레이프 가렛 내한공연 Lief Garrett]]}} {{버튼클릭|[[허비 행콕 내한 공연 Herbie Hancock]]}} {{버튼클릭|[[짐 브릭만 내한공연 Jim Brickman]]}}&lt;br /&gt;
&lt;br /&gt;
{{버튼클릭|[[테너 호세 카레라스 내한공연 서울 2009]]}} &lt;br /&gt;
&lt;br /&gt;
*C조&lt;br /&gt;
{{버튼클릭|[[제1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제2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제3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제4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lt;br /&gt;
&lt;br /&gt;
{{버튼클릭|[[『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한국 소설의 얼굴』]]}} {{버튼클릭|[[제6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제7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수상작없음]]}}&lt;br /&gt;
&lt;br /&gt;
{{버튼클릭|[[제9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강철소리 나는 '생각'의 문체]]}} {{버튼클릭|[['깐깐함' 그리고 그 너머]]}} {{버튼클릭|[[일상성에 대한 새로운 서사적 탐문]]}} {{버튼클릭|[[이승우의 한 칼]]}}&lt;br /&gt;
 &lt;br /&gt;
{{버튼클릭|[[반복과 차이, 혹은 차이와 반복]]}} {{버튼클릭|[[변모하는, 아직 건재하는 단편]]}} {{버튼클릭|[[꽃집 여자의 손수건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 {{버튼클릭|[[자기다운 모습이라는 미덕]]}}&lt;br /&gt;
&lt;br /&gt;
{{버튼클릭|[[전도된 기억을 통한 실상의 복원]]}} {{버튼클릭|[[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승리]]}} {{버튼클릭|[[비지배의 자유를 위하여]]}} {{버튼클릭|[[삶의 비의를 포착하는 문장들]]}} {{버튼클릭|[[읽기 끔찍했던 소설들]]}}&lt;br /&gt;
&lt;br /&gt;
{{버튼클릭|[[완전하고도 풍성한 고독]]}} {{버튼클릭|[[반복해 읽기의 즐거움]]}} {{버튼클릭|[[제13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제14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제15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lt;br /&gt;
&lt;br /&gt;
{{버튼클릭|[[제16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제17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버튼클릭|[[미당문학상]]}} {{버튼클릭|[[구효서]]}} {{버튼클릭|[[하성란]]}} {{버튼클릭|[[황순원 문학상 폐지]]}} {{버튼클릭|[[김훈『언니의 폐경』 논란]]}} {{버튼클릭|[[김연수]]}} {{버튼클릭|[[김영하]]}} {{버튼클릭|[[수상자에서 심사위원으로]]}} {{버튼클릭|[[황순원 문학상과 문학 흐름]]}} {{버튼클릭|[[황순원문학상의역사와논란]]}} {{버튼클릭|[[백지연]]}} {{버튼클릭|[[이승우]]}} {{버튼클릭|[[황순원문학상 운영위원회]]}} {{버튼클릭|[[문학상 심사 공정성 논란]]}} {{버튼클릭|[[김윤식]]}} {{버튼클릭|[[중앙일보]]}}&lt;br /&gt;
&lt;br /&gt;
*D조&lt;br /&gt;
{{버튼클릭|[[거리의 부사]]}} {{버튼클릭|[[산골아이]]}} {{버튼클릭|[[기러기]]}} {{버튼클릭|[[아버지]]}} {{버튼클릭|[[곡예사]]}} {{버튼클릭|[[단시삼편]]}} {{버튼클릭|[[봄싹]]}} {{버튼클릭|[[단오명절]]}} {{버튼클릭|[[추억]]}} {{버튼클릭|[[졸업일]]}} {{버튼클릭|[[움직이는 성]]}}&lt;br /&gt;
&lt;br /&gt;
{{버튼클릭|[[별과 같이 살다]]}} {{버튼클릭|[[일월]]}} {{버튼클릭|[[방가]]}} {{버튼클릭|[[매일신보]]}} {{버튼클릭|[[나의 꿈]]}} {{버튼클릭|[[겨울풍경]]}} {{버튼클릭|[[잃어버린 사람들]]}} {{버튼클릭|[[직공생활]]}} {{버튼클릭|[[1977년]]}}&lt;br /&gt;
&lt;br /&gt;
*E조&lt;br /&gt;
{{버튼클릭|[[삼일공원]]}} {{버튼클릭|[[서울 사당동 대림아파트]]}} {{버튼클릭|[[국보위]]}} {{버튼클릭|[[서울고등학교]]}} {{버튼클릭|[[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버튼클릭|[[평안도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lt;br /&gt;
&lt;br /&gt;
{{버튼클릭|[[청량리 신현대아파트]]}} {{버튼클릭|[[국제시장]]}} {{버튼클릭|[[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버튼클릭|[[마주앙]]}} {{버튼클릭|[[부산 임시 학교]]}} {{버튼클릭|[[와세다대 문학부 영문과]]}} {{버튼클릭|[[평양경찰서]]}}&lt;br /&gt;
&lt;br /&gt;
{{버튼클릭|[[본평양역]]}} {{버튼클릭|[[와세다 제2고등원]]}}&lt;br /&gt;
&lt;br /&gt;
*F조&lt;br /&gt;
{{버튼클릭|[[양주동]]}} {{버튼클릭|[[김기림]]}} {{버튼클릭|[[황동규]]}} {{버튼클릭|[[서정주]]}} {{버튼클릭|[[류시화]]}} {{버튼클릭|[[김용성]]}} {{버튼클릭|[[조해일]]}} {{버튼클릭|[[이유범]]}} {{버튼클릭|[[박덕규]]}} {{버튼클릭|[[김형경]]}} {{버튼클릭|[[황찬영]]}} {{버튼클릭|[[박종화]]}}&lt;br /&gt;
&lt;br /&gt;
{{버튼클릭|[[양정길]]}} {{버튼클릭|[[김동리]]}} {{버튼클릭|[[백철]]}} {{버튼클릭|[[박동근]]}} {{버튼클릭|[[주영섭]]}} {{버튼클릭|[[김동원]]}} {{버튼클릭|[[김광섭]]}} {{버튼클릭|[[원응서]]}}&lt;br /&gt;
&lt;br /&gt;
==='''Data Network Practice'''===&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Useful Information'''===&lt;br /&gt;
====How to use Mediawiki====&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C%84%ED%82%A4_%EC%BD%98%ED%85%90%EC%B8%A0%EC%9D%98_%EC%B2%B4%EA%B3%84_%EA%B5%AC%EC%83%81 위키 콘텐츠의 체계 구상]&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C%84%ED%82%A4_%EB%AC%B8%EC%84%9C_%EC%A0%9C%EC%9E%91_%EB%B0%A9%EB%B2%95 위키 문서 제작 방법]&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D%82%A4%EB%B0%B1%EA%B3%BC:%EC%9C%84%ED%82%A4_%EB%AC%B8%EB%B2%95 위키백과 - 위키문법]&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위키백과:위키문법_요약 위키백과 - 위키문법 요약]&lt;br /&gt;
*[http://dh.aks.ac.kr/workshop/index.php/%EC%9C%84%ED%82%A4%EB%AC%B8%EB%B2%95 2019 DH워크숍 제공 위키문법 자료]&lt;br /&gt;
*[https://www.youtube.com/embed/tzRWa2YL7Aw 2016 디지털 인문학 교육 워크샵 - 03 wiki 콘텐츠 편찬 방법(동영상 강의)]&lt;br /&gt;
&lt;br /&gt;
====How to create a Data Network====&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8D%B0%EC%9D%B4%ED%84%B0%EC%9D%98_%EC%8B%9C%EA%B0%81%ED%99%94:_%EB%84%A4%ED%8A%B8%EC%9B%8C%ED%81%AC_%EA%B7%B8%EB%9E%98%ED%94%84 데이터의 시각화: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82%98%EC%9D%98_%EB%84%A4%ED%8A%B8%EC%9B%8C%ED%81%AC_%EA%B7%B8%EB%9E%98%ED%94%84_%EC%A0%9C%EC%9E%91_%EB%B0%A9%EB%B2%95 나의 네트워크 그래프 제작 방법]&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Network_Graph_in_Wiki 위키에서 네트워크 그래프 그리기(DH위키)]&lt;br /&gt;
&lt;br /&gt;
====External Website====&lt;br /&gt;
*[https://www.wordclouds.com/ 워드클라우드 생성기]&lt;br /&gt;
*[http://wordcloud.kr/ 워드클라우드 생성기(한국)]&lt;br /&gt;
&lt;br /&gt;
==='''Footnote'''===&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9%80%EB%8F%99%EC%9B%90&amp;diff=14433</id>
		<title>김동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9%80%EB%8F%99%EC%9B%90&amp;diff=14433"/>
				<updated>2020-06-24T04:01:1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amp;lt;한국의 햄릿&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pn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 &lt;br /&gt;
&lt;br /&gt;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리얼리즘연극운동을 벌여 리얼리즘극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lt;br /&gt;
&lt;br /&gt;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연기술의 개척자이다. (1916년 11월 14일 ~ 2006년 5월 13일)&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일생===&lt;br /&gt;
&lt;br /&gt;
&lt;br /&gt;
*그가 연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3&amp;amp;cid=46615&amp;amp;categoryId=46615 배재고보]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평생의 친구 [https://namu.wiki/w/%EC%9D%B4%ED%95%B4%EB%9E%91 이해랑]을 만났고, 학생 연극부를 조직하면서 극작가 [https://namu.wiki/w/%EC%9C%A0%EC%B9%98%EC%A7%84 유치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해랑, 유치진과의 만남이 그를 연극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들은 &amp;lt;고래&amp;gt;를 비롯하여 &amp;lt;바보치료&amp;gt;, &amp;lt;가보세&amp;gt; 등 세 편의 단막극을 창립공연으로 올렸는데, 김동원은 &amp;lt;고래&amp;gt;에서 선장 부인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배재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김동원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과 이해랑.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과 이해랑&amp;gt;&lt;br /&gt;
&lt;br /&gt;
*1939년 일본경찰은 지식인들의 연극활동을 좌익으로 몰아 구속했다. 김동원은 체질적으로 사상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유치진,이해랑,주영섭 등과 함께 종로경찰서에 구속돼 온갖 고문을 받았다. “‘춘향전’도 너희가 한 거는 좌익연극이라는 거야. 뭔고하니 이몽룡이가 암행어사로 출두해가지고 때려부수고 변학도 때려부수고. 그게 다 목적 있어 가지고 한 거 아니냐고 한단 말이야.”&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춘향전.jpg]]&lt;br /&gt;
&lt;br /&gt;
&lt;br /&gt;
*국립극장의 전속 극단 ‘신협’의 단원이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연극 〈햄릿〉(1951), 〈파우스트〉(1966), 〈남한산성〉(1974) 등이 대표작이다. 국립극단장,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의 대표관직을 맡았었다.&lt;br /&gt;
&lt;br /&gt;
*그에게 '햄릿'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박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고인은 62년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등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햄릿 역을 맡아 열연해 왔다.&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 햄릿.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 햄릿&amp;gt;&lt;br /&gt;
&lt;br /&gt;
*햄릿 이외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뇌우' 등이 있으며 94년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유부인', '마의 태자'(1956), '춘향전'(1961),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70년 대까지 영화에도 꾸준하게 출연했다.&lt;br /&gt;
&lt;br /&gt;
*고인은 2003년 출간된 자서전 '미수의 커튼 콜'에서 &amp;quot;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어야 한다&amp;quot;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또한 &amp;quot;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amp;quot;라고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lt;br /&gt;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 후 [[주영섭|주영섭]], 장계원, 마완영, 황순원 등과 신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였다.&lt;br /&gt;
&lt;br /&gt;
창립공연 &amp;lt;소&amp;gt;(유치진 작, 주영섭 연출)와 &amp;lt;나루&amp;gt;(주영섭 작,연출)에 배우로 데뷔했으며&lt;br /&gt;
&lt;br /&gt;
또한 김동원은 주영섭이 연출을 맡았던 &amp;lt;흑룡강&amp;gt;의 주인공과 &amp;lt;춘향전&amp;gt;의 이몽룡의 대역 출연을 맡으며 연극 무대를 올렸다.&lt;br /&gt;
&lt;br /&gt;
1937년 「춘향전」의 이몽룡 역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동원,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lt;br /&gt;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 붙잡고 집착하기보자 언제 아름답게 무대를 떠나야 할지를 알고 계셨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조금의 불미스런 일도 없었던 깨끗한 사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2001년 국립극단 작품 '햄릿' 주인공 김석훈: 일요일마다 부인과 손을 꼭 붙잡고 교회에 나오시곤 했다. 직접 연습실에 찾아오셔서 '손을 많이 쓰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라고 세심하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에 후배들에게도 경어를 쓰시던 신사같은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 연극평론가 한상철: 우리 시대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있듯이 우리 관객의 우상은 김동원 선생이었다. 우리 시대 관객이 꿈꾸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간상을 김동원 선생은 생생하게 구현해주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donghlee1001/221859398837 &amp;lt;김동원 회고록- 출생, 평남 순천 탈출, 1.4후퇴까지&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B%B0%95%EB%8F%99%EA%B7%BC&amp;diff=14431</id>
		<title>박동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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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3:59: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그의 일생===&lt;br /&gt;
&lt;br /&gt;
&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 당시 [[김동원|김동원]]과  이해랑이 박동근이 직접 연출한 &amp;lt;생활도&amp;gt;로 무대를 하였고&lt;br /&gt;
&lt;br /&gt;
[[주영섭|주영섭]]의 누이동생이자 학생예술좌 마지막 대표 박동근의 부인이 1937년 6월 &amp;lt;춘향전&amp;gt;의 월매 역을 맡았다. &lt;br /&gt;
&lt;br /&gt;
그의 부인이 바로 월매 역을 한 주영섭의 여동생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월매.jpg]]&lt;br /&gt;
&lt;br /&gt;
&lt;br /&gt;
&amp;lt;1937년 6월 도쿄학생예술좌의 2회 공연작인 유치진의 &amp;lt;춘향전&amp;gt; 무대장면&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막1.jpg]]&lt;br /&gt;
[[파일: 막2.jpg]]&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lt;br /&gt;
&amp;lt;왼쪽부터 차례로 창간호, 2호, 3호&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학생예술좌의 해체 무렵 대표는 박동근이었는데, 좌익사상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주영섭과 함께 감옥에 끌려가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A3%BC%EC%98%81%EC%84%AD&amp;diff=14426</id>
		<title>주영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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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3:56: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주영섭.jpe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작가, 극작가, 연극연출가, 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1912년 ~ ?)&lt;br /&gt;
&lt;br /&gt;
===그의 일생===&lt;br /&gt;
&lt;br /&gt;
&lt;br /&gt;
*평양 주공삼 목사의 자녀들 가운데 막내, 즉 주요한과 시인 주요섭의 동생이다. &lt;br /&gt;
&lt;br /&gt;
주공삼목사는 평양 연화동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면서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다. &lt;br /&gt;
&lt;br /&gt;
경상골의 경치 좋은 동네에 그의 집이 있었는데, 여러 채의 한옥으로 아주 훌륭했다고 한다. 주목사의 아들들은 키가 무척 컸다. &lt;br /&gt;
&lt;br /&gt;
주목사의 부인의 키는 작았고 한쪽 다리를 절었고, 매우 인자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주공삼 목사 가족의 막내 주영섭은 키가 워낙 커서 ‘다초’(타조)로 불렸다. 다리가 길면서 성큼성큼 다니는 타조를 연상케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주영섭은 광성학교 출신으로, 리더십이 훌륭했다. 그는 너절한 잔소리 같은 것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고, 흔치 않았던 수재형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현대극장의 창립공연인 유치진의 「흑룡강(黑龍江)」(1941)을 연출했으며, 그 외에도 함세덕(咸世德)의 「추석(秋夕)」(1941), 유치진의 「북진대(北進隊)」(1942)를 연출하는 등 현대극장의 중심 연출가로 활동했다. 연극 외에도 영화 활동에 관심을 기울여 시나리오로 「광야(曠野)」(1940)·「창공(蒼空)」(1941)·「어머니」(1941)·「해풍(海風)」(1941) 등을 남겼다.  &lt;br /&gt;
&lt;br /&gt;
일본에 유학하기 전에 보성전문학교에 다녔으며, 이 당시 연극부를 만들어 고리키의 &amp;lt;밤주막&amp;gt;을 공연하면서 연극이란 세계로 깊이 진입하였다. &lt;br /&gt;
&lt;br /&gt;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와 관련을 가지고 있었던 극단 &amp;lt;신건설(新建設)&amp;gt;의 제1회 공연인 &amp;lt;서부전선 이상 없다&amp;gt;(1933)에 찬조 출연하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이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법문학부에 입학하였고, 그래서 조직한 연극단체가 동경학생예술좌이다. 해방 직후 월북한 것으로 보이나, 그 후의 활동 사항은 알 수 없다.&lt;br /&gt;
&lt;br /&gt;
&lt;br /&gt;
* 그는 보성전문학교 시절 막심 고리키의 &amp;lt;밤 주막&amp;gt;을 공연하면서 연극이란 세계로 깊이 진입했다. 일본 유학 생활도 호세이(法政)대학에 적만 걸어놓고 연극운동에 몰두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당시 동경학생예술좌 &amp;lt;춘향전&amp;gt;의 월매 역으로 그의 여동생이자 박동근의 아내가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1934년 황순원과 더불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고 기관지 『막(幕)』의 발간을 주도하면서 그 모임을 이끌었다.1939년에 귀국해 극연좌(劇硏座)를 중심으로 좌익연극을 꾀하였다는 혐의인, 이른바 동경학생예술좌사건(좌익연극단 사건)으로 마완영·박동근·이서향과 함께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인물이 말하는 주영섭=====&lt;br /&gt;
&lt;br /&gt;
&lt;br /&gt;
화가 김병기: 평양 문단에는 주영섭이라는 독특한 인물이 있다. 그는 나의 광성고보 4년 선배로서 보성전문과 도쿄 법정대 법과를 다녔다. 주영섭은 나(김병기)와 인연이 깊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가 주영섭 부부를 중매했기 때문이다. 내 아내의 평양 서문고녀 동창생(채정숙)을 주영섭에게 소개해 두 사람이 맺어졌다. 도쿄 시절 주영섭은 학업 대신 연극 운동에 전념했다. 그가 있어 동경학생예술좌가 존재한 셈이다. 그는 귀국 이후에도 서울과 평양에서 연극 활동을 했다. 이해랑이나 김동원 같은 '1세대 연극인'을 만들어낸 것도 그였다. 유치진과도 관계가 있다. 그는 연극운동을 하다가 영화제작자가 되었고 일본 영화사에도 있었다. 북에 남아 &amp;lt;금강산 처녀&amp;gt;라는 영화를 찍은 이후 소식이 끊어졌다. 그가 서울에서 활동했으면 연극계의 중심 인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그는 학처럼 키가 크고 장발에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을 좋아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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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동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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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3:25: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 당시 [[김동원|김동원]]과  이해랑이 박동근이 직접 연출한 &amp;lt;생활도&amp;gt;로 무대를 하였고&lt;br /&gt;
&lt;br /&gt;
[[주영섭|주영섭]]의 누이동생이자 학생예술좌 마지막 대표 박동근의 부인이 1937년 6월 &amp;lt;춘향전&amp;gt;의 월매 역을 맡았다.&lt;br /&gt;
&lt;br /&gt;
[[파일: 월매.jpg]]&lt;br /&gt;
&lt;br /&gt;
&lt;br /&gt;
&amp;lt;1937년 6월 도쿄학생예술좌의 2회 공연작인 유치진의 &amp;lt;춘향전&amp;gt; 무대장면&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막1.jpg]]&lt;br /&gt;
[[파일: 막2.jpg]]&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lt;br /&gt;
&amp;lt;왼쪽부터 차례로 창간호, 2호, 3호&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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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동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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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3:24: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 당시 [[김동원|김동원]]과  이해랑이 박동근이 직접 연출한 &amp;lt;생활도&amp;gt;로 무대를 하였고&lt;br /&gt;
&lt;br /&gt;
[[주영섭|주영섭]]의 누이동생이자 학생예술좌 마지막 대표 박동근의 부인이 1937년 6월 &amp;lt;춘향전&amp;gt;의 월매 역을 맡았다.&lt;br /&gt;
&lt;br /&gt;
[[파일: 월매.jpg]]&lt;br /&gt;
&lt;br /&gt;
&lt;br /&gt;
&amp;lt;1937년 6월 도쿄학생예술좌의 2회 공연작인 유치진의 &amp;lt;춘향전&amp;gt; 무대장면&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막1.jpg]]&lt;br /&gt;
[[파일: 막2.jpg]]&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lt;br /&gt;
&amp;lt;왼쪽부터 차례로 창간호, 2호, 3호&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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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동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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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3:22: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 업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 당시 김동원과  이해랑이 박동근이 직접 연출한 &amp;lt;생활도&amp;gt;로 무대를 하였고&lt;br /&gt;
&lt;br /&gt;
주영섭의 누이동생이자 학생예술좌 마지막 대표 박동근의 부인이 1937년 6월 &amp;lt;춘향전&amp;gt;의 월매 역을 맡았다.&lt;br /&gt;
&lt;br /&gt;
[[파일: 월매.jpg]]&lt;br /&gt;
&lt;br /&gt;
&lt;br /&gt;
&amp;lt;1937년 6월 도쿄학생예술좌의 2회 공연작인 유치진의 &amp;lt;춘향전&amp;gt; 무대장면&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막1.jpg]]&lt;br /&gt;
[[파일: 막2.jpg]]&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lt;br /&gt;
&amp;lt;왼쪽부터 차례로 창간호, 2호, 3호&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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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 당시 김동원과  이해랑이 박동근이 직접 연출한 &amp;lt;생활도&amp;gt;로 무대를 하였고&lt;br /&gt;
&lt;br /&gt;
주영섭의 누이동생이자 학생예술좌 마지막 대표 박동근의 부인이 1937년 6월 &amp;lt;춘향전&amp;gt;의 월매 역을 맡았다.&lt;br /&gt;
&lt;br /&gt;
[[파일:월매.jpg]]&lt;br /&gt;
&lt;br /&gt;
&lt;br /&gt;
&amp;lt;1937년 6월 도쿄학생예술좌의 2회 공연작인 유치진의 &amp;lt;춘향전&amp;gt; 무대장면&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막1.jpg]]&lt;br /&gt;
[[파일: 막2.jpg]]&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lt;br /&gt;
&amp;lt;왼쪽부터 차례로 창간호, 2호, 3호&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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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막1.jpg]]&lt;br /&gt;
[[파일: 막2.jpg]]&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lt;br /&gt;
&amp;lt;왼쪽부터 차례로 창간호, 2호, 3호&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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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막1.jpg]]&lt;br /&gt;
[[파일: 막2.jpg]]&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lt;br /&gt;
&amp;lt;왼쪽부터 파례로 창간호, 2호, 3호&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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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파일: 막2.jpg]]&lt;br /&gt;
[[파일: 막1.jpg]]&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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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일:막1.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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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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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일:막2.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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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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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일:연극잡지.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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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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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동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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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파일:막2.jpg]]&lt;br /&gt;
[[파일:막1.jpg]]&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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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동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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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3:07: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1934년에 결성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부정기적으로 간행하던 기관지 겸 공연 팸플릿 '막' 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창간호는 1936년 12월, 2호는 19385년 3월, 3호는 1939년 6월에 간행되었다. &lt;br /&gt;
&lt;br /&gt;
동경학생예술좌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소개를 포함하여 연출,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원들의 글이 골고루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
&lt;br /&gt;
[파일:연극잡지.jpg]&lt;br /&gt;
[파일:막2.jpg]&lt;br /&gt;
[파일:막1.jpg]&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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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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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2:58: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amp;lt;한국의 햄릿&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pn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 &lt;br /&gt;
&lt;br /&gt;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리얼리즘연극운동을 벌여 리얼리즘극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lt;br /&gt;
&lt;br /&gt;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연기술의 개척자이다. (1916년 11월 14일 ~ 2006년 5월 13일)&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그가 연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3&amp;amp;cid=46615&amp;amp;categoryId=46615 배재고보]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평생의 친구 [https://namu.wiki/w/%EC%9D%B4%ED%95%B4%EB%9E%91 이해랑]을 만났고, 학생 연극부를 조직하면서 극작가 [https://namu.wiki/w/%EC%9C%A0%EC%B9%98%EC%A7%84 유치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해랑, 유치진과의 만남이 그를 연극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들은 &amp;lt;고래&amp;gt;를 비롯하여 &amp;lt;바보치료&amp;gt;, &amp;lt;가보세&amp;gt; 등 세 편의 단막극을 창립공연으로 올렸는데, 김동원은 &amp;lt;고래&amp;gt;에서 선장 부인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배재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김동원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과 이해랑.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과 이해랑&amp;gt;&lt;br /&gt;
&lt;br /&gt;
*1939년 일본경찰은 지식인들의 연극활동을 좌익으로 몰아 구속했다. 김동원은 체질적으로 사상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유치진,이해랑,주영섭 등과 함께 종로경찰서에 구속돼 온갖 고문을 받았다. “‘춘향전’도 너희가 한 거는 좌익연극이라는 거야. 뭔고하니 이몽룡이가 암행어사로 출두해가지고 때려부수고 변학도 때려부수고. 그게 다 목적 있어 가지고 한 거 아니냐고 한단 말이야.”&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춘향전.jpg]]&lt;br /&gt;
&lt;br /&gt;
&lt;br /&gt;
*국립극장의 전속 극단 ‘신협’의 단원이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연극 〈햄릿〉(1951), 〈파우스트〉(1966), 〈남한산성〉(1974) 등이 대표작이다. 국립극단장,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의 대표관직을 맡았었다.&lt;br /&gt;
&lt;br /&gt;
*그에게 '햄릿'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박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고인은 62년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등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햄릿 역을 맡아 열연해 왔다.&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 햄릿.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 햄릿&amp;gt;&lt;br /&gt;
&lt;br /&gt;
*햄릿 이외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뇌우' 등이 있으며 94년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유부인', '마의 태자'(1956), '춘향전'(1961),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70년 대까지 영화에도 꾸준하게 출연했다.&lt;br /&gt;
&lt;br /&gt;
*고인은 2003년 출간된 자서전 '미수의 커튼 콜'에서 &amp;quot;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어야 한다&amp;quot;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또한 &amp;quot;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amp;quot;라고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lt;br /&gt;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 후 [[주영섭|주영섭]], 장계원, 마완영, 황순원 등과 신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였다.&lt;br /&gt;
&lt;br /&gt;
창립공연 &amp;lt;소&amp;gt;(유치진 작, 주영섭 연출)와 &amp;lt;나루&amp;gt;(주영섭 작,연출)에 배우로 데뷔했으며&lt;br /&gt;
&lt;br /&gt;
또한 김동원은 주영섭이 연출을 맡았던 &amp;lt;흑룡강&amp;gt;의 주인공과 &amp;lt;춘향전&amp;gt;의 이몽룡의 대역 출연을 맡으며 연극 무대를 올렸다.&lt;br /&gt;
&lt;br /&gt;
1937년 「춘향전」의 이몽룡 역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동원,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lt;br /&gt;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 붙잡고 집착하기보자 언제 아름답게 무대를 떠나야 할지를 알고 계셨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조금의 불미스런 일도 없었던 깨끗한 사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2001년 국립극단 작품 '햄릿' 주인공 김석훈: 일요일마다 부인과 손을 꼭 붙잡고 교회에 나오시곤 했다. 직접 연습실에 찾아오셔서 '손을 많이 쓰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라고 세심하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에 후배들에게도 경어를 쓰시던 신사같은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 연극평론가 한상철: 우리 시대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있듯이 우리 관객의 우상은 김동원 선생이었다. 우리 시대 관객이 꿈꾸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간상을 김동원 선생은 생생하게 구현해주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donghlee1001/221859398837 &amp;lt;김동원 회고록- 출생, 평남 순천 탈출, 1.4후퇴까지&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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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동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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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2:46: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B%B0%95%EB%8F%99%EA%B7%BC&amp;diff=14340</id>
		<title>박동근</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B%B0%95%EB%8F%99%EA%B7%BC&amp;diff=14340"/>
				<updated>2020-06-24T02:46: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박동근.jp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연극배우 (1937. 5. 30~?)&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기간 장막극 ‘동지들’에서 주인공 마장손의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대학 졸업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되였다.&lt;br /&gt;
&lt;br /&gt;
 이 기간 영화에서 단역을 맡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무대에 올린 경희극 ‘산울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후 청진연극단으로 내려가서 본격적인 무대생활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1917년 국립연극단 배우로 소환되어 여러 편의 혁명연극들에 출연하여 성과를 올렸다.&lt;br /&gt;
&lt;br /&gt;
'혈분만국회' 오성학교 교장 장세환 역, '3인 1당'의 로승지 역, 혁명연극 '경축대회' 중의원 사사끼이찌로 역 등을 맡아서 원만히 완성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이밖에도 예술영화 '조선의 별', '새벽길' 등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후 영화화면과 무대를 떠나 북한의 텔레비죤련속드라마 &amp;lt;첫 기슭에서&amp;gt;, &amp;lt;나의 선생님&amp;gt;, &amp;lt;두 지배인&amp;gt;, &amp;lt;불변하라&amp;gt;, &amp;lt;열망&amp;gt;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공훈배우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황순원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박동근은 1936년 12월 1일자로 창간된 ‘동경학생예술좌(座)’의 기관지 성격을 띤 연극잡지 《막(幕)》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담당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9%80%EB%8F%99%EC%9B%90&amp;diff=14337</id>
		<title>김동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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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2:35: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amp;lt;한국의 햄릿&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pn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 &lt;br /&gt;
&lt;br /&gt;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리얼리즘연극운동을 벌여 리얼리즘극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lt;br /&gt;
&lt;br /&gt;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연기술의 개척자이다. (1916년 11월 14일 ~ 2006년 5월 13일)&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그가 연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3&amp;amp;cid=46615&amp;amp;categoryId=46615 배재고보]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평생의 친구 [https://namu.wiki/w/%EC%9D%B4%ED%95%B4%EB%9E%91 이해랑]을 만났고, 학생 연극부를 조직하면서 극작가 [https://namu.wiki/w/%EC%9C%A0%EC%B9%98%EC%A7%84 유치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해랑, 유치진과의 만남이 그를 연극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들은 &amp;lt;고래&amp;gt;를 비롯하여 &amp;lt;바보치료&amp;gt;, &amp;lt;가보세&amp;gt; 등 세 편의 단막극을 창립공연으로 올렸는데, 김동원은 &amp;lt;고래&amp;gt;에서 선장 부인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배재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김동원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과 이해랑.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과 이해랑&amp;gt;&lt;br /&gt;
&lt;br /&gt;
*1939년 일본경찰은 지식인들의 연극활동을 좌익으로 몰아 구속했다. 김동원은 체질적으로 사상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유치진,이해랑,주영섭 등과 함께 종로경찰서에 구속돼 온갖 고문을 받았다. “‘춘향전’도 너희가 한 거는 좌익연극이라는 거야. 뭔고하니 이몽룡이가 암행어사로 출두해가지고 때려부수고 변학도 때려부수고. 그게 다 목적 있어 가지고 한 거 아니냐고 한단 말이야.”&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춘향전.jpg]]&lt;br /&gt;
&lt;br /&gt;
&lt;br /&gt;
*국립극장의 전속 극단 ‘신협’의 단원이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연극 〈햄릿〉(1951), 〈파우스트〉(1966), 〈남한산성〉(1974) 등이 대표작이다. 국립극단장,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의 대표관직을 맡았었다.&lt;br /&gt;
&lt;br /&gt;
*그에게 '햄릿'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박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고인은 62년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등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햄릿 역을 맡아 열연해 왔다.&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 햄릿.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 햄릿&amp;gt;&lt;br /&gt;
&lt;br /&gt;
*햄릿 이외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뇌우' 등이 있으며 94년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유부인', '마의 태자'(1956), '춘향전'(1961),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70년 대까지 영화에도 꾸준하게 출연했다.&lt;br /&gt;
&lt;br /&gt;
*고인은 2003년 출간된 자서전 '미수의 커튼 콜'에서 &amp;quot;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어야 한다&amp;quot;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또한 &amp;quot;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amp;quot;라고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lt;br /&gt;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 후 [[주영섭|주영섭]], 장계원, 마완영, 황순원 등과 신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였다.&lt;br /&gt;
&lt;br /&gt;
창립공연 &amp;lt;소&amp;gt;(유치진 작, 주영섭 연출)와 &amp;lt;나루&amp;gt;(주영섭 작,연출)에 배우로 데뷔했으며&lt;br /&gt;
&lt;br /&gt;
또한 김동원은 주영섭이 연출을 맡았던 &amp;lt;흑룡강&amp;gt;의 주인공과 &amp;lt;춘향전&amp;gt;의 이몽룡의 대역 출연을 맡으며 연극 무대를 올렸다.&lt;br /&gt;
&lt;br /&gt;
1937년 「춘향전」의 이몽룡 역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동원,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lt;br /&gt;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 붙잡고 집착하기보자 언제 아름답게 무대를 떠나야 할지를 알고 계셨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조금의 불미스런 일도 없었던 깨끗한 사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2001년 국립극단 작품 '햄릿' 주인공 김석훈: 일요일마다 부인과 손을 꼭 붙잡고 교회에 나오시곤 했다. 직접 연습실에 찾아오셔서 '손을 많이 쓰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라고 세심하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에 후배들에게도 경어를 쓰시던 신사같은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 연극평론가 한상철: 우리 시대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있듯이 우리 관객의 우상은 김동원 선생이었다. 우리 시대 관객이 꿈꾸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간상을 김동원 선생은 생생하게 구현해주었던 것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B6%98%ED%96%A5%EC%A0%84.jpg&amp;diff=14336</id>
		<title>파일:춘향전.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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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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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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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amp;lt;한국의 햄릿&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pn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 &lt;br /&gt;
&lt;br /&gt;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리얼리즘연극운동을 벌여 리얼리즘극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lt;br /&gt;
&lt;br /&gt;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연기술의 개척자이다. (1916년 11월 14일 ~ 2006년 5월 13일)&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그가 연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3&amp;amp;cid=46615&amp;amp;categoryId=46615 배재고보]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평생의 친구 [https://namu.wiki/w/%EC%9D%B4%ED%95%B4%EB%9E%91 이해랑]을 만났고, 학생 연극부를 조직하면서 극작가 [https://namu.wiki/w/%EC%9C%A0%EC%B9%98%EC%A7%84 유치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해랑, 유치진과의 만남이 그를 연극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들은 &amp;lt;고래&amp;gt;를 비롯하여 &amp;lt;바보치료&amp;gt;, &amp;lt;가보세&amp;gt; 등 세 편의 단막극을 창립공연으로 올렸는데, 김동원은 &amp;lt;고래&amp;gt;에서 선장 부인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배재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김동원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과 이해랑.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과 이해랑&amp;gt;&lt;br /&gt;
&lt;br /&gt;
*1939년 일본경찰은 지식인들의 연극활동을 좌익으로 몰아 구속했다. 김동원은 체질적으로 사상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유치진,이해랑,주영섭 등과 함께 종로경찰서에 구속돼 온갖 고문을 받았다. “‘춘향전’도 너희가 한 거는 좌익연극이라는 거야. 뭔고하니 이몽룡이가 암행어사로 출두해가지고 때려부수고 변학도 때려부수고. 그게 다 목적 있어 가지고 한 거 아니냐고 한단 말이야.”&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춘향전.jpg]]&lt;br /&gt;
&lt;br /&gt;
&lt;br /&gt;
*국립극장의 전속 극단 ‘신협’의 단원이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연극 〈햄릿〉(1951), 〈파우스트〉(1966), 〈남한산성〉(1974) 등이 대표작이다. 국립극단장,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의 대표관직을 맡았었다.&lt;br /&gt;
&lt;br /&gt;
*그에게 '햄릿'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박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고인은 62년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등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햄릿 역을 맡아 열연해 왔다.&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 햄릿.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 햄릿&amp;gt;&lt;br /&gt;
&lt;br /&gt;
*햄릿 이외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뇌우' 등이 있으며 94년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유부인', '마의 태자'(1956), '춘향전'(1961),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70년 대까지 영화에도 꾸준하게 출연했다.&lt;br /&gt;
&lt;br /&gt;
*고인은 2003년 출간된 자서전 '미수의 커튼 콜'에서 &amp;quot;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어야 한다&amp;quot;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또한 &amp;quot;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amp;quot;라고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lt;br /&gt;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 후 [[주영섭|주영섭]], 장계원, 마완영, 황순원 등과 신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였다.&lt;br /&gt;
&lt;br /&gt;
창립공연 &amp;lt;소&amp;gt;(유치진 작, 주영섭 연출)와 &amp;lt;나루&amp;gt;(주영섭 작,연출)에 배우로 데뷔했으며&lt;br /&gt;
&lt;br /&gt;
또한 김동원은 주영섭이 연출을 맡았던 &amp;lt;흑룡강&amp;gt;의 주인공과 &amp;lt;춘향전&amp;gt;의 이몽룡의 대역 출연을 맡으며 연극 무대를 올렸다.&lt;br /&gt;
&lt;br /&gt;
1937년 「춘향전」의 이몽룡 역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동원=====&lt;br /&gt;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 붙잡고 집착하기보자 언제 아름답게 무대를 떠나야 할지를 알고 계셨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조금의 불미스런 일도 없었던 깨끗한 사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2001년 국립극단 작품 '햄릿' 주인공 김석훈: 일요일마다 부인과 손을 꼭 붙잡고 교회에 나오시곤 했다. 직접 연습실에 찾아오셔서 '손을 많이 쓰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라고 세심하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에 후배들에게도 경어를 쓰시던 신사같은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 연극평론가 한상철: 우리 시대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있듯이 우리 관객의 우상은 김동원 선생이었다. 우리 시대 관객이 꿈꾸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간상을 김동원 선생은 생생하게 구현해주었던 것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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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9%80%EB%8F%99%EC%9B%90&amp;diff=14331</id>
		<title>김동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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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2:26: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amp;lt;한국의 햄릿&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pn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 &lt;br /&gt;
&lt;br /&gt;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리얼리즘연극운동을 벌여 리얼리즘극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lt;br /&gt;
&lt;br /&gt;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연기술의 개척자이다. (1916년 11월 14일 ~ 2006년 5월 13일)&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그가 연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3&amp;amp;cid=46615&amp;amp;categoryId=46615 배재고보]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평생의 친구 [https://namu.wiki/w/%EC%9D%B4%ED%95%B4%EB%9E%91 이해랑]을 만났고, 학생 연극부를 조직하면서 극작가 [https://namu.wiki/w/%EC%9C%A0%EC%B9%98%EC%A7%84 유치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해랑, 유치진과의 만남이 그를 연극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들은 &amp;lt;고래&amp;gt;를 비롯하여 &amp;lt;바보치료&amp;gt;, &amp;lt;가보세&amp;gt; 등 세 편의 단막극을 창립공연으로 올렸는데, 김동원은 &amp;lt;고래&amp;gt;에서 선장 부인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배재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김동원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과 이해랑.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과 이해랑&amp;gt;&lt;br /&gt;
&lt;br /&gt;
*1939년 일본경찰은 지식인들의 연극활동을 좌익으로 몰아 구속했다. 김동원은 체질적으로 사상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유치진,이해랑,주영섭 등과 함께 종로경찰서에 구속돼 온갖 고문을 받았다. “‘춘향전’도 너희가 한 거는 좌익연극이라는 거야. 뭔고하니 이몽룡이가 암행어사로 출두해가지고 때려부수고 변학도 때려부수고. 그게 다 목적 있어 가지고 한 거 아니냐고 한단 말이야.”&lt;br /&gt;
&lt;br /&gt;
*국립극장의 전속 극단 ‘신협’의 단원이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연극 〈햄릿〉(1951), 〈파우스트〉(1966), 〈남한산성〉(1974) 등이 대표작이다. 국립극단장,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의 대표관직을 맡았었다.&lt;br /&gt;
&lt;br /&gt;
*그에게 '햄릿'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박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고인은 62년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등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햄릿 역을 맡아 열연해 왔다.&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 햄릿.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 햄릿&amp;gt;&lt;br /&gt;
&lt;br /&gt;
*햄릿 이외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뇌우' 등이 있으며 94년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유부인', '마의 태자'(1956), '춘향전'(1961),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70년 대까지 영화에도 꾸준하게 출연했다.&lt;br /&gt;
&lt;br /&gt;
*고인은 2003년 출간된 자서전 '미수의 커튼 콜'에서 &amp;quot;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어야 한다&amp;quot;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또한 &amp;quot;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amp;quot;라고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lt;br /&gt;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 후 [[주영섭|주영섭]], 장계원, 마완영, 황순원 등과 신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였다.&lt;br /&gt;
&lt;br /&gt;
창립공연 &amp;lt;소&amp;gt;(유치진 작, 주영섭 연출)와 &amp;lt;나루&amp;gt;(주영섭 작,연출)에 배우로 데뷔했으며&lt;br /&gt;
&lt;br /&gt;
또한 김동원은 주영섭이 연출을 맡았던 &amp;lt;흑룡강&amp;gt;의 주인공과 &amp;lt;춘향전&amp;gt;의 이몽룡의 대역 출연을 맡으며 연극 무대를 올렸다.&lt;br /&gt;
&lt;br /&gt;
1937년 「춘향전」의 이몽룡 역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동원=====&lt;br /&gt;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 붙잡고 집착하기보자 언제 아름답게 무대를 떠나야 할지를 알고 계셨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조금의 불미스런 일도 없었던 깨끗한 사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2001년 국립극단 작품 '햄릿' 주인공 김석훈: 일요일마다 부인과 손을 꼭 붙잡고 교회에 나오시곤 했다. 직접 연습실에 찾아오셔서 '손을 많이 쓰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라고 세심하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에 후배들에게도 경어를 쓰시던 신사같은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 연극평론가 한상철: 우리 시대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있듯이 우리 관객의 우상은 김동원 선생이었다. 우리 시대 관객이 꿈꾸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간상을 김동원 선생은 생생하게 구현해주었던 것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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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9%80%EB%8F%99%EC%9B%90&amp;diff=14329</id>
		<title>김동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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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2:23: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amp;lt;한국의 햄릿&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pn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 &lt;br /&gt;
&lt;br /&gt;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리얼리즘연극운동을 벌여 리얼리즘극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lt;br /&gt;
&lt;br /&gt;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연기술의 개척자이다. (1916년 11월 14일 ~ 2006년 5월 13일)&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그가 연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3&amp;amp;cid=46615&amp;amp;categoryId=46615 배재고보]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평생의 친구 이해랑을 만났고, 학생 연극부를 조직하면서 극작가 유치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해랑, 유치진과의 만남이 그를 연극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들은 &amp;lt;고래&amp;gt;를 비롯하여 &amp;lt;바보치료&amp;gt;, &amp;lt;가보세&amp;gt; 등 세 편의 단막극을 창립공연으로 올렸는데, 김동원은 &amp;lt;고래&amp;gt;에서 선장 부인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배재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김동원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과 이해랑.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과 이해랑&amp;gt;&lt;br /&gt;
&lt;br /&gt;
*1939년 일본경찰은 지식인들의 연극활동을 좌익으로 몰아 구속했다. 김동원은 체질적으로 사상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유치진,이해랑,주영섭 등과 함께 종로경찰서에 구속돼 온갖 고문을 받았다. “‘춘향전’도 너희가 한 거는 좌익연극이라는 거야. 뭔고하니 이몽룡이가 암행어사로 출두해가지고 때려부수고 변학도 때려부수고. 그게 다 목적 있어 가지고 한 거 아니냐고 한단 말이야.”&lt;br /&gt;
&lt;br /&gt;
*국립극장의 전속 극단 ‘신협’의 단원이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연극 〈햄릿〉(1951), 〈파우스트〉(1966), 〈남한산성〉(1974) 등이 대표작이다. 국립극단장,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의 대표관직을 맡았었다.&lt;br /&gt;
&lt;br /&gt;
*그에게 '햄릿'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박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고인은 62년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등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햄릿 역을 맡아 열연해 왔다.&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 햄릿.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 햄릿&amp;gt;&lt;br /&gt;
&lt;br /&gt;
*햄릿 이외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뇌우' 등이 있으며 94년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유부인', '마의 태자'(1956), '춘향전'(1961),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70년 대까지 영화에도 꾸준하게 출연했다.&lt;br /&gt;
&lt;br /&gt;
*고인은 2003년 출간된 자서전 '미수의 커튼 콜'에서 &amp;quot;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어야 한다&amp;quot;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또한 &amp;quot;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amp;quot;라고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lt;br /&gt;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 후 [[주영섭|주영섭]], 장계원, 마완영, 황순원 등과 신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였다.&lt;br /&gt;
&lt;br /&gt;
창립공연 &amp;lt;소&amp;gt;(유치진 작, 주영섭 연출)와 &amp;lt;나루&amp;gt;(주영섭 작,연출)에 배우로 데뷔했으며&lt;br /&gt;
&lt;br /&gt;
또한 김동원은 주영섭이 연출을 맡았던 &amp;lt;흑룡강&amp;gt;의 주인공과 &amp;lt;춘향전&amp;gt;의 이몽룡의 대역 출연을 맡으며 연극 무대를 올렸다.&lt;br /&gt;
&lt;br /&gt;
1937년 「춘향전」의 이몽룡 역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동원=====&lt;br /&gt;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 붙잡고 집착하기보자 언제 아름답게 무대를 떠나야 할지를 알고 계셨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조금의 불미스런 일도 없었던 깨끗한 사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2001년 국립극단 작품 '햄릿' 주인공 김석훈: 일요일마다 부인과 손을 꼭 붙잡고 교회에 나오시곤 했다. 직접 연습실에 찾아오셔서 '손을 많이 쓰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라고 세심하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에 후배들에게도 경어를 쓰시던 신사같은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 연극평론가 한상철: 우리 시대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있듯이 우리 관객의 우상은 김동원 선생이었다. 우리 시대 관객이 꿈꾸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간상을 김동원 선생은 생생하게 구현해주었던 것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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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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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24T02:17: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조가영: &lt;/p&gt;
&lt;hr /&gt;
&lt;div&gt;&amp;lt;한국의 햄릿&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png]]&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 &lt;br /&gt;
&lt;br /&gt;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리얼리즘연극운동을 벌여 리얼리즘극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lt;br /&gt;
&lt;br /&gt;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연기술의 개척자이다. (1916년 11월 14일 ~ 2006년 5월 13일)&lt;br /&gt;
&lt;br /&gt;
&lt;br /&gt;
===업적===&lt;br /&gt;
*그가 연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3&amp;amp;cid=46615&amp;amp;categoryId=46615 배재고보]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평생의 친구 이해랑을 만났고, 학생 연극부를 조직하면서 극작가 유치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해랑, 유치진과의 만남이 그를 연극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들은 &amp;lt;고래&amp;gt;를 비롯하여 &amp;lt;바보치료&amp;gt;, &amp;lt;가보세&amp;gt; 등 세 편의 단막극을 창립공연으로 올렸는데, 김동원은 &amp;lt;고래&amp;gt;에서 선장 부인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배재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김동원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과 이해랑.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과 이해랑&amp;gt;&lt;br /&gt;
&lt;br /&gt;
*국립극장의 전속 극단 ‘신협’의 단원이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연극 〈햄릿〉(1951), 〈파우스트〉(1966), 〈남한산성〉(1974) 등이 대표작이다. 국립극단장,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의 대표관직을 맡았었다.&lt;br /&gt;
&lt;br /&gt;
*그에게 '햄릿'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박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고인은 62년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등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햄릿 역을 맡아 열연해 왔다.&lt;br /&gt;
&lt;br /&gt;
[[파일:김동원 햄릿.jpg]]&lt;br /&gt;
&lt;br /&gt;
&amp;lt;김동원 햄릿&amp;gt;&lt;br /&gt;
&lt;br /&gt;
*햄릿 이외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뇌우' 등이 있으며 94년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유부인', '마의 태자'(1956), '춘향전'(1961),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70년 대까지 영화에도 꾸준하게 출연했다.&lt;br /&gt;
&lt;br /&gt;
*고인은 2003년 출간된 자서전 '미수의 커튼 콜'에서 &amp;quot;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어야 한다&amp;quot;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또한 &amp;quot;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amp;quot;라고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황순원과의 관계====&lt;br /&gt;
&lt;br /&gt;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 후 [[주영섭|주영섭]], 장계원, 마완영, 황순원 등과 신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였다.&lt;br /&gt;
&lt;br /&gt;
창립공연 &amp;lt;소&amp;gt;(유치진 작, 주영섭 연출)와 &amp;lt;나루&amp;gt;(주영섭 작,연출)에 배우로 데뷔했으며&lt;br /&gt;
&lt;br /&gt;
또한 김동원은 주영섭이 연출을 맡았던 &amp;lt;흑룡강&amp;gt;의 주인공과 &amp;lt;춘향전&amp;gt;의 이몽룡의 대역 출연을 맡으며 연극 무대를 올렸다.&lt;br /&gt;
&lt;br /&gt;
1937년 「춘향전」의 이몽룡 역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동원=====&lt;br /&gt;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 붙잡고 집착하기보자 언제 아름답게 무대를 떠나야 할지를 알고 계셨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조금의 불미스런 일도 없었던 깨끗한 사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2001년 국립극단 작품 '햄릿' 주인공 김석훈: 일요일마다 부인과 손을 꼭 붙잡고 교회에 나오시곤 했다. 직접 연습실에 찾아오셔서 '손을 많이 쓰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라고 세심하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에 후배들에게도 경어를 쓰시던 신사같은 분이었다. &lt;br /&gt;
&lt;br /&gt;
* 연극평론가 한상철: 우리 시대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있듯이 우리 관객의 우상은 김동원 선생이었다. 우리 시대 관객이 꿈꾸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간상을 김동원 선생은 생생하게 구현해주었던 것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조가영</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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