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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ed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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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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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남강이승훈.jpg|3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아버지]]는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황순원의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amp;lt;ref&amp;gt;김종희.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문학적 연대기:문학의 순수성과 완결성, 또는 문학적 삶의 큰 모범-「나의 꿈」에서 「말과 삶과 자유」까지. 작가세계, 7(1), 18-49.&amp;lt;/ref&amp;gt;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인민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인민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 황순원에게 영향을 준 남강 이승훈의 모습은 작 중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1%B0%EB%A6%AC%EC%9D%98_%EB%B6%80%EC%82%AC&amp;diff=13999</id>
		<title>거리의 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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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600&amp;quot; height=&amp;quot;4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3aqYdtlke3I&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거리의 부사]]는 황순원이 1937년 7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 유학 중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창작이 활발해졌다. 시적이며 아름답고 압축적인 문장이 특징인 작품이기도 하다. 황순원은 이후 시에서 소설로 창작 저변을 넓힌 이유에 대해 &amp;quot;그때 생각에 시만 가지고는 생각을 다 펴기 힘들어 소설을 시작했다. 아마 내 체질에 맞는 장르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같다. 문학의 근원, 아니 예술의 근원은 시에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써왔다'''.&amp;quot; &amp;lt;ref&amp;gt;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 &amp;quot;시가 없어 뵈는 나 자신에 대해 소설로써 내게도 시가 있다는 확인을 해보인 것은 아닐까.&amp;quot;&amp;lt;ref&amp;gt;｢자기 확인의 길｣&amp;lt;/ref&amp;gt;라고 답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거리의 부사]]는 나라를 잃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동경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제목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부사(副詞)'는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 조선인의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부사는 문장 안에 정확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말의 뜻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 조선인들 역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제 역할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제목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조선인인 게 들통 나 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승구'''를 비롯하여 구두닦이 품팔이로 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지운''', 셋방도 아닌 구호실에서 살아가는 '''웅''',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거짓말을 일삼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훈세''', 이들 가운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당면한 시대와 가난 속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지’, ‘하수구’ 취급당하는 조선인들의 밑바닥 인생,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물거품’과 같은 불안함이 늘 그들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정처 없는 인물들의 상황이 갖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amp;lt;ref&amp;gt;'문학관TV: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현재형 문장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황순원의 첫 소설 「거리의 부사(副詞)」&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창작≫ 제 3집 (1937.07) &amp;lt;ref&amp;gt;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발간된 동인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단편집』 (1940.08.19.한성도서)&amp;lt;ref&amp;gt;『황순원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후 『늪』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 황순원은 해당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 [[거리의 부사]]를 제외하고는 창작시기가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늪』]] (1944)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5%84%EB%B2%84%EC%A7%80&amp;diff=13998</id>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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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남강이승훈.jpg|3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아버지]]는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황순원의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인민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인민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 황순원에게 영향을 준 남강 이승훈의 모습은 작 중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3%A1%EC%98%88%EC%82%AC&amp;diff=13630</id>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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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14:20: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곡예사1.jpg|300px|섬네일|김환기 화백이 표지를 그린 단편집 『곡예사』]]&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황순원의 작품 중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황순원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참화를 관찰한 것과 달리, 자전적인 성격을 드러낸 「곡예사」는 피란지의 원주민들이 피란민에게 드러내는 비정하고 천박한 태도에 강력한 분노와 증오를 드러낸다.&amp;lt;ref&amp;gt;[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amp;lt;/ref&amp;gt;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도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곡예사」의 특징은 첫째, 피란지 공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장소의 미시적인 요소까지 담아낸 데 있다. 남포동, 부민동과 아내가 좌판을 펼치고 있는 국제 시장, 아이들이 장사하는 서면뿐 아니라 부성교, 동아 극장, 보수 공원, 경남중학 등 피란지라는 미시 공간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여 지리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두 번째 특징은 가족의 직접적 피란 경험을 통해 전쟁을 일상의 연장으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아이들」과 「메리 크리스마스」, 「어둠 속에 찍힌 판화」 등도 대구와 부산에서 겪는 가족의 피란 체험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체험 속에서 전쟁은 살육과 선혈이 채워진 공포의 시간만이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상적 삶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amp;lt;ref&amp;gt;[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ref&amp;gt;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1%B0%EB%A6%AC%EC%9D%98_%EB%B6%80%EC%82%AC&amp;diff=13614</id>
		<title>거리의 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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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05:45:1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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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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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거리의 부사]]는 황순원이 1937년 7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 유학 중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창작이 활발해졌다. 시적이며 아름답고 압축적인 문장이 특징인 작품이기도 하다. 황순원은 이후 시에서 소설로 창작 저변을 넓힌 이유에 대해 &amp;quot;그때 생각에 시만 가지고는 생각을 다 펴기 힘들어 소설을 시작했다. 아마 내 체질에 맞는 장르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같다. 문학의 근원, 아니 예술의 근원은 시에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써왔다'''.&amp;quot; &amp;lt;ref&amp;gt;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 &amp;quot;시가 없어 뵈는 나 자신에 대해 소설로써 내게도 시가 있다는 확인을 해보인 것은 아닐까.&amp;quot;&amp;lt;ref&amp;gt;｢자기 확인의 길｣&amp;lt;/ref&amp;gt;라고 답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거리의 부사]]는 나라를 잃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동경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제목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부사(副詞)'는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 조선인의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부사는 문장 안에 정확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말의 뜻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선인들 역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제 역할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제목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조선인인 게 들통 나 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승구'''를 비롯하여 구두닦이 품팔이로 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지운''', 셋방도 아닌 구호실에서 살아가는 '''웅''',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거짓말을 일삼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훈세''', 이들 가운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당면한 시대와 가난 속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지’, ‘하수구’ 취급당하는 조선인들의 밑바닥 인생,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물거품’과 같은 불안함이 늘 그들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정처 없는 인물들의 상황이 갖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amp;lt;ref&amp;gt;'문학관TV: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현재형 문장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황순원의 첫 소설 「거리의 부사(副詞)」&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창작≫ 제 3집 (1937.07) &amp;lt;ref&amp;gt;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발간된 동인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단편집』 (1940.08.19.한성도서)&amp;lt;ref&amp;gt;『황순원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후 『늪』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 황순원은 해당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 [[거리의 부사]]를 제외하고는 창작시기가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늪』]] (1944)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3%A1%EC%98%88%EC%82%AC&amp;diff=13613</id>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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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05:43: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곡예사1.jpg|300px|섬네일|단편집 『곡예사』]]&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황순원의 작품 중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황순원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참화를 관찰한 것과 달리, 자전적인 성격을 드러낸 「곡예사」는 피란지의 원주민들이 피란민에게 드러내는 비정하고 천박한 태도에 강력한 분노와 증오를 드러낸다.&amp;lt;ref&amp;gt;[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amp;lt;/ref&amp;gt;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도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곡예사」의 특징은 첫째, 피란지 공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장소의 미시적인 요소까지 담아낸 데 있다. 남포동, 부민동과 아내가 좌판을 펼치고 있는 국제 시장, 아이들이 장사하는 서면뿐 아니라 부성교, 동아 극장, 보수 공원, 경남중학 등 피란지라는 미시 공간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여 지리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두 번째 특징은 가족의 직접적 피란 경험을 통해 전쟁을 일상의 연장으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아이들」과 「메리 크리스마스」, 「어둠 속에 찍힌 판화」 등도 대구와 부산에서 겪는 가족의 피란 체험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체험 속에서 전쟁은 살육과 선혈이 채워진 공포의 시간만이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상적 삶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amp;lt;ref&amp;gt;[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ref&amp;gt;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8%B0%EB%9F%AC%EA%B8%B0&amp;diff=13612</id>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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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05:41: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기러기초판.jpg|400px|섬네일|단편집 『기러기』]]&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기러기｣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별｣과  ｢그늘｣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아버지가 죽은 뒤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쇳네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제목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년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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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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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기러기초판.jpg|400px|섬네일|단편집 『기러기』]]&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기러기｣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별｣과  ｢그늘｣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아버지가 죽은 뒤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쇳네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이름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년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8%B0%EB%9F%AC%EA%B8%B0&amp;diff=13610</id>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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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기러기초판.jpg|4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기러기｣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별｣과  ｢그늘｣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아버지가 죽은 뒤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쇳네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이름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년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8%B0%EB%9F%AC%EA%B8%B0%EC%B4%88%ED%8C%90.jpg&amp;diff=13609</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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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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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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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05:38: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기러기｣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별｣과  ｢그늘｣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아버지가 죽은 뒤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쇳네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이름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년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8%B0%EB%9F%AC%EA%B8%B0&amp;diff=13607</id>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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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기러기｣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별｣과  ｢그늘｣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고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이름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년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8%B0%EB%9F%AC%EA%B8%B0&amp;diff=13606</id>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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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05:36: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기러기｣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별｣과  ｢그늘｣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고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이름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년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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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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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파일:곡예사1.jpg]]&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황순원의 작품 중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황순원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참화를 관찰한 것과 달리, 자전적인 성격을 드러낸 「곡예사」는 피란지의 원주민들이 피란민에게 드러내는 비정하고 천박한 태도에 강력한 분노와 증오를 드러낸다.&amp;lt;ref&amp;gt;[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amp;lt;/ref&amp;gt;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도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곡예사」의 특징은 첫째, 피란지 공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장소의 미시적인 요소까지 담아낸 데 있다. 남포동, 부민동과 아내가 좌판을 펼치고 있는 국제 시장, 아이들이 장사하는 서면뿐 아니라 부성교, 동아 극장, 보수 공원, 경남중학 등 피란지라는 미시 공간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여 지리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두 번째 특징은 가족의 직접적 피란 경험을 통해 전쟁을 일상의 연장으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아이들」과 「메리 크리스마스」, 「어둠 속에 찍힌 판화」 등도 대구와 부산에서 겪는 가족의 피란 체험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체험 속에서 전쟁은 살육과 선혈이 채워진 공포의 시간만이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상적 삶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amp;lt;ref&amp;gt;[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ref&amp;gt;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3%A1%EC%98%88%EC%82%AC&amp;diff=13604</id>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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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05:33: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파일:곡예사1.jpg]]&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황순원의 작품 중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황순원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참화를 관찰한 것과 달리, 자전적인 성격을 드러낸 「곡예사」는 피란지의 원주민들이 피란민에게 드러내는 비정하고 천박한 태도에 강력한 분노와 증오를 드러낸다.&amp;lt;ref&amp;gt;[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amp;lt;/ref&amp;gt;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도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곡예사」의 특징은 첫째, 피란지 공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장소의 미시적인 요소까지 담아낸 데 있다. 남포동, 부민동과 아내가 좌판을 펼치고 있는 국제 시장, 아이들이 장사하는 서면뿐 아니라 부성교, 동아 극장, 보수 공원, 경남중학 등 피란지라는 미시 공간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여 지리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두 번째 특징은 가족의 직접적 피란 경험을 통해 전쟁을 일상의 연장으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아이들」과 「메리 크리스마스」, 「어둠 속에 찍힌 판화」 등도 대구와 부산에서 겪는 가족의 피란 체험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체험 속에서 전쟁은 살육과 선혈이 채워진 공포의 시간만이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상적 삶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ref&amp;gt;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3%A1%EC%98%88%EC%82%AC&amp;diff=13603</id>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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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05:31: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lt;hr /&gt;
&lt;div&gt;[[파일:곡예사1.jpg]]&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황순원의 작품 중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황순원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참화를 관찰한 것과 달리, 자전적인 성격을 드러낸 「곡예사」는 피란지의 원주민들이 피란민에게 드러내는 비정하고 천박한 태도에 강력한 분노와 증오를 드러낸다.&amp;lt;ref&amp;gt;[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dataType=01&amp;amp;contents_id=GC04217180 부산역사문화대전「곡예사」]&amp;lt;/ref&amp;gt;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도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ref&amp;gt;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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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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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파일:곡예사1.jpg]]&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황순원의 작품 중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ref&amp;gt;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82%B0%EA%B3%A8%EC%95%84%EC%9D%B4&amp;diff=13601</id>
		<title>산골아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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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산골아이]]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기러기]]와 마찬가지로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amp;lt;ref&amp;gt;서준섭.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품론Ⅰ:이야기와 소설-단편을 중심으로. 작가세계, 7(1), 86-95.&amp;lt;/ref&amp;gt; 더불어 일제의 탄압으로 해방 이후에 발표된 작품 중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수록된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산골아이]]는 '도토리'와 '크는 아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유아기의 어린아이를 화자로 채택하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도토리'에서 아이는 밤에 간식으로 도토리를 먹으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와 함께 무료한 겨울밤을 보내는데, 그 이야기는 색시로 둔갑한 여우에게 홀려 죽을 뻔하다가 훈장의 도움으로 여우를 퇴치한다는 어떤 서당 총각의 이야기다. 아이는 꿈에서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본다. '크는 아이' 역시 아이가 화자로 등장하여 밤이 깊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험한 고개를 넘어 장을 보러간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 고개에는 아이를 물어간 적 있는 범이 자주 나타나기에 아이는 아버지의 밤길을 걱정하며 잠든다. 이후 깨었더니 옆에 아버지가 누워있었다는 내용이다. 두 이야기 모두 한적한 산골 마을에 사는 유아의 일상을 그려냄으로써 서정적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설화적인 내용과 겨울밤에 아버지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옆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의 묘사는 한 폭의 그림처럼 느끼게 한다. &amp;lt;ref&amp;gt;이익성. (2015). 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 동아시아문화연구, 61(0), 109-12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민성(民聲)》 (1949) &amp;lt;ref&amp;gt;1945년 8 ·15광복의 환희 속에서 많은 시인 ·작가 ·비평가가 등장하여 활약한 지면 중 하나이다.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82%B0%EA%B3%A8%EC%95%84%EC%9D%B4&amp;diff=13600</id>
		<title>산골아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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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산골아이]]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기러기]]와 마찬가지로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amp;lt;ref&amp;gt;서준섭.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품론Ⅰ:이야기와 소설-단편을 중심으로. 작가세계, 7(1), 86-95.&amp;lt;/ref&amp;gt; 더불어 일제의 탄압으로 해방 이후에 발표된 작품 중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산골아이]]는 '도토리'와 '크는 아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유아기의 어린아이를 화자로 채택하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도토리'에서 아이는 밤에 간식으로 도토리를 먹으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와 함께 무료한 겨울밤을 보내는데, 그 이야기는 색시로 둔갑한 여우에게 홀려 죽을 뻔하다가 훈장의 도움으로 여우를 퇴치한다는 어떤 서당 총각의 이야기다. 아이는 꿈에서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본다. '크는 아이' 역시 아이가 화자로 등장하여 밤이 깊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험한 고개를 넘어 장을 보러간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 고개에는 아이를 물어간 적 있는 범이 자주 나타나기에 아이는 아버지의 밤길을 걱정하며 잠든다. 이후 깨었더니 옆에 아버지가 누워있었다는 내용이다. 두 이야기 모두 한적한 산골 마을에 사는 유아의 일상을 그려냄으로써 서정적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설화적인 내용과 겨울밤에 아버지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옆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의 묘사는 한 폭의 그림처럼 느끼게 한다. &amp;lt;ref&amp;gt;이익성. (2015). 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 동아시아문화연구, 61(0), 109-12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민성(民聲)》 (1949) &amp;lt;ref&amp;gt;1945년 8 ·15광복의 환희 속에서 많은 시인 ·작가 ·비평가가 등장하여 활약한 지면 중 하나이다.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5%84%EB%B2%84%EC%A7%80&amp;diff=13599</id>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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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남강이승훈.jpg|3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인민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인민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 황순원에게 영향을 준 남강 이승훈의 모습은 작 중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3%A1%EC%98%88%EC%82%AC&amp;diff=13598</id>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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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9T03:05: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파일:곡예사1.jpg]]&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황순원의 작품 중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ref&amp;gt;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5%84%EB%B2%84%EC%A7%80&amp;diff=13554</id>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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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8T12:48: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남강이승훈.jpg|3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인민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인민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5%84%EB%B2%84%EC%A7%80&amp;diff=13553</id>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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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8T12:47: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남강이승훈.jpg|3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인민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인민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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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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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남강이승훈.jpg|3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인민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8%B0%EB%9F%AC%EA%B8%B0&amp;diff=13551</id>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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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amp;lt;기러기&amp;gt;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amp;lt;별&amp;gt;과 &amp;lt;그늘&amp;gt;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고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이름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년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5%84%EB%B2%84%EC%A7%80&amp;diff=13550</id>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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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8T12:45: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남강이승훈.jpg|3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5%84%EB%B2%84%EC%A7%80&amp;diff=13549</id>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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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파일:남강이승훈.jpg|300px|섬네일|남강 이승훈의 모습]]&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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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개요====&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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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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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여기에서 '목넘이 마을'은 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홍성식. (2014). 해방기 인민항쟁과 창작실천의 문제. 한국문예비평연구, 45(0), 321-339.&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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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수록 · 발표지면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홍성식. (2014). 해방기 인민항쟁과 창작실천의 문제. 한국문예비평연구, 45(0), 321-339.&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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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홍성식. (2014). 해방기 인민항쟁과 창작실천의 문제. 한국문예비평연구, 45(0), 321-339.&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95%84%EB%B2%84%EC%A7%80&amp;diff=13524</id>
		<title>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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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새 문서: ====개요====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29년 오산중학교 재학 당시 남강 이승훈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묘사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은 이승훈을 두고 “그 때 이미 선생은 현직 교장으로는 안 계셨는데도 하루 걸러끔은 꼭꼭 학교에 오셨다. 언제나 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수염은 구레나룻을 한 치 가량 남기고 짜른 수염이었다. 참 예쁘다고 할 정도의 신수시었다. 그때 나는 남자라는 것은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걸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3·1운동 기념으로 실린 5편의 소설 중 한 편으로, 이 소설들은 모두 10월 인민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amp;lt;ref&amp;gt;김현구의 「산풍」 , 황순원의 「아버지」 , 전명선의 「방아쇠」 , 박찬모의 「어머니」 , 강형구의 「연락원」이다. &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아버지]]는 황순원이 1946년의 10월 항쟁&amp;lt;ref&amp;gt;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정책에 불만을 지닌 노동자의 파업과 항거&amp;lt;/ref&amp;gt;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작 중 화자의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청년교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로 인해 1년 반 동안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된 죄수로는 같은 일로 들어온 박씨,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들려온 청년, 그리고 남도의 젊은 농사꾼이 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우연히 거리에 나갔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남도 사람을 만났다. 남도 사람은 10월 항쟁에 가담했기 때문에 서울로 피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3.1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아들에게 남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3.1 운동과 10월 항쟁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일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학》 (1947.02) &amp;lt;ref&amp;gt;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이다. 황순원은 해당 기관지에 단편 「황소들」과 「아버지」를 함께 투고한다.&amp;lt;/ref&amp;gt;&lt;br /&gt;
[[단편집 『목넘이마을&amp;lt;ref&amp;gt;황순원의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서리를 뜻한다.&amp;lt;/ref&amp;gt;의 개』]] (1948.12.육문사) &amp;lt;ref&amp;gt;남한 단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12월,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신천지》, 《개벽》등에서 발표되었던 당시의 피폐한 사회와 삶의 모습을 담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과 자전적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집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홍성식. (2014). 해방기 인민항쟁과 창작실천의 문제. 한국문예비평연구, 45(0), 321-339.&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C%82%B0%EA%B3%A8%EC%95%84%EC%9D%B4&amp;diff=13505</id>
		<title>산골아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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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산골아이]]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기러기]]와 마찬가지로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amp;lt;ref&amp;gt;서준섭.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품론Ⅰ:이야기와 소설-단편을 중심으로. 작가세계, 7(1), 86-95.&amp;lt;/ref&amp;gt; 더불어 일제의 탄압으로 해방 이후에 발표된 작품 중 하나이다. &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산골아이]]는 '도토리'와 '크는 아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유아기의 어린아이를 화자로 채택하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도토리'에서 아이는 밤에 간식으로 도토리를 먹으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와 함께 무료한 겨울밤을 보내는데, 그 이야기는 색시로 둔갑한 여우에게 홀려 죽을 뻔하다가 훈장의 도움으로 여우를 퇴치한다는 어떤 서당 총각의 이야기다. 아이는 꿈에서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본다. '크는 아이' 역시 아이가 화자로 등장하여 밤이 깊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험한 고개를 넘어 장을 보러간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 고개에는 아이를 물어간 적 있는 범이 자주 나타나기에 아이는 아버지의 밤길을 걱정하며 잠든다. 이후 깨었더니 옆에 아버지가 누워있었다는 내용이다. 한적한 산골 마을에 사는 유아의 일상을 그려냄으로써 서정적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설화적인 내용과 겨울밤에 아버지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옆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의 묘사는 한 폭의 그림처럼 느끼게 한다. &amp;lt;ref&amp;gt;이익성. (2015). 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 동아시아문화연구, 61(0), 109-12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민성(民聲)》 (1949) &amp;lt;ref&amp;gt;1945년 8 ·15광복의 환희 속에서 많은 시인 ·작가 ·비평가가 등장하여 활약한 지면 중 하나이다.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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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골아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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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새 문서: ====개요==== 산골아이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산골아이]]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기러기]]와 마찬가지로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amp;lt;ref&amp;gt;서준섭.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품론Ⅰ:이야기와 소설-단편을 중심으로. 작가세계, 7(1), 86-95. 더불어 일제의 탄압으로 해방 이후에 발표된 작품 중 하나이다. &amp;lt;/ref&amp;gt; [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산골아이]]는 '도토리'와 '크는 아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유아기의 어린아이를 화자로 채택하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도토리'에서 아이는 밤에 간식으로 도토리를 먹으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와 함께 무료한 겨울밤을 보내는데, 그 이야기는 색시로 둔갑한 여우에게 홀려 죽을 뻔하다가 훈장의 도움으로 여우를 퇴치한다는 어떤 서당 총각의 이야기다. 아이는 꿈에서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본다. '크는 아이' 역시 아이가 화자로 등장하여 밤이 깊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험한 고개를 넘어 장을 보러간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 고개에는 아이를 물어간 적 있는 범이 자주 나타나기에 아이는 아버지의 밤길을 걱정하며 잠든다. 이후 깨었더니 옆에 아버지가 누워있었다는 내용이다. 한적한 산골 마을에 사는 유아의 일상을 그려냄으로써 서정적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설화적인 내용과 겨울밤에 아버지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옆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의 묘사는 한 폭의 그림처럼 느끼게 한다. &amp;lt;ref&amp;gt;이익성. (2015). 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 동아시아문화연구, 61(0), 109-128.&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민성(民聲)》 (1949) &amp;lt;ref&amp;gt;1945년 8 ·15광복의 환희 속에서 많은 시인 ·작가 ·비평가가 등장하여 활약한 지면 중 하나이다. &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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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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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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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개요====&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amp;lt;기러기&amp;gt;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amp;lt;별&amp;gt;과 &amp;lt;그늘&amp;gt;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기러기 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고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이름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년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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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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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새 문서: ====개요====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기러기]]는 황순원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 머물며 창작한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조부의 편모를 소재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amp;lt;기러기&amp;gt;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 『기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40년 가을에서부터 1944년 겨울 사이에 창작되었으나 &amp;lt;별&amp;gt;과 &amp;lt;그늘&amp;gt;을 제외하고는 우리말로 쓰인 탓에 해방 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황순원은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고향에 머무르며 해방을 기다렸다.&amp;lt;ref&amp;gt;[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309171544381&amp;amp;mode=view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황순원의 ‘기러기’와 역사에 대한 예의]&amp;lt;/ref&amp;gt; 해당 단편집 서문에서 황순원은 해당 작품들이 해방 전 고향에서 살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기러기]]는 기러기 는 주인공인 ‘쇳네’의 일인칭 독백적 서술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쇳네의 아버지이자 농사꾼인 아버지 호랑이 영감은 데릴 사위를 얻게 된다. 쇳네의 남편은 장인 아래에서 고생하다 타락해 가고, 동시에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고 아기를 얻게 된다. 이후 쇳네의 남편은 장인을 피해 만주로 도망가고, 쇳네의 남편은 만주에서 편지를 보내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홀로 아기를 키우던 쇳네는 편지를 받고는 고민 끝에 만주로 가려는 결심을 굳히며 짝을 찾아가는 외기러기에 대한 묘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이름을 기러기라고 설정한 이유는 만주라는 공간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작가의 심정으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amp;lt;ref&amp;gt;이익성, &amp;quot;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amp;quot; 동아시아문화연구 61 (2015): 109.&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49)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기러기』]] (1950. 명세당) &amp;lt;ref&amp;gt;1940 여름 가장 가까운 친구 원응서(1914~1973)와의 만남이 배경이 된 작품집이다. 1940에서 해방 직전까지를 다룬다. ｢별｣, ｢그늘｣을 제외한 13편은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원응서와의 우정은 ｢마지막 길｣(1974)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아이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민족 전래의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소설의 정제된 기법의 맞닿아 있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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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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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lt;hr /&gt;
&lt;div&gt;[[파일:곡예사1.jpg]]&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ref&amp;gt;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3%A1%EC%98%88%EC%82%AC&amp;diff=13500</id>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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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lt;hr /&gt;
&lt;div&gt;[[파일:곡예사1.jpg]]&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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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곡예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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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곡예사1.jpg]]&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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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개요====&lt;br /&gt;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amp;lt;ref&amp;gt;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amp;lt;거리의 부사&amp;gt;에서 &amp;lt;신들의 주사위&amp;gt;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amp;lt;ref&amp;gt;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amp;lt;/ref&amp;gt;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amp;lt;ref&amp;gt;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amp;lt;/ref&amp;gt;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lt;br /&gt;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amp;lt;ref&amp;gt;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문예≫ (1951) &amp;lt;ref&amp;gt;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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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7T09:54: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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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거리의 부사]]는 황순원이 1937년 7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 유학 중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창작이 활발해졌다. 시적이며 아름답고 압축적인 문장이 특징인 작품이기도 하다. 황순원은 이후 시에서 소설로 창작 저변을 넓힌 이유에 대해 &amp;quot;그때 생각에 시만 가지고는 생각을 다 펴기 힘들어 소설을 시작했다. 아마 내 체질에 맞는 장르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같다. 문학의 근원, 아니 예술의 근원은 시에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써왔다'''.&amp;quot; &amp;lt;ref&amp;gt;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 &amp;quot;시가 없어 뵈는 나 자신에 대해 소설로써 내게도 시가 있다는 확인을 해보인 것은 아닐까.&amp;quot;&amp;lt;ref&amp;gt;｢자기 확인의 길｣&amp;lt;/ref&amp;gt;라고 답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거리의 부사]]는 나라를 잃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동경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제목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부사(副詞)'는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 조선인의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부사는 문장 안에 정확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말의 뜻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선인들 역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제 역할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제목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조선인인 게 들통 나 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승구'''를 비롯하여 구두닦이 품팔이로 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지운''', 셋방도 아닌 구호실에서 살아가는 '''웅''',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거짓말을 일삼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훈세''', 이들 가운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당면한 시대와 가난 속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지’, ‘하수구’ 취급당하는 조선인들의 밑바닥 인생,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물거품’과 같은 불안함이 늘 그들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정처 없는 인물들의 상황이 갖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amp;lt;ref&amp;gt;'문학관TV: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현재형 문장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황순원의 첫 소설 「거리의 부사(副詞)」&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창작≫ 제 3집 (1937.07) &amp;lt;ref&amp;gt;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발간된 동인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단편집』 (1940.08.19.한성도서)&amp;lt;ref&amp;gt;『황순원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후 『늪』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늪』]] (1944)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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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리의 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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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거리의 부사]]는 황순원이 1937년 7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 유학 중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창작이 활발해졌다. 시적이며 아름답고 압축적인 문장이 특징인 작품이기도 하다. 황순원은 이후 시에서 소설로 창작 저변을 넓힌 이유에 대해 &amp;quot;그때 생각에 시만 가지고는 생각을 다 펴기 힘들어 소설을 시작했다. 아마 내 체질에 맞는 장르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같다. 문학의 근원, 아니 예술의 근원은 시에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써왔다'''.&amp;quot; &amp;lt;ref&amp;gt;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 &amp;quot;시가 없어 뵈는 나 자신에 대해 소설로써 내게도 시가 있다는 확인을 해보인 것은 아닐까.&amp;quot;&amp;lt;ref&amp;gt;｢자기 확인의 길｣&amp;lt;/ref&amp;gt;라고 답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거리의 부사]]는 나라를 잃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동경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제목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부사(副詞)'는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 조선인의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부사는 문장 안에 정확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말의 뜻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선인들 역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제 역할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제목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조선인인 게 들통 나 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승구'''를 비롯하여 구두닦이 품팔이로 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지운''', 셋방도 아닌 구호실에서 살아가는 '''웅''',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거짓말을 일삼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훈세''', 이들 가운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당면한 시대와 가난 속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지’, ‘하수구’ 취급당하는 조선인들의 밑바닥 인생,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물거품’과 같은 불안함이 늘 그들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정처 없는 인물들의 상황이 갖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amp;lt;ref&amp;gt;'문학관TV: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현재형 문장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황순원의 첫 소설 「거리의 부사(副詞)」&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창작≫ 제 3집 (1937.07) &amp;lt;ref&amp;gt;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발간된 동인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단편집』 (1940.08.19.한성도서)&amp;lt;ref&amp;gt;『황순원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후 『늪』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늪』]] (1944)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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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리의 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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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거리의 부사]]는 황순원이 1937년 7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 유학 중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창작이 활발해졌다. 시적이며 아름답고 압축적인 문장이 특징인 작품이기도 하다. 황순원은 이후 시에서 소설로 창작 저변을 넓힌 이유에 대해 &amp;quot;그때 생각에 시만 가지고는 생각을 다 펴기 힘들어 소설을 시작했다. 아마 내 체질에 맞는 장르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같다. 문학의 근원, 아니 예술의 근원은 시에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써왔다'''.&amp;quot; &amp;lt;ref&amp;gt;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 &amp;quot;시가 없어 뵈는 나 자신에 대해 소설로써 내게도 시가 있다는 확인을 해보인 것은 아닐까.&amp;quot;&amp;lt;ref&amp;gt;｢자기 확인의 길｣&amp;lt;/ref&amp;gt;라고 답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거리의 부사]]는 나라를 잃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동경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제목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부사(副詞)'는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 조선인의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부사는 문장 안에 정확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말의 뜻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선인들 역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제 역할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제목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조선인인 게 들통 나 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승구'''를 비롯하여 구두닦이 품팔이로 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지운''', 셋방도 아닌 구호실에서 살아가는 '''웅''',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거짓말을 일삼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훈세''', 이들 가운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당면한 시대와 가난 속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지’, ‘하수구’ 취급당하는 조선인들의 밑바닥 인생,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물거품’과 같은 불안함이 늘 그들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정처 없는 인물들의 상황이 갖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amp;lt;ref&amp;gt;'문학관TV: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현재형 문장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황순원의 첫 소설 「거리의 부사(副詞)」&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창작≫ 제 3집 (1937.07) &amp;lt;ref&amp;gt;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발간된 동인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단편집』 (1940.08.19.한성도서)&amp;lt;ref&amp;gt;『황순원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후 『늪』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늪』]] (1944)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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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리의 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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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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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개요====&lt;br /&gt;
[[거리의 부사]]는 황순원이 1937년 7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 유학 중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창작이 활발해졌다. 시적이며 아름답고 압축적인 문장이 특징인 작품이기도 하다. 황순원은 이후 시에서 소설로 창작 저변을 넓힌 이유에 대해 &amp;quot;그때 생각에 시만 가지고는 생각을 다 펴기 힘들어 소설을 시작했다. 아마 내 체질에 맞는 장르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같다. 문학의 근원, 아니 예술의 근원은 시에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써왔다'''.&amp;quot; &amp;lt;ref&amp;gt;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 &amp;quot;시가 없어 뵈는 나 자신에 대해 소설로써 내게도 시가 있다는 확인을 해보인 것은 아닐까.&amp;quot;&amp;lt;ref&amp;gt;｢자기 확인의 길｣&amp;lt;/ref&amp;gt;라고 답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거리의 부사]]는 나라를 잃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동경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제목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부사(副詞)'는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 조선인의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부사는 문장 안에 정확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말의 뜻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선인들 역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제 역할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제목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조선인인 게 들통 나 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승구'''를 비롯하여 구두닦이 품팔이로 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지운''', 셋방도 아닌 구호실에서 살아가는 '''웅''',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거짓말을 일삼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훈세''', 이들 가운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당면한 시대와 가난 속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지’, ‘하수구’ 취급당하는 조선인들의 밑바닥 인생,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물거품’과 같은 불안함이 늘 그들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정처 없는 인물들의 상황이 갖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amp;lt;ref&amp;gt;[문학관TV: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현재형 문장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황순원의 첫 소설 「거리의 부사(副詞)」&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창작≫ 제 3집 (1937.07) &amp;lt;ref&amp;gt;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발간된 동인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단편집』 (1940.08.19.한성도서)&amp;lt;ref&amp;gt;『황순원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후 『늪』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늪』]] (1944)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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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리의 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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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6-17T09:45: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 작품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거리의 부사]]는 황순원이 1937년 7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 유학 중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창작이 활발해졌다. 시적이며 아름답고 압축적인 문장이 특징인 작품이기도 하다. 황순원은 이후 시에서 소설로 창작 저변을 넓힌 이유에 대해 &amp;quot;그때 생각에 시만 가지고는 생각을 다 펴기 힘들어 소설을 시작했다. 아마 내 체질에 맞는 장르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같다. 문학의 근원, 아니 예술의 근원은 시에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써왔다'''.&amp;quot; &amp;lt;ref&amp;gt;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 &amp;quot;시가 없어 뵈는 나 자신에 대해 소설로써 내게도 시가 있다는 확인을 해보인 것은 아닐까.&amp;quot;&amp;lt;ref&amp;gt;｢자기 확인의 길｣&amp;lt;/ref&amp;gt;라고 답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거리의 부사]]는 나라를 잃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동경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제목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부사(副詞)'는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 조선인의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부사는 문장 안에 정확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말의 뜻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선인들 역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제 역할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제목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조선인인 게 들통 나 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승구'''를 비롯하여 구두닦이 품팔이로 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지운''', 셋방도 아닌 구호실에서 살아가는 '''웅''',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거짓말을 일삼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훈세''', 이들 가운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당면한 시대와 가난 속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지’, ‘하수구’ 취급당하는 조선인들의 밑바닥 인생,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물거품’과 같은 불안함이 늘 그들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정처 없는 인물들의 상황이 갖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amp;lt;ref&amp;gt;[문학관TV: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현재형 문장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황순원의 첫 소설 「거리의 부사(副詞)」&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창작≫ 제 3집 (1937.07) &amp;lt;ref&amp;gt;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발간된 동인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단편집』 (1940.08.19.한성도서)&amp;lt;ref&amp;gt;『황순원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후 『늪』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늪』]] (1944)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A%B1%B0%EB%A6%AC%EC%9D%98_%EB%B6%80%EC%82%AC&amp;diff=13484</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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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전동은: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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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개요====&lt;br /&gt;
[[거리의 부사]]는 황순원이 1937년 7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학과 유학 중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창작이 활발해졌다. 시적이며 아름답고 압축적인 문장이 특징인 작품이기도 하다. 황순원은 이후 시에서 소설로 창작 저변을 넓힌 이유에 대해 &amp;quot;그때 생각에 시만 가지고는 생각을 다 펴기 힘들어 소설을 시작했다. 아마 내 체질에 맞는 장르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같다. 문학의 근원, 아니 예술의 근원은 시에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소설 속에 더 넉넉한 시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써왔다'''.&amp;quot; &amp;lt;ref&amp;gt;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amp;lt;/ref&amp;gt;, &amp;quot;시가 없어 뵈는 나 자신에 대해 소설로써 내게도 시가 있다는 확인을 해보인 것은 아닐까.&amp;quot;&amp;lt;ref&amp;gt;｢자기 확인의 길｣&amp;lt;/ref&amp;gt;라고 답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품 특징====&lt;br /&gt;
[[거리의 부사]]는 나라를 잃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동경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이 제목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부사(副詞)'는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 조선인의 처지를 비유한 표현이다.부사는 문장 안에 정확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말의 뜻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선인들 역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을 때 제 역할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제목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조선인인 게 들통 나 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승구를 비롯하여 구두닦이 품팔이로 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지운, 셋방도 아닌 구호실에서 살아가는 웅,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거짓말을 일삼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훈세, 이들 가운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당면한 시대와 가난 속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지’, ‘하수구’ 취급당하는 조선인들의 밑바닥 인생,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물거품’과 같은 불안함이 늘 그들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정처 없는 인물들의 상황이 갖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amp;lt;ref&amp;gt;[문학관TV: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현재형 문장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황순원의 첫 소설 「거리의 부사(副詞)」&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록 · 발표지면====&lt;br /&gt;
≪창작≫ 제 3집 (1937.07) &amp;lt;ref&amp;gt;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발간된 동인지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단편집』 (1940.08.19.한성도서)&amp;lt;ref&amp;gt;『황순원 단편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후 『늪』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amp;lt;/ref&amp;gt; &amp;lt;br/&amp;gt;&lt;br /&gt;
[[단편집 『늪』]] (1944) &amp;lt;br/&amp;gt;&lt;br /&gt;
『황순원 전집 1』 (1992.04.01.문학과 지성사)&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전동은</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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