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red/wiki/api.php?action=feedcontributions&amp;feedformat=atom&amp;user=%EA%B9%80%EB%8B%A4%EC%9D%B8KU</id>
		<title>red - 사용자 기여 [ko]</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red/wiki/api.php?action=feedcontributions&amp;feedformat=atom&amp;user=%EA%B9%80%EB%8B%A4%EC%9D%B8KU"/>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ED%8A%B9%EC%88%98:%EA%B8%B0%EC%97%AC/%EA%B9%80%EB%8B%A4%EC%9D%B8KU"/>
		<updated>2026-05-14T18:48:46Z</updated>
		<subtitle>사용자 기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1</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334</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334"/>
				<updated>2022-06-08T07:00:5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연구 결과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All.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45.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쁨====&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기쁨' return a=====&lt;br /&gt;
[[파일:기쁨.png]]&lt;br /&gt;
&lt;br /&gt;
'''---&amp;gt; 완당전집에서 직접적으로 김정희의 '기쁨'표현이 드러나는 구절은,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부분이다. 김정희는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단전은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본 연구대상 텍스트는 아니지만,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김정희가 어울린 사람들과 공간, 시기에 따라 느낀 감정(관조, 여유로움, 기쁨, 외로움)이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lt;br /&gt;
그 감정과 공간의 특성, 어울린 사람들과의 관계성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었다.&lt;br /&gt;
또한 특정 작품에서 많이 발견되는 시어 종류와 그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의 김정희의 상황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미디어:김다인_발표자료.pdf]]&lt;br /&gt;
&lt;br /&gt;
[[미디어:SemanticDataTable_김다인.xlsx]]&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 및 한 학기 소감'''===&lt;br /&gt;
* 완당전집에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다보니, 시어나 단어 측면에서 분석한 데이터의 양이 부족했던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 생각보다 완당전집에 나타나는 서울 내 공간이 많지 않아 공간 측면에서 유의미한 연결점을 찾지 못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 전문을 보며 공통된 인물과 공통된 서울 내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나의 식견이 좁아 완벽하게 발췌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장소나 인물의 이칭 등) &amp;lt;br/&amp;gt;&lt;br /&gt;
* 서예가로서의 김정희의 업적이 주로 연구된 터라, 김정희의 문학적 자질을 알 수 있는 본 완당전집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턱없이 부족했다. &amp;lt;br/&amp;gt;&lt;br /&gt;
* 쿼리 작성에 미숙했다. 나는 프로그래밍에 굉장히 소질이 없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은 김정희의 연대기순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데, 김정희의 어린시절 - 유명세를 떨쳤던 시절 -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갔던 시절 - 유배 이후의 말년 순서대로 분류하는 작업이 수행된다면, 김정희의 연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상황, 감정, 어울린 인물, 방문한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SemanticDataTable_%EA%B9%80%EB%8B%A4%EC%9D%B8.xlsx&amp;diff=29333</id>
		<title>파일:SemanticDataTable 김다인.xlsx</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SemanticDataTable_%EA%B9%80%EB%8B%A4%EC%9D%B8.xlsx&amp;diff=29333"/>
				<updated>2022-06-08T07:00: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9%80%EB%8B%A4%EC%9D%B8_%EB%B0%9C%ED%91%9C%EC%9E%90%EB%A3%8C.pdf&amp;diff=29332</id>
		<title>파일:김다인 발표자료.pdf</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9%80%EB%8B%A4%EC%9D%B8_%EB%B0%9C%ED%91%9C%EC%9E%90%EB%A3%8C.pdf&amp;diff=29332"/>
				<updated>2022-06-08T06:59: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317</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317"/>
				<updated>2022-06-08T03:37: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연구 결과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All.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45.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쁨====&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기쁨' return a=====&lt;br /&gt;
[[파일:기쁨.png]]&lt;br /&gt;
&lt;br /&gt;
'''---&amp;gt; 완당전집에서 직접적으로 김정희의 '기쁨'표현이 드러나는 구절은,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부분이다. 김정희는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단전은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본 연구대상 텍스트는 아니지만,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김정희가 어울린 사람들과 공간, 시기에 따라 느낀 감정(관조, 여유로움, 기쁨, 외로움)이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lt;br /&gt;
그 감정과 공간의 특성, 어울린 사람들과의 관계성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었다.&lt;br /&gt;
또한 특정 작품에서 많이 발견되는 시어 종류와 그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의 김정희의 상황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 및 한 학기 소감'''===&lt;br /&gt;
* 완당전집에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다보니, 시어나 단어 측면에서 분석한 데이터의 양이 부족했던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 생각보다 완당전집에 나타나는 서울 내 공간이 많지 않아 공간 측면에서 유의미한 연결점을 찾지 못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 전문을 보며 공통된 인물과 공통된 서울 내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나의 식견이 좁아 완벽하게 발췌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장소나 인물의 이칭 등) &amp;lt;br/&amp;gt;&lt;br /&gt;
* 서예가로서의 김정희의 업적이 주로 연구된 터라, 김정희의 문학적 자질을 알 수 있는 본 완당전집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턱없이 부족했다. &amp;lt;br/&amp;gt;&lt;br /&gt;
* 쿼리 작성에 미숙했다. 나는 프로그래밍에 굉장히 소질이 없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은 김정희의 연대기순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데, 김정희의 어린시절 - 유명세를 떨쳤던 시절 -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갔던 시절 - 유배 이후의 말년 순서대로 분류하는 작업이 수행된다면, 김정희의 연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상황, 감정, 어울린 인물, 방문한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312</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312"/>
				<updated>2022-06-08T02:48: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아쉬운 점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All.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45.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쁨====&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기쁨' return a=====&lt;br /&gt;
[[파일:기쁨.png]]&lt;br /&gt;
&lt;br /&gt;
'''---&amp;gt; 완당전집에서 직접적으로 김정희의 '기쁨'표현이 드러나는 구절은,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부분이다. 김정희는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단전은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본 연구대상 텍스트는 아니지만,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관조, 여유로움, 기쁨, 외로움과 같은 감정에 따라 김정희가 어울린 사람들에 대해서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 및 한 학기 소감'''===&lt;br /&gt;
* 완당전집에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다보니, 시어나 단어 측면에서 분석한 데이터의 양이 부족했던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 생각보다 완당전집에 나타나는 서울 내 공간이 많지 않아 공간 측면에서 유의미한 연결점을 찾지 못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 전문을 보며 공통된 인물과 공통된 서울 내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나의 식견이 좁아 완벽하게 발췌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장소나 인물의 이칭 등) &amp;lt;br/&amp;gt;&lt;br /&gt;
* 서예가로서의 김정희의 업적이 주로 연구된 터라, 김정희의 문학적 자질을 알 수 있는 본 완당전집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턱없이 부족했다. &amp;lt;br/&amp;gt;&lt;br /&gt;
* 쿼리 작성에 미숙했다. 나는 프로그래밍에 굉장히 소질이 없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은 김정희의 연대기순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데, 김정희의 어린시절 - 유명세를 떨쳤던 시절 -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갔던 시절 - 유배 이후의 말년 순서대로 분류하는 작업이 수행된다면, 김정희의 연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상황, 감정, 어울린 인물, 방문한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64</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64"/>
				<updated>2022-06-07T23:56: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연구 데이터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All.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45.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쁨====&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기쁨' return a=====&lt;br /&gt;
[[파일:기쁨.png]]&lt;br /&gt;
&lt;br /&gt;
'''---&amp;gt; 완당전집에서 직접적으로 김정희의 '기쁨'표현이 드러나는 구절은,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부분이다. 김정희는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단전은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본 연구대상 텍스트는 아니지만,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관조, 여유로움, 기쁨, 외로움과 같은 감정에 따라 김정희가 어울린 사람들에 대해서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lt;br /&gt;
* 완당전집에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다보니, 시어나 단어 측면에서 분석한 데이터의 양이 부족했던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 생각보다 완당전집에 나타나는 서울 내 공간이 많지 않아 공간 측면에서 유의미한 연결점을 찾지 못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 전문을 보며 공통된 인물과 공통된 서울 내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나의 식견이 좁아 완벽하게 발췌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장소나 인물의 이칭 등) &amp;lt;br/&amp;gt;&lt;br /&gt;
* 서예가로서의 김정희의 업적이 주로 연구된 터라, 김정희의 문학적 자질을 알 수 있는 본 완당전집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턱없이 부족했다. &amp;lt;br/&amp;gt;&lt;br /&gt;
* 쿼리 작성에 미숙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은 김정희의 연대기순으로 서술되어있지 않은데, 김정희의 어린시절 - 유명세를 떨쳤던 시절 -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갔던 시절 - 유배 이후의 말년 순서대로 분류하는 작업이 수행된다면, 김정희의 연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상황, 감정, 어울린 인물, 방문한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45.png&amp;diff=29263</id>
		<title>파일:45.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45.png&amp;diff=29263"/>
				<updated>2022-06-07T23:55: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All.png&amp;diff=29262</id>
		<title>파일:All.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All.png&amp;diff=29262"/>
				<updated>2022-06-07T23:49: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61</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61"/>
				<updated>2022-06-07T23:17: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연구 결과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쁨====&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기쁨' return a=====&lt;br /&gt;
[[파일:기쁨.png]]&lt;br /&gt;
&lt;br /&gt;
'''---&amp;gt; 완당전집에서 직접적으로 김정희의 '기쁨'표현이 드러나는 구절은,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부분이다. 김정희는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단전은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본 연구대상 텍스트는 아니지만,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관조, 여유로움, 기쁨, 외로움과 같은 감정에 따라 김정희가 어울린 사람들에 대해서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lt;br /&gt;
* 완당전집에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다보니, 시어나 단어 측면에서 분석한 데이터의 양이 부족했던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 생각보다 완당전집에 나타나는 서울 내 공간이 많지 않아 공간 측면에서 유의미한 연결점을 찾지 못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 전문을 보며 공통된 인물과 공통된 서울 내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나의 식견이 좁아 완벽하게 발췌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장소나 인물의 이칭 등) &amp;lt;br/&amp;gt;&lt;br /&gt;
* 서예가로서의 김정희의 업적이 주로 연구된 터라, 김정희의 문학적 자질을 알 수 있는 본 완당전집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턱없이 부족했다. &amp;lt;br/&amp;gt;&lt;br /&gt;
* 쿼리 작성에 미숙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은 김정희의 연대기순으로 서술되어있지 않은데, 김정희의 어린시절 - 유명세를 떨쳤던 시절 -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갔던 시절 - 유배 이후의 말년 순서대로 분류하는 작업이 수행된다면, 김정희의 연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상황, 감정, 어울린 인물, 방문한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60</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60"/>
				<updated>2022-06-07T23:04: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아쉬운 점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쁨====&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기쁨' return a=====&lt;br /&gt;
[[파일:기쁨.png]]&lt;br /&gt;
&lt;br /&gt;
'''---&amp;gt; 완당전집에서 직접적으로 김정희의 '기쁨'표현이 드러나는 구절은,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부분이다. 김정희는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단전은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본 연구대상 텍스트는 아니지만,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lt;br /&gt;
* 완당전집에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다보니, 시어나 단어 측면에서 분석한 데이터의 양이 부족했던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 생각보다 완당전집에 나타나는 서울 내 공간이 많지 않아 공간 측면에서 유의미한 연결점을 찾지 못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 전문을 보며 공통된 인물과 공통된 서울 내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나의 식견이 좁아 완벽하게 발췌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장소나 인물의 이칭 등) &amp;lt;br/&amp;gt;&lt;br /&gt;
* 서예가로서의 김정희의 업적이 주로 연구된 터라, 김정희의 문학적 자질을 알 수 있는 본 완당전집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턱없이 부족했다. &amp;lt;br/&amp;gt;&lt;br /&gt;
* 쿼리 작성에 미숙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은 김정희의 연대기순으로 서술되어있지 않은데, 김정희의 어린시절 - 유명세를 떨쳤던 시절 -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갔던 시절 - 유배 이후의 말년 순서대로 분류하는 작업이 수행된다면, 김정희의 연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상황, 감정, 어울린 인물, 방문한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9</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9"/>
				<updated>2022-06-07T23:04: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연구 결과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쁨====&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기쁨' return a=====&lt;br /&gt;
[[파일:기쁨.png]]&lt;br /&gt;
&lt;br /&gt;
'''---&amp;gt; 완당전집에서 직접적으로 김정희의 '기쁨'표현이 드러나는 구절은,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부분이다. 김정희는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단전은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본 연구대상 텍스트는 아니지만,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쉬운 점'''===&lt;br /&gt;
* 완당전집에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다보니, 시어나 단어 측면에서 분석한 데이터의 양이 부족했던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 생각보다 완당전집에 나타나는 서울 내 공간이 많지 않아 공간 측면에서 유의미한 연결점을 찾지 못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 전문을 보며 공통된 인물과 공통된 서울 내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나의 식견이 좁아 완벽하게 발췌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장소나 인물의 이칭 등) &amp;lt;br/&amp;gt;&lt;br /&gt;
* 서예가로서의 김정희의 업적이 주로 연구된 터라, 김정희의 문학적 자질을 알 수 있는 본 완당전집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턱없이 부족했다. &amp;lt;br/&amp;gt;&lt;br /&gt;
* 완당전집은 김정희의 연대기순으로 서술되어있지 않은데, 김정희의 어린시절 - 유명세를 떨쳤던 시절 -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갔던 시절 - 유배 이후의 말년 순서대로 분류하는 작업이 수행된다면, 김정희의 연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상황, 감정, 어울린 인물, 방문한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8</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8"/>
				<updated>2022-06-07T22:56: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쁨====&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기쁨' return a=====&lt;br /&gt;
[[파일:기쁨.png]]&lt;br /&gt;
&lt;br /&gt;
'''---&amp;gt; 완당전집에서 직접적으로 김정희의 '기쁨'표현이 드러나는 구절은,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부분이다. 김정희는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단전은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본 연구대상 텍스트는 아니지만,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8%B0%EC%81%A8.png&amp;diff=29257</id>
		<title>파일:기쁨.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8%B0%EC%81%A8.png&amp;diff=29257"/>
				<updated>2022-06-07T22:54: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6</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6"/>
				<updated>2022-06-07T22:49: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Impression 분석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관조와 여유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관조.png]]&lt;br /&gt;
 &lt;br /&gt;
'''---&amp;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로,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과천시절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까지 김정희의 유배 후 시기를 이르는데, 유배를 기점으로 김정희의 시적 감상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Object) where a.objectType='자연물' return a=====&lt;br /&gt;
&lt;br /&gt;
[[파일:청계산자연.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외로움====&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외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외로움.png]]&lt;br /&gt;
&lt;br /&gt;
'''---&amp;gt; '외로움' 이라는 감정은 그의 애제자 '김석준'과 관련된 산문에 주로 등장한다. 김정희는 김석준을 향해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B2%AD%EA%B3%84%EC%82%B0%EC%9E%90%EC%97%B0.png&amp;diff=29255</id>
		<title>파일:청계산자연.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B2%AD%EA%B3%84%EC%82%B0%EC%9E%90%EC%97%B0.png&amp;diff=29255"/>
				<updated>2022-06-07T22:46: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B2%AD%EA%B3%84%EC%82%B0%EA%B4%80%EC%A1%B0.png&amp;diff=29254</id>
		<title>파일:청계산관조.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B2%AD%EA%B3%84%EC%82%B0%EA%B4%80%EC%A1%B0.png&amp;diff=29254"/>
				<updated>2022-06-07T22:23: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99%B8%EB%A1%9C%EC%9B%80.png&amp;diff=29253</id>
		<title>파일:외로움.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99%B8%EB%A1%9C%EC%9B%80.png&amp;diff=29253"/>
				<updated>2022-06-07T22:19: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2</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2"/>
				<updated>2022-06-07T22:15: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Impression 분석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n:Person) RETURN n LIMIT 25====&lt;br /&gt;
[[파일:황산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경루'라는 누각은 김정희에게 있어 관조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이다. '외로움' 등의 감정표현이 나타나는 김정희의 말년 시와 다르게, 황산, 동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D%99%A9%EC%82%B0%EB%8F%99%EB%A6%AC.png&amp;diff=29251</id>
		<title>파일:황산동리.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D%99%A9%EC%82%B0%EB%8F%99%EB%A6%AC.png&amp;diff=29251"/>
				<updated>2022-06-07T22:12: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0</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50"/>
				<updated>2022-06-07T22:00: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match (a:Paragraph) where a.originText contains '靑冠山' return a====&lt;br /&gt;
[[파일:청계산2.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東籬' return a====&lt;br /&gt;
[[파일:동리.pn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Impression 분석===&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관조적' return a====&lt;br /&gt;
[[파일:관조적.PNG]]&lt;br /&gt;
&lt;br /&gt;
&lt;br /&gt;
====match (a:Impression) where a.name contains '여유로움' return a====&lt;br /&gt;
[[파일:여유.png]]&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관조, 여유로움과 같은 감정 표현은 대체로 '석경루'에서 쓴 운문에서 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97%AC%EC%9C%A0.png&amp;diff=29249</id>
		<title>파일:여유.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97%AC%EC%9C%A0.png&amp;diff=29249"/>
				<updated>2022-06-07T21:58: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4%80%EC%A1%B0%EC%A0%81.PNG&amp;diff=29248</id>
		<title>파일:관조적.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4%80%EC%A1%B0%EC%A0%81.PNG&amp;diff=29248"/>
				<updated>2022-06-07T21:56: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4%80%EC%A1%B0%EC%A0%81.png&amp;diff=29247</id>
		<title>파일:관조적.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4%80%EC%A1%B0%EC%A0%81.png&amp;diff=29247"/>
				<updated>2022-06-07T21:53: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B%8F%99%EB%A6%AC.png&amp;diff=29246</id>
		<title>파일:동리.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B%8F%99%EB%A6%AC.png&amp;diff=29246"/>
				<updated>2022-06-07T21:53: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B2%AD%EA%B3%84%EC%82%B02.png&amp;diff=29245</id>
		<title>파일:청계산2.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B2%AD%EA%B3%84%EC%82%B02.png&amp;diff=29245"/>
				<updated>2022-06-07T21:43: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44</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44"/>
				<updated>2022-06-07T21:12: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인물에 따른 분류===&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파일:해붕.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金君奭準' return a====&lt;br /&gt;
[[파일:김석준.png]]&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9%80%EC%84%9D%EC%A4%80.png&amp;diff=29243</id>
		<title>파일:김석준.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9%80%EC%84%9D%EC%A4%80.png&amp;diff=29243"/>
				<updated>2022-06-07T21:11: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D%95%B4%EB%B6%95.png&amp;diff=29242</id>
		<title>파일:해붕.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D%95%B4%EB%B6%95.png&amp;diff=29242"/>
				<updated>2022-06-07T21:10: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김다인KU님이 파일:해붕.png의 새 판을 올렸습니다&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41</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41"/>
				<updated>2022-06-07T21:08: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연구 데이터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분석 with Query '''==&lt;br /&gt;
===장소에 따른 분류===&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石瓊樓' return a====&lt;br /&gt;
[[파일:석경루.png]]&lt;br /&gt;
&lt;br /&gt;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北屯' return a====&lt;br /&gt;
[[파일:북둔.png]]&lt;br /&gt;
&lt;br /&gt;
3.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水落山' return a&lt;br /&gt;
[[파일:수락산.png]]&lt;br /&gt;
&lt;br /&gt;
4.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冠嶽山' return a&lt;br /&gt;
[[파일:관악산.png]]&lt;br /&gt;
&lt;br /&gt;
5.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重興寺' return a&lt;br /&gt;
[[파일:중흥사.png]]&lt;br /&gt;
&lt;br /&gt;
&lt;br /&gt;
4.  match (a:Work) where a.chiname contains '海鵬' return a&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A4%91%ED%9D%A5%EC%82%AC.png&amp;diff=29240</id>
		<title>파일:중흥사.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A4%91%ED%9D%A5%EC%82%AC.png&amp;diff=29240"/>
				<updated>2022-06-07T21:06: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4%80%EC%95%85%EC%82%B0.png&amp;diff=29239</id>
		<title>파일:관악산.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A%B4%80%EC%95%85%EC%82%B0.png&amp;diff=29239"/>
				<updated>2022-06-07T21:05: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88%98%EB%9D%BD%EC%82%B0.png&amp;diff=29238</id>
		<title>파일:수락산.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88%98%EB%9D%BD%EC%82%B0.png&amp;diff=29238"/>
				<updated>2022-06-07T21:05: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김다인KU님이 파일:수락산.png의 새 판을 올렸습니다&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B%B6%81%EB%91%94.png&amp;diff=29236</id>
		<title>파일:북둔.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B%B6%81%EB%91%94.png&amp;diff=29236"/>
				<updated>2022-06-07T21:04: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김다인KU님이 파일:북둔.png의 새 판을 올렸습니다&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84%9D%EA%B2%BD%EB%A3%A8.png&amp;diff=29235</id>
		<title>파일:석경루.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84%9D%EA%B2%BD%EB%A3%A8.png&amp;diff=29235"/>
				<updated>2022-06-07T21:03: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김다인KU님이 파일:석경루.png의 새 판을 올렸습니다&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D%95%B4%EB%B6%95.png&amp;diff=29231</id>
		<title>파일:해붕.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D%95%B4%EB%B6%95.png&amp;diff=29231"/>
				<updated>2022-06-07T20:43: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88%98%EB%9D%BD%EC%82%B0.png&amp;diff=29230</id>
		<title>파일:수락산.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88%98%EB%9D%BD%EC%82%B0.png&amp;diff=29230"/>
				<updated>2022-06-07T20:43: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B%B6%81%EB%91%94.png&amp;diff=29229</id>
		<title>파일:북둔.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B%B6%81%EB%91%94.png&amp;diff=29229"/>
				<updated>2022-06-07T20:40: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84%9D%EA%B2%BD%EB%A3%A8.png&amp;diff=29228</id>
		<title>파일:석경루.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C%84%9D%EA%B2%BD%EB%A3%A8.png&amp;diff=29228"/>
				<updated>2022-06-07T20:40: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10</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10"/>
				<updated>2022-06-07T19:22: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연구 데이터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파일:n2.png]]&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bout || 각 작품이 특정 공간에 대해 쓰여짐&lt;br /&gt;
|-&lt;br /&gt;
| 의미하다 || means|| 특정 시어의 의미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PartOf || 각 작품이 수함경미련, 단락으로 나뉘어짐 &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FriendsWith || 각 인물이 서로 친구관계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Teacher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선생님임&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IsAStudentOf || 특정 인물이 대상 인물의 학생임&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N2.png&amp;diff=29203</id>
		<title>파일:N2.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N2.png&amp;diff=29203"/>
				<updated>2022-06-07T19:13: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02</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202"/>
				<updated>2022-06-07T18:58: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s)====&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195</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195"/>
				<updated>2022-06-07T18:17: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187</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187"/>
				<updated>2022-06-07T18:10: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파일:n1.png]]&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182</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182"/>
				<updated>2022-06-07T18:06: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관계(Relation)====&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180</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180"/>
				<updated>2022-06-07T18:01: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관계(Relation)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 속성이다 || attributes || 각 인물과 공간의 속성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 || style=&amp;quot;width:70%;&amp;quot;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특정 인물의 생년을 설명함&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_뼈대있는_가문_출신 / 우리나라_최고의_서예가 || 김정희를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젊은시절_가장_가까운_벗 / 35세에_세상을_떠나_오래_사귈_수_없었음||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경연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세도정치의_상징인_김조순의_아들 / 만년에_중풍에_걸려_4년간_실어증으로_고생 || 김정희의 오랜 친구 김유근을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조선_후기의_고승 ||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해붕대사를 설명하는 문장 &lt;br /&gt;
|-&lt;br /&gt;
| 가장_사랑한_제자 / 역관_신분을_활용한_시인 || 김정희의 애제자 김석준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 1817년_제작 / 우리나라_역대_명기행문_모음집 / 완당_동리_황산이_어울린_모습_나타남 || 동리우담(東籬藕談)을 설명하는 문장&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2&amp;diff=29178</id>
		<title>SKLDC(2022)Research2</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2&amp;diff=29178"/>
				<updated>2022-06-07T17:59: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데이터 샘플링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조선시대 성북동의 누정들&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三人臺, 日休堂, 泉石亭, 城樂園, 飮碧亭에 관한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조성진_KU2018|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조성진]]&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2#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2#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2#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2#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2#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2#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본 연구는 성북동의 누정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 공간들에 대해 써진 한문학 텍스트 (에 나오는 개념어, 표현, 사람이나 자연물, 또는 누정의 이름), 관련된 사람이나 이벤트 등을 분석하여, 이 공간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공간의 이면을 발견함으로서, 세 누정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 연구는 분석과 아카이빙을 동시에 진행하나, 둘 중에서는 아카이빙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하였다. 성북동에 있는 누정들을 데이터와 네트워크 맵이라는 매개체로 시각화하고 나타내는 데 주력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한문학 텍스트의 분석의 경우, 누정을 다룬 한문학 텍스트에서 특정 개념어들이 어떤 방식으로 설명되는지 비교하며 분석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누정들의 분석의 경우, 누정들의 속성, 누정들의 목적이나 관련 이벤트 등을 비교 분석하며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 분석하고, 특히 조선시대를 넘어서 남아 있던 누정은 시간과 시대 변화에 따른 누정의 변화 역시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북동의 누정들이라는 공간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아카이빙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사람들이 간편하게 그 공간의 의미와 역사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문학과 데이터라는 두 분야의 융합과 시각화으로서 일반인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하며, 데이터를 통한 분석에도 힘을 써 분석 면에서의 학술적 가치 역시 추구하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이 연구는 성북동에 있는 다섯 누정들 일휴당(日休堂), 천석정(泉石亭), 삼인대(三人臺), 성락원(城樂園),  음벽정(飮碧亭) 과 그에 관련된 텍스트들을 연구 대상으로서 삼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휴당(日休堂)===&lt;br /&gt;
&lt;br /&gt;
다음 작품 (일휴당기, 일휴당기 2, 일휴당기 3)은 모두 똑같은 누정인 일휴당에 대해서 이야기하나, 각자 두는 초점이 다르다. 쉼(休) 이라는 개념어와, 누정의 주인인 용암 김상국에 대한 언급이 모두 나온다. 다만, 같은 개념어를 두고서도 서로 다른 방법을 활용해 설명한다.&lt;br /&gt;
&lt;br /&gt;
===日休堂記===&lt;br /&gt;
&amp;lt;blockquote&amp;gt;華嶽之下, 多淸邃之境, 城北洞其一. 洞有一小亭, 背巖臨流, 卽蓉庵金相國舊庄別業也. 相國扁之曰:‘日休堂’, 相公早歲立揚, 歷踐內外, 位躋將相, 民憂國計, 一念憧憧, 有可休之日乎?&lt;br /&gt;
북한산(華嶽)아래에, 맑고 깊은 경계가 많은데, 성북동城北洞이 그중에 하나이다. 동네에 작은 누정樓亭이 하나 있는데, 큰 바위를 등뒤로 하고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니, 바로 용암蓉庵 김金 상국相國의 옛 전장田庄의 별업別業이다. 상국相國께서 편액을 써서 걸기를 ‘일휴당日休堂’이라 하였는데, 상공相公이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치면서 장상將相의 자리까지 올라, 민생에 대한 걱정과 국가를 위한 계책에 있어 일관되게 마음을 놓지 않으셨으니, 이제는 쉬실 때가 된 것인가?&lt;br /&gt;
坐於草樹招提之裏, 而私意馳騖則身逸而心勞, 處於牒訴倥傯之中, 而公心周徧則身勞而心逸. 身雖逸而心勞則非所謂休也, 身雖勞而心逸則乃所謂休也. 服食器用, 適可而止, 不役於物, 辭受取予, 隨幾而行, 惟當於理, ‘無入而不自得’, 此心常休.&lt;br /&gt;
초수草樹가 초제招提한 속에 앉아 있으면서 사사로운 마음이 분주하게 치달으면, 몸은 편안한데 마음이 수고롭고, 첩소牒訴가 공총倥傯한 중에 처해 있으면서 공변된 마음이 두루 퍼지면, 몸은 수고로운데 마음이 편안하다. 몸은 편안한데 마음이 수고로우면 소위 ‘쉼(休)’이 아니고, 몸은 수고롭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야 이른바 ‘쉼(休)’이라 할 것이다. 의복과 음식과 그릇과 사용하는 물건(服食器用)은 적당한 정도로 그쳐 외물에 휘둘리지 않으시며, 사양하고 받고 취하고 주는 것(辭受取予)은 기미를 따라 행하여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으시니, ‘어떤 상황에서도 자득하지 않음이 없음(無入而不自得)’[15], 이런 마음이야말로 늘 쉼이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일휴당기 1은 쉼(休)  이라는 개념어의 의의에 집중한다. &amp;quot;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득하지 않음이 없음(無入而不自得)&amp;quot; 이라는 말을 사용해 쉼 이 어떤 것인지 설명한다. )&lt;br /&gt;
(또한, 일휴당기 2의 정의와 비슷하게 쉼과 그렇지 않음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하다. 다만 일휴당기 2처럼 동의어（美）나 일휴당기 3처럼 반의어 (作）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동양 고전 (중용)의 말을 끌어다 개념어를 설명했다는 것에 특이점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日休堂記2===&lt;br /&gt;
&amp;lt;blockquote&amp;gt;勞思休情也。有莫之然而爲者。有有所爲而爲者。有不可已而爲者。君子勞心。小人勞力。萬物勞於氣。心無休時。力有時而休。氣有休有不休。希有鳥摶扶搖九萬里而以六月息。鳶傅于天而或止於林樊。川之流不舍晝夜。不至海則不止。其在於人也。農休于秋。行旅休于夕。士之學也。俛焉日有孶孶。其仕也鞠躬盡瘁。皆畢其生而後已。然冥行者有鍾漏之譏。勇退者有江湖之憂。是知所休者力。所不能休者心也。&lt;br /&gt;
수고로우면 쉴 생각을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군자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소인은 힘을 수고롭게 하며, 만물은 기를 수고롭게 한다. 마음은 쉬는 때가 없으나, 힘은 쉬는 때가 있고, 기는 쉴 때가 있고 쉬지 않을 때가 있다. 드물지만 새 중에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가며 6개월을 가서야 쉬는 것이 있다. 솔개는 하늘로 날아오르지만 때로 숲에서 멈추기도 한다. 시냇물이 흐르는 것은 낮과 밤을 쉬지 아니하며, 바다에 이르지 아니하면 멈추지 않는다. (이런 것은 사람에도 있는데,) 농부는 가을에 쉬고, 나그네는 저녁에 쉬고, 선비는 날마다 부지런히 배움에 힘쓰고, 벼슬할 때에는 마음과 몸을 다하여 나랏일에 이바지하다, 그 생을 다 마친 후에야 그친다. 그러하니, 벼슬길에 나가 어두운 길 가는 자들은 벼슬살이를 한다는 비웃음이 있으며, 용감히 물러난 자에게는 강호의 근심이 있으니, 이에 쉬는 것이 힘이고, 쉬지 못하는 것은 마음임을 알겠다.&lt;br /&gt;
&lt;br /&gt;
丞相蓉庵公枚卜數月。力辭去位。退居于東墅舊築。有泉一絃。有峰數笏。有書一束。怡然有出塵之想。以書命章錫曰吾日日休於此。以是名吾堂。子其記之。&lt;br /&gt;
승상 용암공 (金炳始)은 몇 달간 매복(枚卜)되어 있었으나, 애써 사양하고 그 자리를 떠나고 물러서서 동쪽의 옛 별장에서 지냈다. 한 줄기 샘이 있고, 몇 개의 홀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있고, 한 묶음의 책이 있었기에, 기쁘게 세속 세계를 벗어난 생각이 있었으니, 이에 편지글을 써서 나에게 명령하시기를, &amp;quot;내가 날마다 이곳에서 쉬고 있으니, 이것으로서 내 집 이름으로 하고자 하네. 자네가 기문을 써 주게.&amp;quot; 라 하시었다.&lt;br /&gt;
&lt;br /&gt;
嗚呼。公契合明良。身都將相。憂虞之會。百責埤益。盖未甞一日休也。而亦未甞一日忘退也。今几舃少暇而戀主之心。如川流之赴海。憂世之志。如農夫之望秋。顧安能浩然若行旅之得歸乎。況公之不宜休者有五。年未至矣。時方艱矣。用未究矣。主知隆矣。蒼生之望切矣。將恐謝傅之棊局。未了於東山。而君實之手板。蹶然於中夜。心之勞矣。休於何有。&lt;br /&gt;
하아. 공께서는 자신을 알아주시는 어진 임금을 만나서 몸소 장수와 재상을 다 하시어, 근심과 걱정이 모이며 많은 책임이 더해졌으니 대개 일찍이 하루도 쉰 날이 없었지만, 또한 일찍이 하루도 물러날 생각을 잊은 적이 없으셨다. 지금 궤석(정승 벼슬아치가 신는 신발)에서도 잠깐 한가할 때가 있을 때에도 임금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시냇물이 흘러 바다로 향해 가는 것과 같고, 세상에 대해 걱정하는 뜻은 농부가 가을때(추수)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생각컨데 어찌 능히 호연하게 나그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게다가) 공께서 쉬시기가 마땅하지 않은 이유가 다섯이 있다. 나이가 아직 때(물러나야 할 때)에 다다르지 않았고, 시국이 바야흐로 어려우며, 자신의 도를 다 쓰지 못하였으며, 임금님으로부터 대우를 성대하게 받고 계시고, 백성들이 거는 기대가 간절하기 때문이다. 장차 아마도 사부의 바둑이, 동산에서 끝나기도 전에, 군실의 수판이 한밤중에 뛰어 벌떡 일어날 것인데, 마음을 수로곱게 하심에 쉼이 어디 있으시겠는가?&lt;br /&gt;
&lt;br /&gt;
周書曰作德心逸日休。名其在玆乎。公曰否否。公雖不自居。其指有相近者。休之爲美。取義乎安息。心苟安矣。安往而不休。安之如何。物來順應。事去則已。金革百萬。飮水曲肱。隨遇而一致。則是金門黃閣。亦猶綠野平泉。用舍行藏。無所處而不休休矣。用是爲公祝。&lt;br /&gt;
주서에 이르시길, &amp;quot;덕을 베풀고 행하면 마음이 편안해져 나날이 아름다워진다&amp;quot;고 하였으니, 그(이 집의) 이름이 아마도 이 말에서 온 것인가. 공께서는 &amp;quot;아니다, 아니야.&amp;quot;라고 하셨다. 공께서 비록 자처하지는 않으시지만, 그 취지가 서로 가까운 점이 있다. 쉰다 (休)라는 글자가 아름답다(美)라는 의미가 되는 것은, 안식(安息)에서 뜻을 취하여서이다. 마음이 참으로 편안하다면, 어디를 간들 쉬지 못하겠는가? 편안한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물이 다가오면 순응하고, 일이 지나가면 곧 그만두어서, 병사 백만을 거느리는 것과 홀로 물을 마시고 팔뚝을 베고 자는 것을 각각 처하게 되는 경우를 따라 하나의 이치로 실천하면, 이는 즉 금문과 황각이 녹야와 평천 같으리니, 용사행장 (벼슬에 나아가 도를 행하거나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함)에 있어 처하는 곳마다 아름답고 평온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휴당기 2의 전반부는 쉼(休) 이라는 개념어의 의의에 집중하며. 쉬는 때가 있다는 서술에서 '쉬는 것과 쉬지 않는 것'의 대비를 새, 시냇물, 농부, 선비 등의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중반부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쉼의 개념을 이어서, 누정의 주인인 용암 김상국이 지금 쉬시기에 마땅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후반부는 일휴당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며, 아름답다(美)라는 개념어를 등장시켜 이와 같은 뜻임을 설명하며 쉼의 뜻을 제공한다.)&lt;br /&gt;
&lt;br /&gt;
일휴당기2 에서 보이는 독특한 쉼(休) 이라는 개념어의 설명 방식은,  동의어가 되는 개념어(美)를 사용해 설명하며, 쉼과 쉬지 않음의 대비를 명확하게 하여 설명하였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日休堂記3===&lt;br /&gt;
&amp;lt;blockquote&amp;gt;日休堂記3&lt;br /&gt;
&lt;br /&gt;
人之恒言曰:“老則休”. 此以休身而言, 非休其心之謂也. 心之休, 何待乎老, 而苟得其休, 亦可以樂而忘老矣. 傳云:‘仁者壽’, 又云:‘愷悌君子, 求福不回’, 其道未嘗不由於休其心, 而其身之休不休, 固不足論也.&lt;br /&gt;
&lt;br /&gt;
사람들은 늘 말하기를, “늙으면 쉰다”고들 한다. 그것은 몸을 쉬는 것에 대한 말이지 마음을 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쉼이 어찌 늙음을 기다리겠으며, 진실로 그 쉼을 얻으면 또한 즐기면서 늙음을 잊어버릴 수 있다. 전하는 말로, ‘인자한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고, 또 『시경』에 이르기를 ‘용모와 기상이 화평하고 단아한 군자는, 복을 구하는 것이 간사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그 도는 일찍이 마음을 쉬게 하는 데서 연유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그 몸의 쉼과 쉬지 않음은 진실로 (도를) 논하기에 부족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蓉庵傅相於東山別墅, 新搆小堂, 顔之以日休. 或疑之曰:“今吾君待公而爲政, 吾民恃公而爲生, 使公而年已至, 尙不可以言休, 况年未至乎? 且以公體國之誠, 處調元之地, 宜其急病讓夷, 以光世篤之業, 而乃反謙退不居, 以休爲志, 甚非朝野所望於公者也.”&lt;br /&gt;
&lt;br /&gt;
재상 용암(蓉庵) 김병시는 동쪽 산의 별서에 작은 집을 새로 짓고, 그 이름을 ‘일휴(日休)’라고 하였다. 혹자는 의구심이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lt;br /&gt;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공을 의지해 정사를 펼치고 계시며, 우리나라 백성들은 공에게 기대어 살아가기에, 공이 연세가 이미 많음에도 오히려 쉰다는 말을 못하게 하였으니, 하물며 연세가 지극하지 않았을 때에라야?&lt;br /&gt;
장차 나라를 제 몸처럼 여기는 정성에 공변됨과 국정을 주관하는 재상의 위치에 처함으로, 의당 그 어려운 일을 해소하고 쉬운 일은 남에게 양보하여 대대로 두터운 업적을 빛냈음에도, 곧 도리어 겸손히 물러나 거하지 않고 쉬는 것으로 그 뜻을 삼았으니, 조야(朝野)가 공에게 바라는 바는 절대 아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昌煕曰:&lt;br /&gt;
“否. 今夫晝而作者夕而休, 春而作者冬而休, 作與休相爲循環. 其作也勞, 其休也怠, 而不得其節, 皆凡民也. 賢士大夫亦多不能免焉, 惟公則不然, 其平居無日而不休, 亦無日而不作也. 進思贊襄, 而自守恬靜, 故有至淸不撓之德, 退思調養, 而常存憂愛, 故有至誠無息之功. 凡所以彌綸默運, 匡濟時艱者, 其爲術莫不本之於作與休爲一致也. 是以銓衡絲綸金穀卒乘之泛應曲當, 而未嘗爲勞, 則公雖作焉而其休固自在也. 圖書琴尊園林泉石之隨境取適, 而亦不足爲佚, 則公雖休焉而其作尙未已也. 且公之優閒於此堂, 晩節淸福之所由完也, 可以模楷一世而坐鎭雅俗矣. 公之安慮於此堂, 嘉猷碩畫之所由得也, 可以膏澤斯民而對揚聖化矣. 噫, 子之謂公志已决於釋負而已者, 淺之乎知公之日休也夫。&lt;br /&gt;
&lt;br /&gt;
  나(창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lt;br /&gt;
“그렇지 않다. 지금 대저 낮에 일하는 자는 저녁이 되어 쉬고, 봄에 일하는 자는 겨울이 되어 쉬니, 무언가를 하는 것과 쉬는 것은 서로 순환한다. 일함은 수고로움이고 쉼은 게으름인데, 그 알맞은 정도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평범한 인민들이다. 현사와 대부 역시 대부분 그것을 면치 못하는데, 오직 공께서는 그렇지 않아서, 그 평소 거처하심에 쉬지 않으시는 날이 없으며, 또한 일하지 않으시는 날이 없다. 조정에 나아가서는 임금을 보좌함에 여념 없으면서도 평온함과 고요함으로 스스로를 지켰기에, 지극히 맑고 흔들리지 않는 덕이 있었으며, 조정에서 물러나서는 자신의 몸을 보살피는 데 여념 없으면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늘 품었으므로, 끊임없는 지극한 정성과 쉼 없는  공이 있다. 무릇 미륜(彌綸)하고 묵운(默運)하여 세상의 어려움을 바로잡고 구제하는 것은, 그 방술됨이 일함과 쉼이 일치가 되는 것으로부터 근본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조정에 계시면서) 이조(銓衡)와 승정원(絲綸)과 호조(金穀)와 병조(卒乘)의 업무에 널리 응하고 세세히 잘 대처하시면서도 일찍이 수고롭게 여기지 않으셨으니, 공께서 비록 일을 하시는 와중에도 그 쉼은 참으로 자유자재했던 것이다. (조정에서 나와) 도서(圖書)와 금준(琴尊)과 원림(園林)과 천석(泉石) 사이에서 선경을 따라 유유자적하시면서도 또한 편안히 여기시기에 충분치 않았으니, 공께서 비록 쉬시는 와중에도 그 일함이 오히려 그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장차 공께서 이 집에서 한가로이 지내심은 만년의 청복이 완연할 연유라, 당세의 모범으로 가만히 앉아서 아속을 진정 시키실만 하다. 공께서 이 집에 편안히 계시면서도 세속을 걱정하심은 훌륭한 계책을 터득하실 연유라, 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려 성상의 교화를 널리 알리실만 하다. 아! 그대가 공의 뜻이 의정(議政)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이미 결정된 것처럼 이야기한 것은, 공이 의도하신 ‘일휴(日休)’의 뜻을 겉핥기 정도로 아는 것일 뿐이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일휴당기 3은 쉼(休)의 의미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서술한다. 개념어를 설명할 때, 일휴당기 3은 독특하게 반의어(作)를 제공하여 설명한다. 일하다(作)라는 글자와의 대비를 통해 그 두 개가 서로 순환되는 것(作與休相爲循環)이라고 서술하며 쉼의 의미를 더욱 이야기한다. &lt;br /&gt;
&lt;br /&gt;
일휴당기2와는 설명의 유사점이 있는데, 일휴당기 2의 첫 번째 단락과 일휴당기 3에서 쉼(休) 개념어를 설명할 때, 쉼과 일함의 대비를 한다는 면에서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다. 다만, 설명을 위해 활용하는 방법과, 쉼이라는 개념어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서 차이가 있다. &lt;br /&gt;
&lt;br /&gt;
일휴당기 2는 김병시가 쉬기 마땅치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쉼(休) 개념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쉬는 때',  '쉬기에 적합한 때' 와 그렇지 않은 때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쉼과 쉬지 않음(일함)을 분리된 개념으로 생각한다.  쉬는 '때' 나 그 때가 되는 조건에 집중한다는 것은 일휴당기 3의 두 번째 단락에서 인용된 사람의 주장에도 비슷하게 나타나 있다. 그 반대로, 일휴당기 3은 반의어（作）를 제공함으로써 쉼(休) 이라는 개념어의 의미 자체에 집중한다. 쉼과 일함이 대비가 되며 서로 순환하는 것은 맞으나, 서로 완벽히 떨어진 것은 아니며 알맞은 정도를 얻는다면(得其節)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그 예시로서 김병시를 든다(其平居無日而不休, 亦無日而不作也). 그렇게 하며, 두 번째 단락에서 이야기하는 개념어의 정의를 반박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城北洞泉石亭 幷引===&lt;br /&gt;
&amp;lt;blockquote&amp;gt;城北洞泉石亭 幷引 &lt;br /&gt;
&lt;br /&gt;
城北洞泉石亭, 謁容齋尹議政告退. 相公挽執携筇, 同翫泉石之勝, 指點景槩. 亭之北扁萬松窩, 水閣曰不盈閣. 閣之前, 大石平舖, 可十餘間. 石之南, 詎巖特立, 高數丈, 廣可六七間. 巖之上, 老松二株大可數抱, 長亦數十丈, 枝幹廣達, 全覆石面. 杜鵑躑躅之屬, 雜錯於萬松之間, 閣下溪流, 水通石罅. 鏦錚之韻, 與松籟合奏笙簧琵琶之聲, 眞別洞天也。&lt;br /&gt;
&lt;br /&gt;
성북동(城北洞) 천석정(泉石亭)에서 조정에서 물러난 용재(容齋) 윤 의정(尹議政, 윤용선)을 배알하였다. 상공은 지팡이를 짚는 것을 만류하고, 전원의 승경을 함께 완상하며 그림 같은 경치를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정자의 북쪽 편액은 만송와(萬松窩)이고, 물가의 누각은 불영각(不盈閣)이라 이름 하였다. 누각 앞에는 큰 돌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데, 10여 칸 즈음 된다. 돌 남쪽에는 얼마큼의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높이는 몇 장이며 넓이는 6~7칸 즈음 된다. 바위 위에는 늙은 소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크기가 몇 아름은 되고 길이도 수십 장은 되며, 가지와 줄기가 넓게 뻗어 돌 표면을 모조리 덮고 있다. 두견과 척촉 따위가 온갖 소나무 사이에 섞여 있고, 누각 아래로는 시내가 흐르며 물은 돌 틈으로 통한다. 잘그랑 잘그랑대는 울림과 함께 소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생황과 비파와 합주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별세계 그 자체다.&lt;br /&gt;
&lt;br /&gt;
城闉咫尺闢桃源。丞相菟裘爰處爰。&lt;br /&gt;
一道飛泉松底出。千羣啼鳥石頭喧。&lt;br /&gt;
桑楡縱趁懸車限。葵藿猶應戀闕恩。&lt;br /&gt;
爲賀玆區遭遇盛。偏因卜築世知尊。&lt;br /&gt;
&lt;br /&gt;
성곽의 지척에 무릉도원이 열렸으니, 승상이 은거해 여기 산다네&lt;br /&gt;
한 줄기 폭포아래 소나무 돋아났는데, 뭇 모여 우는 새들은 돌머리에 지저귀네 &lt;br /&gt;
뽕나무와 느릅나무 현거(懸車)의 경계를 좇는데, 해바라기 오히려 연궐(戀闕)의 은덕에 응하네&lt;br /&gt;
(*해석: 늙어버린 몸뚱이는 은거하길 바라는데, 임금님 향한 마음은 대궐로 향하도록 하네)&lt;br /&gt;
이 터를 만나 성대해질 것을 경하드리니, 여기 집을 지었기에 세상이 높일 줄 알게 되리라.&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題三人臺 幷序===&lt;br /&gt;
&amp;lt;blockquote&amp;gt;題三人臺 幷序 &lt;br /&gt;
&lt;br /&gt;
臺在城北洞品石山房之後, 壁鐫三人臺三字, 傍有辛亥二字. 傳說正廟時有新進學士三人, 讀書于此, 各欲占宅於此, 末乃以三人名臺而刻之云. 園今爲宜石金尙書別業. 壬戌秋。宜石公邀海藏及冕, 徜徉泉石之間, 冕率題焉.&lt;br /&gt;
&lt;br /&gt;
삼인대(三人臺)는 성북동 품석산방 뒤에 있는데, 벽에 ‘삼인대(三人臺)’ 세 글자를 새기고, 옆에는 ‘신해(辛亥, 1791)’ 두 글자를 새겨 놓았다. 전하는 말로는, 정조 임금 때 새로 벼슬에 오른 학사 세 사람이 여기서 글을 읽다가 각자 이곳에 집을 마련하고 싶어 했는데, 나중에는 세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대(臺)로 삼아 새겼다고 한다. 지금은 의석(宜石) 김 상서(金尙書, 김응근)의 별업이다. 임술년(1862) 가을, 의석공이 해장(海藏, 신석우)과 나(조면호)를 맞이해 이곳 전원에서 노닐었는데, 내가 삼인대로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lt;br /&gt;
&lt;br /&gt;
近廓塵無到, 入山境愈新.&lt;br /&gt;
主翁與海叟, 對我成三人.&lt;br /&gt;
&lt;br /&gt;
가까이에 먼지조차 닿지 않는데, 산 속이라 경계가 더욱 새롭구나.&lt;br /&gt;
주인옹과 해장옹 그리고, 나까지 마주하니 딱 세 사람이 되었구나.&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성락원 (城樂園)===&lt;br /&gt;
&lt;br /&gt;
성락원은 이름부터 어떻게 불러야 할 지 주장이 다양해, 다양한 이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lt;br /&gt;
&lt;br /&gt;
이칭: 서울 성북동 별서 (이 이름으로 명승으로 재지정됨)&lt;br /&gt;
1921년에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지형도에  ‘이강공별저(李堈公別邸)라고 표기되어 있음, 이해경 선생(이강공의 5녀)의 저서에 '성북동별장' , '이강공별저' 라고 불렀다고 함  &lt;br /&gt;
춘파유고에는 쌍괴당(雙槐堂), 쌍괴누옥(雙槐陋屋), 쌍괴실(雙槐室)이라고 언급이 됨&lt;br /&gt;
&lt;br /&gt;
&lt;br /&gt;
조선시대의 정원이며, 경관이 아름답다. &lt;br /&gt;
&lt;br /&gt;
안에 시냇물이 있는데, 이 시냇물을 기준으로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뉘어진다. &lt;br /&gt;
&lt;br /&gt;
입구(앞뜰)에는 두 줄기의 계곡이 있는데, 앞뜰에서 그 두 줄기가 하나로 모이며, 그 계곡의 암벽에는 雙流洞天(쌍류동천)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lt;br /&gt;
&lt;br /&gt;
그 안에는 안뜰{내원(內園)} 이 있고, 안뜰은 용두가산(龍頭假山)이 감싸고 있는데, 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산이며 안뜰을 감싸서 깊이를 주기 위한 목적이며, 오래된 각종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숲이 울창하다. 다만, 1921년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지형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아, 그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뜰에는 계곡의 암벽 아래에 작은 소(沼)(웅덩이)를 조성하였는데, 이름은 영벽지(影碧池)이다. 영벽지 안에는 괴석 하나가 물 안에 있다. 그 주위의 바위에는 청산일조(靑山壹條), 장외가(檣外家),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 등 글씨가 새겨져 있다. 16미터*12미터 크기에 깊이는 약 1.5미터이며, 북쪽 암벽에는 물이 흘러내리는데, 그곳에 수로를 인공적으로 파고 3단 폭포를 만들었다. 폭포의 물들은 다 석구(돌절구)로 떨어지는데, 밑 폭포의 낙차가 제일 크다. &lt;br /&gt;
&lt;br /&gt;
이 폭포 옆의 바위에는 전서체로 ‘靑山壹條(청산일조)’ 라고 새겨져 있으며, 웅덩이의 서쪽에 있는 암벽에는 ‘檣氷家 阮堂(장빙가 완당)’이라고 해서체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김정희(金正喜)가 쓴 것으로, 장빙가란 겨울에 고드름이 매달린 집이라는 뜻이다. 그 암벽 위에 “影碧池 海生(영벽지 해생)”, “百泉會不流 爲沼碧闌頭 自吾得此水 少作江湖遊 癸卯五月 孫文鶴書(온갖 샘물을 모아 고이게 하니 푸른 난간머리에 소가 되었네. 내가 이 물을 얻은 뒤부터 약간의 강호놀이를 하네. 계묘(1843년, 헌종9년) 5월 손문학 씀).” 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해생(海生)이라는 호를 가진 사람(황윤명)이 쓴 것이다. 그 바로 위에는  “明月松間照 靑泉石上流 靑山數疊 吾愛吾盧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에 비치고 맑은 샘물은 돌 위에 흐르며 푸른 산이 몇 겹 싸여 나는 내 농막을 사랑한다).” 이라고 새겨져 있다. &lt;br /&gt;
&lt;br /&gt;
영벽지의 동쪽 언덕에는 오래된 집 한 채가 남아 있는데, 농막 (농지 옆에 건설하는 작은 주택)의 본채이며,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이 살았다. &lt;br /&gt;
&lt;br /&gt;
이 집으로부터, 숲 속에 돌계단이 하나 있는데, 그 계단을 올라가면 또 하나의 못이 있다. 그 못의 동쪽에는 최근에 지어진 ‘송석정(松石亭)’이라는 누각이 있으며, 못의 북쪽의 시냇물 곁에는 ‘松石(송석)’ 이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못 바위 사이에 큰 소나무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못으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중간에 작은 폭포들을 이루며,  그 계곡물의 상류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집수하는 목적으로 못이 하나 더 있다. 성락원 안에는 이렇게 총 3개의 못이 있으며,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활용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성락원은 주로 경승지로 오랫동안 이용되었다. 별서로 조성한 것은 조선 고종 때의 내관인 황윤명(黃允明, 1844∼1916)이며, 육교시사(六橋詩社)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하고,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가 피난을 오기도 하며, 의친왕 이강(李堈, 1877~1955) 이 별궁으로도 사용하였다. 다만, 1927년 화재로 상당 부분이 손실되어서 현재는 그 별궁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모습은 1961년 사실상 재탄생된 정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명승 제35호였던 성락원을 지정 해제하고, 서울 성북동 별서라는 새 이름으로 재지정이 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lt;br /&gt;
&lt;br /&gt;
성락원 영벽지 주위에 새겨져 있는 글씨이자, 춘파유고에 수록된 시&lt;br /&gt;
&lt;br /&gt;
百川會不流, 爲沼碧欄頭.&lt;br /&gt;
&lt;br /&gt;
自吾得此水, 少作江湖遊.&lt;br /&gt;
&lt;br /&gt;
&lt;br /&gt;
온 시냇물 모아 흐르지 못하게 막고서, 연못 만들어 푸른 난간 둘렀어라.&lt;br /&gt;
&lt;br /&gt;
나는 이 연못 생긴 후로, 강호 유람 발길 뜸해졌네.&lt;br /&gt;
&lt;br /&gt;
===='''북저유경 이수(北渚幽景 二首)'''====&lt;br /&gt;
&lt;br /&gt;
一首&lt;br /&gt;
{{OriginTrans4&lt;br /&gt;
|원문1=洛陽城北卜新居, 十里無多五里餘&lt;br /&gt;
|번역1=(번역문 입력)&lt;br /&gt;
|원문2=林壑西南朝暮雨, 樓臺左右古今書&lt;br /&gt;
|번역2=(번역문 입력)&lt;br /&gt;
|원문3=舖石溪邊通路斷, 移花檻外補窓虛&lt;br /&gt;
|번역3=(번역문 입력)&lt;br /&gt;
|원문4=莫道名園無定主, 至今珍重愛吾廬&lt;br /&gt;
|번역4=(번역문 입력)&lt;br /&gt;
}}&lt;br /&gt;
二首&lt;br /&gt;
{{OriginTrans4&lt;br /&gt;
|원문1=高峯萬丈正巖巖, 陋室深園遠世凡&lt;br /&gt;
|번역1=(번역문 입력)&lt;br /&gt;
|원문2=斷路難容遊客馬, 小溪不受釣郞帆&lt;br /&gt;
|번역2=(번역문 입력)&lt;br /&gt;
|원문3=十年拖几機中隱, 半世蒙恩口裡啣&lt;br /&gt;
|번역3=(번역문 입력)&lt;br /&gt;
|원문4=出處敢忘明主戀, 秋來多感淚盈衫&lt;br /&gt;
|번역4=(번역문 입력)&lt;br /&gt;
}}&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한거부회 삼수(閒居賦懷 三首)'''====&lt;br /&gt;
三首&lt;br /&gt;
{{OriginTrans4&lt;br /&gt;
|원문1=三可樓前數曲溪, 茶煙水氣暗相携&lt;br /&gt;
|번역1=삼가루(三可樓)  앞 여러 갈래 굽은 물줄기, 차 끓이는 증기와 수면 아지랑이가 몰래 서로를 이끄네&lt;br /&gt;
|원문2=秋風自動籬花落, 谷霧初生岸樹低&lt;br /&gt;
|번역2=(번역문 입력)&lt;br /&gt;
|원문3=日晏鳴蟬無定所, 林深幽鳥不移棲&lt;br /&gt;
|번역3=(번역문 입력)&lt;br /&gt;
|원문4=心香一炷悠悠夢, 半在分明半在迷&lt;br /&gt;
|번역4=(번역문 입력)&lt;br /&gt;
}}&lt;br /&gt;
&lt;br /&gt;
===음벽정(飮碧亭)===&lt;br /&gt;
https://archive.sb.go.kr/isbcc/home/u/story/view/849.do&lt;br /&gt;
&lt;br /&gt;
민영환(閔泳煥) (1861~ 1905)의 별장이다. 민영환은 19세기 말부터 관료로 활동하였으며, 명성황후의 조카이며,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자결한 순국지사이다. 음벽정은 민영환이 많은 명사들과 교류하는 데 쓰였으며, 당시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도 음벽정을 방문하였다. 위안스카이는 민영환과의 교류뿐 아니라 외교 또한 목적으로 음벽정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위안스카이는 민영환 사망 후 음벽정에 다시 찾아와 추도시를 읊기도 하였다. 민영환 사망 후, 그의 동생이 소유하다가 1931년 일본인(五味安太郞)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후 1934년 한택수(韓澤洙)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그때부터(1935년) 요정으로 운영되었는데,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많았다.(1936년 8월 6일, 성북동 주민들이 음벽정의 요정 운영에 대해 진정 접수) 1939년 화재가 있었으나 한옥 건물 한 채가 타서 없어지는 데 그쳤다. 한국전쟁 이후, 온돌불을 너무 과하게 때다 화재가 나서 없어졌고, 현재는 연화사라는 사찰이 그 터에 있다. &lt;br /&gt;
&lt;br /&gt;
사방이 숲과 나무로 둘려 있으며, 99칸 양옥과 한옥이 두루 지어진 곳이다. 마당과 정원에는 정원석과 괴석이 여러 개 놓여 있고, 숲에서 내려오는 물로 연못도 있었다고 한다. 안의 언덕 쪽에는 양옥들이 지여 있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이름의 유래는 푸르름(碧)을 마시는(飮) 누정이라고 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다음의 자료는 음벽정에 관한 근대 신문기사를 모아 추린 것이다. &lt;br /&gt;
&lt;br /&gt;
다음 기사들에서 눈에 띄는 포인트를 하나 꼽자면 음벽정의 탈바꿈이다. 음벽정은 본디 고위 관료이자 순국지사 민영환의 별장으로, 정치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방문하며 국가의 정치와 외교를 논하는 곳이었으나, 1935년 이후 요정으로 운영되면서 깨끗하지 못하고 주변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문란한 요리점으로 전락하였다. 소유권이 이전되며 음벽정의 목적 자체가 바뀐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 이러한 음벽정의 모습은, 벼슬아치들이 드나들며 고상한 취미를 즐기던 성북구에 있는 다른 누정들과도 현격한 대비를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의 시대상 역시 보여 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음벽정입구에서 자동차 전복곡예====&lt;br /&gt;
&amp;lt;blockquote&amp;gt;조선일보 1937.04.27&lt;br /&gt;
&lt;br /&gt;
닷도산과 충돌하고 얼떨떨해 땅재주, 운전수승객은 안면에 찰과상&lt;br /&gt;
&lt;br /&gt;
이십륙일 오후령시이십분경에 조선료리점 음벽정 압 성북정 팔십번지 압길에서 경화탁시운전수 모석천이가 김윤석과 긔생하나를 태우고 전긔음벽정으로 올러가든 경제일천삼백삼십질호 '닷도산' 과 음벽정에 손님을 태여다주고 도라오든 안국탁시 경제구천이백팔십삼호가 정면충돌하야 닷도산이 대파하엿다 격동과유리조각에 전긔모석천과 승객정능리 김윤석은 안면기타에 중상을 입엇음으로 민대옷은 곳 자기차에 태여가지고 병원으로기든길애 성북정륙십번지의 삼십사호서 수옥 음식점압급 '카-부'에서 '부레-기'에 고장이생겨 그냥놉히두 '메-타' 가량되는개천으로 뛰여들이가 자동차는 한번뒤처 그냥 개천바닥에 떠러젓스나 기적적으로 전기부상자와 운전수는 더 부상은 안되엇스며 자동차도 그리 손상은되지안헛다 부상자두사람은 종로삼정목 정구충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바덧스며 삼주일가량의 중상이라고하는 근래에 보기드문 진사고이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음벽정이 조선요리점으로 바뀐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사이다. 음벽정을 목적지로 하고 가던 택시 안에 기생이 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며, 간접적으로 음벽정이 기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음을 알려줌으로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요리점이 아닌, 기생과 함께 노는 요리점임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음벽정에 화재 일동전소====&lt;br /&gt;
&amp;lt;blockquote&amp;gt;조선일보 1939.02.08&lt;br /&gt;
&lt;br /&gt;
칠일오전한시 부내성복정(성북정) 백십삼번지 조선요리점 음벽정 득설온돌방에서 불이나서 삽시간에 한동을 전소 한시반경에 진화되였는데 손해는약천원 원인은온돌에 불을너무때여 장판에불이단겨 이불에불이 부튼때문인데 다행히사람은상하지안헛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제 시대, 음벽정의 주소가 성북정 백십삼번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곳에는 오늘날 연화사라는 사찰이 있다.  또, 음벽정의 역사에서 굵직한 사건 중 하나가 화재 사건인데, 해당 사건을 보도한 기사이다. )&lt;br /&gt;
&lt;br /&gt;
====기행 반일청유====&lt;br /&gt;
&amp;lt;blockquote&amp;gt;조선일보 1940.05.20&lt;br /&gt;
(전략)&lt;br /&gt;
&lt;br /&gt;
목교석교도건느고 큰길을 돌진하다. 자동차의 고함에 위협도 당하며 산복에 부튼 별장도 우르로고 석와로 까올린 문화주택도 사오초의 시선을 보내주고 음벽정이란 요리집이 저건너보인다.  음벽정이란 무슨뜻인가 오-라 산간에잇는 정이니 술잔에 파동하는 녹수의 영상을 마시는 고 음벽정인 모양이록군- 그름 봄꼿필때는 음홍정, 가을단풍에는 음란정, 겨을눈에는 음백정이라, 인연먼과리집 옥호연구는 무슨용이냐? 후내객에게 위양하겟다고 길거리에던저두고 다시한번 바라보니 호객승자동차일태 스르륵 전입체 망할것... 여프로 굽어올으니 잔디밧이다. 소슨 노송은 몃번의 한열과 풍상을 격것기에 늙다늙다 못해 말럿다.  &lt;br /&gt;
&lt;br /&gt;
(후략)&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음벽정의 이름을 바꿔 가며 서술해, 음벽정 누정 이름의 뜻 (푸르름을 마시는 누정) 에 대해 알 수 있는 기사이다. )&lt;br /&gt;
&lt;br /&gt;
====동경의 만주는 갓스나 숙원치부는 춘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조선일보 1937.04.10&lt;br /&gt;
&lt;br /&gt;
주범류정호는 경기도 련천군 출생으로 부내제기정 일백 사십질번지에서량친을모시고 오막사리살림을하고잇든독신청년이다&lt;br /&gt;
&lt;br /&gt;
(중략)&lt;br /&gt;
&lt;br /&gt;
지난삼월 이십구일 오후류정호는 조선은행에서 현금이만원을찻자 당연히 대판본사에 부처야할 '송금전보'를 안치고저녁에회사에도라와서는 돈을 본사에 보낸것처럼 보이고 집으로도라갓다 &lt;br /&gt;
&lt;br /&gt;
(중략)&lt;br /&gt;
&lt;br /&gt;
이튼날인 삼십일밤에는 일즉부터친교가잇든 천연정질식륙번치의 고중락 신설정팔십일번지에 사는 경성부청고원 조원방 욱정일정목에사는 경성토목협회 사무원 최창렬 아현정일백오십오번지의 려정균등 네명을불르고 동소문외 음벽정으로나가서 호유한다음 다시종로락원회관에가서 호음을하며 동모들에게 자신의범행을공개한다음 송별연을크게열엇다 &lt;br /&gt;
&lt;br /&gt;
(후략)&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에 있는 다른 누정들과의 주된 차별점을 보여 주는 기사이자, 요정(요리점)으로의 전환이 음벽정에 어떻게 지대한 전환을 했는지 설명해 준다. 음벽정은 민영환의 별장이었을 때, 위안스카이 등 굵직한 정치가들을 만나 정치를 하며 크고 유명한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하는 공간이었다. 이는 성북동에 있던 다른 누정들도 비슷하여서, 주로 높은 벼슬을 하던 큰 사람이나 벼슬아치들이 자주 방문하였다. 다만 요정으로 전환된 이후의 음벽정은 호유(호화롭게 놈)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며,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lt;br /&gt;
&lt;br /&gt;
====세리대독직사건====&lt;br /&gt;
&amp;lt;blockquote&amp;gt;조선일보 1940.06.02&lt;br /&gt;
&lt;br /&gt;
장안의양조업자들로 감시감독검사할입장에 잇는몸으로써도리어 그입장에잇슴을 기화로이들로부터 향응과뇌물을밧고 그들의 편리를보아준 전경성세무서간세꽈장 산전관삼을 비롯하여 동서속과 고원등구명과 양조업자 이십육명에대한대독직사건은 작년 경기도 경참부에 적발되어 경성지방법원검사국에 송국된후 동법원예심에 회부되어이래 엽견예심관사의손에 심리를 바다오던바 사건적발일년만인 이지음취조가끗낫스므로 일일 증수회와 증빙변조와 동교사의 죄명아래 삼십오명 전부를 유조;로결정하여 동법원공판에 회부되엇다&lt;br /&gt;
&lt;br /&gt;
(중략)&lt;br /&gt;
&lt;br /&gt;
부내여러곳의 양조업자들이 자기들의 편리를보아달라는 의미에서청하는 유흥장소에다니며 향음을밧고 또뇌물을바다먹은것인데 향음의회수는 소화십년이래 작년사건이 적발되기까지 사년남아에 전후약삼백회에 걸처서 주로부내 조선요리집 명월관, 천향원, 음벽정등에서 향음을바닷고 또 중원과 연말에는 양조업자들로부터 보내오는 적지안흔백화점상품권등을 바다온것이다&lt;br /&gt;
&lt;br /&gt;
(후략)&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이 역시 음벽정이 옛 민영환의 별장이었다가 요리점으로 바뀌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료이다. 한때 국가의 외교를 하는 장소였던 음벽정이, 부패한 사람들이 향응과 뇌물을 받으러 다니는 고급 요리집으로 전락하였다. )&lt;br /&gt;
&lt;br /&gt;
====경성신명승순방 완 선농단피적전====&lt;br /&gt;
&amp;lt;blockquote&amp;gt;동아일보 1936.04.05&lt;br /&gt;
&lt;br /&gt;
(전략)&lt;br /&gt;
&lt;br /&gt;
오늘은 동쪽으로나서서 새로경성의 명승지노릇을하게된유서깊은곳을찾기로되엇다. &lt;br /&gt;
&lt;br /&gt;
도무포의 유하정, 동서빙고, 사한단, 성북정의선잠단, 음병정(음벽정), 돈암정의활인서 등이 명승고적이안됨은아니로되 그중에도 자미스럽고의미잇는것으로 추린것이 지금찾아든 용두정 선동단이다. &lt;br /&gt;
&lt;br /&gt;
(후략)&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기사는 음벽정을 중심으로 한 기사는 아니되, 경성의 명승지 노릇을 하는 명승고적으로서 음벽정이 다른 유명한 곳과 어께를 나란히 하였다는 것이 당시 음벽정의 명승고적으로서의 지위를 보여준다. 요리점으로 바뀐 이후에도 명승고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는 증명이다. )&lt;br /&gt;
&lt;br /&gt;
====철야영업이상투====&lt;br /&gt;
&amp;lt;blockquote&amp;gt;동아일보 1939.03.23&lt;br /&gt;
철야영업이상투 동서관내요정에 통봉&lt;br /&gt;
&lt;br /&gt;
작년 가을부터 부내각요리집에유흥하는 손님은 자정이후로는 받아서 안되는동시에 오전한시이후에는 문을닫고 영업을중지하라는당국의 지시로 부내가요정에서 만흔범칙을 하엿다가처벌을당한후로는요사와서이것이매우조흔성적으로실시되고잇는데그중부외한적한곳에잇는요리집과요리집별장등에는 취체경관의 손이잘미치지 안흠인지 이의실시가되어잇지안허 철야토록 영업을하고유흥을하며 심한데서는 기생과더부러 추잡한일까지잇다한다&lt;br /&gt;
&lt;br /&gt;
그중에도 동대문서 관내에잇는 성북정 음벽정 정릉리 천향원 별장에 비난성이 자자한데 늦게까지 무제한으로 유흥할려는손님들은 예사로이곳에모여 철야를하야 당국의지정한 오전일시까지의시간제한을 무시하고잇다한다. &lt;br /&gt;
&lt;br /&gt;
이곳들도 요리조합에 가입하야잇느니만큼 오전 일지까지의 영업이 원칙인데 이를무시하고잇음은 취제경관의 손이 미치지못한데 잇다는데 앞으로는 동서에서철저히취체하야 오전일시까지의영업방침을 엄수하리라는데 만약워반하는 업자는 가차의 용서없이 엄벌에 처하리라한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요리점으로 전락한 음벽정은 주위 주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하여 비난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 정한 영업제한까지 어겨가며 영업을 하는 음벽정의 모습에서, 한때 외교를 위한 높은 공간이었던 음벽정과의 대조가 선명히 보인다. 또한, 기생과 더불어 추잡한 짓을 한다는 서술로서 음벽정이 보통의 요리점이 아닌 풍속업소였음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성북정요정촌화에 주민이 궐기진정====&lt;br /&gt;
&amp;lt;blockquote&amp;gt;동아일보 1936.08.09&lt;br /&gt;
성북정요정촌화에 주민이 궐기진정 기설된음벽정에 칠개조건제출 도로개수 시간준수&lt;br /&gt;
&lt;br /&gt;
성북정은 이상적 주택지라고 하여서 너도 나도하고 만히 나가살게 되엇는데 최근에 요리점이 생긴이후로 여러가지 불편한점이 만타고 마침내 정회에서 궐기하엿다. &lt;br /&gt;
&lt;br /&gt;
성북정에 음벽정이 생긴이후 도로는 좁은데 자동차의왕래가 심하여 통행상뿐만 아니라 학교, 유치원, 례배당, 야학등이잇고 그외에 천오백여명의학생들이 유하고잇다. 선생 연구가등 팔십여명이 사는데 주야로 풍기상 자미롭지 못한일이만허 우려되며 위생상견지에서도 영향이 적지안허 은근히불만이 만튼중 최근에 들리는바에 의하면 또 료정이 설치된다는풍설을 듣고 성북정정회를열고 다음과같은 대표를 선정하여 지는육일 동대문서에 진정을하는동시에 음벽정측에도 다음과같은 요구를 오일에 제출하엿다한다. &lt;br /&gt;
&lt;br /&gt;
(후략)&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기사는 음벽정이 주변 주민에게 불편을 주어 주변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였음을 보여 준다. 당시 성북동에 학교, 유치원, 예배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풍기상 자미롭지 못한 일이 음벽정 때문에 있었다는 서술로서 음벽정이 보통 요리점이 아니라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곳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 이전까지는 성북동이 이상적인 주택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살았음 역시 보여 준다. 또한, '최근'이라는 서술로부터 음벽정이 요리점으로 바뀐 날짜가 1936년 8월 9일의 최근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lt;br /&gt;
&lt;br /&gt;
====더허가치안는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동아일보 1936.08.09 &lt;br /&gt;
&lt;br /&gt;
더허가치안는다 &lt;br /&gt;
도로의불편은 수리&lt;br /&gt;
동대문서보안주임담&lt;br /&gt;
&lt;br /&gt;
이문제에 대하야 소관 동대문서 이 보안게주임은 다음과같이 말한다. &lt;br /&gt;
&lt;br /&gt;
요리점으로 음벽정은 이왕 허가된것이지만 앞으로 다른요리점은 허가하지안할 방 침입니다. 그리고 자동차 통행 도로에 대해서 여러가지 불편 이 잇다는것도 일즉 느껴온바 이지만 음벽정으로서도 다리를 노코 자동차 돌릴수잇는 넓은 마당을 만들은 일도없읍니다. &lt;br /&gt;
&lt;br /&gt;
하여간 주민들의 의견을 참고하야 수리하기를 가급적 권고는 하겟으나 강제할 수는 없읍니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바로 전 기사에서 설명된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 소관 정부기관 인원이 답변을 단 내용이다. 정부 쪽에서도 음벽정이 문제가 됨을 인지하였음을 보여준다. 추가적인 요정의 허락을 내주지 않기로 하였으나, 음벽정에 대해서는 권고만 할 뿐 강제를 할 수는 없음을 설명한다. )&lt;br /&gt;
&lt;br /&gt;
====주식에 실패코 결사적무전음식====&lt;br /&gt;
&amp;lt;blockquote&amp;gt;조선일보 1938.02.01&lt;br /&gt;
&lt;br /&gt;
주식에실패코&lt;br /&gt;
결사적무전음식&lt;br /&gt;
독약을품고 요정행각&lt;br /&gt;
&lt;br /&gt;
주식에실패한후 '칼모틴'을가지고 결사의각오로 무전취식한자가 동대문서에붓들렷다 부내태평통이정목이백륙십팔번지 주운성은 최근주식에실패하고 울분을풀려고하엿든지 장곡천정 일백륙번지 황실경외한명을다리고 이십팔일오전한시부터 삼십일오전한시까지만이일간 성북정 음벽정에서 기생네명을부르고 일백오십일원의 무전취식을한후 동대문서에 붓잡혀왓는데 음벽정에가기전에 부내동명관, 명월관에서도 약이백원어치 외상술을먹엇다는데주의 품속에서는 다량의 '칼모틴'이 나왓슴으로 자살할염려가잇서 류치장속에서도 특별감시를 밧고잇다한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30년대의 화폐 가치로, 1000원이면 경성에 살기좋은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한다. 음벽정에서 기생을 부르고 술을 마시며 151원의 무전취식을 하였다는 대목에서 음벽정의 호화로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lt;br /&gt;
&lt;br /&gt;
====취중만용====&lt;br /&gt;
&amp;lt;blockquote&amp;gt;조선일보 1937.10.11&lt;br /&gt;
&lt;br /&gt;
섯물이법률지식을미천으로 변호사사무원의 취중만용부내봉낸정사정목 이백팔십구번지 모변호사사무원 문성봉은 십일새벽다섯시반경 동소문박요리집 음벽정에서 술을 질텅히 마시고 경화탁씨를 타고 도라오든길에 인사정백오십륙번지 삼성조아페와서 운전수에게 요설행패를하다가 제지하는경관에게 달려부텃다가그대로 종로서류치장으로드러갓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기사 역시 음벽정이 보통의 음식점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새벽 다섯시 반까지 술을 팔며 영업을 하였다는 점을 볼 수 있고, 이런 영업이 앞에서 소개했던 많은 민원의 사유 중 하나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먼저, 연구의 주 목적인 성북동의 누정들의 정보 아카이빙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분석의 경우, 세 누정이 각각 어떠한 속성/관련/개체 등을 가지는지 분석한 후, 각각 누정들이 가지는 속성/관련/개체를 비교하고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고 다른 점이 있는지를 분석하였다. 일부 누정의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재와 과거의 차이가 현격하고, 또 다른 누정들과의 차이가 현격하게 나는데, 이런 변화와 차이 역시 데이터와 온톨로지 맵을 통해 분석하였다. &lt;br /&gt;
&lt;br /&gt;
또한, 세 누정을 다룬 문학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중요한 개념어 쉴 휴(休) 역시 추출하여 분석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2_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2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2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클래스&lt;br /&gt;
! 명칭 || style=&amp;quot;width:70%;&amp;quot;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작품들이 들어 있는 문집&lt;br /&gt;
|-&lt;br /&gt;
| 작품 || 개별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관계를 맺는 인물들&lt;br /&gt;
|-&lt;br /&gt;
| 장소 || 중요하게 언급되는 장소들&lt;br /&gt;
|-&lt;br /&gt;
| 표현 || 제일 다양한 분류; 어떠한 개체를 언급하거나 설명할 때의 표현&lt;br /&gt;
|-&lt;br /&gt;
| 유형(문체) || 개별 작품의 유형과 문체&lt;br /&gt;
|-&lt;br /&gt;
| 속성 || 생년이나 목적 등 구체적 속성&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관계어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문집과 작품의 포함 관계를 나타냄&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작품에서 언급된 특정 정보를 작품과 연결&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작품이나 문집을 사람과 작가 관계로 연결&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사람의 호나 자와 같이, 같은 개체의 여러 이름을 연결&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공간적 관계로써, 한 공간이나 개체를 그가 위치한 장소와 연결&lt;br /&gt;
|-&lt;br /&gt;
| 속성정보 || attribute || 제일 방대한 정보; 개체를 그의 구체적인 속성과 연결&lt;br /&gt;
|-&lt;br /&gt;
| 소유하다 || possesses || 누정과 그 주인을 소유 관계로서 연결&lt;br /&gt;
|-&lt;br /&gt;
| 라는뜻이다 || ismeaning || 개념어를 풀어 설명한 문구나 동의어와 연결&lt;br /&gt;
|-&lt;br /&gt;
| 유형(문체)이다 || texttype || 작품의 구체적 유형과 문체를 연결&lt;br /&gt;
|-&lt;br /&gt;
| 반대말이다 || antonym || 개념어를 그의 반의어와 연결&lt;br /&gt;
|-&lt;br /&gt;
| 새겨져있다 || engravedin || 특정 작품이 특정 장소에 새겨져서 남아 있는 관계를 연결&lt;br /&gt;
|-&lt;br /&gt;
| 방문하다 || visits || 특정 장소와,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속성(Attributes)====&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속성&lt;br /&gt;
! 속성 || style=&amp;quot;width:70%;&amp;quot; | 설명&lt;br /&gt;
|-&lt;br /&gt;
| birthYear: || 한 사람의 생년을 가지는 속성. 어느 시대 사람인지 알기 위함. : 뒤에 네 자리 년도가 옴&lt;br /&gt;
|-&lt;br /&gt;
| 주위에_산과_나무가_있고_연못이_있음 || 일부 누정(음벽정, 성락원)이 동시에 가지는 속성. 당시 누정의 보편적인 모습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 相爲循環(서로_순환되는_것이다) || 쉼(休)라는 개념어를 그 반의어(作)와 비교하며 속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문장&lt;br /&gt;
|-&lt;br /&gt;
| 贊襄(임금을_도와_치적을_쌓음) || 일휴당기 1,2,3이 모두 다루는 용암 김병시의 속성을 한 마디로 표현&lt;br /&gt;
|-&lt;br /&gt;
| 선비가_늙어서_은퇴하고_가서_쉬는_곳 || 천석정과 일휴당이 공통으로 가지는 속성. 두 누정들의 당시 용처와 목적을 보여 줌&lt;br /&gt;
|-&lt;br /&gt;
| 외교를_하는_곳 || 음벽정이 하던 원래 역할. 이후 바뀐 속성과 대비를 이룸. &lt;br /&gt;
|-&lt;br /&gt;
| 술_먹고_기생과_호화롭게_노는_곳 || 음벽정이 팔리고 개조된 이후의 속성. &lt;br /&gt;
|-&lt;br /&gt;
| 요정(料亭) || 음벽정이 팔리고 개조된 이후의 속성. &lt;br /&gt;
|-&lt;br /&gt;
| 관료 || 음벽정의 옛 주인 민영환의 속성. 이후 음벽정을 찾는 사람의 속성과의 대비를 이룸. &lt;br /&gt;
|-&lt;br /&gt;
| 순국지사 || 음벽정의 옛 주인 민영환의 속성. 이후 음벽정을 찾는 사람의 속성과의 대비를 이룸.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match (n) return n 명령어로, 입력한 모든 노드와 관계를 출력하였다. &lt;br /&gt;
&lt;br /&gt;
 [[파일:hdc_wholemapreturn.JPG]]&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수집 방법'''===&lt;br /&gt;
&lt;br /&gt;
이 연구는 분석보다는 옛 누정들을 데이터와 맵으로 재건축해서 아카이빙하는 데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정들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사람, 장소, 문집, 속성 등에서 중요한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을 주로 뽑아서 노드와 관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누정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변화 등이 데이터 분석으로 잘 드러날 수 있는 속성들의 경우 작은 것까지 추가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일휴당기 1, 2, 3에서의 개념어 쉼(休)에 대한 분석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구 대상 탭 아래에 적은 코멘트도 참고하면 좋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쉼(休)이라는 개념어는 세 작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큰 비중을 가지며, 누정 이름에도 들어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어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같은 누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같은 개념어 쉼(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설명 방식도 다르고 의미하는 바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쉼 이라는 개념어에 대한 설명 방식을 온톨로지 다이어그램으로도 볼 수 있다. &lt;br /&gt;
 [[파일:hdc_restcharacter.JP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개념어 쉼(休）의 설명 방식&lt;br /&gt;
! 문체 || style=&amp;quot;width:80%;&amp;quot; | 설명&lt;br /&gt;
|-&lt;br /&gt;
| 일휴당기 1 || 이미 존재하는 동양 고전 말씀(無入而不自得)을 인용하여 설명&lt;br /&gt;
|-&lt;br /&gt;
| 일휴당기 2 || 동의어（美）를 제시하여 같은 의미라고 설명&lt;br /&gt;
|-&lt;br /&gt;
| 일휴당기 3 || 반의어（作）를 제시하며, 서로 순환되는 것(作與休相爲循環)이라는 설명을 제공하며 설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개념어 쉼(休) 의 반대 개념에 대한 주장과 설명 방식&lt;br /&gt;
! 문체 || style=&amp;quot;width:81%;&amp;quot; | 설명&lt;br /&gt;
|-&lt;br /&gt;
| 일휴당기 1 || 쉼(休)과 쉬지 않음을 명확히 구분. 마음이 편해야 비로소 쉼(休)이라고 설명&lt;br /&gt;
|-&lt;br /&gt;
| 일휴당기 2 || 쉼(休)을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예시를 활용해 명확히 구분. 쉼(休)하기 적절치 않은 때를 들어, 김병시가 쉬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논리를 전개.&lt;br /&gt;
|-&lt;br /&gt;
| 일휴당기 3 || 쉼(休) 의 반대 개념어（作）를 직접적으로 제공하며, 대부분의 경우는 그 두 가지가 순환한다고 이야기하나, 김병시의 경우 알맞은 정도를 얻어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며 반박&lt;br /&gt;
|}&lt;br /&gt;
&lt;br /&gt;
이 부분을 공부하며 데자뷔를 느낀 것이 있는데, 바로 맹자와 한시를 공부할 때 느꼈던 인의(仁義)이다. 맹자께서는 이런 개념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신 적이 거의 없는데, 그러기에 이런 개념어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설명하기 애매하며 후학들이 정의하는 바도 조금씩 다르다. &lt;br /&gt;
&lt;br /&gt;
또, 문학 작품, 특히 운문의 경우 설명이나 개념어가 구체적이지 않아 이중적인 해석을 하거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풍부히 존재한다. &lt;br /&gt;
&lt;br /&gt;
일휴당을 다루는 문학 작품들의 쉼(休) 개념어의 정의에서, 이러한 구체적이지 않음이 그대로 있음을 느꼈다. 일휴당기 2에서는 일휴당 주인인 김병시가 의도한 쉼(休)의 의미와 저자의 의미 해석이 다르기도 하고, 일휴당기 3에서는 개념어와 더불어 김병시의 벼슬하지 않음을 분석하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을, 저자가 반박하는 내용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누정의 이름, 그 중 특히 특정 개념어에 대한 해석은 저자에 따라 다양할 수 있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가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성락원에 대한 다양한 의견===&lt;br /&gt;
&lt;br /&gt;
&lt;br /&gt;
성락원은 이름부터 어떻게 불러야 할 지 주장이 다양해, 다양한 이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이름 || 설명&lt;br /&gt;
|-&lt;br /&gt;
| 성락원 || 예전, 명승 제35호로 지정되었을 당시의 이름&lt;br /&gt;
|-&lt;br /&gt;
| 서울 성북동 별서 || 현재 명승으로 재지정된 이름임&lt;br /&gt;
|-&lt;br /&gt;
| 이강공별저(李堈公別邸) || 1921년 조선총독부 발행 지형도 수록 이름&lt;br /&gt;
|-&lt;br /&gt;
| 성북동별장, 이강공별저 || 이해경 선생(이강공의 5녀)의 저서&lt;br /&gt;
|-&lt;br /&gt;
| 쌍괴당(雙槐堂), 쌍괴누옥(雙槐陋屋), 쌍괴실(雙槐室) || 춘파유고에서 황수연이 부르는 명칭&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과거에는, 성락원의 조성자가 조선시대 철종 때의 이조판서를 한 심상응이라는 사람이라고 알려졌었으나, 이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문헌기록으로서는 황윤명의 춘파유고(春坡遺稿, 오횡묵의 총쇄록(叢瑣錄), 명성황후의 일편단충(一片丹忠) (명성황후가 직접 써서 갑신정변 이후 황윤명, 김규복 등에게 나누어 줌)의 김규복 발문이 있다. 문헌기록을 살펴 보면 조선 고종 때의 내관이자 문인인 황윤명이 성북동을 조성하였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갑신정변(1884) 때 명성황후가 황윤명의 별서를 피난처로 활용하였다는 기록이 일편단충의 김규복 발문에 있는데, 이로서 성락원이 1884년 이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춘파유고(春坡遺稿): 황윤명의 시문을 모아서 황윤명의 차손 안호영이 발간한 문집인데, 춘파유고에 수록된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 시문이 성락원 내 영벽지에 새겨진 각자와 일치함&lt;br /&gt;
&lt;br /&gt;
총쇄록(叢瑣錄): 오횡묵이 자신이 관리로 있던 곳을 일기처럼 기록한 것인데, 황윤명이 조성한 정원을 1887년 방문하였다고 기록함&lt;br /&gt;
&lt;br /&gt;
일편단충(一片丹忠)의 김규복 발문: 명성황후가 직접 써서 갑신정변 이후 황윤명, 김규복 등에게 나누어 준 것에다 김규복이 발문을 붙인 것인데, 갑신정변 당시 '혜화문으로 나가서 성북동의 황윤명 집으로 향했다, 태후,왕비, 세자께서 이미 어가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기록함&lt;br /&gt;
&lt;br /&gt;
&lt;br /&gt;
춘파유고에 수록된 인수위소지 글씨와, 성락원 영벽지에 새겨진 바위글씨가 일치 == 성락원은 황윤명 소유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인수위소지 시는 다른 조선 문헌이나 중국 문헌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마이너한 작품이라, 신빙성이 더욱 올라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누정들의 기능과 사람들 - 음벽정을 중심으로===&lt;br /&gt;
&lt;br /&gt;
음벽정은 한 때 국가의 대사를 논하던 중요한 곳이었으나,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요리점으로 전락하며, 똑같은 누정인데도 과거의 모습과 명백한 대비를 이룬다. &lt;br /&gt;
&lt;br /&gt;
또, 그러한 음벽정의 변화 이후엔 음벽정은 성북동에 위치한 다른 누정들과도 명백한 대비를 이룬다. &lt;br /&gt;
&lt;br /&gt;
&lt;br /&gt;
이러한 음벽정의 변화와 다른 성북동 누정과의 대비와 비교를, node4j 를 활용한 데이터 분석과 온톨로지 다이어그램을 활용해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누정들의 기능====&lt;br /&gt;
&lt;br /&gt;
먼저, 음벽정을 제외한 다른 누정들이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온톨로지 다이어그램으로 시각화해 보자.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dc_ilhuchunsukforrest.JPG]]&lt;br /&gt;
&lt;br /&gt;
&lt;br /&gt;
이 온톨로지 다이어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일휴당과 천석정은 둘 다 벼슬하던 선비들이 늙은 후 은퇴하여 가서 쉬는 곳으로 작품에서 묘사된다. 특히 일휴당의 경우 일휴당기에서의 개념어 설명에서도 그것이 명확히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제 음벽정이 온톨로지 다이어그램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dc_eumbyokproperties.JPG]]&lt;br /&gt;
&lt;br /&gt;
음벽정에 연결되어 있는 세 속성을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각각 외교를_하는_곳, 술_먹고_기생과_호화롭게_노는_곳, 요정(料亭) 이 세 가지가 존재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 속성들은 음벽정의 시간축에 따라 2가지로 분류된다. &lt;br /&gt;
&lt;br /&gt;
먼저, 음벽정이 원 주인인 민영환의 별장이었을 때에는 '외교를_하는_곳' 속성을 가졌다. 음벽정의 주인인 민영환부터가 고위 관료였고, 타국의 고위 관료들이 와서 외교를 하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외교를 함은 국가의 큰 일을 하는 공간이었다는 뜻이고, 특히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 보면 국가의 큰 결정을 하는 중요한 공간이었음을 보여 준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다만, 음벽정은 이후 오미안태랑이라는 일본인에게 팔린 후 한택수에게 소유권이 이전되는데, 이 때 음벽정은 옛날에 가졌던 외교에 관한 속성을 잃고, 요리점 {요정(料亭)} 속성과 술_먹고_기생과_호화롭게_노는_곳 속성을 가지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dc_courtesan.JPG]]&lt;br /&gt;
&lt;br /&gt;
Diction을 출력하도록 명령한 후, 그 중 기생이라는 Diction 을 찾아서 그와 연결된 관계들을 찾아 분석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검색결과를 보면, 성북동에 위치한 모든 누정들에 대해 적은 작품들 중, 기생이라는 Diction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은 3 작품인데, 이들이 모두 음벽정이라는 한 누정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요정(料亭)이라는 속성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알 수 있다. 음벽정은 단순한 조선 요리점이 아니라, 기생이 나오는 건전하지 못한 요리점이라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dc_uncomfy.JPG]]&lt;br /&gt;
&lt;br /&gt;
Paragraph 중, 그 원문 (originText) 중에 '불편' 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모든 작품을 보여 주도록 명령하였고, 그 연결된 관계들을 찾아 올라가니 음벽정이 보인다. &lt;br /&gt;
&lt;br /&gt;
이 검색결과를 보면, 성북동에 위치한 누정들 중 주변 주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누정은 음벽정 하나뿐이다. &lt;br /&gt;
&lt;br /&gt;
나오는 원문은 근대 신문기사로서 총 두 개인데, 둘 다 음벽정의 불건전한 문제를 주변 주민들이 참지 못하고 진정을 제기한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는 한때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해 국가의 대사를 논하던 음벽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곳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 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누정들에서 마신 음료====&lt;br /&gt;
&lt;br /&gt;
&lt;br /&gt;
예외는 항상 존재하지만, 보통 차는 불건전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술의 경우, 격식을 차려서 마실 수도 있지만, 많이 마셔서 취할 경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술과 차의 특징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검색하면 누정들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분석을 진행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dc_wineandtea.JP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모든 Object (술, 차)들과, 그들과 관계가 있는 노드와 관계를 출력하도록 명령한 후, 누정이 나올 때까지 그 관계를 찾아 올라갔다.&lt;br /&gt;
&lt;br /&gt;
그러자 차(茶）와 관련이 있는 누정은 성락원(이강공별저)가 나왔고, 술과 관련이 있는 누정은 음벽정이 나왔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 검색 결과를 재검증하고 구체적 작품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기 위해, 이번에는 다른 쿼리를 사용해서 각각 술과 차를 따로 검색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dc_teaonly.JPG]]&lt;br /&gt;
&lt;br /&gt;
&lt;br /&gt;
먼저, 이 검색 결과는 성북동의 누정들을 다룬 모든 작품들 중, 운문(Line) 의 원문(originText) 이 차(茶）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모든 작품을 출력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이번에는 Object 가 아닌 원문에서 검색을 진행했는데, 한거부회 삼수(閒居賦懷 三首) 라는 작품에서 차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는 결과가 나왔다. 해당 작품은 성락원(이강공별저)의 조성자인 춘파 황윤명의 책인 춘파유고(春坡遺稿)에서 발췌된 작품인데, 茶煙水氣暗相携(차 끓이는 증기와 수면 아지랑이가 몰래 서로를 이끄네)라는 문장에서 차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해당 누정에서 차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주변 컨텍스트를 보면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dc_wineonly.JPG]]&lt;br /&gt;
&lt;br /&gt;
&lt;br /&gt;
그 반대로, 성북동 누정을 다룬 작품들 중 원문에 술 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작품을 출력하도록 명령한 후 누정이 나올 때까지 관계를 살펴 보니 음벽정이 나왔다. 취중만용이라는 작품부터 살펴 보자면, &lt;br /&gt;
&amp;lt;blockquote&amp;gt;십일새벽다섯시반경 동소문박요리집 음벽정에서 술을 질텅히 마시고 경화탁씨를 타고 도라오든길에 인사정백오십륙번지 삼성조아페와서 운전수에게 요설행패를하다가 제지하는경관에게 달려부텃다가그대로 종로서류치장으로드러갓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건전하게 술을 마신 것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 준다. 또, &amp;quot;술을 질텅히 마시고&amp;quot; 라는 대목에서, 음벽정의 술 마시는 분위기를 보여 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또, 주식에실패코결사적무전음식 이라는 작품은 주식에 실패한 사람이 죽을 각오로 칼모틴&amp;lt;ref&amp;gt;진정작용이 있는 수면제. 다량 복용하면 사망한다는 점 때문에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amp;lt;/ref&amp;gt;이라는 약을 가지고 음벽정을 포함한 여러 누정을 다니며 무전취식을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음벽정에서 기생을 부르고 술을 마시며 151원&amp;lt;ref&amp;gt;1930년 화폐 가치 기준, 1000원이면 경성에 살기좋은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amp;lt;/ref&amp;gt;을 무전취식하였다는 점에서, &lt;br /&gt;
&lt;br /&gt;
1. 음벽정의 호화로움을 알게 해 주고, &lt;br /&gt;
&lt;br /&gt;
2. 음벽정이 기생을 끼고 술을 마시는 불건전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행 반일청유는 음벽정 누정 이름의 뜻 (푸르름을 마시는 누정)에 대해 설명하는 근대 신문 기사인데, 이 내용과 관련이 없으므로 생략한다. )&lt;br /&gt;
&lt;br /&gt;
====누정들의 사람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dc_visitandowner.JPG]]&lt;br /&gt;
&lt;br /&gt;
&lt;br /&gt;
이 검색은 방문하다 (visits)라는 관계를 가진 누정과 사람들을 전부 보여주도록 명령한 후, 연결을 추가로 찾아서 owner 관계를 가진 사람들까지 추가적으로 보이도록 한 검색 결과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또한, 성락원의 경우 시를 즐기는 문인들인 육교시사(六橋詩社)들이 성락원에 모여, 시를 짓고 감상하고 토론하는 모임인 시회(詩會)를 열었다는 기록이 존재하는데, 이 역시도 고상하고 학술적인 모임이었음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삼인대의 경우, 김응근, 조면호, 신석우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높은 벼슬을 한 벼슬아치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같이 삼인대에서 노닐었던 친구 같은 관계이다. &lt;br /&gt;
&lt;br /&gt;
성락원의 경우 주인부터가 의친왕 이강으로, 왕족이자 대한민국 독립운동가인 사람이다. 오횡묵은 군수 등을 역임한 고위 벼슬아치, 황수연은 높은 계급의 내관이었으며, 심지어 갑신정변 당시에는 명성황후가 피난을 오기까지 한 곳이다. 김규복 역시 같다. 이 정보로부터, 성락원 역시 높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천석정의 경우, 윤용선이 방문자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내각 총리대신까지 한 사람이라 역시 매우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다만, 음벽정의 경우 4명의 관계가 나오고, 근대 신문 자료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들 역시 시간축을 기준으로 2개로 분류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먼저 음벽정이 요정이 되기 전의 관련된 사람들부터 살펴보자면, 음벽정의 당시 주인이었던 민영환은 온톨로지 맵에서 '관료'와 '순국지사' 속성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나라를 위해 힘쓴 고위 관료이다. 역시 중국의 고위 관료인 위안스카이 또한 음벽정에 방문하였으며, 특히 이 두 사람은 음벽정에서 외교를 하기 위해 만나기도 하였으나, 친구 관계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민영환이 사망한 이후, 위안스카이는 개인적으로 음벽정에 재방문하여 추도시를 읊기도 하였다는 것에서 이가 잘 드러난다. &lt;br /&gt;
&lt;br /&gt;
&lt;br /&gt;
음벽정이 요정이 되어가는 과도기에는 오미안태랑이라는 일본인이 음벽정을 매입하여 주인이 되었다가, 다시 한택수라는 한국 사람에게 매입하여 그 사람이 주인이 되었다. 한택수가 음벽정을 매입하여 주인이 되자, 음벽정은 요정으로 전락하고 만다. &lt;br /&gt;
&lt;br /&gt;
&lt;br /&gt;
요정이 된 음벽정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였는데, 그 사람들의 질과 하는 행동을 분석하면 예전의 음벽정이나 다른 성북동의 누정들에 방문한 사람들과의 명확한 대비를 볼 수 있다. (음벽정의 대표적으로 불건전한 요소인 기생은 앞에서 이야기했으니 생략하였다. )&lt;br /&gt;
&lt;br /&gt;
&amp;quot;동경의 만주는 갓스나 숙원치부는 춘몽&amp;quot; 작품에서, 류정호라는 범죄자가 등장한다. 이 사람은 횡령을 저질렀는데, 그 후 음벽정을 들러 호유(호화롭게 마시고 놈)하였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세리대독직사건&amp;quot; 에서는, 다른 누정들이나 예전의 음벽정과 비슷하게 벼슬아치(공무원)들이 방문하였다는 점 까지는 동일하다. 다만, 그 공무원들이 마땅히 양조업자들을 감시하여야 하는 직무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대접을 받고 수뢰(뇌물을 먹음)를 하였다는 기사이다. 양조업자들이 부패한 공무원들을 대접한 공간 중 하나로 음벽정이 등장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음벽정과 관련된 사람들을 추려 보았을 때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음벽정의 시간에 따른 변화와 요정으로서의 전락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성락원&lt;br /&gt;
&lt;br /&gt;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5,00350000,11&amp;amp;pageNo=1_1_2_0&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락원&lt;br /&gt;
&lt;br /&gt;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288&lt;br /&gt;
&lt;br /&gt;
&lt;br /&gt;
문화재청 보도자료 (2020.6.24)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lt;br /&gt;
&lt;br /&gt;
https://www.korea.kr/news/pressReleaseView.do?newsId=156397516&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조선 뉴스룸 문화계 이슈 점검 성락원 기사&lt;br /&gt;
&lt;br /&gt;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amp;amp;nNewsNumb=201912100060&lt;br /&gt;
&lt;br /&gt;
&lt;br /&gt;
국회 도서관 -성락원 명승지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 자료집&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고전종합DB&lt;br /&gt;
&lt;br /&gt;
https://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N1.png&amp;diff=29157</id>
		<title>파일:N1.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ED%8C%8C%EC%9D%BC:N1.png&amp;diff=29157"/>
				<updated>2022-06-07T17:06: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045</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045"/>
				<updated>2022-06-07T11:25: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참고 자료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034</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034"/>
				<updated>2022-06-07T10:52: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참고 자료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1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2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lt;br /&gt;
&amp;lt;br/&amp;gt;&lt;br /&gt;
유홍준(2002). 완당평전3 - 자료, 해제편. 학고재.&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033</id>
		<title>SKLDC(2022)Research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red/wiki/index.php?title=SKLDC(2022)Research1&amp;diff=29033"/>
				<updated>2022-06-07T10:27:4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다인KU: /*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함초롬돋움&amp;quot;&amp;gt;&lt;br /&gt;
{{버튼클릭|[[SinoKoreanLiteratureDataCuration(2022)#Semantic Data Modeling|한문학데이터큐레이션(2022) 강의 페이지로 가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7&amp;quot;&amp;gt;&amp;lt;b&amp;gt;추사 김정희의 서울 기행과 성북동 유람&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font color=&amp;quot;black&amp;quot; size=&amp;quot;6&amp;quot;&amp;gt;&amp;lt;b&amp;gt;-『완당전집』의 기록을 중심으로-&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center&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div align=&amp;quot;right&amp;quot;&amp;gt;&amp;lt;big&amp;gt;작성자: [[김다인_KU2017|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김다인]]&amp;lt;/big&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__NOTOC__&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white&amp;quot;&amp;gt;목차&amp;lt;/font&amp;gt;==&lt;br /&gt;
&amp;lt;font face=&amp;quot;나눔바른고딕 UltraLight&amp;quo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amp;lt;h2 class=&amp;quot;subheader&amp;quot;&amp;gt;'''Contents'''&amp;lt;/h2&amp;gt;&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목적|연구목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대상|연구대상]]}}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방법|연구방법]]}}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데이터|연구데이터]]}}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연구 결과|연구결과]]}}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참고 자료|참고자료]]}}&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목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lt;br /&gt;
&lt;br /&gt;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lt;br /&gt;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amp;lt;담연재시고&amp;gt;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lt;br /&gt;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lt;br /&gt;
&lt;br /&gt;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lt;br /&gt;
&lt;br /&gt;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lt;br /&gt;
&lt;br /&gt;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lt;br /&gt;
&lt;br /&gt;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대상'''==&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lt;br /&gt;
'''&lt;br /&gt;
&lt;br /&gt;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lt;br /&gt;
&lt;br /&gt;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lt;br /&gt;
&lt;br /&gt;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lt;br /&gt;
&lt;br /&gt;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lt;br /&gt;
&lt;br /&gt;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lt;br /&gt;
&lt;br /&gt;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lt;br /&gt;
&lt;br /&gt;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lt;br /&gt;
&lt;br /&gt;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lt;br /&gt;
&lt;br /&gt;
&lt;br /&gt;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lt;br /&gt;
&lt;br /&gt;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lt;br /&gt;
&lt;br /&gt;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amp;lt;ref&amp;gt;'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amp;lt;/ref&amp;gt;非今雨&lt;br /&gt;
&lt;br /&gt;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lt;br /&gt;
&lt;br /&gt;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amp;lt;ref&amp;gt;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amp;lt;/ref&amp;gt;尋常容置我&lt;br /&gt;
&lt;br /&gt;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lt;br /&gt;
&lt;br /&gt;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lt;br /&gt;
&lt;br /&gt;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lt;br /&gt;
&lt;br /&gt;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lt;br /&gt;
&lt;br /&gt;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amp;lt;ref&amp;gt; 번뇌없는 고요함.&amp;lt;/ref&amp;gt;繪水聲&lt;br /&gt;
&lt;br /&gt;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lt;br /&gt;
&lt;br /&gt;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lt;br /&gt;
&lt;br /&gt;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amp;lt;ref&amp;gt;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amp;lt;/ref&amp;gt;業&lt;br /&gt;
&lt;br /&gt;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amp;lt;ref&amp;gt;가볍게 나부낌.&amp;lt;/ref&amp;gt;不世情&lt;br /&gt;
&lt;br /&gt;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lt;br /&gt;
&lt;br /&gt;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lt;br /&gt;
&lt;br /&gt;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amp;lt;ref&amp;gt;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amp;lt;ref&amp;gt;불교 용어, 번뇌&amp;lt;/ref&amp;gt;未&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lt;br /&gt;
'''&lt;br /&gt;
&lt;br /&gt;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lt;br /&gt;
&lt;br /&gt;
온 숲 가득 일제히 '''꽃'''&amp;lt;ref&amp;gt;桃花&amp;lt;/ref&amp;gt;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lt;br /&gt;
&lt;br /&gt;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amp;lt;ref&amp;gt;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amp;lt;/ref&amp;gt;如將悟&lt;br /&gt;
&lt;br /&gt;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amp;lt;ref&amp;gt;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amp;lt;/ref&amp;gt;了不迷&lt;br /&gt;
&lt;br /&gt;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lt;br /&gt;
&lt;br /&gt;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amp;lt;ref&amp;gt;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amp;lt;/ref&amp;gt;'''鬲山'''&amp;lt;ref&amp;gt;서로 격절된 산&amp;lt;/ref&amp;gt;'''低'''&amp;lt;ref&amp;gt;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amp;lt;ref&amp;gt;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amp;lt;/ref&amp;gt;村茅潔&lt;br /&gt;
&lt;br /&gt;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amp;lt;ref&amp;gt;마땅히, 장차&amp;lt;/ref&amp;gt;借地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lt;br /&gt;
&lt;br /&gt;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lt;br /&gt;
&lt;br /&gt;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lt;br /&gt;
&lt;br /&gt;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amp;lt;ref&amp;gt;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amp;lt;/ref&amp;gt;如被酒&lt;br /&gt;
&lt;br /&gt;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amp;lt;ref&amp;gt;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amp;lt;/ref&amp;gt;天氣近'''恢台'''&amp;lt;ref&amp;gt;음력 4월&amp;lt;/ref&amp;gt;&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1. 수락산사(水落山寺1)&lt;br /&gt;
'''&lt;br /&gt;
&lt;br /&gt;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amp;lt;ref&amp;gt;바람을 다스리는 신.&amp;lt;/ref&amp;gt;導衆迷&lt;br /&gt;
&lt;br /&gt;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lt;br /&gt;
&lt;br /&gt;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lt;br /&gt;
&lt;br /&gt;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amp;lt;ref&amp;gt;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amp;lt;/ref&amp;gt;一鳥啼&lt;br /&gt;
&lt;br /&gt;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amp;lt;ref&amp;gt;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lt;br /&gt;
&lt;br /&gt;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amp;lt;ref&amp;gt;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lt;br /&gt;
&lt;br /&gt;
&lt;br /&gt;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lt;br /&gt;
'''&lt;br /&gt;
&lt;br /&gt;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lt;br /&gt;
&lt;br /&gt;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lt;br /&gt;
&lt;br /&gt;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lt;br /&gt;
&lt;br /&gt;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amp;lt;ref&amp;gt;곳곳, 온 나라 땅, 우주&amp;lt;/ref&amp;gt;及塵塵&lt;br /&gt;
&lt;br /&gt;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amp;lt;ref&amp;gt;태고의 땅&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lt;br /&gt;
&lt;br /&gt;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lt;br /&gt;
&lt;br /&gt;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amp;lt;ref&amp;gt;화려한 환영&amp;lt;/ref&amp;gt;不成春&lt;br /&gt;
&lt;br /&gt;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lt;br /&gt;
&lt;br /&gt;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lt;br /&gt;
&lt;br /&gt;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lt;br /&gt;
&lt;br /&gt;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amp;lt;ref&amp;gt;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lt;br /&gt;
&lt;br /&gt;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lt;br /&gt;
&lt;br /&gt;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amp;lt;ref&amp;gt;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amp;lt;ref&amp;gt;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amp;lt;/ref&amp;gt;空剝落&lt;br /&gt;
&lt;br /&gt;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amp;lt;ref&amp;gt;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amp;lt;/ref&amp;gt;復誰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lt;br /&gt;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lt;br /&gt;
&lt;br /&gt;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amp;lt;ref&amp;gt;산삼&amp;lt;/ref&amp;gt;戲作]&lt;br /&gt;
'''&lt;br /&gt;
&lt;br /&gt;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lt;br /&gt;
&lt;br /&gt;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lt;br /&gt;
&lt;br /&gt;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lt;br /&gt;
&lt;br /&gt;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과천시절의 작품임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담담한 삶의 관조가 담겨있고, 시의 소재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통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lt;br /&gt;
김정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직설적으로 잘 하는 기개 높은 성격 때문에 적도 많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여러 인물들과 널리 사귈 수 있도록 돕기도 했지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게 하기도 했다. 유배기간과, 다녀온 이후 과천시절은 분명 김정희 스스로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주위에 사람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가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절의 작품은 그 이전과 다르게 관용의 미덕을 담고있으며, 평범한 것에서도 소소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amp;lt;ref&amp;gt;지팡이와 신발&amp;lt;/ref&amp;gt;。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amp;lt;ref&amp;gt;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amp;lt;/ref&amp;gt;。紙窓燈火。'''佛幌'''&amp;lt;ref&amp;gt;불교 제단의 휘장&amp;lt;/ref&amp;gt;甚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amp;lt;ref&amp;gt;서화 모사의 한 방법&amp;lt;/ref&amp;gt;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amp;lt;ref&amp;gt;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amp;lt;/ref&amp;gt;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lt;br /&gt;
&lt;br /&gt;
&lt;br /&gt;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lt;br /&gt;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blue&amp;quot;&amp;gt;'''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amp;lt;ref&amp;gt;속된 사람&amp;lt;/ref&amp;gt;。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lt;br /&gt;
&lt;br /&gt;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lt;br /&gt;
&lt;br /&gt;
&lt;br /&gt;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lt;br /&gt;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amp;lt;ref&amp;gt;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amp;lt;/ref&amp;gt;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lt;br /&gt;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의의/해석 :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연구 방법'''==&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모델링'''===&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lt;br /&gt;
&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데이터 샘플링'''===&lt;br /&gt;
----&lt;br /&gt;
{{버튼클릭|[[SKLDC(2022)Research1 sampling.lst|데이터 샘플링 그래프 편집 페이지로 가기]]}}&lt;br /&gt;
{{NetworkGraph | title=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lt;br /&gt;
※[http://dh.aks.ac.kr/cgi-bin/wikiGraph.py?account=red&amp;amp;script=SKLDC(2022)Research1_sampling.lst 그래프 전체 화면으로 보기]&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설명&lt;br /&gt;
|-&lt;br /&gt;
| 문집 || 연구대상인 완당전집(阮堂全集) 및 완당전집 내 등장인물이 쓴 동리우담(東籬藕談)&lt;br /&gt;
|-&lt;br /&gt;
| 작품 || 완당전집 내 14편의 작품들&lt;br /&gt;
|-&lt;br /&gt;
| 인물 || 완당전집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작가 김정희의 친구, 스승 및 제자&lt;br /&gt;
|-&lt;br /&gt;
| 장소 || 각 작품의 배경 및 작품에서 언급되는 공간&lt;br /&gt;
|-&lt;br /&gt;
| 형식 ||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절구, 제발(題跋), 잡저(雜著), 서독(書牘)	&lt;br /&gt;
|-&lt;br /&gt;
| 속성 || 인물의 생졸년 및 특징, 공간의 위치정보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관계(Relation)====&lt;br /&gt;
&amp;lt;b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명칭 || 명령어 || 설명&lt;br /&gt;
|-&lt;br /&gt;
| 수록하다 || contains || 각 장소가 특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음&lt;br /&gt;
|-&lt;br /&gt;
| 언급하다 || mentions || 각 작품이 특정 장소 및 특정 인물을 언급함&lt;br /&gt;
|-&lt;br /&gt;
| 작가이다 || writer || 특정 작품의 작가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이칭이다 || hasAlias || 복수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특정 인물, 장소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위치하다 || isLocatedIn || 각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살다 || live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에 거주함&lt;br /&gt;
|-&lt;br /&gt;
| 형식이다 || typeof || 각 작품의 구체적인 문체를 설명함&lt;br /&gt;
|-&lt;br /&gt;
| 건축하다 || builds || 특정 인물이 특정 공간을 건축함&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데이터 샘플링 결과 분석====&lt;br /&gt;
&lt;br /&gt;
&amp;lt;석경루&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완당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인 석경루(石瓊樓)는  현재위치 기준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위치한 누각으로,  창의문 밖에 있었으며, 나중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lt;br /&gt;
이 석경루에 방문하고 쓴 시가 꽤 있는데, 이 중에서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가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이 석경루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되는 황산 김유근과, 동리 김경연이 김정희의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lt;br /&gt;
&lt;br /&gt;
김정희는 말년에 병이 들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꽤 있다. 그 말년의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북둔, 성북동&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울긋불긋)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lt;br /&gt;
짧지만 성북동의 봄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잘 묘사한 시인 것 같습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수락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수락산에는 해붕대사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김정희와도 교류한 인물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lt;br /&gt;
&lt;br /&gt;
&lt;br /&gt;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lt;br /&gt;
&lt;br /&gt;
&lt;br /&gt;
이 글은 김정희가 모르는 스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인데.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다. 해붕대사의 화상찬인데, 화상찬은 어떤 인물의 초상화에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작성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붕대사 영정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고 직접 지어서 글씨까지 써 준다. &lt;br /&gt;
그가 해붕대사를 얼마나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자질을 엿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청계산&amp;gt;&lt;br /&gt;
&lt;br /&gt;
 &lt;br /&gt;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희가 김석준을 유독 아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lt;br /&gt;
&lt;br /&gt;
&lt;br /&gt;
이 텍스트는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함께 언급된다.&lt;br /&gt;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amp;quot;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lt;br /&gt;
&lt;br /&gt;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관악산&amp;gt;&lt;br /&gt;
&lt;br /&gt;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lt;br /&gt;
&lt;br /&gt;
&lt;br /&gt;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이다.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lt;br /&gt;
이처럼 김정희는 스승과 친구도 많았지만, 제자들과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이 텍스트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gt; 서울 공간이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 그가 스승, 제자, 벗들과 교류한 부분들에서 그의 인간관계나 그의 삶, 문학적 표현들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lt;br /&gt;
&lt;br /&gt;
=='''연구 데이터'''==&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연구 결과'''==&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참고 자료'''==&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ig&amp;gt;&lt;br /&gt;
(내용 서술)&lt;br /&gt;
&amp;lt;/big&amp;gt;&lt;br /&gt;
&amp;lt;br/&amp;g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주석'''==&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amp;quot;&amp;gt;&amp;lt;/div&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다인KU</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