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복식 도구:바느질에 쓰는 여러 도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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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7) 자[尺][1]
소목(蘇木)[2]으로 만들고 황동으로 눈금을 만든 자가 좋다. 또는 반죽(斑竹)[3]으로 만들어 분과 촌을 선으로 새겨도 충분히 쓸 만하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포백척(布帛尺)[4]은 중국에 비해 매우 큰데, 바로 명나라 정통(正統) 연간(1436~1449)에 정한 자이며, 지금까지 관동의 삼척부(三陟府)에 보관되어 있다. 영조대에 가져다 여러 자를 고증하여 바로잡고 그 제도를 중외(中外)에도 반포했다.[5] 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여염집에서 쓰는 자는 집집마다 다르다. 소순(蘇洵)[6]은 “동쪽 집의 자를 서쪽 집의 자와 비교하니 열 손가락처럼 다르다.” [7]라고 했는데, 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탄식거리이다.《금화경독기》[8]

각주

  1. 자[尺]:직물을 마름질하기 위해 치수를 재는 도구로, 옷감용 자를 포백척(布帛尺)이라 한다. 길이를 재는 단위는 척(尺), 촌(寸), 분(分)이 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자(조선, 국립민속박물관)
  2. 소목(蘇木):콩과 식물로 열대에서 자라는 상록 교목이다. 한방에서 심재(心材)를 약재로 쓰고, 적황색 목재 부분은 주로 붉은색을 내는 염료로 쓴다
  3. 반죽(斑竹):대나무의 한 종류로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반점이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남도에서 나며, 반죽의 줄기는 단소, 지팡이, 붓대, 부채, 그 밖의 죽세공(竹細工) 재료로 쓰인다.
  4. 포백척(布帛尺):베나 비단 등 옷감의 치수를 재는 자. 조선시대에 포백척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았다. 1902년(광무 6)에 도량형을 일본 곡척(曲尺)으로 통일해 포백척이 1.6척(48cm)이 되었으며, 1905년(광무 9)에 도량형법이 제정되자 1.7척(52cm 정도)으로 되었다.
  5. 영조대에……반포했다:유척기(兪拓基, 1691~1767)가 영조에게 “세종대의 포백척이 삼척부에 있으니 가져다 솜씨 좋은 자로 하여금 《대전(大典)》 치수에 따라 교정하게 하면, 황종척(黃鐘尺)・주척(周尺)・예기척(禮器尺)・영조척(營造尺)도 다 그 제도에 맞아 차이 나지 않을 수 있고, 완성되고 나면 중외에 반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건의하자 영조가 그대로 따랐다.(《영조실록(英祖實錄)》 51권, 영조 16년 4월 5일) 이후 실제로 그 제도를 반포했지만 여전히 집집마다 쓰는 자가 달랐다. 척법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본리지》 권1 〈토지제도〉 “경묘법과 결부법” ‘우리나라의 척법’을 참조 바람.
  6. 소순(蘇洵):1009~1066. 중국 북송 시대의 문학자. 노천(老泉)은 그의 호이다. 그의 평론이 구양수(歐陽修)의 인정을 받아 유명해졌다. 정치·역사·경서 등에 관한 평론을 썼고,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리면서 함께 당송팔대가로 칭송되었다. 소순을 노소(老蘇), 소식을 대소(大蘇), 소철을 소소(小蘇)라 부른다.
  7. 《嘉祐集》 卷5 〈衡論〉 下 “用法”.
  8.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2,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6), 161~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