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수송 기구:수레:대차
내용
1) 대차(大車)[1]
바퀴가 넷인 대차도 있고, 바퀴가 둘인 대차도 있다. 그 위에 얹는 받침대는 모두 축 위에 천두 식(穿斗式)[2]으로 세운다. 바퀴가 넷인 대차는 앞뒤로 각각 가로축을 하나씩 놓고, 축 위의 짧은 기둥에 직선 들보를 걸고서, 들보 위에 네모난 덮개를 얹는다. 말이 정지하여 멍에를 벗길 때도 수레 위가 평평하고 반듯하여 마치 방에 편안히 있는 모양과 같다. 바퀴가 둘인 대차의 경우는 말에 멍에를 씌워서 갈 때 말이 그 앞에서 수레를 끌면 네모난 덮개가 수평을 이루지만, 말의 멍에를 벗기면 짧은 나무를 땅에 받쳐 고정시켜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수레가 기울어진다.
일반적으로 수레바퀴 하나를 ‘원(轅)’이라 한다.【민간에서는 ‘차타(車陀)’라고 한다.】 그중에서 대차의 바퀴통【민간에서는 ‘차뇌(車腦)’라고 한다.】은 길이가 1.5척【<소융(小戎)>의 주희(朱 熹)의 주를 보라.[3]】으로서 이른바 “바깥쪽으로는 바퀴살을 받고, 속에는 축을 끼운다.”는 것이다. 바퀴살은 모두 30개인데, 바퀴살 안쪽은 바퀴통에 끼우고 바깥쪽은 바퀴의 안테에 연결한다. 수레바퀴의 속은 안으로 바퀴에 모이고 밖으로 바퀴 테와 연결되는데, 둥글게 돌아가는 원형을 안테라고 한다. 바퀴 테 끝부분을 윤원(輪轅)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차는 멍에를 벗길 때 여러 부품을 분해하여 보관하고, 멍에를 메게 되면 먼저 두축을 올린 다음에 차례로 부품을 걸어 올린다. 일반적으로 수레의 ‘손잡이용 앞가로장[軾]’, ‘가로 장[衡]’, ‘수레뒷턱나무[軫]’, ‘멍에[軛]’ 따위는다 축 위에 있는 받침이다.
일반적으로 사륜형 대차는 50석(石)을 실을수 있는데, 나귀나 말을 많게는 12마리 달기도 하고 적게는 8마리 달기도 한다.
채찍을 잡고 대차를 모는 마부가 수레 칸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서 높은 곳에 선다. 앞쪽의 말을 두 조로 나누고서[4] 어저귀를 꼬아서 만든 긴새끼줄을 말목에 나누어 매고, 이 줄로 만든 모든 고삐의 뒷부분을 한꺼번에 묶어서 가로장 안의양 옆으로 거두어들인다. 마부는 손으로 긴 채찍을 잡는다. 채찍은 삼으로 끈을 만드는데 길이가 7척 정도이고, 장대의 길이 역시 그와 같다. 힘안 쓰는 놈을 보면 몸통에 채찍질한다. 상자 안에는 2명이 고삐 밟는 일을 담당하는데, 반드시 말의 성질과 고삐의 특징을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
말 달음질이 너무 빠르면 급히 일어나서 고삐를 밟는다. 그렇지 않으면 수레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여기서 일어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수레가 다닐 때 앞쪽에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 이를 피해야 할 경우에는 마부가 급히 고함치는데, 그렇게 하면 모든 말이 멈춘다.
일반적으로 말고삐를 다발로 묶어서 가로장을 통과하여 수레 칸 안으로 들어오는 부분은 다소가죽으로 묶는데, 《시경》에서 말하는 ‘협구(脅 驅)’[5]가 이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차를 끄는 말에 먹이를 줄 때는 마구간까지 가지 않고, 수레 위에 버들광주리를 실어 놓았다가 고삐를 풀고 들에서 먹인다.
수레를 타는 사람이 오르고 내릴 때는 모두 소형 사다리를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가운데가 높고 끝쪽이 낮은 아치 교를 건널 경우, 10마리 가운데 가장 힘센 놈을 골라 수레 뒤에 맨다. 언덕을 내려가게 되면, 9마리는 앞에서 서서히 끌고 1마리는 뒤에서 있는 힘껏 수레를 붙들어 잡아 내려가는 속도를 줄이 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이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수레의 재료는 먼저 긴 나무를 골라 축을 만들고 짧은 나무는 바퀴통으로 만든다. 거기에 쓰는 나무는 홰나무, 대추나무, 박달 나무, 느릅나무【참느릅나무[榔楡]를 쓴다.】를 상품으로 친다. 박달나무 재질은 너무 오랫동안 열을 받으면 마찰이 생겨 불이 나므로, 신중한 사람 들은 한 아름 되는 대추나무나 홰나무를 쓰니, 이나무들이 아주 좋다. 그밖에 수레뒷턱나무, 가로 장, 수레 칸, 멍에는 여러 가지 나무로 만들 수 있다.《천공개물》[6]
대차는 바퀴 높이가 태평차보다 조금 낮고, 바퀴살이 입(卄) 자 모양이다. 싣는 짐은 800근을 기준으로 말 2마리가 수레를 끌게 하고, 800근을 넘으면 짐을 헤아려 말을 늘린다. 짐 위에는 배의 뜸처럼 삿자리로 방을 만들어 그 속에서 앉거나 눕는다. 대체로 6마리를 수레에 메는데, 수레 밑에는 왕방울을 달고 말목에도 조그만 방울 수백 개를 둘러서 방울소리가 댕그랑댕그랑 하면서 밤에도 경계를 하게 했다. 태평차는 바퀴가 도는 반면 대차는 축이 도는데, 두 바퀴가 정원(正圓) 형이므로 똑같이 돌면서 빨리 달릴 수 있다. 끌채 아래에 말을 맬 때는 반드시 건장한 말이나 나귀를 고르고, 가로장 멍에를 쓰지 않고, 작은 나무 안장을 쓰며, 다시 가죽띠로 된 봇줄로 끌채 끝을 번갈아 매어서 멍에를 지운다. 나머지 말들은 모두 소가죽으로 가슴걸이와 뱃대를 만들고 여기에 줄을 묶어서 끌게 한다. 무거운 짐을 싣는 대차는 멍에가 바퀴 밖으로 벗어나고 높이도 수십 척이며, 끄는 말이 대부분 10여 마리에 이르기도 한다.
마부는 ‘칸처더[看車的]’라 부르고, 짐 위에 높이 앉아 손에 긴 채찍 한 개를 잡는다. 채찍 끝에 길이가 20척 정도 되는 끈 2개를 달아 끈을 휘둘러 힘쓰지 않는 말을 때리는데, 귀나 옆구리를 친다. 채찍질이 손에 익으면 기가 막히게 잘 때려서 채찍질 소리가 우레처럼 진동한다.《열하일기》[7]
우리나라 군대의 대차는 너무 커서 빈 수레로 다녀도 이미 소를 피곤하게 만든다. 다시 큰 나무로 소의 목을 누르니 소가 대부분 병들어 죽는다. 일반적으로 수레를 메었던 소는 고기로 먹을 수없고 뿔도 쓸 수 없으니, 피로가 극심해져서 독성이 배출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함경도에서는 본래 수레를 사용했는데, 꽤나 가볍고 빠르다. 다만 바퀴통에 귀가 1척 정도 나왔으니, 대개 아직도 원나라의 옛 제도를 사용 해서 그런 것이다. 준천사(濬川司)[8] 에도 사차(沙車)가 있고, 민간에서도 사적으로 수레를 만들기도 하지만 다 규격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수레의 크기, 무게, 속도에 대한 분류는 중국 사람들이 겪어오면서 연구한 성과도 이미 깊으니, 뛰어난 장인에게 본 떠 만들게 하면 된다. 중국의 기준과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수레가 아니다.《북학의》[9][10]
각주
- ↑ 대차(大車):대차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 ↑ 천두식(穿斗式):기둥에 구멍을 뚫어 인방재들을 길게 관통시켜 연결함으로써 기둥을 연결하는 구조법.
- ↑ 《詩經集傳》 卷3 <秦一之十一> “駟驖三章章四句”. “소융”은《시경》 <진풍>의 시이고, 이 부분에 해당 하는 주희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곡(轂)은 수레바퀴의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는 ‘살[輻]’을 지탱하고 안으로는 축(軸)을 받는 곳이다. 대차의 곡은 1.5척이고 병거(兵車)의 곡은 길이가 3.2척이다. 그러므로 병거를 창곡(暢轂)이라고 한다.[轂者, 車輪之中, 外持輻, 內受軸者也. 大車之轂, 一尺有半, 兵車之 轂, 長三尺二寸, 故兵車曰暢轂.]”
- ↑ 앞쪽의……나누고서:《천공개물》에서는 한 조당 4마리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여기서는 총 8마리가 끄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 ↑ 협구(脅驅):《詩經・秦風・小戎》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游環脅驅,陰靷鋈續.”
- ↑ 《天工開物》 卷9 <舟車> “車”, 257~259쪽.
- ↑ 《熱河日記》 <馹汛隨筆> “車制”. 567쪽.
- ↑ 준천사(濬川司):조선 영조(英祖) 36년(1760년)에 창설된 관아로, 서울 안의 개천을 치는 일과 사산 (四山)을 지키는 일을 담당했다.
- ↑ 《北學議》 <內編> “車”(《農書》 6, 81쪽).
- ↑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3,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7), 151~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