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각 절기의 구경거리와 즐거운 놀이:절일의 세부 내용:설날
내용
1) 설날의 집안 잔치
설날을 두는 관례는 저 아득한 옛날부터이다. 대개 4계절의 첫머리요 삼원(三元)[1]의 날이므로, 복을 축원하고 장수를 기원해 주는 일이 그 유래가 오래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소를 잡는 데에 금기가 있으나, 매년 세제(歲除, 섣달그믐날 밤) 며칠 전에는 그 금기를 풀어주어 집마다 떡국[湯餠][2]을 끓이고 소고기 산적을 구워 남녀노소에게 잔치를 베풀면서 대접하는데, 이를 ‘세찬(歲饌)’이라 한다. 《금화경독기》[3]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 일을 ‘설빔[歲粧]’이라하고, 친척 어른들께 가서 뵙고 절을 드리는 일을 ‘세배(歲拜)’라 하며, 그때 대접하는 음식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은 ‘세주(歲酒)’라 한다. 세주는 데우지 않으니, 봄을 맞이하는 뜻을 담고 있다.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4][5]
2) 설날의 전좌(傳座, 세배)
《남부신서(南部新書)[6]》에 “장안(長安, 서안)의 풍속에 설날[元日] 이후 돌아가며 음식을 차려 서로 맞이하는 일을 ‘전좌(傳座)’라 한다.”[7]라 했다. 《진중세시기(秦中歲時記)[8]》에는 “전좌(세배)는 1월 2일 이후로 한다.”[9]라 했다.
대개 설날 아침에는 조상께 차례상을 올리고 집안 어른께 세배를 드린다. 집안 밖을 나서서 세배를 올리는 일은 2일 이후로 해야 하니, 마땅히 《진중세시기》의 설이 옳다.
우리나라 풍속에도 설날에 일반적으로 세배객이 있으면 반드시 떡국과 술 및 음식을 차려 대접하니, 이를 ‘세찬(歲饌)’이라 한다. 마을의 이웃 간에는 그 의례가 더욱 엄하여 돌아가며 서로 세배를 다녀서 혹시라도 빼먹지 않게 하였으니, 이 또한 전좌의 유풍(遺風)이다. 《금화경독기》[10][11]
각주
- ↑ 삼원(三元):설날의 다른 말. 1년과 12개월과 30일, 3가지 모두의 으뜸[元]이 된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명칭 이다.
- ↑ 떡국[湯餠]:《정조지(鼎俎志)》 권7 〈절식(節食)〉 “설날 아침의 절식” ‘탕병(湯餠)’에 만드는 방법이 있다.
- ↑ 출전 확인 안 됨.
- ↑ 《京都雜志》 〈元日〉(《韓國名著大全集》, 177쪽).
- ↑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4,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517~518쪽.
- ↑ 남부신서(南部新書):중국 송(宋)나라의 문인 전역(錢易, 968~1026)이 편찬한 책. 당송대(唐宋代)의 여러 역사 전거(典據)와 잡다한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총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 ↑ 장안의……한다:《南部新書》권6.
- ↑ 진중세시기(秦中歲時記):중국 당(唐)나라의 문인 이요(李淖, ?~?)가 편찬한 책. 진(秦)나라가 있던 섬서성(陝西省) 일대 지역의 세시풍속을 기록했다.
- ↑ 전좌(세배)는……한다:출전 확인 안 됨.
- ↑ 출전 확인 안 됨.
- ↑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4,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5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