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복식 도구:여자의 복식:저고리와 치마
내용
3) 저고리와 치마[衣裳][1]
저고리는 소매가 좁고 길이가 짧아 옷깃과 옷섶이 겨우 가슴과 겨드랑이를 가릴 정도이다. 치마는 온몸을 한 번 두르고도 남아 허리나 겨드랑이에 묶고 아래는 땅에 끌리니, 고금에 없는 제도[2]이다. 연회복인 녹색 혹은 자주색 저고리는 민간에서는 ‘방장의(旁障衣)’【겻마기[3]】라 부른다.《금화경독기》[4]
각주
- ↑ 저고리와 치마[衣裳]:여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의복. 저고리는 조선시대 남녀노소 모두의 윗옷으로, 남성의 저고리는 속옷의 역할을 했기에 장식적인 요소가 나타나지 않지만 여성의 저고리는 평상복 외에 외출용으로도 착용했기에 깃과 소매의 색을 다르게 하는 등의 장식이 나타난다. 치마는 여자의 아랫도리 겉옷으로, 폭을 이어 붙인 다음 주름을 잡고 허리말기(주름 잡은 부분을 가리면서 허리에 둘러 댄 부분)를 단 형태이다. 허리나 가슴 부분에서 몸을 한 바퀴 둘러매 입는다.
- ↑ 고금에……제도:조선 전기에는 치마를 허리에 1번 둘러 묶어 입었고, 저고리는 길이가 길어 허리까지 내려와 치맛말기(허리에 두르는 부분)를 덮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의 길이가 가슴 정도까지 짧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치마의 길이가 길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치마를 가슴 높이에서 1번 둘러 묶어 입었는데, 이는 기존에 없었던 제도라는 말이다.
- ↑ 겻마기:저고리 위에 덧입는 의례용 여자 저고리로, 겨드랑이 아래쪽 옆선 부분인 ‘곁이 막혔다’는 의미에서 생성된 명칭이다. 지금은 저고리 겨드랑이 부분에 다른 색으로 삼각형 조각을 댄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용어는 《세종실록(世宗實錄)》에 ‘겹막음[裌隔音]’이라는 표기로 처음 나타나며, 이후 肩亇只, 肩莫只, 肩莫伊, 腋亇只, 傍莫只, 裌隔音 등의 한자어가 사용되었고, 견마기, 견막이, 곁마기, 곁막이 등 한글 표기도 다양하다.(黃由善, 〈조선시대 저고리類 명칭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86~88쪽)
- ↑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2,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6), 149~1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