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각 절기의 구경거리와 즐거운 놀이:때에 따라 모이는 모임:생일회

pungseok
최시남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0월 22일 (목) 15:5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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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생일회(生日會, 생일 모임)
요즘은 생일잔치에 빈객과 벗들을 모아 시끌벅적 소리를 치며 잔을 들어 축하한다. 일찍이 기억하기로는 예전에는 나이가 많고 신분이 높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생일회를 열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20~30의 나이에 비록 신분이 낮고 젊어도 또한 잔치를 연다. 예전에는 일반적으로 만으로 계산한 나이가 반드시 70, 80세가 되거나 50, 60세가 되어야 비로소 생일회를 열었는데, 지금은 한 살씩 먹을 때마다 연다.
사람들이 이처럼 생일회를 기꺼이 즐기는 이유는 자신의 몸을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몸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선조가 물려주신 것이 아니던가? 선조께서는 이미 떠나셨지만 선조의 마음과 생각은 자손들에게 가득 배어 있다. 일반적으로 나의 형제들·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집안 일족들 가운데 누군들 선조의 마음과 생각이 배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몸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내 몸에 밴 선조들의 마음과 생각을 본받고, 이를 미루어 형제들·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집안 일족들에게 미쳐야 비로소 진실로 자신의 몸을 귀중하게 여기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비록 해마다 생일회를 열어도 해롭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런 뜻으로 다음과 같이 생일회의 규약을 정한다.
신분의 높고 낮음과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생일을 맞은 모든 이들을 세 무리로 나눈다. 구성원 중에 신분이나 나이가 상(上)에 해당하는 이가 5/10, 다음인 이가 3/10, 그 다음인 이가 2/10가 되게 한다.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은 이는 지위가 낮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불러서 마시게 하고, 지위가 낮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은 분을 모시고 축하해 주시게 한다. 생일회 장부 1권을 마련하여 차례로 1번씩 모임을 열되 1개월에 1번씩 돌아가게 한다.
이렇게 하면 늘 서로 모여 의기(意氣, 마음씨와 기개)가 이어지니, 혹 선조의 덕을 듣지 못한 자는 지위가 높고 연세가 많은 분께 여쭈어 보고, 혹 세상의 일에 어두운 자는 한결같이 통상적인 법도를 본받게 된다. 게다가 학문을 서로 증진함이 있고 완급(緩急)을 서로 보완할 수가 있어서, 얼굴이 서로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저절로 가지런해지고, 마음이 진실해지면서 기가 저절로 흡족해 지게 된다.
또 매양 어떤 부인이 아들을 낳으면 이는 첨정(添丁)[1]의 기쁨이니, 또한 우리 선조의 마음과 생각이 밴 바요 혈식(血食)[2]과 관계된 일이다. 아래에서 예를 들어 열거한 내용과 같이 한다면 안 될 것 없다. 고조린(高兆麟)[3] 《생일회약(生日會約)[4][5]

범례 11칙[6]
【① 이 모임의 목적은 오로지 인륜을 도탑게 하는 데에 있을 뿐, 술을 마시고 연회에서의 즐거움을 얻거나 모든 사람이 다 모이기에 힘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관례에는 '사람들은 다 오지 못할지언정 회비는 반드시 내게 한다.’는 조항이 항상 있지만, 이는 회비를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모임의 목적은 오로지 사람을 모으는 데 있을 뿐이니, 비록 회비를 가지고 오지 않을 수는 있어도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는 안 된다. 회비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에는 벌금이 5푼이지만, 사람이 오지 않았을 때에는 벌금이 1전이다.
② 이 모임은 오로지 검박함을 지향하니, 반찬이 5접시를 넘지 않는 전례를 따르거나 삼양(三養)[7]의 뜻을 취한다. 그렇지 못하면 먼저 밀가루 음식 몇 사발을 차려놓고, 다시 작은 접시의 찬을 곁들여 술자리에 올리니, 거행하기에 편리하면서 먹는 사람 마음에도 편안하도록 힘쓰면 그만이다. 또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많은데 거둔 회비가 적을 때도 있다. 이때는 모두 1개월을 기다렸다가 더러 두 사람의 생일을 합쳐서 거행하고, 1개월 안에 생일이 있는 사람이 없으면 다시 세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거행하기를 기다려도 무방하다. 이것은 모두 알맞은 예를 권장하고 오래 지속하기 위한 계책이다.
③ 일반적으로 존장(尊長,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의 생일에는 자식과 조카들이 알맞은 예를 결정하고 정성을 지극히 하여 당(堂)에 올라 술잔을 들어 축수한다. 참석하지 않으면 벌금 5전이다.
④ 일반적으로 산수(散壽)[8]의 생일을 만난 이는 나이에 따라서 분정한 회비를 덜고, 정수(正壽)의 생일을 만난 이는 분정한 회비 외에 1배를 더한다.
⑤ 일반적으로 생일이 되기 5일 전에 단자(單子, 명단)를 보내 회비를 거둔다. 생일회를 주관하는 법은 한 달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맡아야 어지러워지고 빠뜨리는 폐단이 없을 것이다. 만약 단자를 돌려야 하는데 단자를 돌리지 않는 사람은 벌금이 2전이다.
⑥ 집안 친족의 생일 연회는, 술을 마실 때 술잔과 다 비운 잔을 세는 산가지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널린 일반적인 술자리와는 비교할 수 없다. 예의를 다해 사양하고 서로 자리를 양보하는 뜻을 담아야지, 형식적인 예만 두루 익혀서는 안 된다. 술기운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넘치는 취기를 서로 부리는 자는 벌금이 3전이다.
⑦ 매년 장부 1권을 두어 모인 이를 기록하되, 모인 사람 수와 회비의 액수를 아울러 기록하여 생일회가 흥성해지는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장부를 마련했는데도 기재하지 않은 경우는 벌금 1전, 그리고 장부를 잃어버린 경우는 벌금 1냥이다.
⑧ 일반적으로 받아야 할 벌금 일체는 다음 생일회를 주관할 이에게 자세히 알려주어 징수해 내게 하고, 오방(五房)[9]의 당포(當鋪)[10] 안에 비축하여 공적인 행사의 비용으로 쓰기를 기다리게 한다. 징수하려 해도 내지 않는 경우에는 그의 가족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징수해서 중간에 이 제도가 끊기는 일 없이 준수하기를 목표로 한다.
혹자는 “신분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으로서 존장(尊長)에게 벌금을 징수하는 일은 편치 않을 듯합니다.”라 한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존장이 예로써 원칙을 스스로 지킨다면 굳이 벌금을 내는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혹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생일회를 주관하는 이가 족장(族長)[11]에게 그의 허물을 아뢰고 족장의 명에 따라 가서 징수하면 된다. 이것은 인정이나 도리에 매우 마땅하여 지극히 행할 만한 일이다.
⑨ 성인(成人)이 생일회에 들어올 때는, 일반적으로 어느 분의 몇 번째 아들 누구이며 나이는 몇 살인지를 모두 장부에 기재하여 사실을 확인하기 편리하게 한다. 나이가 16세가 되면 회비를 거두고 생일회에 들어오게 하며, 이를 영원한 관례로 삼아 빠뜨리거나 피하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
⑩ 어느 집에 첨정(添丁, 득남)의 경사가 생기면, 생일회를 주관하는 자는 즉시 장부에 생년월일을 기재하여 생생불이(生生不已)[12]의 경사를 기념하고 이어서 단자를 돌리고 회비를 거두어 모두 관례대로 축하해 준다.
⑪ 앞 달에 어떤 사람이 생일회를 주관한 뒤, 다음 달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면, 그 일의 내용을 일일이 관례대로 기재한다. 또 어느 달에 누구로 교체되었는지와 어느 지위의 사람이 담당했는지를 쓴다. 이렇게 기록이 명백해야만 일이 어긋나 미루고 떠넘기는 폐단이 거의 생기지 않을 것이다.】 《생일회약》[13]
【안. 고조린(高兆麟)의 이 규약은 현호(懸弧)[14]나 헌말(獻襪)[15]의 모임에다 종족을 화목하고 돈독하게 하려는 뜻을 붙인 것이니, 즐기며 잔치하는 모임 중에 별도의 한 규례가 된다. 그러므로 이를 상세히 기록 하여 뒷사람들이 본받아 행하는 데 대비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규약은 반드시 친족끼리 모여서 살아가는 집안이라야 논의할 만한 일이다.
혹 관향(貫鄕, 시조의 고향)과 문벌이 서로 달라 친족임에도 촌수가 서로 먼 경우, 혹 새로 그 지역에 정착하여 일족들이 아직 번창하지 못한 경우는 파의 갈래가 거의 없고 회합이 띄엄띄엄 있으니, 법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일회 같은 모임을 끝까지 추진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시경(詩經)》 〈벌목(伐木)〉이라는 시에 “여러아재들을 맞이한다.”[16]라 함은 성씨가 같은 아재 항렬들을 말하는 것이지만, “여러 구숙(舅叔)들을 맞이한다.”[17]라 함은 성씨가 다른 아재 항렬들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좋은 술을 걸러놓고 손님을 초청할 때 동성 친족만 부르고, 울타리 너머 빤히 보이는 거리에 있는데도 성씨가 다른 아재들을 빠뜨린다면, 저들이 비록 밥 한 그릇 때문에 얼굴색이 변하지야 않겠지만 나는 끝내 마른 밥덩이 하나 때문에 덕(德)을 잃게 될까 염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고조린의 규약을 취해 그 의미는 본받되 말단의 내용은 조금 변통하려 한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따지지 않고 진실로 이웃으로 한마을에 살면서 뜻이 같고 마음이 맞는 이가 있으면 현호계(懸弧禊)[18]를 맺는다. 매년 척장(滌場)[19] 이후에 각 가정에서 장정(壯丁)의 수를 계산하여 쌀이나 돈을 얼마씩 내서 계(禊)에 준다. 그러면 나이가 젊은 담당자 한 사람이 주관하여 여기에서 이자를 불린다.
1년 뒤부터 매년 계원 가운데 생일을 맞이한 사람 중 나이가 60세 이상의 경우에는, 산수(散壽)의 생일을 맞이한 이들에게는 쌀 5말과 돈 500문을 지급하고, 정수(正壽)의 생일을 맞이한 이들에게는 배로 지급한다. 나이가 30세 이상의 경우에는, 산수의 생일을 맞이한 이들에게는 쌀 3말과 돈 300문을 지급하고, 정수의 생일을 맞이한 이들에게는 배로 지급한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산수와 정수의 구별 없이 모두 쌀 2말과 돈 200문을 지급한다.

단, 생일회 당일보다 3일 앞서 지급하여 그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음식을 장만하게 한다. 혹 그 집에 모여서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아니면 장만한 음식을 꽃밭이나 물가의 정자에 가지고 가서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이런 일은 편의에 따라 한다. 그 장부의 기록과 벌금에 대한 여러 조항은 모두 고조린의 원래 규약을 참조하여 집행하되, 다만 생일회를 주관하는 일은 연 단위로 한 사람씩 돌아가기로 한다.】

김홍도, 활쏘기(국립중앙박물관)


각주

  1. 첨정(添丁):아들이 태어남을 뜻한다. 당(唐)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가 매우 아끼던 시인 노동(盧同)에게 준 시 〈기노동(寄盧同)〉에서 “지난해 아들이 태어났는데 ‘첨정(添丁)’이라 이름하니, 그 뜻은 나랏일에 일꾼으로 쓰이는 데 있었네.(去年生兒名添丁,意令與國充耘耔.)”라 했다. 그 뒤로 사람들이 득남을 ‘첨정(添丁)’이라고 표현하게 되었다.
  2. 혈식(血食):제사 음식을 흠향(歆饗)받는 일. 옛날에 제사지낼 때 희생의 피를 내어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3. 고조린(高兆麟):미상.
  4. 생일회약(生日會約):고조린이 지은 생일회의 규약. 《설부속(說郛續)》권29에 수록되어 있다.
  5. 《說郛續》 卷29 〈生日會約〉(《續修四庫全書》1191, 381쪽).
  6. 11칙:《생일회약》의 원문은 본래 12칙이다. 인용한 이 글에서는 ①과 ② 사이의 범례 1개를 반영하지 않았다.
  7. 삼양(三養):양복(養福)·양기(養氣)·양재(養財) 세 가지를 말한다. 소동파가 파직되어 봉급이 끊어지자 고향에 돌아왔는데, 또한 가난하였다. 그러자 스스로 “나에게는 삼양(3가지 기름)이 있으니, 분수를 편안히 여겨 복을 기르고, 조금 먹어 위(胃)를 넉넉하게 하여 기(氣)를 기르고, 소비를 줄여 재산을 기른다.”라 했다. 여기서는 조촐한 상차림을 가리키는 듯하다.
  8. 산수(散壽):11, 12, 13등 10단위로 끝나는 수 사이의 나이. 이와 달리 10단위로 끝나는 나이인 60, 70, 80 등은 정수라고 한다.
  9. 오방(五房):원래는 중국 당(唐)·송(宋) 시대에 중서성(中書省) 아래의 이방(吏房)·추기방(樞機房)·병방(兵房)·호방(戶房)·형례방(刑禮房) 이 다섯 실무 행정부서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여기서는 집안의 대소사에 쓰일 물품을 보관하는 곡간 정도의 장소로 보인다.
  10. 당포(當鋪):물건을 저당잡아 고리(高利)로 돈을 빌려주는 점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집안의 재정을 관리하도록 지정한 곳으로 보인다.
  11. 족장(族長):일족에서 가장 높은 사람. 일반적으로 종족집단의 장을 의미한다.
  12. 생생불이(生生不已):대대로 자손을 낳아 끊김 없이 세대를 이어 가는 일.
  13. 《說郛續》 卷29 〈生日會約〉(《續修四庫全書》1191, 382~383쪽).
  14. 현호(懸弧):아들이 태어난 일을 말한다. 옛 풍습에 아들이 태어나면 문의 왼쪽에 활을 거는데, 남자는 활을 쏘는 도리가 있음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예기(禮記)》 〈내칙(內則)〉(《十三經注疏整理本》 14, 1002쪽).
  15. 헌말(獻襪):동지(冬至)가 되면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동지 하례(賀禮)를 행하며 버선을 만들어 올리던 예이다.
  16. 여러……맞이한다:《毛詩正義》 〈小雅〉 “伐木”(《十三經注疏整理本》5, 676쪽).
  17. 여러……맞이한다:《毛詩正義》, 위와 같은 곳.
  18. 현호계(懸弧禊):옛날에 아들을 낳은 집 문의 왼쪽에 활을 걸어두는 풍습에서 유래한 모임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남성계(男性禊)인 셈이다. 이는 무(武)를 숭상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19. 척장(滌場):수확을 끝낸 음력 10월 무렵.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 편에 “9월에 서리 내리고, 10월에 수확을 마친 뒤 마당을 깨끗이 손질하네. 두 동이의 술로 향연을 베풀고, 염소와 양을 잡네.(九月肅霜, 十月滌場. 朋酒斯饗, 曰殺羔羊.)”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