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각 절기의 구경거리와 즐거운 놀이:절일의 세부 내용:석가탄신일

pungseok
최시남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0월 16일 (금) 09:52 판 (새 문서: ==내용== '''석가탄신일의 관등(觀燈) 놀이'''<br/> 초파일에는 손님을 맞이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데, 유엽병(楡葉餠, 느티떡)·삶은 콩·데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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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석가탄신일의 관등(觀燈) 놀이
초파일에는 손님을 맞이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데, 유엽병(楡葉餠, 느티떡)·삶은 콩·데친 미나리를 내어놓으며, 이를 ‘석가탄신일에 먹는 소찬(素饌)[1]’이라 한다. 또 어린아이들은 동이에 물을 담아 등불을 다는 장대 아래에다 놓고, 바가지를 띄우고는 비의 자루로 바가지 뒷면을 톡톡 두드려 꾸밈없고 소박한 소리를 내는데, 이를 ‘물장구[水鼓]’라 한다.
장원(張遠)[2]의 《오지(隩志)》[3]를 살펴보니, “서울(연경)의 풍속에 부처의 이름을 외는 사람은 그때마다 콩으로 자신이 왼 횟수를 표시하여 두었다가, 4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이 되면 그 콩을 삶은 뒤 소금을 살짝 뿌려서는 길에서 사람을 맞이하여 먹기를 청하면서 인연을 맺는다.”[4]라 했다. 요즈음 민간에서 콩을 삶아 내는 일은 대개 여기에서 시작했다.
또 《제경경물략》을 살펴보니, “정월 대보름 밤에 어린아이들이 북을 치며 저녁부터 새벽까지 노는 것을 ‘태평고(太平鼓)’라 한다.”[5]라 했다. 지금 민간의 물장구[水鼓]는 중국의 태평고와 흡사한데, 석가탄신일에 등석(燈夕, 등 밝히기)을 행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이 물장구 역시 옮겨서 행하는 것이다. 《한양세시기》[6]

민가에서 등에 불을 켤 때에는 자녀들의 숫자대로 밝혀야 길하다고 여긴다. 등불을 다는 장대는 큰 대나무 수십 개를 묶어서 만든다. 꼭대기에 꿩의 깃을 꽂고 색색의 깃발을 매어 달거나 혹은 일월권(日月圈)[7]을 꽂아두면 바람이 부는 대로 현란하게 돌아간다. 이날 저녁은 관례상 야간통금을 풀어주므로, 등불을 구경하는 이들이 남북쪽 산기슭 여기저기에 있다. 혹은 퉁소와 북을 가지고 연주하며 거리를 따라다니면서 등을 구경하기도 한다.
《고려사》를 살펴보니, “왕궁과 도성으로부터 시골의 읍내에 이르기까지 정월 대보름과 16일 이틀 밤에 걸쳐 등불을 달았는데, 최이(崔怡)[8]가 4월 초파일에 등불을 달도록 했다.”[9]라 했다.
또 《고려사》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풍속에는 4월 초파일이 석가탄신일인지라 집집마다 등불을 단다. 이날이 되기 수십 일 전부터 여러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장대에 붙여 깃발[旗]을 만들고, 도성의 거리와 마을을 온통 누비면서 소리치며[呼] 쌀과 베를 얻어다 그 등불 만드는 비용을 삼으니, 이를 ‘호기(呼旗)’라 한다.”[10]라 했다. 지금의 민간에서 등불을 다는 장대에 깃발을 꽂는 것은 호기의 남은 풍속이다. 《한양세시기》[11]

등불의 이름으로는 마늘등·연꽃등·수박등·학등·잉어등·자라등·병등·항아리등·배[船]등·북 등·칠성(七星)등·수(壽)자등 등의 종류가 있으니, 모두 사물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등들은 종이로 바르거나 푸른 깁을 쓰는데, 운모(雲母)[12]를 박아 넣어 날아가는 신선이나 꽃과 새의 무늬를 장식한다. 북등[鼓燈]에는 대부분 중국 삼국시대의 고사를 그려 넣는다.
또 영등(影燈)이 있다. 등 속에 돌아가는 얼레를 설치하고, 종이를 오려서 말탄 사냥꾼·매·개·호랑이·사슴·꿩·토끼의 형상을 만든 뒤 돌아가는 얼레에 붙인다. 이것들이 바람이나 열기에 의해 돌게 되면 밖에서 그 그림자를 본다.
소동파의 〈여오군채서(與吳君采書)〉[13]를 살펴보니, “영등을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가? 이것을 보느니 《삼국지》를 한 번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 했으니, 이는 틀림없이 삼국의 고사를 영등으로 만든 것이다.
또 범성대(范成大)[14]의 〈상원오하절물배체시(上元吳下節物排體詩)〉에 “영등을 돌리니 기마가 종횡으로 치달린다.”라 했는데, 그 주석에 ‘마기등(馬騎燈)이다.’[15]라 했다. 대개 송나라 때부터 이미 영등의 제도가 있었던 것이다. 《한양세시기》[16]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17]》에 “4월 8일 부처의 탄신일에는 10대 선원(禪院)에서 각각 ‘욕불재회(浴佛齋會)’[18]를 연다.”[19]라 했다. 《건순세시기》에 또한 “4월 8일은 부처의 탄신일이니 여러 사찰에서 각각 욕불회를 연다.”[20]라 했다. 우리나라가 4월 8일로 부처의 생일을 삼은 까닭은 대개 여기에서 기원했다.
그러나 《보요경(普耀經)》[21]에 근거하면 부처는 주(周)나라 소왕(昭王)[22] 24년[23] 갑인(甲寅)년 4월 8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주나라는 자월(子月)로 정월을 삼으니[24] 주나라의 4월은 곧 지금의 2월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요사(遼史)》 〈예지(禮志)〉에 “2월 8일은 싯다르타 왕자의 생신이므로 도성 및 여러 고을에서 나무를 깎아 불상을 만들고 각종 의장(儀仗)[25]을 갖추어 온갖 놀이를 하며 앞뒤로 행렬을 이루어 성을 돌아다니며 즐긴다.”[26]라 했다.
고려의 땅은 거란(요)과 가까워 많은 풍습을 본받았지만, 이 풍속만은 건도(乾道)[27]와 순희(淳熙)[28] 연간의 풍속을 따랐으니[29], 그 까닭을 알 수는 없다. 《금화경독기》[30]

각주

  1. 소찬(素饌):생선과 고기 반찬이 없이 채소와 곡류로만 차린 밥상.
  2. 장원(張遠):?~?. 중국 청나라 초기의 문인. 《오지(隩志)》를 편찬했다는 기록 이외의 사적은 남아있지 않다.
  3. 오지(隩志):장원이 편찬한 지리지. 중국 각 지역의 풍속을 기록했다.
  4. 서울의……맺는다:출전 확인 안 됨;《欽定日下舊聞考》 卷147 〈風俗〉2 (《文淵閣四庫全書》499, 283쪽).
  5. 정월……한다:출전 확인 안 됨;《欽定日下舊聞考》 卷147 〈風俗〉2 (《文淵閣四庫全書》499, 280쪽).
  6. 《京都雜志》 卷2 〈歲時〉 “四月八日”(《조선대세시기》3, 82~85쪽).
  7. 일월권(日月圈):바람개비의 일종. 사월 초파일에 세우는 등대 꼭대기의 장식. 끝에 장목을 단 긴 장대의 꼭대기 중앙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다른 나무를 꿰어 ‘십(十)’ 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나무의 양 끝에 직경 4cm 가량의 붉은 공과 흰 공을 위로 향하게 꽂아서 바람이 불면 나무가 빙빙 돌게 한 장치이다.
  8. 최이(崔怡):고려시대의 무신 최우(崔瑀, ?~1249). 뒤에 이(怡)로 개명했다. 아버지 최충헌(崔忠獻)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장악했으며 민심을 수습하려는 여러 정책을 펼치고 인재를 등용했다.
  9. 왕궁과……했다:《高麗史節要》 卷3 〈顯宗元文大王〉 “庚戌元年”;《金華耕讀記》권4 〈燈夕〉, 20쪽.
  10. 우리나라……한다:《高麗史節要》 卷28 〈恭愍王〉 “丙午十五年”;《金華耕讀記》권4 〈燈夕〉, 19쪽.
  11. 《京都雜志》 卷2 〈歲時〉 “四月八日”(《조선대세시기》3, 82~85쪽).
  12. 운모(雲母):석영·장석과 함께 화강암에 있는 중요한 조암 광물. ‘돌비늘’이라고도 한다.
  13. 여오군채서(與吳君采書):소동파가 오채(吳采)에게 준 짧은 글 2구로, 《동파전집(東坡全集)》에 실려있다.
  14. 범성대(范成大):1126~1193. 중국 남송(南宋)의 정치가이자 문학가. 자는 치능(致能), 호는 석호(石湖). 양만리(楊萬里)·육유(陸遊)·우무(尤袤)와 더불어 남송 4대가로 꼽히며, 청신(淸新)한 시풍으로 전원의 풍경을 묘사한 시들이 유명하다. 저서로 《석호시집(石湖詩集)》 등이 있다.
  15. 영등을……마기등(馬騎燈)이다:《石湖詩集》 卷23 〈上元紀吳中節物俳諧體三十二韻〉(《文淵閣四庫全書》1159, 769~770쪽).
  16. 《京都雜志》 卷2 〈歲時〉 “四月八日”(《조선대세시기》3, 82~85쪽).
  17.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중국 송나라의 문인 맹원로(孟元老, ?~1147)가 편찬한 서적. 송나라의 도읍인 개봉부(開封府)와 그 인근의 풍속 및 민간전승을 기록한 책이다.
  18. 욕불재회(浴佛齋會):부처의 탄생일인 음력 4월 8일을 기념하는 행사. 불가에서는 이날 불상(佛像)에 물을 끼얹으며 부처의 탄생을 축하한다. 욕화재(浴化齋) 또는 불탄회(佛誕會)라고도 한다.
  19. 4월……연다:《東京夢華錄》 卷8 〈四月八日〉(《文淵閣四庫全書》589, 162쪽).
  20. 4월……연다:《說郛》 卷69上 〈乾淳歳時記〉 “浴佛”(《文淵閣四庫全書》879, 715쪽).
  21. 보요경(普耀經):신격화된 부처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는, 대승 불교의 경전.
  22. 소왕(昭王):B.C 1027?~B.C 977.(재위 B.C 995~B.C 977) 주나라 4대 왕으로 강왕(康王)의 아들이다. 한수(漢水) 일대를 순수(巡狩)할 때 어떤 사람이 배에다 그를 아교로 칠하고 묶어서 꼼짝 못하게 했는데, 강 한가운데서 배가 가라앉아 그때 물에 빠져 죽었다는 고사가 있다.
  23. 24년:주나라 소왕은 재위 19년(B.C 977)에 죽었다. 오기로 추정된다.
  24. 자월(子月)로……삼으니:북두칠성 자루가 자(子)시 방향을 가리키는 달인 11월로 정월을 삼았다는 뜻이다.
  25. 의장(儀仗):천자(天子)나 왕공(王公), 그 밖의 높은 분을 모실 때 위엄을 보이기 위하여 격식을 갖추어 세우는 병장기.
  26. 2월……즐긴다:《遼史》 卷53 〈志〉22 “禮”6 “嘉儀”下 (《遼史》 2, 878쪽).
  27. 건도(乾道):중국 남송 효종(孝宗)의 두 번째 연호(1165~1173). 효종(孝宗, 1127~1194)은 남송(南宋)의 제 2대 황제이며 명군(名君)으로 꼽힌다.
  28. 순희(淳熙):중국 남송 효종(孝宗)의 세 번째 연호(1174~1189).
  29. 건도(乾道)와……따랐으니:《건순세시기》의 설을 따랐다는 의미이다.
  30. 《金華耕讀記》 卷4 〈燈夕〉, 19~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