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임원에서 즐기는 청아한 즐길거리(상):금ㆍ검:서재에 금(琴)이 없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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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미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9월 23일 (수) 11:3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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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금(琴)[1]이 없어서는 안 된다

금은 서재 안에서 고아한 악기가 되므로 하루라도 마주 대하지 않을 수 없다. 청음거사(淸音居士, 음악을 즐기는 선비)가 옛 이야기를 할 때, 만약 고금(古琴)이 없으면 신금(新琴)이라도 벽에 하나 걸어놓아야 한다. 연주를 잘하든지 전혀 잘못하든지에 상관없이 금이 있어야만 한다.
도잠(陶潛)[2]은 “다만 금의 아취(雅趣)를 얻었으면 됐지, 어찌 현 위의 소리에 힘을 쓰겠는가.”[3]라 했다. 우리가 금을 일삼음은 많은 곡을 기억함에 뜻이 있지 않으니, 오직 금의 아취를 이해하면 또한 그 진의(眞意)를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성조(亞聖操)[4]》·《회고음(懷古吟)[5]》은 현인(賢人)에 뜻을 두고 이들을 회고한다. 《고교행(古交行)[6]》·《설창야화(雪窓夜話)[7]》는 벗을 그리워하게 한다. 《의란(漪蘭)[8]》·《양춘(陽春)[9]》은 화창한 기운이 퍼지도록 북돋운다. 《풍입송(風入松)[10]》·《어풍행(御風行)[11]》은 연주하면 서늘한 바람이 일어나 노여움을 풀어준다. 《소상수운(瀟湘水雲)[12]》·《안과형양(雁過衡陽)[13]》은 나의 흥을 북돋아 가을 하늘에 가까워지게 한다. 《매화삼롱(梅花三弄)[14]》·《백설조(白雪操)[15]》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현포(玄圃)[16]에 노닐게 한다. 《초가(樵歌)[17]》·《어가(漁歌)[18]》는 산수에서의 한가로운 마음을 울리고, 《곡구인(谷口引)[19]》·《구각가(扣角歌)[20]》는 안개와 노을의 아취를 품게 한다.

사부(詞賦) 중에 《귀거래사(歸去來辭)[21]》·《적벽부(赤壁賦))[22]》 역시 시가(詩歌)로 읊거나 흥을 부칠만한 악곡들이다. 맑은 밤 달이 밝을 때에 한두 곡을 타면 성품을 기르고 일신을 수양하는 방도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찌 사동(絲桐)[23]을 귀만 즐겁게 하는 계책으로 여기겠는가. 《준생팔전》[24]

  1. 금(琴):여기서는 중국금을 말한다. 거문고·가야금처럼 길다란 판에 줄을 걸고, 왼손으로 짚어 음높이를 조절하고 오른손으로 뜯거나 튕겨서 연주한다. 중국금의 길이는 거문고의 약 3분의 2로 1미터 미만이며, 일곱 줄(고형[古形]은 다섯 줄)이 표준이다. 고금(古琴), 아금(雅琴), 요금(瑤琴), 칠현금(七絃琴), 휘금(徽琴, 暉琴) 등의 다양한 이칭(異稱)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금’은 거문고를 가리키기도 하며, 거문고임을 분명히 할 때는 현학금(玄鶴琴), 현금(玄琴), 동금(東琴), 괘금(棵琴, 卦琴, 掛琴) 등으로 쓴다. 《임원경제지 유예지》 권6 〈방중악보〉 “당금자보”에 고금의 연주법과 악보가 자세하게 나온다.
  2. 도잠(陶潛):365~427. 중국 동진(東晉)의 시인. 호는 연명(淵明), 자는 원량(元亮). 속세를 벗어난 생활을 담담하면서도 격조있게 묘사한 그의 시는 후대의 여러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귀거래사(歸去來辭)》·《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도화원기(桃花源記)》 등의 작품이 있다.
  3. 다만……쓰겠는가:도잠 ‘무현금(無絃琴)’의 고사를 말한다. “본래 음악을 알지 못하나, 줄도 휘(徽: 아래 ‘論徽’ 참조)도 없는 소박한 금 한 대를 갖추어 두고서 매번 벗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어루만지고 화답하며 말하기를 ‘다만 금의 아취를 알면 됐지, 어찌 줄 위 소리에 힘쓰겠는가’ 하였다.(性不解音, 而畜素琴一張, 絃徽不具, 每朋酒之會, 則撫而和之, 曰:‘但識琴中趣, 何勞絃上聲.’)” 《晉書》 권94 《列傳·陶潛》.
  4. 아성조(亞聖操):안회(顔回, B.C.521~B.C.481)를 그리워하는 금 연주곡. 공자(孔子)의 제자인 안회는 성인(聖人)에 버금가는[亞] 인물이었지만 요절하였기에 이 연주곡은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를 담고 있다. 작자는 미상이다. 명나라의 금 전문가인 사림(謝琳, ?~?)이 편찬한 《사림태고유음(謝琳太古遺音)》 등의 금서(琴書)에 수록되어 있다.
  5. 회고음(懷古吟):옛사람을 회상하는 분위기의 금 연주곡. 작자는 미상이다. 명나라의 금 전문가인 장극겸(蔣克謙, ?~?)이 편찬한 《금서대전(琴書大典)》 등의 금서에 수록되어 있다.
  6. 고교행(古交行):송나라의 시인 정협사(鄭俠寫, ?~?)가 지은 시와 그 시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명나라의 금 전문가인 소란(蕭鸞, ?~?)이 편찬한 《행장태음보유(杏莊太音補遺)》 등의 금서에 수록되어 있다.
  7. 설창야화(雪窓夜話):겨울밤 옛일을 그리워하는 분위기의 금 연주곡. 작자는 미상이다. 명나라의 금 전문가인 양가삼(楊嘉森, ?~?)이 편찬한 《금보정전(琴譜正傳)》등의 금서에 수록되어 있다.
  8. 의란(漪蘭):《의란조(漪蘭操)》 또는 《유란조(幽蘭操)》라고도 하며, 공자가 곡을 지었다고도 하고, 또는 공자가 지은 노랫말에 붙인 금곡(琴曲)이라고도 전한다. 후한(後漢) 채옹(蔡邕, 132~192)의 《금조(琴操)》에 곡명이 나올 정도로 유서 깊은 금곡이다.
  9. 양춘(陽春):봄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금 연주곡. 작자는 미상이다.
  10. 풍입송(風入松):중국 진(晉)나라의 문인 혜강(嵇康, 224~263)이 지은 시와 그 시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고려 때 같은 제목의 거문고곡 및 가사와는 구별되는 곡이다.
  11. 어풍행(御風行):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열자(列子, 450~375)가 바람[風]을 타고[御] 세상을 주유했다는 고사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열자어풍(列子御風)》이라고도 한다.
  12. 소상수운(瀟湘水雲):중국 남송시대 금 전문가인 곽초망(郭楚望, 1190~1260)이 지은 노래와 그 노래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13. 안과형양(雁過衡陽):중국 송(宋)나라의 문인 범중엄(範仲淹, 989~1052)이 지은 《어가오(漁家傲)·추사(秋思)》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14. 매화삼롱(梅花三弄):중국 동진(東晉)의 문인 환이(桓伊, ?~?)가 지은 시와 그 시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15. 백설조(白雪操):중국 남북조시대 문인 유연자(劉涓子, 370?~450)가 지은 시 “양춘백설(陽春白雪)”과 그 시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16. 현포(玄圃):전설로 전해지는, 곤륜산(崑崙山) 위의 신선이 사는 곳.
  17. 초가(樵歌):중국 송나라의 시인 주돈유(朱敦儒, 1081~1159)가 지은 고금 연주곡. 《태평초가(太平樵歌)》라고도 한다.
  18. 어가(漁歌):배를 타고 세상을 주유하는 광경을 노래한 시와 그 시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작자는 미상이다.
  19. 곡구인(谷口引):중국 진(晉)나라의 문인 좌사(左思, 250?~305?)가 벼슬을 그만두고 심산유곡에 은거하며 지은 시와 그 시를 주제로 하는 금 연주곡.
  20. 구각가(扣角歌):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 사람 영척(寗戚, ?~?)이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앞에서 소의 뿔[角]을 두드리면서[扣] “내 평생 요순(堯舜)을 만나보지 못하겠네(生不遭堯與舜).”라 말하며 탄식하자 환공이 영척을 등용시켰다는 고사를 주제로 한 금 연주곡.
  21. 귀거래사(歸去來辭):도잠이 지은 산문시.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은거하는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심경을 노래한 작품이다.
  22. 적벽부(赤壁賦):중국 송(宋)나라의 문장가인 소식(蘇軾, 1037~1101)이 삼국시대 적벽전투를 주제로 쓴 산문시. 촉나라 유비와 오나라 손권의 연합군이 위나라의 조조 군대를 상대로 싸운 장소가 호북성(湖北省) 가어현(嘉魚縣) 북동쪽 양자강에 있는 적벽이다. 《전(前)적벽부》·《후(後)적벽부》가 있다.
  23. 사동(絲桐):실과 오동나무, 즉 금.
  24. 《遵生八牋》 卷15 〈燕閒清賞牋〉 中 “論文房器具” ‘琴劍’(《遵生八牋校注》, 5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