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문방아제:사용법

pungseok
강민우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8월 30일 (일) 16:3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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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먹을 갈 때 천천히 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옛말에 “먹을 갈 때는 병이 든 사람처럼 한다.”라 했다. 일반적으로 먹을 갈 때는 곧게 가는 것을 최고로 치니, 곧게 갈아야만 먹의 고유한 색이 나타나고, 먹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만약 먹을 둥글게 갈면 거듭 먹을 가는 기세를 빌림으로 말미암아 먹을 갈면서 바람이 일어 먹물의 색이 좋게 나오도록 도와주지만, 이는 먹의 고유한 색이 아니다. 오직 먹을 파는 사람만이 먹을 둥글게 간다. 만약 먹을 눕혀서 갈면 물이 항상 먹의 절반만 닳게 하고 남은 절반의 먹은 먼저 닳은 먹에 미치지 못한다. 오직 속된 사람들만 먹을 눕혀서 간다. 일반적으로 묵장(墨匠)은 먹을 만드는 일에 공을 들이지 않고, 먹을 가는 일에만 공을 들인다. 장사꾼들이 파는 먹은 가령 직접 먹을 갈아보면 항상 처음 한 번 갈 때만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고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갈면 더디게 마르고, 거친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갈면 빠르게 마른다. 품질이 좋은 먹을 갈면 무소뿔을 가는 듯하고, 품질이 나쁜 먹을 갈면 진흙을 가는 듯하다. 조열지 《묵경》[1]


먹의 빼어난 쓰임을 위해서, 재질로는 가벼움을 취하고, 그을음으로는 색의 푸르름을 취하며, 【안. 이 2구절(“재질로는……취하며”)은 모두 조열지가 지은 《묵경(墨經)》의 내용과 상반되는데, 마땅히 조열지의 말이 옳다.】냄새를 맡아도 향기가 나지 않고 갈아도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한다. 새 벼루[2]와 새 물로 먹을 갈 때는 마치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한다. 【힘을 주며 갈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먹은 급히 가는 것을 금하니, 급히 갈면 열이 나고 열이 나면 거품이 생기기 때문이다. 먹을 쓸 일이 있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갈며, 갈아 놓은 먹물을 오랫동안 벼루에 두어서는 안 된다. 먹물을 벼루에 오래 두면 먼지가 들러붙고 아교의 효력 때문에 진흙처럼 엉긴다. 사용하고 나면 벼루를 씻고, 먹을 보관하되 포개서 쌓지 않는다. 오랫동안 보관해서 아교가 묵고 그제야 먹을 사용하면 먹의 성질이 정교해진다. 《준생팔전》[3]


일반적으로 완석(頑石)은 거칠고 단단하다. 그래서 먹을 가는 사람이 힘을 지나치게 줘서 빨리 갈면 먹과 벼루가 서로 강하게 밀어내 반드시 열이 나고 거품이 일게 된다. 민간에서는 “먹을 갈 때는 병든 아이처럼 하고, 붓을 잡을 때는 건장한 장부처럼 하라.”라 했다. 또 “먹을 갈 때는 중풍으로 수전증이 있는 사람처럼 하라.”라 했으니, 모두 가볍게 먹을 가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 말이다. 물건의 특성상 서로 억제하는 측면이 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점이 있다. 지금 간혹 급히 먹을 갈아 거품이 일어나면 먹물이 거의 붓에 엉겨 붙어 글자를 쓸 수 없게 된다. 다만 이때 좁쌀 1알 정도 크기의 귀지를 먹물에 던지면 귀지가 작은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곧 먹물의 거품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 《피서록화》[4]


패즙(稗汁)[5]으로 먹을 갈고 백반을 바른 종이에 글자를 쓰면 마치 옻으로 쓴 것과 같다. 《물리소지(物理小識)[6][7]


비조자(肥皁子) 우린 물에 먹을 갈면 기름종이 위에 글자를 쓸 수 있다. 《고금비원》[8]


생강즙으로 먹을 갈면 비단 위에 글자를 쓸 수있다. 《고금비원》[9]


일반적으로 거친 종이에 글자를 쓰면 먹이 쉽게 스며든다. 벼루에 남은 먹물과 붓에 묻어 있는 먹물을 씻어낸 뒤, 우물에서 새로 길어온 물로 먹을 갈아 글자를 쓰면 비록 먹이 쉽게 스며들더라도 또한 먹물이 3/10 줄어든다. 《고금비원》[10]


몹시 추울 때는 먹에 번초즙(番椒汁)[11] 약간을 물과 섞어 먹을 갈면 먹물이 얼지 않는다. 《화한삼재도회》[12]


오래된 종이에 글자를 쓰기 어려울 때는 쌀뜨물로 먹을 갈면 먹물이 스며들어 종이에 잘 물들일 수 있다. 《화한삼재도회》[13]

  1. 《晁氏墨經》 〈硏〉(《叢書集成初編》 1495, 17~18쪽).
  2. 벼루:원문의 ‘연(硏)’이다. 연(硏)은 본래 갈아서 평평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벼루’를 뜻하기도 한다. 원문 에서 ‘연(硏)’ 외에 ‘마(磨)’도 먹을 가는 행위를 의미한다.
  3. 《遵生八牋》 卷15 〈燕閑淸賞牋〉 中 “論墨”(《遵生八牋校注》, 574쪽).
  4. 《避暑錄話》 卷下(《叢書集成初編》 2786, 80쪽).
  5. 패즙(稗汁):피의 즙이다. 볏과의 한해살이풀인 피는 돌피·물피·논피로 나뉘는데, 돌피는 자색을 띠며 길이 10~25cm이다. 사료식물로 쓰이며 염료식물로도 사용된다. 식물체를 잘게 썰어서 30분간 끓여 물감을 얻을 수 있는데, 처음에는 연하지만 반복하여 염색하면 진한 색이 된다. 구자옥 외, 《한국의 수생식물과 생활주변식물 도감》(자원식물보호연구회, 2009년)의 돌피에 대한 설명 참조.
  6. 물리소지(物理小識):중국 명말청초의 사상가 방이지(方以智, 1611~1671)의 저서로, 총론을 비롯해 천류(天類)·풍뇌우양류(風雷雨暘類)·지류(地類)·점후류(占候類)·인신류(人身類)·의요류(醫要類)·의약류(醫藥類)·음식류(飮食類)·의복류(衣服類)·금석류(金石類)·기용류(器用類)·초목류(草木類)·조수류(鳥獸類)·귀신방술류(鬼神方術類)·이사류(異事類)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7. 《物理小識》 卷8 〈器用類〉 “頃刻碑法”(《文淵閣四庫全書》 867, 907쪽).
  8. 《古今秘苑》 1集 卷1 〈油紙寫字法〉, 1쪽.
  9. 《古今秘苑》 1集 卷1 〈絹布上寫字法〉, 1쪽.
  10. 《古今秘苑》 2集 卷2 〈磨墨用新汲水〉, 2쪽.
  11. 번초즙(番椒汁):번초는 가지과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식물로, 고추를 말한다. 고초(苦椒)·남만초(南蠻草)·남초(南椒)·당초(唐草)·왜초(倭草) 등이라고도 한다.
  12. 《和漢三才圖會》 卷3 〈技藝〉 “墨”, 20쪽.
  13. 《和漢三才圖會》, 위와 같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