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문방아제:먹의 품질 변별하기

pungseok
강민우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8월 26일 (수) 10:2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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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먹색은 자줏빛이 돌면 상품이고, 검은빛이 돌면 다음이고, 푸른빛이 돌면 그 다음이고, 흰빛이 돌면 하품이다. 일반적으로 먹의 빛과 색은 하나라도 무시할 수 없으니, 오래되었어도 빛과 색이 변하지 않는 먹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아교의 빛이 돌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옛날 먹은 색은 갖추었지만 광택이 돌지 않는 것이 많은데, 습기가 차서 못쓰게 되었으니, 이는 옛 먹 중에 좋은 것은 아니다. 옛 먹 중에 품질이 좋은 것은 매우 검으면서도 들뜨지 않고, 밝으면서도 고우며, 윤택하면서도 습기에 젖어 있지 않으니, 이런 먹을 일컬어 ‘자줏빛이 돈다[紫光]’고 한다.

일반적으로 먹으로 먹을 비교하는 방법은 종이로 먹을 비교하는 방법보다 좋지 못하다. 또는 벼루로 먹을 시험하거나 손톱으로 먹을 시험하기도 하는데, 모두 좋은 방법이 아니다. 조열지(晁說之)[1] 《묵경(墨經)》[2]


일반적으로 먹은 두드려서 그 소리를 변별하는데, 순수한 그을음으로 만든 먹은 그 소리가 맑게 울리고, 이물질이 섞인 그을음으로 만든 먹은 그 소리가 둔탁하게 막힌다. 만약 벼루에 먹을 갈면서 그 소리를 변별하면, 고운 먹의 소리는 매끄럽고, 거친 먹의 소리는 거칠다. 거친 소리를 ‘벼루를 때린다[打硏]’라 하고, 매끄러운 소리를 ‘벼루에 스며든다[入硏]’라 한다. 조열지 《묵경》[3]


일반적으로 먹은 가벼운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니, 옛말에 “그을음은 가벼운 것을 귀하게 여기고, 먹은 무거운 것을 귀하게 여긴다.”라 했다. 지금 사람들은 먹을 고를 때 가벼운 것을 귀하게 여기니,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그을음이 거칠면 먹이 가볍고, 그을음에 이물질이 섞이면 먹이 가볍고, 봄에 만든 아교로 먹을 만들면 가볍고, 물에 상한 아교로 먹을 만들면 가벼우며, 아교가 습기를 먹어 망가지면 먹이 가볍다.

오직 순수한 그을음·제대로 만든 아교·좋은 약제·좋은 때를 모두 갖추어야 먹이 비로소 무겁고 일정한 모양이 갖춰진다. 일정한 모양이 갖춰져야 비로 소 오래갈 수 있고, 오래갈수록 더욱 견고해져서 습기가 차도 망가지지 않으며, 저절로 좋은 품질을 이루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된다. 조열지 《묵경》[4]


일반적으로 새로 만든 먹은 오래 묵은 먹에 못미친다. 위삭(衛鑠)[5]이 “먹은 10년 이상 되어 돌처럼 강한 것을 사용한다.”라 했다. 대개 오래될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게다가 흰 물건이라도 오래되면 검게 변하는데, 하물며 본래 검은 물건은 어떠하겠는가? 그을음은 오래되어야 검게 변하고, 검은색을 띠어야 자색으로 변한다. 아교는 오래되어야 단단해지고, 단단해져야 비로소 광채를 발산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오래 묵은 먹을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새로 만든 먹은 여름을 3번 넘기기 전에는 거의 쓸 수 없다. 일반적으로 오래 묵은 먹의 아교가 못쓰게 되면 이를 가루 내어 새 그을음을 다시 잘 섞고, 여기에 아교를 넣어 오래되면 비로소 그을음과 아교가 잘 섞일 수 있다. 그러나 큰 아교를 응달에 오랫동안 묵힌 것이 아니면 쓸 수 없다. 조열지 《묵경》[6]


먹은 너무 오래 묵으면 아교의 기운이 다해 글자를 써도 광택이 돌지 않고, 너무 새것이면 아교의 기운이 무겁게 가라앉아 붓이 많이 감기고 막힌다. 오직 만든 지 3·5·10년이 지나야 사용하기에 가장 좋다. 《오잡조(五雜組)[7][8]


먹을 만드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이 4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을음이 곱고 아교가 새것이라야 한다.

절구질을 충분히 해서 고르게 쪄야 한다.

먹색이 손에 묻어나지 않아야 한다.

광택이 보는 사람을 쏘는 듯해야 한다.

옛사람이 먹을 만드는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다.

먹을 만들 때는 오직 아교를 다루기가 어려우니, 옛날의 뛰어난 장인들은 모두 스스로 아교를 만들었다. 그 방법은 새로 잡은 소의 가죽과 힘줄만을 아교의 재료로 사용하되, 쇠가죽은 두터운 곳을 고르고 가죽에 붙어 있는 피부와 털을 모두 잘라 버려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손질된 재료를 도가니에 넣고 끓여서 아교가 되면 곧 그을음과 섞는다. 만약 아교가 응고되어 아교의 성질이 거듭 변하면 이미 새 아교가 아니다.

지금 사용하는 아교 재료는 모두 쇠가죽의 자투리다. 그러므로 비록 이 아교를 ‘광교(廣膠, 쇠가죽으로 만든 아교)’라 하지만 옛날 아교 만드는 방법과 오히려 거리가 머니, 괴이하지 않은가? 이런 재료로 만든 먹은 먹 중의 하품이다. 《단연총록(丹鉛總錄)[9][10]


여러 먹을 빛이 바랜 칠기(漆器) 위에서 간 뒤, 마르면 물동이에 넣어 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옻색과 다름없는 먹이 가장 좋다. 청색을 띤 먹이 다음이고, 회색을 띤 먹은 하품이다. 먹 품질의 좋고 나쁨은 비록 지극히 다르지만 대강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근래에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그들이 만든 먹은 처음 쓸 때는 제법 괜찮지만 오래되면 회색으로 변한다. 이는 대개 먹의 중간에는 저연(低煙, 가마 바닥에 깔린 거친 그을음)을 끼워 넣고, 정연(頂煙, 가마 위에 붙은 고운 그을음)은 겨우 양쪽 끝부분에만 넣었기 때문이다. 《고금비원(古今秘苑)[11][12]


먹의 무늬가 가죽 신발의 표면 같아서 먹을 갈았을 때 기름 테가 둘러지는 먹은 1냥으로 3만 개의 붓을 검게 물들일 수 있다. 성노백(成老伯)[13] 《묵경》[14]


먹이 종이를 물들였을 때 3년 동안 글자가 흐려지지 않으면 상품이다. 성노백 《묵경》[15]

  1. 조열지(晁說之):1059~1129. 중국 송나라의 학자. 자는 이도(以道). 먹의 재료와 제조법·등급을 상세히 소개하는 내용의 《묵경(墨經)》을 비롯하여 《역상구대전(易商瞿大傳)》·《서론(書論)》·《역상소전(易商小傳)》·《상구역전(商瞿易傳)》·《상구외전(商瞿外傳)》·《조씨시전(晁氏詩傳)》·《조씨서전(晁氏書傳)》 등을 저술했다.
  2. 《墨經》 〈色〉(《叢書集成初編》 1495, 18~19쪽).
  3. 《墨經》 〈聲〉(《叢書集成初編》 1495, 19~20쪽).
  4. 《墨經》 〈輕重〉(《叢書集成初編》 1495, 20쪽).
  5. 위삭(衛鑠):272~349. 중국 동진(東晉)의 서예가. 자는 무의(茂猗). 강주자사(江州刺史) 위전(衛展)의 누이동생이며 여음태수(汝陰太守) 이구(李矩)에 출가했다. 종요(種繇)에게 서법을 배웠으며 어린 왕희지(王養之)에게 서법을 가르쳤다. 《필진도(筆陣圖)》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유예지》 권3 〈글씨〉 “해서와 초서”에 《필진도》의 내용이 소개되었다.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심영환·조송식·고연희·정명현) 옮김, 《임원경제지 유예지(林園經濟志 遊藝志)》 2, 풍석문화재단, 2017, 88~94쪽.
  6. 《墨經》 〈新故〉(《叢書集成初編》 1495, 20~21쪽).
  7. 오잡조(五雜組):중국 명(明)나라 시인 사조제(謝肇淛, 1567〜1624)가 지은 책으로, 천(天)·지(地)·인(人)·물(物)·사(事)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수필·독서록·사회·정치 등을 포괄하고 있다.
  8. 《五雜組》 卷12 〈一刁考寸一〉.
  9. 단연총록(丹鉛總錄):중국 명(明)나라 양신(楊愼, 1488〜1559)이 천문(天文)·지리(地理)·사계(四季)·조수(鳥獸)·초목(草木)·궁실(宫室)·음악(音樂)·인사(人事)·사적(史籍)·예악(禮樂)·신체(身体) 등으로 분야를 나누고 여러 책들을 교감하여 차이점을 고증한 책. 전체 27권.
  10. 《丹鉛總錄》 卷8 〈物用類〉 “古製墨法”(《文淵閣四庫全書》 855, 404쪽).
  11. 고금비원(古今秘苑):중국 송나라의 문인 증조(曾慥, ?~1155)가 고금의 비술(秘術)을 기술한 저서. 전체 15권, 속록 13권에 의약·천문·지리·인사·부적·양생법 등에 대한 여러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증조는 도교의 이론을 집대성한 《도추(道樞)》를 편찬하기도 했다.
  12. 《古今秘苑》 〈2集〉 卷2 “試墨法”, 1쪽.
  13. 성노백(成老伯):미상. 《사고전서》를 찾아보면 성노백(成老伯)과 성노상(成老相)이 이 책을 저술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14. 《說郛》 卷119上 〈雲仙雜記〉2 “墨紋如履皮”(《文淵閣四庫全書》 882, 762쪽);《墨史》 卷下 〈雜記〉(《叢書集 成初編》 1495, 68쪽).
  15. 《說郛》 卷24下 〈負暄雜錄〉 “相墨”(《文淵閣四庫全書》 877, 394쪽);《墨史》 卷下 〈雜記〉(《叢書集成初編》 1495, 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