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목차
정의
가산(假山)은 정원을 장식하기 위해 돌을 모아 쌓아서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산을 말한다. 석가산(石假山)이라고도 한다. 《임원경제지 이운지》에 제작방법이 실려있다.
내용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에 소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못 주변에 석가산(石假山, 돌로 만든 인공산) 만드는 법
만약 물에 달아 반질반질한 돌을 얻을 수 없으면 단단하지 않은 돌을 쪼아서 괴석(怪石)을 만든다. 이 괴석을 연못가에 여러 겹으로 쌓아서 산을 만드는데, 바위와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어 보이도록 한다. 단풍나무·소나무·오죽(烏竹)·진달래·철쭉·패랭이꽃·백합·범부채 따위를 많이 심고, 못가에도 여뀌를 심는다. 산의 뒤쪽에는 큰 항아리를 두고 물을 저장한 뒤, 대나무를 구부려 산꼭대기로부터 굽이굽이 돌면서 물을 끌어 내렸다가 못 가까이에 와서 폭포가 되어 항아리에 떨어지도록 만든다. 대나무로 연결한 그 물길은 기와 굽는 흙으로 견고하게 바르면 물이 새지 않는다. 이 석가산을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면 저절로 기이한 풍취(風趣)가 많이 느껴진다. 《증보산림경제》[1]
섭소옹(葉紹翁)[2]의 《사조문견록(四朝聞見錄)》[3]에는 오거(吳琚)[4]의 정원과 못의 제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5]
“성에 기대어 돌을 여러 겹으로 쌓아 이를 ‘남록(南麓, 남쪽 산록)’이라 한다. 이 남록의 뒤편으로 계단을 몇 층으로 높이 쌓고 그리로 올라가서 항아리에 물을 길어 대롱으로 물을 흘려보낸다. 그러면 패옥이 찰랑거리듯이 졸졸 물소리를 내며 네모난 못으로 흘러드는데, 이 못은 사방 4~5척의 크기다.
이 남록의 뒤편에서 성으로 올라서면 소대(嘯臺)가 있고, 이 소대에서 동굴 문으로 들어가면 여기에는 둥그렇게 벽도(碧桃)가 심어져 있고, 바위가 있어서 바둑을 두면서 앉아 있을 수 있다. 【
안. 아마도 ‘앉아서 바둑을 둘 수 있다’로 고쳐야 될 듯하다.】 여기서 서쪽으로 굽은 길을 걸어가다 길을 꺾어서 돌면 도미동(荼蘼洞)[6]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은 꼭대기가 띠풀로 덮여 있으며 원형이다. 그 안의 땅은 겨우 1심(尋, 8척)에서 1장(丈) 정도지만 등나무 덩굴이 엉켜 자라고, 꽃과 대나무가 줄지어 있고, 새들은 지저귀며 학은 울어 대니, 마치 산의 숲속에 있는 듯이 적막하다.
일반적으로 성안에 살거나, 끌어올 수원이 없는 사람들은 이 방법을 본받아서 설치할 만하다. 다만 항아리를 껴안고 못에 물을 대느라 평생 힘들게 애를 써야 하는 처지를 면하지 못한다."[7]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8]
가산(假山, 인공으로 만든 산)으로 뱀을 물리치고 안개 일으키는 방법
변경(汴京)[9]의 간악(艮嶽)[10] 안에 웅황(雄黃)[11]과 노감석(爐甘石)[12] 수만 근을 쌓아 가산을 만들었다.
대개 웅황을 바위 구멍이나 길거리 사이에 쌓아 두면 뱀이나 독사를 물리칠 수가 있다. 노감석의 경우 비가 지나간 뒤 햇볕이 내려 쪼이면 이것이 습기가 수증기처럼 올라오게 해서 이 습기를 남기(嵐氣)나 안개와 비슷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간악의 내부에 이 두 석물을 쌓았다. 《농전여화(農田餘話)》[13]
참고문헌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1,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增補山林經濟》, 柳重臨 (《農書》 4-5, 아세아문화사, 1981).
《金華耕讀記》, 徐有榘 (東京都立日比谷圖書館, 1959).
링크
문화콘텐츠닷컴-창덕궁 조경이야기 - 가산(假山)과 괴석(怪石)
관련 전거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 태종 9년 기축 > 3월 2일
종묘(宗廟)의 남쪽에 가산(假山)을 증축(增築)하였다.
조선왕조실록 > 정조실록 > 정조 9년 을사 > 8월 27일
이극문(貳極文) 안에 있던 오래된 우물 자리에 수강재(壽康齋)를 세웠다. 자경전(慈慶殿)을 영건(營建)할 때에 남은 자갈과 벽돌을 우물 위에 쌓아 가산(假山)을 만들었었다. 이때에 이르러 이를 철거(撤去)하고 그 우물을 파고는 소재(小齋)를 세워 내려다 보게 하였다. 이곳은 태조조(太祖朝) 수강궁(壽康宮)의 옛터로서 《여지승람(與地勝覽)》에 기재되어 있다. 이어 그 재(齋)를 수강재(壽康齋)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만보(漫步)하면서 서로 대할 수 있는 산이라고 해야 관악(冠岳)밖에는 있지 않은데, 관악으로 말하면 그저 땅 위로 솟아오른 하나의 범상한 흙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거리 역시 가깝지가 않고 마냥 멀기만 하니, 아침과 저녁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나 날이 흐리고 맑은 데 따라 다르게 보이는 산의 모습은 비록 볼 수가 있다 할지라도, 그 진면목을 직접 자세히 살피면서 멋진 경치를 음미할 도리는 전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상공이 산을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또 상공은 배공(裴公)이 바윗돌을 끌어모아 산의 모양을 만들고는 산골짜기와 같은 분위기가 우러나오도록 조성한 그 솜씨를 은근히 과시하면서 직접 답사하지 못하는 한스러움을 보상받으려고 한 옛일을 결코 본받으려 하지도 않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상공과 배공이 모두 산을 사랑하면서도 그 뜻은 달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 하겠는데, 하여튼 이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라도 가산(假山)과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을 어떻게 대신(大臣)이 된 입장에서 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무릇 대신(大臣)이라고 한다면, 나라가 편안해져야 자신도 더불어 편안하게 느끼고 나라가 위태로울 경우에는 더불어 그 위태로움을 같이하며, 다른 사람들이 근심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근심하고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게 된 뒤에야 자신도 즐거워하는 그런 자세를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14]
DB정보
Definition
가산(假山):정원을 장식하기 위해 돌을 모아 쌓아서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산.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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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산 | Architecture | 건축부품 | 조경 | garden | http://http://dh.aks.ac.kr/~pungseok/wiki/index.php?title=가산 |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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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가산 |
이칭/별칭 | 석가산(石假山) |
구성품 | 나무, 연못, 석재, 태호석, 금붕어 |
사용자 | 남녀,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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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 연못 | hasPart | 세운다 |
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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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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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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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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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1, 풍석문화재단, 2019, 129쪽.
- ↑ 섭소옹(葉紹翁):?~?. 12세기경 중국 송(宋)나라의 문인. 자는 사종(嗣宗), 호는 정일(靖逸). 대리사승(大理寺丞)과 형부낭중(刑部郎中)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진덕수(眞德秀, 1178~1235)와 교분을 유지하였다. 벼슬을 그만둔 뒤에는 절강성(浙江省) 전당호(錢塘湖)에 은거하였다. 저서에 《유원불치(遊園不値)》등이 있다.
- ↑ 사조문견록(四朝聞見錄):섭소옹의 저술. 5권. 송나라 고종(高宗)·효종(孝宗)·광종(光宗)·영종(寧宗) 4황제의 조정에서 일어난 사적과 야사 등을 수록하고 있다.
- ↑ 오거(吳琚):?~1189. 중국 송나라의 문인. 진안군(鎭安軍) 절도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운학집(雲壑集)》 등이 있다.
- ↑ 사조문견록(四朝聞見錄)에는……기록하였다:《四朝聞見錄》 卷2 〈乙集〉 “呉雲壑”.
- ↑ 도미동(荼蘼洞):소식(蘇軾)이 감탄한, 수려한 경치를 지닌 계곡. 소식이 지은 ‘도미동(荼蘼洞)’이라는 시제(詩題)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자세한 위치는 미상이다. 《東坡詩集註》 卷29 〈題詠〉 “荼蘼洞”에 시가 있다.
- ↑ 다만……못한다:《장자(莊子)》 第12 〈천지(天地)〉 편에 나오는 자공(子貢)과 어느 노인과의 고사를 암시하는 구절이다. 자공은 노인에게 물을 길어오기 위해 편리한 도구를 이용하라고 말하지만, 노인은 도구를 이용하려는 마음 곧 기심(機心)이 있으면 도(道)를 지킬 수 없다고 자공을 훈계했다.
- ↑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1, 풍석문화재단, 2019, 130쪽.
- ↑ 변경(汴京):중국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 일대에 있던 남송(南宋)의 수도.
- ↑ 간악(艮嶽):송나라 휘종(徽宗)이 변경 북동쪽[간(艮) 방위]에 인공으로 만든 산. 만세산(萬歲山)이라고도 한다.
- ↑ 웅황(雄黃):삼류화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물. 거풍(祛風) 및 조습(燥濕)의 효능이 있어 개선(疥癬)과 파상풍(破傷風) 등의 약재로 쓴다. 석웅황(石雄黃) 또는 석황(石黃)이라고도 한ek.
- ↑ 노감석(爐甘石):탄산아연을 주성분으로 하는 능아연석(菱亞鉛石)이나 수아연석(水亞鉛石) 등의 광물. 지혈(止血)과 종기의 해소 및 살균(殺菌)의 효능이 있어 안병(眼病)과 창상(創傷) 등의 약재로 쓴다. 감석(甘石) 또는 양간석(羊肝石)이라고도 한다.
- ↑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1, 풍석문화재단, 2019, 132~133쪽.
- ↑ 조선시대 문인들의 문집을 살펴보면, 권력을 잡은 신하들이 자신의 저택에 사사로이 가산을 조성하는 풍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간혹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