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사(都人士)〉라는 시[6]에 “립(笠)을 쓰고 검은끈으로 묶었네.”라는 구절이 ‘여우갖옷[狐裘]’[7]이나 ‘귀막이[充耳]’[8]와 함께 열거되었으니 립을 쓰는 것이 농부가 비를 피하기 위한 복장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왕안석(王安石)[9]은 “립을 쓰고검은끈으로 묶었네.”를 풀이하여, “벼슬하지 않는 사대부와 서민들이 함께 입는 복장”[10]이라 했다.그러니 일반적으로 산이나 들에 거처하는 사람들이 꼭 갖추어야 하는 쓰개이다.
요즘 농가에서 쓰는 삿갓은 모두 갈대를 쪼개 엮어서 만드니, 재료가 성글고 물러 쉽게 썩으므로 1년에 1번씩 바꿔야 한다. 호남 사람들이 대 껍질을 깎아 가로세로로 가늘게 엮은 삿갓이 좋다. 일반 갓에 비해 배나 크고[11] 양태의 끝이 말려 올라가서 멀리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삿갓에 옻칠을 하거나 황칠(黃漆)[12]을 하면 10년은 쓸 수 있다.
【{안} 《왕정농서(王禎農書)》를 살펴보니 “요즘 갓을 만들 때는 대를 엮어 몸체를 만들고 대껍질로 싸서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만드는데, 모두 꼭대기가 솟아 있고, 주둥이(밑)는 둥글다.”[13]라 했다. 그 제도가 우리나라 호남에서 대나무로 만든 삿갓과 비슷하다. 다만 대껍질로 싸는 일은 쓸데없는 듯하다.】
↑고대에 갖옷[裘衣]은 방한용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특정 예복을 입을 때 함께 갖춰 입는 옷이었다. 예복에 쓰는 갖옷에 관한 기록은 《예기(禮記)》 〈옥조(玉藻)〉가 대표적이다. 갖옷의 종류는 대구(大裘), 호백구(狐白裘), 보구(黼裘), 호청구(狐青裘), 미구(麛裘), 고구(羔裘), 호구(狐裘), 견구(犬裘), 양구(羊裘), 호구(虎裘), 낭구(狼裘) 등 다양하다. 대구는 천자가 면복(冕服) 중에서 최고 등급인 대구면(大裘冕)을 입을 때 쓰고 다른 신분이나 다른 옷에는 함께 쓸 수 없었다. 호백구는 천자, 제후, 경(卿), 대부(大夫)가 입고 사(士)는 쓸 수 없었으며, 호청구, 미구, 고구, 호구(狐裘)는 사(士) 이상의 신분이 모두 착용했다. 또 견구와 양구는 서민도 사용할 수 있었다.(崔圭順,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東華大學出版社, 2007, 29~31쪽)
↑고대 최고 등급의 관모인 면관(冕冠)의 부속품이다. 면관에 달린 끈의 끝에 솜을 동그랗게 말아 매달다가 후에 그 재료가 옥 등으로 바뀐다. 면관의 양옆에 늘어뜨려 둥근 부분이 귓가에 이르게 하고, 이를 통해 ‘귀를 막는다[充耳]’는 뜻을 형상화한다. 귀막이는 면관을 쓴 사람이 바르지 못한 말을 듣지 않도록[止聽] 하는 것을 상징하고, 나아가 지도자가 아랫사람의 잘못을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덕(德)을 함양해야 함을 상징한다.(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36~39쪽) 즉 호구(狐裘)나 귀막이가 달린 면관은 농부 등의 평민이 착용할 수 있는 복식이 아니기 때문에 본문에서 이들 물품과 동등하게 나열되는 립이 단지 농부의 복장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