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관례(冠禮)를 치른 소년은 황초립(黃草笠)[4]을 쓰는데, 그 색이 황금과같다. 개성 사람들이 잘 만든다.
新冠少年戴黃草笠, 其色如金, 開城人善爲之.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갓:T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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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갓의 제도는 멀리 신라에서 시작되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벼슬하는 사람이나 벼슬하지 않는 사람,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 함께 착용하는 복장이 되었다.
蓋笠制, 遠自新羅, 至今爲朝野、貴賤之所同服.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갓:T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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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은 우리의 갓을 ‘절풍건(折風巾)’[5]이라 한다. 우동(尤侗)[6]이 《외국죽지사(外國竹枝詞)》[7]에서 조선의 복식을 언급하며 “소매가 넓은 장삼을 입고 절풍건을 쓴다.”[8]라 했는데, 이는 바로 우리나라의 포(袍)[9]와 갓 제도를 가리킨다.
華人謂之“折風巾”. 尤 《外國竹枝詞》其言朝鮮有云“長衫廣袖折風巾”, 卽指我國袍笠之制也.
PST:《외국죽지사》:Q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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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매가 넓은 장삼을 입고 절풍건을 쓴다.”
“長衫廣袖折風巾”
尤侗, 《外國竹枝詞》
PST:《금화경독기》:R0001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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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금화경독기》
《金華耕讀記》
徐有榘, 《金華耕讀記》. 출처미상.
↑갓:조선시대 립(笠)은 머리를 덮는 ‘모자 부분[帽:대우]’과 ‘차양 부분[簷:양태]’으로 구성된다. 립은 흑립(黑笠), 초립(草笠), 평량자(平凉子) 등이 있다. 이 중 흑립은 일반적으로 ‘갓’으로 통용된 조선시대 남성의 대표적인 관모였다. 갓은 대우의 높이와 형태, 양태의 넓고 좁음에 따른 유행이 심했다.(국립민속박물관, 《머리에서 발끝까지》, 국립민속박물관, 2011, 19쪽)
↑갓은 대나무 또는 말총을 엮어서 만드는데, 서유구가 대오리만 언급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대나무의 생산량이 많아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나무나 말총의 재료를 보강하면서 동시에 형태를 잡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 직물을 덧대는 공정이다.
↑누런빛의 풀을 엮어 만든 갓[笠]으로 장년과 구별하기 위해 관례를 올린 소년들에게 착용하게 했다.(“今世少年加冠者, 亦必用草笠, 與壯長爲別, 未知其可也.” 李瀷, 《星湖僿說》 卷8 〈人事門〉 “紅衣草笠”)
↑고구려 때 소가(小加) 신분의 사람이 쓰던 변형 관모이다.(“大加、 主簿, 皆著幘, 如冠. 幘而無後. 其小加, 著折風. 形如弁.” 《後漢書》 卷115 〈東夷〉;《後漢書》 卷94 〈高麗傳〉) 절풍건은 한자 변(弁)과 같은 형태를 한 관모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삼각형의 관모[厶]와 좌우에 달린 끈[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의 절풍은 보통 소색 가죽으로 제작되며 관모 하단부에 흑색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데, 이 테두리는 절풍을 머리에 좀 더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정완진,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복식문화〉, 《韓國의 服飾文化史》,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333~3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