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문방아제:아교 녹이기
일반적으로 먹을 만들 때 아교가 중대하다. 품등이 상등(上等)인 그을음이 있더라도 아교를 올바른 방법대로 만들지 않았으면 먹도 좋지 않다. 만약 올바른 방법대로 만든 아교라면 비록 상등보다 품등이 떨어지는 그을음이더라도 좋은 먹을 만들 수 있다. 또 반곡(潘谷)[1]이 사용하는 그을음을 먹 만드는 사람들도 대부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만든 먹이 반곡을 따를 수가 없는 이유도 바로 아교를 달이는 빼어난 법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아교는 녹교(鹿膠)[2]를 최고로 친다. 아교 달이는 법 중에 밀랍과 호마(胡麻, 참깨)를 달여 만드는 법은 모두 묵가(墨家, 묵장)들이 사용하는 반열에 들어가지 않는다.
도홍경(陶弘景)[3]의 백교법(白膠法) 【안. 녹교(鹿膠)는 일명 ‘백교(白膠)’이다.】에는 “먼저 녹교를 쌀뜨물에 7일 동안 담가 부드럽게 한 뒤에 달여서 아교를 만들 때처럼 일어낸다.”라 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녹각(鹿角)을 잘게 쪼개어 마른 소가죽 1조각과 함께 달이면 곧 녹아서 흐물흐물해진다.”[4]라 했다. 《당본초(唐本草)》[5]의 주석에는 “미각(麋角)[6]·녹각(鹿角)을 달인 걸쭉한 즙을 거듭 달여 아교를 만든다.”[7]라 했다.
지금 만드는 법은 태각(蛻角)[8]을 취하여 길이 0.1척 정도로 자르고, 껍질 및 붉은 핏기가 있는 부분을 제거한 뒤, 강물에 7일 밤낮 동안 담근다. 그런뒤에 다시 1일 밤낮으로 달여 막 아교가 만들어지려 할 때, 우교(牛膠)[9]를 조금 던져 넣고 용뇌(龍腦)와 사향(麝香)을 더한다. 그 다음으로는 마땅히 우교를 사용해야 한다. 물소의 가죽을 사용하여 털을 제거한 뒤, 물에 담가 먼지와 오물을 제거하는데, 물에 담갔을 때 가죽이 너무 물러지게 해서는 안 된다. 가죽은 마땅히 지녀야 할 성질이 있는데, 이를 ‘협생(夾生, 생기를 띠고 있다)’이라 한다. 불에 달일 때는 너무 센 불로 가열해서는 안 되고, 항상 죽비처럼 긴 막대로 쉬지 않고 휘저어야 한다. 아교에서 김이 빠져나올 때 여기저기서 어지럽게 나오지 않은 정도를 귀하게 여긴다. 때때로 달인 아교를 들어올려 보면서 그 농도를 살피는데, 허리띠처럼 곧장 늘어져 1가닥이 될 때까지 달인다. 먹을 만드는 교(膠)는 1가지만 사용해서는 안 되니 우교나 어교(魚膠, 물고기 부레로 만든 아교)·아교(阿膠)[10]를 함께 섞어 쓴다.
연주(兗州)[11] 사람들은 예전에는 10월에 아교를 달여 11월에 먹을 만들었다. 지금은 아교를 달이자 마자 곧 사용하니, 이는 전혀 잘못된 방법이다. 그러므로 반곡이 한번은 진상묵(陳相墨)[12]을 보고 말하기를 “아쉽도다! 이 먹은 일생교(一生膠)[13]를 사용했을 뿐이구나. 거듭 달인 아교가 좋은 먹이 되는 법인데.”라 했다. 조열지 《묵경》[14]
아교와 합해 먹을 만드는 방법 : 누런 소가죽을 물에 담갔다가 털을 뽑아낸다. 가죽 안쪽 면이 위를 향하도록 평평한 판 위에 펼치고 생황토(生黃土)를 가져다 가죽 위에 골고루 뿌린다. 한참 지난 뒤에 작은 칼로 가죽을 깎아내는데, 근막(筋膜)을 깎아서 제거하고 물을 갈아가며 자주 씻어준다. 가죽을 자르고 조각내어 기름때가 없는 솥 안에 넣고, 물과 함께 달여 아교를 완성한 뒤에 솥을 기울이고 아교를 부어 대나무 선반 위에서 얇게 펼친 다음 바람에 말린다. 일반적으로 그을음 4냥에 말린 아교 1.2냥을 두드리고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아교를 물에 담가 부드러워지면 곧 걸러서 약즙(藥汁)[15] 안에 넣고 함께 졸인다. 이때 아교를 적게 넣는 것을 절대 금하니, 아교가 적으면 먹이 단단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교를 너무 많이 넣으면 또 먹이 붓에 달라 붙으니, 아교를 정해진 양보다 더하거나 줄이는 것은 좋지 않다. 《거가필용》[16]
심규(沈珪)가 매번 “위탄(韋誕)의 먹 만드는 법에서는 단지 아교 50냥만을 사용했는데, 이정규(李廷珪)가 강남(江南)으로 건너간 뒤에는 비로소 대교(對膠)[17]를 사용했다. 그러나 먹 만드는 비결은 전해지지 않았으니, 애석하다.”라 했다. 이정규가 하루는 먹을 만들면서 재구덩이[灰池][18]에서 너무 일찍 꺼내어 먹이 모두 끊어지고 갈라졌다. 그러자 사용한 먹 재료가 정성을 들인 좋은 것이라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 못했다. 마침내 망가진 먹을 다시 찌고 물에 담갔다가 묵은 아교를 꺼내어 다시 새로 만든 아교와 섞었다. 먹이 만들어지자 옥석(玉石)처럼 단단했는데, 이로 인해 대교법(對膠法)을 깨달았다. 매번 그을음을 만드는 재료를 살펴 아교를 달이고, 아교가 완성되면 그을음과 섞으니, 아교가 한 방울도 많거나 모자라는 일이 없었다.
또 심규는 “이정규(李廷珪)의 대교법은 100년이 지난 뒤에야 더없이 빼어나다는 것이 드러났다.”라 했다. 대개 비록 성분이 정밀한 그을음이라도 아교를 많이 넣으면 색이 아교에 의해 가려진다. 그러다가 세월이 오래 지난 뒤에야 아교의 힘이 점점 빠져 먹색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눈앞에서 당장 먹을 파는 데에 급급해서 아교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 먹색이 흐릿하지 않게 하려할 때는 세월이 오래 지나 아교의 힘이 다하면 먹색이 바래서 마치 토탄(土炭)[19]처럼 광택이 없어질 뿐이다. 이와 같이 먹을 만들면 사용할 때에 건조한 서북지방에서는 괜찮더라도, 만약 이절(二浙)[20]에 들어가 한 번이라도 장마철을 만난다면 먹이 망가질 것이다. 《춘저기문》[21]
어표교(魚鰾膠, 부레아교)는 솜처럼 맑고 흰 부레를 사용한다. 부레를 냉수에 하룻밤 담가 부드럽게 만들고, 재빠르게 도끼질해서 잘게 썰어 다진다. 아교 1냥마다 파두인(巴豆仁) 5알을 넣고 두들겨 다져서 아교와 함께 고루 섞는다. 그 뒤에 댓잎으로 감싸 단단히 묶고, 10번 남짓 끓어오르도록 달인 다음 댓잎을 제거한다. 뜨거운 채로 아가리가 넓은 병 속에 아교를 넣고 몹시 흐물흐물해져 씨가 없도록 급히 절구질한다. 이를 약즙(藥汁)이 담긴 그릇에 넣어 섞은 다음 중탕(重湯)[22]으로 달여 녹인다. 만약 우피교(牛皮膠, 쇠가죽으로 만든 아교)를 사용하면, 황명(黃明, 소가죽)을 골라 달여 만드는 방법을 써야 한다. 【어떤 아교는 생것을 달이면, 아무리 끓여도 녹지 않는다.】우피교를 손가락마디만 한 조각으로 썰어놓았다가, 쓸 때는 먼저 물을 조금 적셔 부드러워지면 그제서야 약즙이 담긴 그릇에 넣은 다음 중탕으로 달여 녹인다.
이상의 2가지 아교는 물에 끓여 녹일 때 약한 불로 달이면서 거품이 사라지고 맑아질 때까지 긴 대막대로 쉬지 않고 휘젓는다. 달이고 녹여서 아교가 맑아지면, 아교를 넣어 만든 먹에 기름때가 끼지 않으니, 이것이 가장 긴요한 방법이다.
가장 기준이 되는 방법 : 매번 동유연(桐油煙, 동유 그을음) 10냥으로 먹을 만들 때, 1월·2월·10월·11월·12월에는 우교(牛膠) 4.5냥과 약수(藥水) 10냥을 쓴다. 4월·5월·8월에는 우교 5.5냥과 약수 9.5냥을 쓴다. 6월·7월에는 우교 6냥과 약수 9냥을 쓴다. 매번 송매(松煤, 소나무 그을음) 1근(斤, 10냥)으로 먹을 만들 때는 우교(牛膠)를 4냥이나 5냥 쓰고, 약수를 사계절에 모두 0.5근 쓴다. 봄·겨울에는 아교를 줄이고 약수를 늘리며, 한여름·늦여름·초가을에는 아교를 늘리고 약수를 줄여야 한다. 아교를 거를 때는 고운 명주를 사용하는데, 명주솜으로 거르는 것이 가장 좋다. 만약 베[布]로 아교를 거르면 거친 찌꺼기까지 함께 가라앉아 먹을 만들어도 하자가 생긴다. 약수 또한 명주를 겹쳐서 거른다.
어표교(魚鰾膠)는 순전히 물고기 부레만을 사용할 수는 없다. 다만 우교를 9/10, 어교를 1/10의 비율로 사용해야 한다. 만약 어교를 2/10의 비율로 넣으면, 곧 먹물이 붓에 엉겨 붙어 글자를 쓰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소식(蘇軾)의 “어교(魚膠)는 만 번 절구질로 숙성시키네.”[23]라는 시구를 두고, 곧 “먹을 만들 때는 반드시 어교를 사용해야 한다.”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눈앞에서 꿈 이야기를 하는 일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또 먹을 파는 사람은 한 사람도 이 같은 그릇된 인식을 기꺼이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남들을 속여 “어교가 참으로 좋다.”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믿게 되었으니, 참으로 웃을 만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우교(牛膠)를 쓰려면 반드시 질이 좋은 소가죽을 사용해야 한다. 북을 만드는 곳에서 재단하고 남은 소가죽을 달여서 만들어야 아주 좋다. 만약 무두장이[熟皮家]가 가죽을 도려내고 남은 조각들로 달여 만든 아교라면 접착력이 약해서 쓸 수가 없다. 아교의 질이 좋아야 비로소 접착력이 생겨 먹을 만들 때 소요되는 아교의 양을 줄일 수 있다. 먹을 사용할 때도 아교는 적고 그을음이 많기 때문에 검은색이 배가 되니, 이를 ‘경교(輕膠)’라 부른다. 경교는 먹색이 검으면서도 맑은 색을 띠어 먹을 빨리 판매하기에 유리하다. 다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오래 보관할수록 먹색이 바랠까 염려된다. 만약 먹을 만든 뒤에 오래도록 보관하려면 반드시 동유(桐油)를 태워 얻은 그을음 10냥·묵은 우교 4.5냥·묵은 어교 0.5냥·진피(秦皮)·소목(蘇木) 각 0.5냥을 걸쭉한 즙이 되도록 달여 골고루 섞고 찐 다음 절구질하여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세월이 오래될수록 더욱 검고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내가 옛날에 형계(荊溪)[24]의 오국량(吳國良)[25]이 만든 우교먹[牛膠墨]을 구했는데, 지금까지 50~60년 이 지나도록 마치 옛 먹처럼 검으면서 단단하니, 어찌 우교(牛膠)로 만든 먹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열교묵(熱膠墨)을 만드는 자가 있는데, 이는 아교가 뜨거울 때에 내려서 만든 먹이 아니다. 아교를 녹일 때에 약수(藥水)가 담긴 단지에 기울여 부은 다음 아교가 맑아지면서 숙성될 때까지 달인다. 만약 약수가 졸아들면 먹을 만드는 법대로 약수를 다시 더해서 맑게 숙성되어야 그을음과 섞을 수 있다. 이어서 반드시 시루에 올려 완전히 찌고, 단단해진 반죽을 절구질하여 완성한다. 그런 다음 숙성된 반죽을 꺼내어 힘을 써서 부드럽게 주무른 뒤에야 겨우 둥그런 반죽을 펼쳐서 먹틀[印脫][26]에 올릴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든 먹을 ‘열교묵’이라 한다. 또 냉교묵(冷膠墨)을 만드는 자가 있는데, 이는 아교가 식기를 기다려 내려서 만든 먹이 아니다. 다만 아교를 약수 속에 넣고 달여 녹기만 하면 아교가 맑든 탁하든, 덜 고아지든 푹 고아지든 관계없이 그을음 속에 부어 넣는다. 둥그렇게 완성된 반죽을 얻으면, 이 반죽을 먹틀에 올려서 찍어낸다. 이때 반죽을 찌지도 않고 절구질하지도 않아서 아교의 힘이 고르게 퍼지지 않기 때문에 먹의 수준이 한결 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든 먹을 ‘냉교묵’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아교를 만들고 먹을 제조할 때는 1월·2월·10월·11월이 적당하다. 나머지 달에 아교를 만들 경우에는 날씨가 너무 더우면 아교를 만들어도 굳지 않고, 먹을 만들어도 부서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날씨가 너무 추우면 아교를 만들어도 얼어서 쪼개지고, 먹을 만들어도 끊어지거나 갈라진다. 작은 먹을 만들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 큰 먹은 결코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 《묵법집요》[27]
- ↑ 반곡(潘谷):?~?. 중국 송대의 묵장(墨匠). 먹을 잘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먹을 감정하는 데에도 매우 능했다. 송 휘종(徽宗, 1082~1135)은 그가 만든 ‘팔송연(八松煙)’이라는 묵을 보묵(寶墨)으로 칭하며, 각별히 소장했다고 전해진다.
- ↑ 녹교(鹿膠):사슴의 뿔·뼈·가죽 등을 고아 만든 아교.
- ↑ 도홍경(陶弘景):456~536. 중국 남북조시대의 의학자이자 도가(道家). 도은거(陶隱居) 또는 화양은거(華陽隱居)라 자호(自號)했다. 본초학(本草學)에 대해 조예가 깊어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과 《명의별록(名醫別錄)》의 약물 730종을 분류하고 주석(注釋)을 달아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를 집필했다.
- ↑ 먼저……흐물흐물해진다:《本草經集注》 〈蟲獸三品〉上 “白膠”.
- ↑ 당본초(唐本草):중국 당나라의 의학자 소경(蘇敬)·우지령(于志寧) 등이 659년에 편찬한 본초서. 정식 명칭은 《신수본초(新修本草)》이다.
- ↑ 미각(麋角):사슴과의 일종인 사불상(四不像)의 뿔. 당나귀의 몸체, 말의 얼굴, 소의 발굽, 사슴의 뿔을 닮았다는 의미에서 사불상이라는 명칭이 나왔다.
- ↑ 미각(麋角)……만든다:《新修本草》 卷15 〈獸〉上 “白膠”.
- ↑ 태각(蛻角):겨울철에 뿔갈이를 하는 사슴으로부터 저절로 떨어져 나온 뿔로 추정된다.
- ↑ 우교(牛膠):소의 뿔·뼈·가죽 등을 고아 만든 아교.
- ↑ 아교(阿膠):일반적으로는 동물의 가죽·힘줄·창자·뼈 등을 고아 만든 끈적이는 성질의 접착제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어떤 재료를 써서 만든 아교인지 특정할 수는 없다.
- ↑ 연주(兗州):중국 산동성(山東省) 서부 연주시(兗州市) 일대.
- ↑ 진상묵(陳相墨):중국 송나라의 묵장(墨匠)인 진랑(陳朗, ?~?)의 손자 진상(陳相, ?~?)이 만든 먹. 진상이 만든 먹은 흑룡수(黑龍髓)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 ↑ 일생교(一生膠):1번만 달였기 때문에 완전히 고아지지 않은 아교를 가리키는 말로 추정된다.
- ↑ 《墨經》 〈膠〉(《叢書集成初編》, 6~9쪽).
- ↑ 약즙(藥汁):아교를 달일 때 첨가하는, 용뇌나 사향 등의 약재에서 뽑아낸 즙.
- ↑ 《居家必用》 〈戊集〉 “文房適用” ‘合膠’(《居家必用事類全集》, 200쪽).
- ↑ 대교(對膠):먹을 만들 때, 재가공한 아교와 그을음을 섞고 응고시켜 만드는 제조법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만든 먹은 재질이 단단하고, 글씨를 쓰면 글자에 광택이 돌며,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다.
- ↑ 재구덩이[灰池]:먹의 적절한 습기를 보존하면서 건조하기 위해 깔아둔 잿더미.
- ↑ 토탄(土炭):습지에 퇴적되어 수분이 많이 함유된, 품등이 좋지 않은 석탄.
- ↑ 이절(二浙):중국 절강성(浙江省) 동부와 서부 지역의 옛 명칭. 중국 동남부 지역에 해당한다.
- ↑ 《春渚紀聞》 卷8 〈雜書琴事(墨說附)〉 “漆煙對膠”(《文淵閣四庫全書》 863, 518쪽).
- ↑ 중탕(重湯):가열하고자 하는 물체가 담긴 용기를 직접 가열하지 않고, 다른 그릇이나 용기에 넣어 간접적으로 열을 가하며 데우거나 끓이는 방법.
- ↑ 어교(魚膠)는……숙성시키네:《東坡全集》 卷14 〈孫莘老寄墨〉(《文淵閣四庫全書》 1107, 229쪽).
- ↑ 형계(荊溪):중국 강소성(江蘇省) 남부에 위치한 의흥현(宜興縣)의 옛 지명.
- ↑ 오국량(吳國良):1301~1374. 중국 원나라의 음악가이자 화가. 호는 풍월주인(風月主人). 형계(荊溪) 사람이다. 음률에 조예가 깊어 원곡(元曲)을 작곡했으며, 산수화에도 뛰어나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 ↑ 먹틀[印脫]:먹 반죽을 넣고 일정한 모양대로 먹을 찍어 내는 나무틀로, 보통 7개 나무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먹틀을 이용하여 먹을 찍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운지:문방아제:먹틀로 찍어내기’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 ↑ 《墨法集要》 〈鎔膠〉(《叢書集成初編》 1496, 2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