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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8일 (금) 12:05 판
⇧ PSS:섬용지:복식도구:쓰개 ⇨ 삿갓 蓑笠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삿갓:T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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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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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1]은 농사를 짓거나 나무하는 사람들이 비를 막거나 햇빛을 가리는 갓이다. |
蓑笠, 農樵家庇雨蔽暘之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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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삼재도회)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삿갓:T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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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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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띠풀[莎草][2] 육기(陸璣)[3]의 《모시초목충어소(毛詩草木蟲魚疏)》에서 “대(臺)는 부수(夫須)이다. 옛 설에 부수는 띠풀[莎草]인데, 삿갓을 만들수 있다고 했다.”[4]고 한 말이 이것이다. |
古以莎草爲之. 陸璣《毛詩草木疏》“臺, 夫須. 舊說, 夫須莎草也[5], 可爲蓑笠” 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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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삿갓:T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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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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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사(都人士)〉라는 시[6]에 “립(笠)을 쓰고 검은끈으로 묶었네.”라는 구절이 ‘여우갖옷[狐裘]’[7]이나 ‘귀막이[充耳]’[8]와 함께 열거되었으니 립을 쓰는 것이 농부가 비를 피하기 위한 복장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왕안석(王安石)[9]은 “립을 쓰고검은끈으로 묶었네.”를 풀이하여, “벼슬하지 않는 사대부와 서민들이 함께 입는 복장”[10]이라 했다.그러니 일반적으로 산이나 들에 거처하는 사람들이 꼭 갖추어야 하는 쓰개이다. |
〈都人士〉之詩, “臺笠緇撮”與“狐裘”、 “充耳”錯綜竝擧, 則臺笠不專爲農夫襏襫之服. 故王介甫解“臺笠緇撮”曰:“在野與衆偕作之服.” 凡山居野處者之所宜必備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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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조(文朝, 소명세자, 1809~1830) 어진의 귀막이-국립고궁박물관
PST:《시경》:소아:도인사:Q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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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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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笠)을 쓰고 검은끈으로 묶었네”, ‘여우갖옷[狐裘]’, ‘귀막이[充耳]’ |
“臺笠緇撮”, “狐裘”, “充耳” |
《毛詩正義》 卷15 〈小雅〉 “都人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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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모시의》:Q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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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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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하지 않는 사대부와 서민들이 함께 입는 복장” |
“在野與衆偕作之服.” |
王安石, 《毛詩義》. 원전은 망실. 呂祖謙, 《呂氏家塾讀詩記》 卷24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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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삿갓:T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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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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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농가에서 쓰는 삿갓은 모두 갈대를 쪼개 엮어서 만드니, 재료가 성글고 물러 쉽게 썩으므로 1년에 1번씩 바꿔야 한다. 호남 사람들이 대 껍질을 깎아 가로세로로 가늘게 엮은 삿갓이 좋다. 일반 갓에 비해 배나 크고[11] 양태의 끝이 말려 올라가서 멀리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삿갓에 옻칠을 하거나 황칠(黃漆)[12]을 하면 10년은 쓸 수 있다. |
今農家所用, 皆析蘆葦編成, 疏脆易腐, 一年一易. 湖南人削竹皮, 經緯細織者佳. 比常笠倍大, 簷端卷起, 不礙眺遠. 髹漆或黃漆, 則可用十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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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삿갓(국립민속박물관)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삿갓:C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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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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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왕정농서(王禎農書)》를 살펴보니 “요즘 갓을 만들 때는 대를 엮어 몸체를 만들고 대껍질로 싸서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만드는데, 모두 꼭대기가 솟아 있고, 주둥이(밑)는 둥글다.”[13]라 했다. 그 제도가 우리나라 호남에서 대나무로 만든 삿갓과 비슷하다. 다만 대껍질로 싸는 일은 쓸데없는 듯하다.】 |
【案 《王禎農書》云:“今之爲笠, 編竹作殼, 裹以籜篛, 或大或小, 皆頂隆而口圓.” 其制與吾東湖南竹蓑笠相似, 但籜篛之裹, 則又近蛇足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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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왕정농서》:농기도보:사립문:Q0001
역주 |
원문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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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갓을 만들 때는 대를 엮어 몸체를 만들고 대껍질로 싸서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만드는데, 모두 꼭대기가 솟아 있고, 주둥이(밑)는 둥글다.” |
“今之爲笠, 編竹作殼, 裹以籜篛, 或大或小, 皆頂隆而口圓.” |
《王禎農書》 卷15 〈農器圖譜〉 7 “蓑笠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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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금화경독기》:R0002
역주 |
원문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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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경독기》 |
《金華耕讀記》 |
徐有榘, 《金華耕讀記》. 출처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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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대나 대오리로 만들어 노동할 때 햇빛을 가리거나 비를 막는 쓰개의 일종.
- ↑ 볏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볕이 잘 드는 풀밭이나 강가에 무리 지어 자란다. 잎으로 지붕을 덮거나 문발, 도롱이 등 여러 용품을 만든다.로 만들었다.
- ↑ 260~303. 중국 서진(西晋)의 문인.
- ↑ 《毛詩草木鳥獸蟲魚疏》 卷上 〈南山有臺〉.
- ↑ 저본에는 없음. 《毛詩草木鳥獸蟲魚疏・南山有臺》에 근거하여 보충.
- ↑ 《毛詩正義》 卷15 〈小雅〉 “都人士”(《十三經注疏整理本》 5, 1070~1073쪽).
- ↑ 고대에 갖옷[裘衣]은 방한용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특정 예복을 입을 때 함께 갖춰 입는 옷이었다. 예복에 쓰는 갖옷에 관한 기록은 《예기(禮記)》 〈옥조(玉藻)〉가 대표적이다. 갖옷의 종류는 대구(大裘), 호백구(狐白裘), 보구(黼裘), 호청구(狐青裘), 미구(麛裘), 고구(羔裘), 호구(狐裘), 견구(犬裘), 양구(羊裘), 호구(虎裘), 낭구(狼裘) 등 다양하다. 대구는 천자가 면복(冕服) 중에서 최고 등급인 대구면(大裘冕)을 입을 때 쓰고 다른 신분이나 다른 옷에는 함께 쓸 수 없었다. 호백구는 천자, 제후, 경(卿), 대부(大夫)가 입고 사(士)는 쓸 수 없었으며, 호청구, 미구, 고구, 호구(狐裘)는 사(士) 이상의 신분이 모두 착용했다. 또 견구와 양구는 서민도 사용할 수 있었다.(崔圭順,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東華大學出版社, 2007, 29~31쪽)
- ↑ 고대 최고 등급의 관모인 면관(冕冠)의 부속품이다. 면관에 달린 끈의 끝에 솜을 동그랗게 말아 매달다가 후에 그 재료가 옥 등으로 바뀐다. 면관의 양옆에 늘어뜨려 둥근 부분이 귓가에 이르게 하고, 이를 통해 ‘귀를 막는다[充耳]’는 뜻을 형상화한다. 귀막이는 면관을 쓴 사람이 바르지 못한 말을 듣지 않도록[止聽] 하는 것을 상징하고, 나아가 지도자가 아랫사람의 잘못을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덕(德)을 함양해야 함을 상징한다.(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36~39쪽) 즉 호구(狐裘)나 귀막이가 달린 면관은 농부 등의 평민이 착용할 수 있는 복식이 아니기 때문에 본문에서 이들 물품과 동등하게 나열되는 립이 단지 농부의 복장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 ↑ 1021~1086. 당송팔대가의 한 명이자 정치인으로 자는 개보(介甫)이다.
- ↑ 원래 왕안석의 《모시의(毛詩義)》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시의》는 왕안석의 신법(新法) 폐지 후 망실되었으나, 송대의 여러 문헌에 인용된 구절들이 종종 남아 있다. 이 구절은 여조겸(呂祖謙)의 《여씨가숙독시기(呂氏家塾讀詩記)》 卷24에도 인용되어 있다.
- ↑ 대삿갓이라고 한다. 형태는 사진과 같다.
- ↑ 황칠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황금색 액이 나오는데, 이를 도료로 사용하고 색상이 황금색이기 때문에 황칠이라 한다.
- ↑ 《王禎農書》 卷15 〈農器圖譜〉 7 “蓑笠門”,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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