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건물 짓는 제도:흙손질:영벽"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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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지(楊惠之)<ref>양혜지(楊惠之):?~?. 중국 당대(唐代)의 화가, 조소가(彫塑家). 오도자(吳道子)와 동시대의 예술가로, 소산수벽(塑山水壁)의 명인이었다.</ref>는 오도자(吳道子)<ref>오도자(吳道子):700?~760?. 훗날 오도현(吳道玄)이라 한다. 서화일치의 화체를 확립했으며, 회화사상 최고의 평가를 받았으나, 확실한 유품은 전하지 않는다.</ref>와 함께 한 스승을 섬겼다. 그런데 오도자가 학문을 이루자 양혜지는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나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방향을 바꿔 조소(彫塑)를 시작했는데, 그 작품들이 모두 천하제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중원에는 양혜지의 소산수벽(塑山水壁)<ref>소산수벽(塑山水壁):일종의 입체벽화로, 벽면에 산 모양을 반입체적으로 소조하고 그 사이에 전각·수목·인물 등을 배치해서 불전 등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기법이다.</ref>이 많다.<br/>
 
양혜지(楊惠之)<ref>양혜지(楊惠之):?~?. 중국 당대(唐代)의 화가, 조소가(彫塑家). 오도자(吳道子)와 동시대의 예술가로, 소산수벽(塑山水壁)의 명인이었다.</ref>는 오도자(吳道子)<ref>오도자(吳道子):700?~760?. 훗날 오도현(吳道玄)이라 한다. 서화일치의 화체를 확립했으며, 회화사상 최고의 평가를 받았으나, 확실한 유품은 전하지 않는다.</ref>와 함께 한 스승을 섬겼다. 그런데 오도자가 학문을 이루자 양혜지는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나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방향을 바꿔 조소(彫塑)를 시작했는데, 그 작품들이 모두 천하제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중원에는 양혜지의 소산수벽(塑山水壁)<ref>소산수벽(塑山水壁):일종의 입체벽화로, 벽면에 산 모양을 반입체적으로 소조하고 그 사이에 전각·수목·인물 등을 배치해서 불전 등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기법이다.</ref>이 많다.<br/>
 
곽희(郭煕)<ref>곽희(郭熙):1020?~1090?. 중국 북송의 화가. 동양 산수화의 기본 형식인 삼원(三遠, 高遠·深遠·平遠) 법칙을 정립한 북종화의 대가이다.</ref>가 이를 보고 또 새로운 발상을 내어, 마침내 미장공에게 흙손을 쓰지 않고 손으로만 벽에 흙반죽을 바르게 했다. 바른 흙이 울퉁불퉁해졌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반죽이 마르면 먹으로 그 자취를 따라 그려서 뾰족뾰족한 산봉우리, 깊숙한 숲을 어슴푸레하게 완성했다. 여기에 누각이나 사람이나 사물 같은 부류를 그려 넣으면 흡사 저절로 이루어진 듯했는데, 이를 영벽(影壁)이라 했다.《왕씨화원》<ref>《王氏畵苑》 〈畫繼〉 卷9 〈雜說〉 “論遠”.</ref>
 
곽희(郭煕)<ref>곽희(郭熙):1020?~1090?. 중국 북송의 화가. 동양 산수화의 기본 형식인 삼원(三遠, 高遠·深遠·平遠) 법칙을 정립한 북종화의 대가이다.</ref>가 이를 보고 또 새로운 발상을 내어, 마침내 미장공에게 흙손을 쓰지 않고 손으로만 벽에 흙반죽을 바르게 했다. 바른 흙이 울퉁불퉁해졌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반죽이 마르면 먹으로 그 자취를 따라 그려서 뾰족뾰족한 산봉우리, 깊숙한 숲을 어슴푸레하게 완성했다. 여기에 누각이나 사람이나 사물 같은 부류를 그려 넣으면 흡사 저절로 이루어진 듯했는데, 이를 영벽(影壁)이라 했다.《왕씨화원》<ref>《王氏畵苑》 〈畫繼〉 卷9 〈雜說〉 “論遠”.</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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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4일 (목) 13:36 판

내용


7) 영벽
양혜지(楊惠之)[1]는 오도자(吳道子)[2]와 함께 한 스승을 섬겼다. 그런데 오도자가 학문을 이루자 양혜지는 그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나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방향을 바꿔 조소(彫塑)를 시작했는데, 그 작품들이 모두 천하제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중원에는 양혜지의 소산수벽(塑山水壁)[3]이 많다.
곽희(郭煕)[4]가 이를 보고 또 새로운 발상을 내어, 마침내 미장공에게 흙손을 쓰지 않고 손으로만 벽에 흙반죽을 바르게 했다. 바른 흙이 울퉁불퉁해졌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반죽이 마르면 먹으로 그 자취를 따라 그려서 뾰족뾰족한 산봉우리, 깊숙한 숲을 어슴푸레하게 완성했다. 여기에 누각이나 사람이나 사물 같은 부류를 그려 넣으면 흡사 저절로 이루어진 듯했는데, 이를 영벽(影壁)이라 했다.《왕씨화원》[5]
[6]

각주

  1. 양혜지(楊惠之):?~?. 중국 당대(唐代)의 화가, 조소가(彫塑家). 오도자(吳道子)와 동시대의 예술가로, 소산수벽(塑山水壁)의 명인이었다.
  2. 오도자(吳道子):700?~760?. 훗날 오도현(吳道玄)이라 한다. 서화일치의 화체를 확립했으며, 회화사상 최고의 평가를 받았으나, 확실한 유품은 전하지 않는다.
  3. 소산수벽(塑山水壁):일종의 입체벽화로, 벽면에 산 모양을 반입체적으로 소조하고 그 사이에 전각·수목·인물 등을 배치해서 불전 등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기법이다.
  4. 곽희(郭熙):1020?~1090?. 중국 북송의 화가. 동양 산수화의 기본 형식인 삼원(三遠, 高遠·深遠·平遠) 법칙을 정립한 북종화의 대가이다.
  5. 《王氏畵苑》 〈畫繼〉 卷9 〈雜說〉 “論遠”.
  6.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섬용지》1, 141~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