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황다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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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홍(林洪)35)<ref>임홍(林洪) : ?~?.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요리책인 《 산가청공(山家淸供) 》 의 저자.</ref>의 《 산가청공(山家淸供)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가할 때 진평사(陳評事)<ref> 진평사(陳評事) : 《 산가청공 》 에 “대리시(大理寺) 평사(評事) 진추암(陳秋巖)”이라고 기재된 대로라면 형옥을 담당하던 대리시의 평사인 추암(秋巖) 진공(陳公)인데, 자세한 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ref | + | 임홍(林洪)35)<ref>임홍(林洪) : ?~?.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요리책인 《 산가청공(山家淸供) 》 의 저자.</ref>의 《 산가청공(山家淸供)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가할 때 진평사(陳評事)<ref> 진평사(陳評事) : 《 산가청공 》 에 “대리시(大理寺) 평사(評事) 진추암(陳秋巖)”이라고 기재된 대로라면 형옥을 담당하던 대리시의 평사인 추암(秋巖) 진공(陳公)인데, 자세한 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ref>를 방문하였다. 술을 한 잔 하고 있는데, 아이 둘이 나와서는 도잠(陶潛)<ref>도잠(陶潛) : 365~427. 중국 동진(東晉)의 시인. 자(字)는 무량(无亮),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일명 연명(淵明). 41세 때 팽택(彭澤) 현령(縣令)을 끝으로 벼슬하지 않고 글을 쓰며 살았다. 그의 시 뿐 아니라 《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 도화원기(桃花源記) 》 등 산문도 유명하다.</ref>의 〈 귀거래사(歸去來辭) 〉)<ref>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잠이 지은 사(辭). 41세 때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 세속과의 결별을 진술한 선언문이기도 하다.</ref>를 부르며 송황병(松黃餠, 송화다식)을 안주로 내오니, 사람으로 하여금시원하게 산림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다. 봄이 와서송화가 누렇게 피면 이걸 가지고 떡모양으로 찍어 만든다. 향과 맛뿐만이 아니라 몸에 유익함 있다.<ref>한가할……있다 : 《 山家淸供 》 〈 松黃餠 〉 ( 《 叢書集成初編 》 1473, 8~9쪽).</ref> 소공(蘇恭)<ref>소공(蘇恭) : 599~674. 중국 당(唐)나라의 의학자. 본래 이름은 소경(蘇敬)인데 개명했다. 《 당본초(唐本草) 》 의 저자이다.</ref>의 《 당본초(唐本草) 》 <ref>당본초(唐本草) : 중국 당(唐)나라 소경(蘇敬) 등이 659년에 지은 《 신수본초(新修本草) 》. 《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 를 바탕으로 삼고 더 나아가 수(隋)·당(唐) 이래의 새로운 약물을 덧붙이고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아 다시 엮은 것이다.</ref>에도 “송화에는 몸을 가볍게 하고 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어서 껍질이나 잎 및 송진처럼 그 약효가 우수하다.”<ref>몸을……우수하다 : 《 本草綱目 》 卷34 〈 木部 〉 “松” ‘松花”, 1922쪽.</ref>라했다. 옛날 사람들이 이 송화다식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긴 까닭은, 이것이 이와 같이 산림의 고아한 음식으로 상에 올릴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황은 오렵송(五鬣松))<ref>오렵송(五鬣松) : 한 촉에 다섯 잎이 나는 소나무.</ref>의 꽃가루가 좋다. 이 꽃 가루는 색은 약간 더 희고 맑은 향은 2배이다.<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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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회양(淮陽)<ref>회양(淮陽) :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일대. 북한에 속해 있다.</ref>에서 나는 송화가 마땅히 천하제일이다. 꿀로 반죽할 때 설탕가루를 약간 넣으면 더욱 좋다. 포황(蒲黃)<ref>포황(蒲黃) : 부들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초본식물인 부들의 꽃가루.</ref>도 이 방법에 따라만들 수 있다. 《 옹치잡지 》 )<ref>출전 확인 안 됨.</ref><br/><br/> | 우리나라에서는 회양(淮陽)<ref>회양(淮陽) :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일대. 북한에 속해 있다.</ref>에서 나는 송화가 마땅히 천하제일이다. 꿀로 반죽할 때 설탕가루를 약간 넣으면 더욱 좋다. 포황(蒲黃)<ref>포황(蒲黃) : 부들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초본식물인 부들의 꽃가루.</ref>도 이 방법에 따라만들 수 있다. 《 옹치잡지 》 )<ref>출전 확인 안 됨.</ref><br/><br/> |
2020년 7월 17일 (금) 15:37 판
송황다식(松黃茶食, 송화가루다식) 만들기(송황다식방)
송화는 피었는가 싶으면 바로 꽃가루가 날려 떨어지므로 거두기가 어렵다. 그러니 막 피려고 하면 가지째로 꺾어 깨끗한 자리 위에 펴고 볕에 말린다. 저절로 떨어지는 꽃을 취하고 수비(水飛)[1]한 뒤 볕에 말렸다가 꿀에 반죽하여 위와 같은 방법으로 찍어낸다.《증보산림경제》[2]
임홍(林洪)35)[3]의 《 산가청공(山家淸供)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가할 때 진평사(陳評事)[4]를 방문하였다. 술을 한 잔 하고 있는데, 아이 둘이 나와서는 도잠(陶潛)[5]의 〈 귀거래사(歸去來辭) 〉)[6]를 부르며 송황병(松黃餠, 송화다식)을 안주로 내오니, 사람으로 하여금시원하게 산림의 흥취를 일으키게 했다. 봄이 와서송화가 누렇게 피면 이걸 가지고 떡모양으로 찍어 만든다. 향과 맛뿐만이 아니라 몸에 유익함 있다.[7] 소공(蘇恭)[8]의 《 당본초(唐本草) 》 [9]에도 “송화에는 몸을 가볍게 하고 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어서 껍질이나 잎 및 송진처럼 그 약효가 우수하다.”[10]라했다. 옛날 사람들이 이 송화다식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긴 까닭은, 이것이 이와 같이 산림의 고아한 음식으로 상에 올릴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황은 오렵송(五鬣松))[11]의 꽃가루가 좋다. 이 꽃 가루는 색은 약간 더 희고 맑은 향은 2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회양(淮陽)[12]에서 나는 송화가 마땅히 천하제일이다. 꿀로 반죽할 때 설탕가루를 약간 넣으면 더욱 좋다. 포황(蒲黃)[13]도 이 방법에 따라만들 수 있다. 《 옹치잡지 》 )[14]
- ↑ 수비(水飛):곡식의 가루나 그릇을 만드는 흙 따위를 물속에 넣고 휘저어 잡물을 없애는 일.
- ↑ 《增補山林經濟》 卷8 〈餠麪諸品〉 “松黃茶食法”(《農書》4, 39쪽).
- ↑ 임홍(林洪) : ?~?.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요리책인 《 산가청공(山家淸供) 》 의 저자.
- ↑ 진평사(陳評事) : 《 산가청공 》 에 “대리시(大理寺) 평사(評事) 진추암(陳秋巖)”이라고 기재된 대로라면 형옥을 담당하던 대리시의 평사인 추암(秋巖) 진공(陳公)인데, 자세한 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 ↑ 도잠(陶潛) : 365~427. 중국 동진(東晉)의 시인. 자(字)는 무량(无亮),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일명 연명(淵明). 41세 때 팽택(彭澤) 현령(縣令)을 끝으로 벼슬하지 않고 글을 쓰며 살았다. 그의 시 뿐 아니라 《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 도화원기(桃花源記) 》 등 산문도 유명하다.
- ↑ 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잠이 지은 사(辭). 41세 때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 세속과의 결별을 진술한 선언문이기도 하다.
- ↑ 한가할……있다 : 《 山家淸供 》 〈 松黃餠 〉 ( 《 叢書集成初編 》 1473, 8~9쪽).
- ↑ 소공(蘇恭) : 599~674. 중국 당(唐)나라의 의학자. 본래 이름은 소경(蘇敬)인데 개명했다. 《 당본초(唐本草) 》 의 저자이다.
- ↑ 당본초(唐本草) : 중국 당(唐)나라 소경(蘇敬) 등이 659년에 지은 《 신수본초(新修本草) 》. 《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 를 바탕으로 삼고 더 나아가 수(隋)·당(唐) 이래의 새로운 약물을 덧붙이고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아 다시 엮은 것이다.
- ↑ 몸을……우수하다 : 《 本草綱目 》 卷34 〈 木部 〉 “松” ‘松花”, 1922쪽.
- ↑ 오렵송(五鬣松) : 한 촉에 다섯 잎이 나는 소나무.
- ↑ 회양(淮陽) :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일대. 북한에 속해 있다.
- ↑ 포황(蒲黃) : 부들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초본식물인 부들의 꽃가루.
- ↑ 출전 확인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