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문주연회:유상곡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번째 줄: | 1번째 줄: | ||
<strong>놀이의 기원</strong><br/> | <strong>놀이의 기원</strong><br/> | ||
− | 굽이진 시내에 술잔을 띄우며 시 짓는 놀이에 대 해 속석(束晳)<ref>속석(束晳):?~300?. 중국 진(晉)나라의 경학가. 자는 광미(廣微). 과두문(蝌蚪文)에 정통했으며, 상서랑 (尙書郞)·박사(博士)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오경통론(五經通論)》 등이 있다. </ref>은 일시(逸詩)<ref>일시(逸詩):중국 고대의 노래 모음집인 《시경(詩經)》 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 일부가 전해지는 시</ref> 가운데 ‘우상(羽觴)<ref>우상(羽觴):고대 술잔의 한 종류. 양쪽에 새 날개모양 손잡이가 달려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배 (耳杯)라고도 한다. </ref>을 물 결에 띄운다.’<ref>우상(羽觴)을……띄운다:고대 매년 상사일[上巳日, 새해 첫 사일(巳日)]에 잔치하고 놀면서 흐르는 물에 잔 을 띄워 아래로 내려보낼 때 《시경(詩經)》 에서 빠진 일시 중에 이 한 구절을 외웠다고 한다. 《진서(晉書)· 속석전(束晰傳)》 에 이 일이 실려 있다. </ref>라는 문장에 근거하여, “주공이 낙읍 (洛邑)<ref>낙읍(洛邑):동주(東周)의 도읍으로, 지금의 낙양(洛陽)을 말한다. </ref>을 건설할 때 시작한 놀이다.”라 했으나, 정말 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진(晉)나라 사람들이 난정 (蘭亭)<ref>난정(蘭亭):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남서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정자. 왕희지(王羲之, 321~379)가 동진(東晉) 영화(永和) 9년(353년) 3월 3일에 이곳에서 당시의 명사(名士) 41 명과 함께 유상곡수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모아 엮은 시집의 서문인 《난정서(蘭亭序)》가 전해진 다. 《난정서》 에 대해서는 《임원경제지 유예지》2, 풍석문화재단, 2017, 132쪽에 소개되어 있다. </ref>에서 계사(禊祀)<ref>계사(禊祀):음력 3월 첫 번째 사일(巳日)에 모여 산천에 지내는 제사. 상스럽지 못한 기운을 떨쳐버리며 재 앙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ref>를 지내고 술을 마신 때부터 비로소 3월 상사절(上巳節)<ref>3월 상사절(上巳節):음력 3월의 첫 번째 드는 사일(巳日). 나중에는 3월 3일을 가리키게 되었다. </ref>에 행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유종원(柳宗元)<ref>유종원(柳宗元):773~819. 중국 당(唐)나라의 문인. 자는 자후(子厚).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한유 (韓愈, 768~842)와 함께 변문(騈文)에 반대해 고문(古文)운동을 펼쳤다. 유주자사(柳州刺史)를 지내 ‘유 유주(柳柳 州)’라 부르기도 한다. </ref>의 《서음(序飮)<ref>서음(序飮):유종원이 음주에 관하여 쓴 짧은 산문. 작은 언덕을 하나 구입하여 이틀 동안 정리하고 술 마 실 자리를 마련한 뒤 놀이를 하며 술을 마시고 즐기는 내용이다. </ref>》을 고찰해보 면 또 오로지 상사절에만 하는 놀이는 아니다.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br/> | + | 굽이진 시내에 술잔을 띄우며 시 짓는 놀이에 대 해 속석(束晳)<ref>속석(束晳):?~300?. 중국 진(晉)나라의 경학가. 자는 광미(廣微). 과두문(蝌蚪文)에 정통했으며, 상서랑 (尙書郞)·박사(博士)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오경통론(五經通論)》 등이 있다. </ref>은 일시(逸詩)<ref>일시(逸詩):중국 고대의 노래 모음집인 《시경(詩經)》 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 일부가 전해지는 시</ref> 가운데 ‘우상(羽觴)<ref>우상(羽觴):고대 술잔의 한 종류. 양쪽에 새 날개모양 손잡이가 달려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배 (耳杯)라고도 한다. </ref>을 물 결에 띄운다.’<ref>우상(羽觴)을……띄운다:고대 매년 상사일[上巳日, 새해 첫 사일(巳日)]에 잔치하고 놀면서 흐르는 물에 잔 을 띄워 아래로 내려보낼 때 《시경(詩經)》 에서 빠진 일시 중에 이 한 구절을 외웠다고 한다. 《진서(晉書)· 속석전(束晰傳)》 에 이 일이 실려 있다. </ref>라는 문장에 근거하여, “주공이 낙읍 (洛邑)<ref>낙읍(洛邑):동주(東周)의 도읍으로, 지금의 낙양(洛陽)을 말한다. </ref>을 건설할 때 시작한 놀이다.”라 했으나, 정말 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진(晉)나라 사람들이 난정 (蘭亭)<ref>난정(蘭亭):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남서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정자. 왕희지(王羲之, 321~379)가 동진(東晉) 영화(永和) 9년(353년) 3월 3일에 이곳에서 당시의 명사(名士) 41 명과 함께 유상곡수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모아 엮은 시집의 서문인 《난정서(蘭亭序)》가 전해진 다. 《난정서》 에 대해서는 《임원경제지 유예지》2, 풍석문화재단, 2017, 132쪽에 소개되어 있다. </ref>에서 계사(禊祀)<ref>계사(禊祀):음력 3월 첫 번째 사일(巳日)에 모여 산천에 지내는 제사. 상스럽지 못한 기운을 떨쳐버리며 재 앙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ref>를 지내고 술을 마신 때부터 비로소 3월 상사절(上巳節)<ref>3월 상사절(上巳節):음력 3월의 첫 번째 드는 사일(巳日). 나중에는 3월 3일을 가리키게 되었다. </ref>에 행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유종원(柳宗元)<ref>유종원(柳宗元):773~819. 중국 당(唐)나라의 문인. 자는 자후(子厚).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한유 (韓愈, 768~842)와 함께 변문(騈文)에 반대해 고문(古文)운동을 펼쳤다. 유주자사(柳州刺史)를 지내 ‘유 유주(柳柳 州)’라 부르기도 한다. </ref>의 《서음(序飮)<ref>서음(序飮):유종원이 음주에 관하여 쓴 짧은 산문. 작은 언덕을 하나 구입하여 이틀 동안 정리하고 술 마 실 자리를 마련한 뒤 놀이를 하며 술을 마시고 즐기는 내용이다. </ref>》을 고찰해보 면 또 오로지 상사절에만 하는 놀이는 아니다.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ref>《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卷4 '流觴曲水', 20~21쪽.</ref><br/> |
--------------------- | --------------------- | ||
<strong>차례로 술 마시는 일의 일반적인 법식</strong><br/> | <strong>차례로 술 마시는 일의 일반적인 법식</strong><br/> | ||
− | 계곡의 바위에 술을 마련해두고 잔을 채운 다음 물에 띄워 보낸다. 술 마실 차례가 된 사람이 1척 되 는 산가지 3개를 들어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던진다. 산가지가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에서도 돌지 않거나 모래섬에서 멈추지 않거나 바닥에 가라앉지 않는 경우에는 벌주를 마시지 않고 지나간다. 그러나 산가지가 소용돌이치며 돌거나, 모래 섬에서 멈추거나, 바닥에 가라앉으면 그렇게 된 산가지 숫자대로 벌주를 마신다. 유종원 《서음(序飮)》<br/> | + | 계곡의 바위에 술을 마련해두고 잔을 채운 다음 물에 띄워 보낸다. 술 마실 차례가 된 사람이 1척 되 는 산가지 3개를 들어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던진다. 산가지가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에서도 돌지 않거나 모래섬에서 멈추지 않거나 바닥에 가라앉지 않는 경우에는 벌주를 마시지 않고 지나간다. 그러나 산가지가 소용돌이치며 돌거나, 모래 섬에서 멈추거나, 바닥에 가라앉으면 그렇게 된 산가지 숫자대로 벌주를 마신다. 유종원 《서음(序飮)》<ref>《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4, 풍석문화재단, 2019, 440~442쪽쪽.</ref><br/> |
2020년 7월 17일 (금) 16:36 판
놀이의 기원
굽이진 시내에 술잔을 띄우며 시 짓는 놀이에 대 해 속석(束晳)[1]은 일시(逸詩)[2] 가운데 ‘우상(羽觴)[3]을 물 결에 띄운다.’[4]라는 문장에 근거하여, “주공이 낙읍 (洛邑)[5]을 건설할 때 시작한 놀이다.”라 했으나, 정말 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진(晉)나라 사람들이 난정 (蘭亭)[6]에서 계사(禊祀)[7]를 지내고 술을 마신 때부터 비로소 3월 상사절(上巳節)[8]에 행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유종원(柳宗元)[9]의 《서음(序飮)[10]》을 고찰해보 면 또 오로지 상사절에만 하는 놀이는 아니다.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11]
차례로 술 마시는 일의 일반적인 법식
계곡의 바위에 술을 마련해두고 잔을 채운 다음 물에 띄워 보낸다. 술 마실 차례가 된 사람이 1척 되 는 산가지 3개를 들어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던진다. 산가지가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에서도 돌지 않거나 모래섬에서 멈추지 않거나 바닥에 가라앉지 않는 경우에는 벌주를 마시지 않고 지나간다. 그러나 산가지가 소용돌이치며 돌거나, 모래 섬에서 멈추거나, 바닥에 가라앉으면 그렇게 된 산가지 숫자대로 벌주를 마신다. 유종원 《서음(序飮)》[12]
- ↑ 속석(束晳):?~300?. 중국 진(晉)나라의 경학가. 자는 광미(廣微). 과두문(蝌蚪文)에 정통했으며, 상서랑 (尙書郞)·박사(博士)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오경통론(五經通論)》 등이 있다.
- ↑ 일시(逸詩):중국 고대의 노래 모음집인 《시경(詩經)》 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 일부가 전해지는 시
- ↑ 우상(羽觴):고대 술잔의 한 종류. 양쪽에 새 날개모양 손잡이가 달려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배 (耳杯)라고도 한다.
- ↑ 우상(羽觴)을……띄운다:고대 매년 상사일[上巳日, 새해 첫 사일(巳日)]에 잔치하고 놀면서 흐르는 물에 잔 을 띄워 아래로 내려보낼 때 《시경(詩經)》 에서 빠진 일시 중에 이 한 구절을 외웠다고 한다. 《진서(晉書)· 속석전(束晰傳)》 에 이 일이 실려 있다.
- ↑ 낙읍(洛邑):동주(東周)의 도읍으로, 지금의 낙양(洛陽)을 말한다.
- ↑ 난정(蘭亭):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남서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정자. 왕희지(王羲之, 321~379)가 동진(東晉) 영화(永和) 9년(353년) 3월 3일에 이곳에서 당시의 명사(名士) 41 명과 함께 유상곡수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모아 엮은 시집의 서문인 《난정서(蘭亭序)》가 전해진 다. 《난정서》 에 대해서는 《임원경제지 유예지》2, 풍석문화재단, 2017, 132쪽에 소개되어 있다.
- ↑ 계사(禊祀):음력 3월 첫 번째 사일(巳日)에 모여 산천에 지내는 제사. 상스럽지 못한 기운을 떨쳐버리며 재 앙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 3월 상사절(上巳節):음력 3월의 첫 번째 드는 사일(巳日). 나중에는 3월 3일을 가리키게 되었다.
- ↑ 유종원(柳宗元):773~819. 중국 당(唐)나라의 문인. 자는 자후(子厚).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한유 (韓愈, 768~842)와 함께 변문(騈文)에 반대해 고문(古文)운동을 펼쳤다. 유주자사(柳州刺史)를 지내 ‘유 유주(柳柳 州)’라 부르기도 한다.
- ↑ 서음(序飮):유종원이 음주에 관하여 쓴 짧은 산문. 작은 언덕을 하나 구입하여 이틀 동안 정리하고 술 마 실 자리를 마련한 뒤 놀이를 하며 술을 마시고 즐기는 내용이다.
- ↑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卷4 '流觴曲水', 20~21쪽.
- ↑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4, 풍석문화재단, 2019, 440~442쪽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