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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深衣)<ref>심의(深衣):상하가 연결되어 몸을 깊숙이[深] 감쌀 수 있다는 뜻을 취하여 이름을 붙인 의복이다. 중국에서 심의는 한대(漢代)에 남녀의 상복(常服)으로 착용했고, 한대 말기부터 사라졌던 것을 송대에 사마광이 고례서의 내용을 고증하여 다시 제작해 입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전래와 함께 착용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착용했다. 심의의 형태는 《예기(禮記)》 〈옥조(玉藻)〉와 〈심의(深衣)〉편에 나오는데, 이 경문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역대 중국과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최근 발굴된 출토 유물을 통해 심의의 형태가 밝혀져 ‘곡거(曲裾)’와 ‘속임구변(續衽鉤邊)’ 등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나 오해했던 부분이 명확해지고 있다.(최연우, 〈진한에서 위진남북조시대의 복식〉, 《도용:매혹의 자태와 비색의 아름다움》, 유금와당박물관, 2009, 23~34쪽)</ref> 제도==
 
==심의(深衣)<ref>심의(深衣):상하가 연결되어 몸을 깊숙이[深] 감쌀 수 있다는 뜻을 취하여 이름을 붙인 의복이다. 중국에서 심의는 한대(漢代)에 남녀의 상복(常服)으로 착용했고, 한대 말기부터 사라졌던 것을 송대에 사마광이 고례서의 내용을 고증하여 다시 제작해 입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전래와 함께 착용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착용했다. 심의의 형태는 《예기(禮記)》 〈옥조(玉藻)〉와 〈심의(深衣)〉편에 나오는데, 이 경문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역대 중국과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최근 발굴된 출토 유물을 통해 심의의 형태가 밝혀져 ‘곡거(曲裾)’와 ‘속임구변(續衽鉤邊)’ 등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나 오해했던 부분이 명확해지고 있다.(최연우, 〈진한에서 위진남북조시대의 복식〉, 《도용:매혹의 자태와 비색의 아름다움》, 유금와당박물관, 2009, 23~34쪽)</ref> 제도==
 
희고 고운 베를 써서 마름질하고, 자는 지척(指尺)을 쓴다.<ref>희고……쓴다:주희의 《가례(家禮)》 원문이다. 이어지는 주석 중 중괄호로 묶지 않은 곳은 《가례》의 주석이고, 중괄호로 묶은 곳은 《가례의절(家禮儀節)》에서 해설한 부분이다.</ref>【가운뎃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를 1촌(寸)으로삼는다.{살펴보니, 가운뎃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는 바로 손가락 마디를 굽혀 안으로 향하게 했을 때 두 주름이 뾰죽하게 각이 진 사이의 거리로, 곧 《침구자생경(針灸資生經)》에서 말하는 ‘동신촌(同身寸)’<ref>동신촌(同身寸):침뜸에서 혈을 취할 때 계산하는 방법으로 《침구자생경》 등에 나온다. 이는 환자 본인의 신체 가운데 특정 부위의 마디를 가지고 혈자리를 찾는 길이의 단위로 삼는다. 자세한 내용은 《인제지》 권26 <부여> “침뜸 혈자리” ‘혈을 잡는 법’에 나온다.<br/>
 
희고 고운 베를 써서 마름질하고, 자는 지척(指尺)을 쓴다.<ref>희고……쓴다:주희의 《가례(家禮)》 원문이다. 이어지는 주석 중 중괄호로 묶지 않은 곳은 《가례》의 주석이고, 중괄호로 묶은 곳은 《가례의절(家禮儀節)》에서 해설한 부분이다.</ref>【가운뎃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를 1촌(寸)으로삼는다.{살펴보니, 가운뎃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는 바로 손가락 마디를 굽혀 안으로 향하게 했을 때 두 주름이 뾰죽하게 각이 진 사이의 거리로, 곧 《침구자생경(針灸資生經)》에서 말하는 ‘동신촌(同身寸)’<ref>동신촌(同身寸):침뜸에서 혈을 취할 때 계산하는 방법으로 《침구자생경》 등에 나온다. 이는 환자 본인의 신체 가운데 특정 부위의 마디를 가지고 혈자리를 찾는 길이의 단위로 삼는다. 자세한 내용은 《인제지》 권26 <부여> “침뜸 혈자리” ‘혈을 잡는 법’에 나온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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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몌(袂)는 소매[袖]이다. 베 2폭을 쓰는데, 각각의 길이가 4.4척이다. 각 폭의 한가운데를 접어 앞뒤로 2엽을 만드는데, 엽마다 길이가 2.2척이다. 이를 각각 상의 몸판에 꿰매어 붙이는데, 겨드랑이 아래부터 점점 비스듬히 잘라 둥근 모양을 만든다. 소맷부리는 1.2척을 남기고 그 아래를 봉합해 소매를 만든다.<ref>이를……만든다:상의 몸판 양쪽에 소매를 붙이고 겨드랑이 부분부터 손이 나오는 소맷부리까지 곡선 형태를 이루도록 굴려서 재단하고 바느질하여 둥근 모양의 소매를 만든다는 뜻이다. 이를 그림으로 구현한 것이 《임원경제지 섬용지》2권 풍석문화재단, 2017, 59쪽에 있다.</ref>】<ref>《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66~68쪽).</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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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령(方領, 모난 깃).<br/>
 
방령(方領, 모난 깃).<br/>

2020년 8월 28일 (금) 15:25 판

심의(深衣)[1] 제도

희고 고운 베를 써서 마름질하고, 자는 지척(指尺)을 쓴다.[2]【가운뎃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를 1촌(寸)으로삼는다.{살펴보니, 가운뎃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는 바로 손가락 마디를 굽혀 안으로 향하게 했을 때 두 주름이 뾰죽하게 각이 진 사이의 거리로, 곧 《침구자생경(針灸資生經)》에서 말하는 ‘동신촌(同身寸)’[3]이다. 마름질하여 옷을 만들 때는 또한 사람의 키와 몸집을 헤아려 만들어야 몸에 잘 맞을 것이다.}】 [4]상의[衣][5]는 전체 4폭으로, 그 길이는 옷을 입었을 때 옆구리 밑까지 내려오며 아래는 치마에 붙인다.【베 2폭{베 폭의 너비는 1.8척이 기준이 된다.} 가운데를 접어 앞뒤로 4엽(葉)을 만든다. 앞의 2엽은 엽마다 길이가 2.6척이다. 마름질할 때, 한쪽 가장자리에서 시작하여 0.4척을 잘라 내고 2.2척을 남기되, 차츰차츰 비스듬히 잘라 가다가 가장자리 가까이에 이르면 가위질을 멈춘다.{멈춘 곳은 자르기 시작한 곳에 비해 0.4척이 더 길다.} 뒤의 2엽은 엽마다 길이가 2.3척이다. 이를 역시 한쪽 가장자리부터 시작하여 0.1척을 잘라 내고 2.2척을 남기되, 차츰차츰 비스듬히 잘라 가다가 가장자리 가까이에 이르면 가위질을 멈춘다.{멈춘 곳은 자르기 시작한 곳에 비해 0.1척이 더 길다.} {《가례》를 살펴보니, “상의의 몸판은 길이가 2.2척이다.”라 하였으니, 지금 앞의 2엽에 0.4척을 더하고 뒤의 2엽에 0.1척을 더하는 것은 마름질의 방법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두 길[襟, 상의의 몸판]이 서로 겹칠 때 옷깃[衣領]이 교차되어 나란하지 않게 된다.}】 [6]치마[裳][7]는 엇갈리게 재단하여 12폭으로 만들고, 위쪽을 상의에 붙이며, 그 길이는 옷을 입었을 때 복사뼈까지 이를 정도로 한다.【베 6폭을 폭마다 비스듬히 마름질하여 2폭으로 나눈다. 이렇게 하면 마름질된 폭은 한쪽 끝은 넓고 한쪽 끝은 좁은데, 넓은 쪽 끝은 좁은 쪽 끝의 2배가 된다.{좁은 쪽 끝이 0.6척이면 넓은 쪽 끝은 1.2척이다.}[8] 마름질이 끝나면 좁은 쪽 끝을 모두 위로 향하게 하고 넓은 쪽 끝을 아래로 향하게 한 뒤 이 폭들을 이어 꿰매 하나로 만든다.상의와 치마를 합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상의의 앞뒤 4엽에 각 엽마다 치마 3폭을 붙이면{좁은 쪽 끝이 위로 가게 한다.} 상의 4엽에 치마는 모두 12폭이 된다. 상의와 치마가 서로 만나는 곳이 허리인데, 허리둘레는 약 7.2척이다. 치마의 밑단이 자(齊){‘齊’는 음이 자(咨)이다.}인데, 이 자의 둘레는 약 14.4척이다. 상의의 좌우에 양쪽 소매를 덧붙이고, 상의 위에 깃[領]을 단다. 일반적으로 깃과 치맛단, 소맷부리에는 모두 검은 견(絹)으로 가선[緣]을 두른다.】 [9]


원몌(圓袂, 둥근 소매).
【몌(袂)는 소매[袖]이다. 베 2폭을 쓰는데, 각각의 길이가 4.4척이다. 각 폭의 한가운데를 접어 앞뒤로 2엽을 만드는데, 엽마다 길이가 2.2척이다. 이를 각각 상의 몸판에 꿰매어 붙이는데, 겨드랑이 아래부터 점점 비스듬히 잘라 둥근 모양을 만든다. 소맷부리는 1.2척을 남기고 그 아래를 봉합해 소매를 만든다.[10][11]


방령(方領, 모난 깃).
【두 길[襟]이 서로 여며지면, 그 모양이 저절로 모가 나서 곱자(직각자)와 같아진다. 여기에 베 한 가닥을 너비 0.2척으로 하여 깃을 만드는데, 보통의 옷깃을 만드는 방법과 같다. 그런 다음에 깃 위에 가선을 두른다.】 [12]곡거(曲裾, 굽은 자락).[13]【지금은 양복(楊復)19을 따라 굽은 자락[裾]을 쓰지 않는다.[14][15]


흑연(黑緣, 검은 가선).
【검은 견(絹)으로 만든다. 깃과 소맷부리, 치맛단의 안과 밖에 모두 0.15척을 써서 댄다. 깃과 치맛단의 안팎에 흑연을 두를 경우에는 원래의 베 위에 얹어서 겹으로 바느질하고, 소맷부리에는 원래의 베 바깥 부분에 꿰매어 잇는다.{이것이 곧 이른바 “소맷부리는 베 바깥 부분에 이 가선의 너비만큼을 별도로 단다.”는 말이다. 《가례》를 살펴보니, 깃의 가선은 0.2척을 쓰고, 소맷부리와 치맛단의 가선은 0.15척으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예기(禮記)》 〈옥조(玉藻)〉에서 “겁(袷, 깃)은 0.2척이고, 가선의 너비는 0.15척이다.” [16]라 하여 깃과 치마와 소매에 다는 흑연의 치수를 나눠서 설명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모두 0.15척이기 때문이다. 이제 깃 또한 0.15척을 써서 치맛단이나 소맷부리와 같게 함으로써 옷깃을 적게 드러내도록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겁은 쓸데없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17]


대대(大帶).[18]【흰 견(絹)을 쓰는데, 너비는 0.4척이다. 겹으로25 바느질한다.{흰 견 대신 베를 쓰기도 한다.} 그 길이는 허리를 둘러 앞에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한다. 다시 고[耳][19] 2개(∞ 모양)를 만든 뒤 그 나머지를 드리워 신(紳)[20]으로 삼는다. 검은 견(絹)으로 신(紳)의 양 가장자리와 끝에 가선을 두른다.{허리를 두르는 부분에는 가선을 두르지 않는다.} 아래로 드리운 신은 치마와 길이가 나란하게 한다. 다시 여러 가지 색실[五色絲]로 좁은 끈[小絛]을 만드는데, 너비는 0.03척이다. 대대의 매듭 부분에 이 좁은 끈을 매는데, 길이는신(紳)과 나란하게 한다.】 [21]《가례의절》

  1. 심의(深衣):상하가 연결되어 몸을 깊숙이[深] 감쌀 수 있다는 뜻을 취하여 이름을 붙인 의복이다. 중국에서 심의는 한대(漢代)에 남녀의 상복(常服)으로 착용했고, 한대 말기부터 사라졌던 것을 송대에 사마광이 고례서의 내용을 고증하여 다시 제작해 입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전래와 함께 착용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착용했다. 심의의 형태는 《예기(禮記)》 〈옥조(玉藻)〉와 〈심의(深衣)〉편에 나오는데, 이 경문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역대 중국과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최근 발굴된 출토 유물을 통해 심의의 형태가 밝혀져 ‘곡거(曲裾)’와 ‘속임구변(續衽鉤邊)’ 등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나 오해했던 부분이 명확해지고 있다.(최연우, 〈진한에서 위진남북조시대의 복식〉, 《도용:매혹의 자태와 비색의 아름다움》, 유금와당박물관, 2009, 23~34쪽)
  2. 희고……쓴다:주희의 《가례(家禮)》 원문이다. 이어지는 주석 중 중괄호로 묶지 않은 곳은 《가례》의 주석이고, 중괄호로 묶은 곳은 《가례의절(家禮儀節)》에서 해설한 부분이다.
  3. 동신촌(同身寸):침뜸에서 혈을 취할 때 계산하는 방법으로 《침구자생경》 등에 나온다. 이는 환자 본인의 신체 가운데 특정 부위의 마디를 가지고 혈자리를 찾는 길이의 단위로 삼는다. 자세한 내용은 《인제지》 권26 <부여> “침뜸 혈자리” ‘혈을 잡는 법’에 나온다.
    동신촌재는 법(가례집람)









  4. 《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66쪽).9 상의[
  5. 상의[衣]:심의의 윗부분을 가리킨다. 이하에서 나오는 의(衣), 상의(上衣)는 모두 ‘상의’로 옮긴다.
  6. 《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66~68쪽).
  7. 치마[裳]:심의 아랫부분이다. 이하에서 상(裳), 하상(下裳)은 모두 ‘치마’로 옮긴다.
  8. 이상에서 설명한 치마의 재단법은 《임원경제지 섬용지》2권 풍석문화재단, 2017, 57쪽에 일러스트 되어 있다.
  9. 《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66~69쪽).
  10. 이를……만든다:상의 몸판 양쪽에 소매를 붙이고 겨드랑이 부분부터 손이 나오는 소맷부리까지 곡선 형태를 이루도록 굴려서 재단하고 바느질하여 둥근 모양의 소매를 만든다는 뜻이다. 이를 그림으로 구현한 것이 《임원경제지 섬용지》2권 풍석문화재단, 2017, 59쪽에 있다.
  11. 《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66~68쪽).
  12. 《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67~68쪽).
  13. 곡거(曲裾):뾰족한 앞자락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자락이 뒤로 돌아간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자세한 설명은 뒤에 나오는 ‘속임구변’을 참조 바람
  14. 지금은……않는다:양복은 주희가 곡거 제도를 버리고 쓰지 않은 깊은 뜻을 듣지 못해 안타까워했는데, 채연이 말한 주희가 곡거 제도를 버리게 된 이유를 듣고 따랐다. 주희는 베 한 폭을 치마의 길이와 같이 엇갈리게 재단하여 연미(제비 꼬리) 모양으로 만든 다음 치마의 오른쪽 옆에 달면 《禮記》 〈深衣〉에서 말한 ‘속임구변’이라 했다. 정현이 “구변은 지금의 곡거와 같다.”고 했기 때문에 구변과 곡거를 같은 것으로 보고, 별도로 있었던 《家禮》의 구설(舊說)인 곡거 제도를 버리고 쓰지 않았다.(《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 ‘曲裾’의 주석 참조)
  15. 《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67쪽).
  16. 《禮記正義》 卷29 〈玉藻〉(《十三經注疏整理本》 14, 1042~1043쪽).
  17. 《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67~69쪽).
  18. 대대(大帶):심의를 입을 때 허리에 두르는 띠.
    대대(주자가례)







  19. 고[耳]:고름이나 끈을 묶을 때 후에 쉽게 풀 수 있도록 내는 고리.
  20. 신(紳):띠를 허리에 매고 아래로 늘어뜨린 부분으로, 그 길이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禮記》 〈玉藻〉에서 “신(紳)의 길이에 대한 제도는 사(士)는 3척이며, 유사(有司)는 2.5척이다(紳長制, 士三尺, 有司二尺有五寸).”라고 했다.
  21. 《家禮》 卷1 〈通禮〉 “深衣制度”;《家禮儀節》 卷1 〈通禮〉 “深衣制度”(《文公家禮儀節》, 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