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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시가(馮時可)<ref>풍시가(馮時可): ?~?. 명나라 가경 연간(1796~1820년)의 학자로, 《춘추》에 뛰어났다.</ref>의 《봉창속록(蓬牕續錄)》에서는, “취두선(聚頭扇, 부채 끝을 모으는 부채)이 바로 접부채로 영락(永樂, 1403~1424년) 연간에 진공(進貢)되면서 나라에 성행했다. 소식이 ‘고려의 백송선(白松扇)은 펴면 너비가 1척 남짓이고 모으면 다만 두 손가락 너비이다.’라 했다. 일본 사람들이 만든, 금물을 검은 대나무 뼈대에 발라 만든 부채가 바로 이것이다.” <ref>《蓬牕續錄》은 확인 못함. 《通雅》 卷33 〈器用〉;《儼山外集》 卷5 〈春風堂隨筆〉 등에도 나온다.</ref>라 했다. 이에 근거하여 보면 중국에는 애초에 접부채가 없고 그곳의 부채는 모두 둥글부채[團扇]였으니,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미선(尾扇)과 같다. 미선은 대개 옛 그림에서 보이는데, 파초잎 모양의 파초선, 오동잎 모양의 동엽선(오엽선), 흰 깃털로 만든 백우선과 같은 종류가 이것이다.<ref>여기에서 설명한 부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모양이다. [[파일: 파초선.png|300픽셀|썸네일|가운데|파초선(국립민속박물관)]]<br/>[[파일: 오엽선.png|300픽셀|썸네일|가운데|오엽선(국립민속박물관)]]<br/>[[파일: 백우선.png|300픽셀|썸네일|가운데|백우선(국립민속박물관)]]<br/></ref> 우리나라 집기는 대부분 일본을 모방했는데, 그렇다면 접부채는 고려가 일본에게서 배우고 중국이 고려에게서 배운 결과이리라. 중국에서 큰 부채를 ‘고려선(高麗扇)’이라 하는데, 그 모양이 매우 질박하다. 고려선에는 우리나라 종이를 붙여 누런 기름을 먹이고, 자잘하게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이것을 상당히 진귀하게 여긴다.《열하일기》 <ref>《熱河日記》 〈銅蘭涉筆〉.</ref><br/><br/> | 풍시가(馮時可)<ref>풍시가(馮時可): ?~?. 명나라 가경 연간(1796~1820년)의 학자로, 《춘추》에 뛰어났다.</ref>의 《봉창속록(蓬牕續錄)》에서는, “취두선(聚頭扇, 부채 끝을 모으는 부채)이 바로 접부채로 영락(永樂, 1403~1424년) 연간에 진공(進貢)되면서 나라에 성행했다. 소식이 ‘고려의 백송선(白松扇)은 펴면 너비가 1척 남짓이고 모으면 다만 두 손가락 너비이다.’라 했다. 일본 사람들이 만든, 금물을 검은 대나무 뼈대에 발라 만든 부채가 바로 이것이다.” <ref>《蓬牕續錄》은 확인 못함. 《通雅》 卷33 〈器用〉;《儼山外集》 卷5 〈春風堂隨筆〉 등에도 나온다.</ref>라 했다. 이에 근거하여 보면 중국에는 애초에 접부채가 없고 그곳의 부채는 모두 둥글부채[團扇]였으니,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미선(尾扇)과 같다. 미선은 대개 옛 그림에서 보이는데, 파초잎 모양의 파초선, 오동잎 모양의 동엽선(오엽선), 흰 깃털로 만든 백우선과 같은 종류가 이것이다.<ref>여기에서 설명한 부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모양이다. [[파일: 파초선.png|300픽셀|썸네일|가운데|파초선(국립민속박물관)]]<br/>[[파일: 오엽선.png|300픽셀|썸네일|가운데|오엽선(국립민속박물관)]]<br/>[[파일: 백우선.png|300픽셀|썸네일|가운데|백우선(국립민속박물관)]]<br/></ref> 우리나라 집기는 대부분 일본을 모방했는데, 그렇다면 접부채는 고려가 일본에게서 배우고 중국이 고려에게서 배운 결과이리라. 중국에서 큰 부채를 ‘고려선(高麗扇)’이라 하는데, 그 모양이 매우 질박하다. 고려선에는 우리나라 종이를 붙여 누런 기름을 먹이고, 자잘하게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이것을 상당히 진귀하게 여긴다.《열하일기》 <ref>《熱河日記》 〈銅蘭涉筆〉.</ref><br/><br/> | ||
우리나라에서는 전주, 남평 등의 고을에서 나는 부채를 좋다고 여긴다. 승두선(僧頭扇)<ref>승두선(僧頭扇):스님의 머리처럼 꼭지를 둥글게 만든 부채.</ref>이 있고 사두선(蛇頭扇)<ref>사두선(蛇頭扇):부채 자루의 끝이 뱀의 머리처럼 생긴 부채.(금복현, 《전통 부채》, 대원사, 1990, 64쪽)</ref>이 있으며, 고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뿔을 겉에 대기도 하고 안에 대기도 하며, 언저리를 넓게도 만들고 좁게도 만들어 부채의 제도와 모양이 각각 다르다. 민간에서는 흰색과 검은색의 두 색을 좋아한다. 붉은색이나 황색 부채는 부인이나 어린아이에게 주며, 푸른색 부채는 신랑이 잡는다. 근래에 들어 아청색(鴉靑色)<ref>아청색(鴉靑色):청색보다 짙으며 남색보다는 옅은 푸른색의 일종.</ref> 부채를 상당히 높이 친다. 부녀자들은 여러 색의 둥글부채를 지닌다.《경도잡지》<ref>《京都雜志》 卷2 〈歲時〉 “端午”, 247~248쪽.</ref><br/><br/> | 우리나라에서는 전주, 남평 등의 고을에서 나는 부채를 좋다고 여긴다. 승두선(僧頭扇)<ref>승두선(僧頭扇):스님의 머리처럼 꼭지를 둥글게 만든 부채.</ref>이 있고 사두선(蛇頭扇)<ref>사두선(蛇頭扇):부채 자루의 끝이 뱀의 머리처럼 생긴 부채.(금복현, 《전통 부채》, 대원사, 1990, 64쪽)</ref>이 있으며, 고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뿔을 겉에 대기도 하고 안에 대기도 하며, 언저리를 넓게도 만들고 좁게도 만들어 부채의 제도와 모양이 각각 다르다. 민간에서는 흰색과 검은색의 두 색을 좋아한다. 붉은색이나 황색 부채는 부인이나 어린아이에게 주며, 푸른색 부채는 신랑이 잡는다. 근래에 들어 아청색(鴉靑色)<ref>아청색(鴉靑色):청색보다 짙으며 남색보다는 옅은 푸른색의 일종.</ref> 부채를 상당히 높이 친다. 부녀자들은 여러 색의 둥글부채를 지닌다.《경도잡지》<ref>《京都雜志》 卷2 〈歲時〉 “端午”, 247~248쪽.</ref><br/><br/> | ||
5월에 영호남의 관찰영(觀察營)<ref>관찰영(觀察營):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관아이다.</ref>에서 부채를 진상하면, 단오에 임금께서 가까운 신하들에게 부채를 하사하시는데, 이를 ‘단오부채[端午扇]’라 부른다. 이 중 가장 큰 부채는 댓살이 50개나 되는데 이를 ‘백첩선(白帖扇)’<ref>백첩선(白帖扇):부챗살과 면에 장식이나 그림을 넣지 않은 부채. 백선(白扇)이라고도 한다.</ref>이라 한다. 이것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부채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그려 넣는다. 근래에 민간에서는 부채에 절지(折枝),<ref>절지(折枝):나뭇가지나 꽃가지만 그리는 화법.</ref> 복숭아꽃, 나비, 연꽃, 은붕어, 백로나 가마우지 등을 그려 넣기를 좋아한다.《경도잡지》<ref>《京都雜志》 卷2 〈歲時〉 “端午”, 247쪽.</ref><br/><br/> | 5월에 영호남의 관찰영(觀察營)<ref>관찰영(觀察營):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관아이다.</ref>에서 부채를 진상하면, 단오에 임금께서 가까운 신하들에게 부채를 하사하시는데, 이를 ‘단오부채[端午扇]’라 부른다. 이 중 가장 큰 부채는 댓살이 50개나 되는데 이를 ‘백첩선(白帖扇)’<ref>백첩선(白帖扇):부챗살과 면에 장식이나 그림을 넣지 않은 부채. 백선(白扇)이라고도 한다.</ref>이라 한다. 이것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부채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그려 넣는다. 근래에 민간에서는 부채에 절지(折枝),<ref>절지(折枝):나뭇가지나 꽃가지만 그리는 화법.</ref> 복숭아꽃, 나비, 연꽃, 은붕어, 백로나 가마우지 등을 그려 넣기를 좋아한다.《경도잡지》<ref>《京都雜志》 卷2 〈歲時〉 “端午”, 247쪽.</ref><br/><br/> | ||
− | 우리나라의 부채 제도는 길고 넓은 것을 높이 치려고 애써서, 길이는 거의 1.2~1.3척이고, 펼치면 너비가 2척이 넘는다. 부채에 댓살이 많다 보니 대를 종이처럼 얇게 깎지 않을 수 없어 바람을 온전히 일으키지 못하는 데다가 오래 견딜 수도 없다. 권문세가에서는 1개월에 부채를 1개씩 바꾸고, 여름에 밭일하는 농사꾼이나 마의(馬醫, 말을 치료하는 수의사) 같은 천한 사람들도 반드시 1년에 부채 1개를 바꾼다. 영호남의 영읍(營邑)<ref>영읍(營邑):감영(監營)이 있는 고을.</ref>에서 해마다 수백만 전의 비용을 들여 대를 깎고 부채를 만들어 조정의 귀한 분들이나 오랜 벗들에게 보낸다. 그 바람에 동남쪽의 아름다운 대밭이 나날이 벌거숭이가 되어 가는데도 절제할 줄 모르니 좋은 계획이 아니다. 서재에서는 중국에서 만든 종려나무로 가장자리를 두른 부채나, 일본에서 만든 금물로 그림을 그린 부채를 써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부채는 비록 짧고 작지만, 살이 매우 단단하고 거칠며 게다가 양면에 풀 먹인 종이를 붙여 무엇보다도 바람을 잘 일으킨다.《금화경독기》<br/> | + | 우리나라의 부채 제도는 길고 넓은 것을 높이 치려고 애써서, 길이는 거의 1.2~1.3척이고, 펼치면 너비가 2척이 넘는다. 부채에 댓살이 많다 보니 대를 종이처럼 얇게 깎지 않을 수 없어 바람을 온전히 일으키지 못하는 데다가 오래 견딜 수도 없다. 권문세가에서는 1개월에 부채를 1개씩 바꾸고, 여름에 밭일하는 농사꾼이나 마의(馬醫, 말을 치료하는 수의사) 같은 천한 사람들도 반드시 1년에 부채 1개를 바꾼다. 영호남의 영읍(營邑)<ref>영읍(營邑):감영(監營)이 있는 고을.</ref>에서 해마다 수백만 전의 비용을 들여 대를 깎고 부채를 만들어 조정의 귀한 분들이나 오랜 벗들에게 보낸다. 그 바람에 동남쪽의 아름다운 대밭이 나날이 벌거숭이가 되어 가는데도 절제할 줄 모르니 좋은 계획이 아니다. 서재에서는 중국에서 만든 종려나무로 가장자리를 두른 부채나, 일본에서 만든 금물로 그림을 그린 부채를 써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부채는 비록 짧고 작지만, 살이 매우 단단하고 거칠며 게다가 양면에 풀 먹인 종이를 붙여 무엇보다도 바람을 잘 일으킨다.《금화경독기》<ref>《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2,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6), 137~141쪽.</ref><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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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9일 (목) 16:43 기준 최신판
내용
4) 접부채[摺疊扇][1]
풍시가(馮時可)[2]의 《봉창속록(蓬牕續錄)》에서는, “취두선(聚頭扇, 부채 끝을 모으는 부채)이 바로 접부채로 영락(永樂, 1403~1424년) 연간에 진공(進貢)되면서 나라에 성행했다. 소식이 ‘고려의 백송선(白松扇)은 펴면 너비가 1척 남짓이고 모으면 다만 두 손가락 너비이다.’라 했다. 일본 사람들이 만든, 금물을 검은 대나무 뼈대에 발라 만든 부채가 바로 이것이다.” [3]라 했다. 이에 근거하여 보면 중국에는 애초에 접부채가 없고 그곳의 부채는 모두 둥글부채[團扇]였으니,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미선(尾扇)과 같다. 미선은 대개 옛 그림에서 보이는데, 파초잎 모양의 파초선, 오동잎 모양의 동엽선(오엽선), 흰 깃털로 만든 백우선과 같은 종류가 이것이다.[4] 우리나라 집기는 대부분 일본을 모방했는데, 그렇다면 접부채는 고려가 일본에게서 배우고 중국이 고려에게서 배운 결과이리라. 중국에서 큰 부채를 ‘고려선(高麗扇)’이라 하는데, 그 모양이 매우 질박하다. 고려선에는 우리나라 종이를 붙여 누런 기름을 먹이고, 자잘하게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이것을 상당히 진귀하게 여긴다.《열하일기》 [5]
우리나라에서는 전주, 남평 등의 고을에서 나는 부채를 좋다고 여긴다. 승두선(僧頭扇)[6]이 있고 사두선(蛇頭扇)[7]이 있으며, 고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뿔을 겉에 대기도 하고 안에 대기도 하며, 언저리를 넓게도 만들고 좁게도 만들어 부채의 제도와 모양이 각각 다르다. 민간에서는 흰색과 검은색의 두 색을 좋아한다. 붉은색이나 황색 부채는 부인이나 어린아이에게 주며, 푸른색 부채는 신랑이 잡는다. 근래에 들어 아청색(鴉靑色)[8] 부채를 상당히 높이 친다. 부녀자들은 여러 색의 둥글부채를 지닌다.《경도잡지》[9]
5월에 영호남의 관찰영(觀察營)[10]에서 부채를 진상하면, 단오에 임금께서 가까운 신하들에게 부채를 하사하시는데, 이를 ‘단오부채[端午扇]’라 부른다. 이 중 가장 큰 부채는 댓살이 50개나 되는데 이를 ‘백첩선(白帖扇)’[11]이라 한다. 이것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부채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그려 넣는다. 근래에 민간에서는 부채에 절지(折枝),[12] 복숭아꽃, 나비, 연꽃, 은붕어, 백로나 가마우지 등을 그려 넣기를 좋아한다.《경도잡지》[13]
우리나라의 부채 제도는 길고 넓은 것을 높이 치려고 애써서, 길이는 거의 1.2~1.3척이고, 펼치면 너비가 2척이 넘는다. 부채에 댓살이 많다 보니 대를 종이처럼 얇게 깎지 않을 수 없어 바람을 온전히 일으키지 못하는 데다가 오래 견딜 수도 없다. 권문세가에서는 1개월에 부채를 1개씩 바꾸고, 여름에 밭일하는 농사꾼이나 마의(馬醫, 말을 치료하는 수의사) 같은 천한 사람들도 반드시 1년에 부채 1개를 바꾼다. 영호남의 영읍(營邑)[14]에서 해마다 수백만 전의 비용을 들여 대를 깎고 부채를 만들어 조정의 귀한 분들이나 오랜 벗들에게 보낸다. 그 바람에 동남쪽의 아름다운 대밭이 나날이 벌거숭이가 되어 가는데도 절제할 줄 모르니 좋은 계획이 아니다. 서재에서는 중국에서 만든 종려나무로 가장자리를 두른 부채나, 일본에서 만든 금물로 그림을 그린 부채를 써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부채는 비록 짧고 작지만, 살이 매우 단단하고 거칠며 게다가 양면에 풀 먹인 종이를 붙여 무엇보다도 바람을 잘 일으킨다.《금화경독기》[15]
각주
- ↑ 접부채[摺疊扇]: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서 ‘접부채’, 접어서 쥐고 다니기 간편한 부채라는 뜻의 ‘쥘부채’, 거듭 접는다는 의미의 ‘접첩선(摺疊扇)’ 등으로 불린다. 최근의 연구자들은 고려에서 발명하여 중국이나 일본에 그 기술을 전했다 하는데, 서유구와 성해응(成海應, 《硏經齋全集》 卷61 〈筆記類〉 ‘摺疊扇’) 등 조선시대 일부 학자는 접부채의 기원은 일본이며, 이 부채가 고려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보고 있다.(차서연, 앞의 논문, 29~30쪽)
- ↑ 풍시가(馮時可): ?~?. 명나라 가경 연간(1796~1820년)의 학자로, 《춘추》에 뛰어났다.
- ↑ 《蓬牕續錄》은 확인 못함. 《通雅》 卷33 〈器用〉;《儼山外集》 卷5 〈春風堂隨筆〉 등에도 나온다.
- ↑ 여기에서 설명한 부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모양이다.
- ↑ 《熱河日記》 〈銅蘭涉筆〉.
- ↑ 승두선(僧頭扇):스님의 머리처럼 꼭지를 둥글게 만든 부채.
- ↑ 사두선(蛇頭扇):부채 자루의 끝이 뱀의 머리처럼 생긴 부채.(금복현, 《전통 부채》, 대원사, 1990, 64쪽)
- ↑ 아청색(鴉靑色):청색보다 짙으며 남색보다는 옅은 푸른색의 일종.
- ↑ 《京都雜志》 卷2 〈歲時〉 “端午”, 247~248쪽.
- ↑ 관찰영(觀察營):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관아이다.
- ↑ 백첩선(白帖扇):부챗살과 면에 장식이나 그림을 넣지 않은 부채. 백선(白扇)이라고도 한다.
- ↑ 절지(折枝):나뭇가지나 꽃가지만 그리는 화법.
- ↑ 《京都雜志》 卷2 〈歲時〉 “端午”, 247쪽.
- ↑ 영읍(營邑):감영(監營)이 있는 고을.
- ↑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2,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6), 137~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