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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 사람들은 우리의 갓을 <u>‘절풍건(折風巾)’</u><ref>고구려 때 소가(小加) 신분의 사람이 쓰던 변형 관모이다.(“大加、 主簿, 皆著幘, 如冠. 幘而無後. 其小加, 著折風. 形如弁.” 《後漢書》 卷115 〈東夷〉;《後漢書》 卷94 〈高麗傳〉) 절풍건은 한자 변(弁)과 같은 형태를 한 관모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삼각형의 관모[厶]와 좌우에 달린 끈[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의 절풍은 보통 소색 가죽으로 제작되며 관모 하단부에 흑색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데, 이 테두리는 절풍을 머리에 좀 더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정완진,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복식문화〉, 《韓國의 服飾文化史》,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333~334쪽)</ref>이라 한다. <u>우동(尤侗)</u><ref>우동(尤侗):1618~1704. 청(淸)의 관리이자 시인.</ref>이 <u>《외국죽지사(外國竹枝詞)》</u><ref>《외국죽지사(外國竹枝詞)》:중국 주변국의 풍속을 읊고 해설한 책이다. 조선을 읊은 부분은 모두 4수로 풍문(風聞)을 거두어 모아 잘못된 부분이 많다. 죽지사는 칠언절구로 민간의 풍속을 읊은 시의 형식을 말한다.</ref>에서 조선의 복식을 언급하며 <u>“소매가 넓은 장삼을 입고 절풍건을 쓴다.”</u><ref>尤侗, 《外國竹枝詞》</ref>라 했는데, 이는 바로 우리나라의 <u>포(袍)</u><ref>포(袍):남자들의 기본 복식인 바지와 저고리 위에 입는 큰 겉옷이다. 포에는 단령(團領), 직령(直領), 답호, 철릭, 도포, 창의, 중치막, 소창의, 학창의, 심의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ref>와 갓 제도를 가리킨다. || 華人謂之“折風巾”. | + | | 중국 사람들은 우리의 갓을 <u>‘절풍건(折風巾)’</u><ref>고구려 때 소가(小加) 신분의 사람이 쓰던 변형 관모이다.(“大加、 主簿, 皆著幘, 如冠. 幘而無後. 其小加, 著折風. 形如弁.” 《後漢書》 卷115 〈東夷〉;《後漢書》 卷94 〈高麗傳〉) 절풍건은 한자 변(弁)과 같은 형태를 한 관모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삼각형의 관모[厶]와 좌우에 달린 끈[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의 절풍은 보통 소색 가죽으로 제작되며 관모 하단부에 흑색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데, 이 테두리는 절풍을 머리에 좀 더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정완진,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복식문화〉, 《韓國의 服飾文化史》,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333~334쪽)</ref>이라 한다. <u>우동(尤侗)</u><ref>우동(尤侗):1618~1704. 청(淸)의 관리이자 시인.</ref>이 <u>《외국죽지사(外國竹枝詞)》</u><ref>《외국죽지사(外國竹枝詞)》:중국 주변국의 풍속을 읊고 해설한 책이다. 조선을 읊은 부분은 모두 4수로 풍문(風聞)을 거두어 모아 잘못된 부분이 많다. 죽지사는 칠언절구로 민간의 풍속을 읊은 시의 형식을 말한다.</ref>에서 조선의 복식을 언급하며 <u>“소매가 넓은 장삼을 입고 절풍건을 쓴다.”</u><ref>尤侗, 《外國竹枝詞》</ref>라 했는데, 이는 바로 우리나라의 <u>포(袍)</u><ref>포(袍):남자들의 기본 복식인 바지와 저고리 위에 입는 큰 겉옷이다. 포에는 단령(團領), 직령(直領), 답호, 철릭, 도포, 창의, 중치막, 소창의, 학창의, 심의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ref>와 갓 제도를 가리킨다. || 華人謂之“折風巾”. 尤侗 《外國竹枝詞》其言朝鮮有云“長衫廣袖折風巾”, 卽指我國袍笠之制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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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3일 (목) 06:37 기준 최신판
⇨ 갓 笠
목차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갓:T0001
- Text
역주 | 원문 |
---|---|
갓[1]에는 대우[帽]가 있고 양태[簷]가 있는데, 모두 대오리[竹絲][2]를 엮어서 만들고 베로 싸서 옻칠을 한다.[3] | 笠有帽有簷, 皆竹絲結成而布裹髹漆. |
대오리로 엮어 옻칠을 한 갓(국립민속박물관)
대오리로 만든 양태에 베[布]를 입힌 갓(국립민속박물관)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갓:T0002
- Text
역주 |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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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는 제주도에서 오는데, 지금은 통영에서 만든 양태가 더욱 좋다. 팔도에서 쓰는 갓 중에 9/10가 모두 제주산이고 통영산은 값이 올라 1/1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을 잘 견디고 질기기로는 제주 양태 셋이 통영 양태 하나를 당할 수 없다. | 其簷來自耽羅, 近年統營造者尤佳. 衣被八域者, 什九皆耽羅産, 而統營者價翔, 僅居什之一. 然耐風而靭, 耽羅簷三不能當統營簷一也. |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갓:T0003
- Text
역주 |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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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관례(冠禮)를 치른 소년은 황초립(黃草笠)[4]을 쓰는데, 그 색이 황금과같다. 개성 사람들이 잘 만든다. | 新冠少年戴黃草笠, 其色如金, 開城人善爲之. |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갓:T0004
- Text
역주 |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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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갓의 제도는 멀리 신라에서 시작되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벼슬하는 사람이나 벼슬하지 않는 사람,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 함께 착용하는 복장이 되었다. | 蓋笠制, 遠自新羅, 至今爲朝野、貴賤之所同服. |
PST:섬용지:복식도구:쓰개:갓:T0005
- Text
역주 |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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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은 우리의 갓을 ‘절풍건(折風巾)’[5]이라 한다. 우동(尤侗)[6]이 《외국죽지사(外國竹枝詞)》[7]에서 조선의 복식을 언급하며 “소매가 넓은 장삼을 입고 절풍건을 쓴다.”[8]라 했는데, 이는 바로 우리나라의 포(袍)[9]와 갓 제도를 가리킨다. | 華人謂之“折風巾”. 尤侗 《外國竹枝詞》其言朝鮮有云“長衫廣袖折風巾”, 卽指我國袍笠之制也. |
PST:《외국죽지사》:Q0001
- Quotation
역주 | 원문 | 출처 |
---|---|---|
“소매가 넓은 장삼을 입고 절풍건을 쓴다.” | “長衫廣袖折風巾” | 尤侗, 《外國竹枝詞》 |
PST:《금화경독기》:R0001
- Reference
역주 | 원문 | 출처 |
---|---|---|
《금화경독기》 | 《金華耕讀記》 | 徐有榘, 《金華耕讀記》. 출처미상. |
- ↑ 갓:조선시대 립(笠)은 머리를 덮는 ‘모자 부분[帽:대우]’과 ‘차양 부분[簷:양태]’으로 구성된다. 립은 흑립(黑笠), 초립(草笠), 평량자(平凉子) 등이 있다. 이 중 흑립은 일반적으로 ‘갓’으로 통용된 조선시대 남성의 대표적인 관모였다. 갓은 대우의 높이와 형태, 양태의 넓고 좁음에 따른 유행이 심했다.(국립민속박물관, 《머리에서 발끝까지》, 국립민속박물관, 2011, 19쪽)
- ↑ 갓은 대나무 또는 말총을 엮어서 만드는데, 서유구가 대오리만 언급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대나무의 생산량이 많아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 대나무나 말총의 재료를 보강하면서 동시에 형태를 잡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 직물을 덧대는 공정이다.
- ↑ 누런빛의 풀을 엮어 만든 갓[笠]으로 장년과 구별하기 위해 관례를 올린 소년들에게 착용하게 했다.(“今世少年加冠者, 亦必用草笠, 與壯長爲別, 未知其可也.” 李瀷, 《星湖僿說》 卷8 〈人事門〉 “紅衣草笠”)
- ↑ 고구려 때 소가(小加) 신분의 사람이 쓰던 변형 관모이다.(“大加、 主簿, 皆著幘, 如冠. 幘而無後. 其小加, 著折風. 形如弁.” 《後漢書》 卷115 〈東夷〉;《後漢書》 卷94 〈高麗傳〉) 절풍건은 한자 변(弁)과 같은 형태를 한 관모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삼각형의 관모[厶]와 좌우에 달린 끈[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의 절풍은 보통 소색 가죽으로 제작되며 관모 하단부에 흑색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데, 이 테두리는 절풍을 머리에 좀 더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정완진,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복식문화〉, 《韓國의 服飾文化史》,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333~334쪽)
- ↑ 우동(尤侗):1618~1704. 청(淸)의 관리이자 시인.
- ↑ 《외국죽지사(外國竹枝詞)》:중국 주변국의 풍속을 읊고 해설한 책이다. 조선을 읊은 부분은 모두 4수로 풍문(風聞)을 거두어 모아 잘못된 부분이 많다. 죽지사는 칠언절구로 민간의 풍속을 읊은 시의 형식을 말한다.
- ↑ 尤侗, 《外國竹枝詞》
- ↑ 포(袍):남자들의 기본 복식인 바지와 저고리 위에 입는 큰 겉옷이다. 포에는 단령(團領), 직령(直領), 답호, 철릭, 도포, 창의, 중치막, 소창의, 학창의, 심의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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