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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삿갓은 농사를 짓거나 나무하는 사람들이 비를 막거나 햇빛을 가리는 갓이다. 옛날에는 띠풀[莎草]<ref>띠풀[莎草]:볏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볕이 잘 드는 풀밭이나 강가에 무리 지어 자란다. 잎으로 지붕을 덮거나 문발, 도롱이 등 여러 용품을 만든다.</ref>로 만들었다. 육기(陸璣)<ref> 육기(陸璣):260~303. 중국 서진(西晋)의 문인.</ref>의 《모시초목충어소(毛詩草木蟲魚疏)》에서 “대(臺)는 부수(夫須)이다. 옛 설에 부수는 띠풀[莎草]인데, 삿갓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ref>대(臺)는……했다:《毛詩草木鳥獸蟲魚疏》 卷上 〈南山有臺〉.</ref>고 한 말이 이것이다. 그러나 〈도인사(都人士)〉라는 시 <ref>《毛詩正義》 卷15 〈小雅〉 “都人士”(《十三經注疏整理本》 5, 1070~1073쪽).</ref>에 “립(笠)을 쓰고 검은끈으로 묶었네.”라는 구절이 ‘여우갖옷[狐裘]’ <ref> 여우갖옷[狐裘]:고대에 갖옷[裘衣]은 방한용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특정 예복을 입을 때 함께 갖춰 입는 옷이었다. 예복에 쓰는 갖옷에 관한 기록은 《예기(禮記)》 〈옥조(玉藻)〉가 대표적이다. 갖옷의 종류는 대구(大裘), 호백구(狐白裘), 보구(黼裘), 호청구(狐青裘), 미구(麛裘), 고구(羔裘), 호구(狐裘), 견구(犬裘), 양구(羊裘), 호구(虎裘), 낭구(狼裘) 등 다양하다. 대구는 천자가 면복(冕服) 중에서 최고 등급인 대구면(大裘冕)을 입을 때 쓰고 다른 신분이나 다른 옷에는 함께 쓸 수 없었다. 호백구는 천자, 제후, 경(卿), 대부(大夫)가 입고 사(士)는 쓸 수 없었으며, 호청구, 미구, 고구, 호구(狐裘)는 사(士) 이상의 신분이 모두 착용했다. 또 견구와 양구는 서민도 사용할 수 있었다.(崔圭順,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東華大學出版社, 2007, 29~31쪽).</ref>이나 ‘귀막이[充耳]’ <ref> 귀막이[充耳]:고대 최고 등급의 관모인 면관(冕冠)의 부속품이다. 면관에 달린 끈의 끝에 솜을 동그랗게 말아 매달다가 후에 그 재료가 옥 등으로 바뀐다. 면관의 양옆에 늘어뜨려 둥근 부분이 귓가에 이르게 하고, 이를 통해 ‘귀를 막는다[充耳]’는 뜻을 형상화한다. 귀막이는 면관을 쓴 사람이 바르지 못한 말을 듣지 않도록[止聽] 하는 것을 상징하고, 나아가 지도자가 아랫사람의 잘못을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덕(德)을 함양해야 함을 상징한다.(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36~39쪽) 즉 호구(狐裘)나 귀막이가 달린 면관은 농부 등의 평민이 착용할 수 있는 복식이 아니기 때문에 본문에서 이들 물품과 동등하게 나열되는 립이 단지 농부의 복장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ref>와 함께 열거되었으니 립을 쓰는 것이 농부가 비를 피하기 위한 복장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왕안석(王安石) <ref> 왕안석(王安石):1021~1086. 당송팔대가의 한 명이자 정치인으로 자는 개보(介甫)이다.</ref>은 “립을 쓰고 검은끈으로 묶었네.”를 풀이하여, “벼슬하지 않는 사대부와 서민들이 함께 입는 복장” <ref> 벼슬하지……복장:원래 왕안석의 《모시의(毛詩義)》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시의》는 왕안석의 신법(新法) 폐지 후 망실되었으나, 송대의 여러 문헌에 인용된 구절들이 종종 남아 있다. 이 구절은 여조겸(呂祖謙)의 《여씨가숙독시기(呂氏家塾讀詩記)》 卷24에도 인용되어 있다</ref>이라 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산이나 들에 거처하는 사람들이 꼭 갖추어야 하는 쓰개이다.<br/> | ||
요즘 농가에서 쓰는 삿갓은 모두 갈대를 쪼개 엮어서 만드니, 재료가 성글고 물러 쉽게 썩으므로 1년에 1번씩 바꿔야 한다. 호남 사람들이 대껍질을 깎아 가로세로로 가늘게 엮은 삿갓이 좋다. 일반 갓에 비해 배나 크고 양태의 끝이 말려 올라가서 멀리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삿갓에 옻칠을 하거나 황칠(黃漆) <ref>황칠(黃漆):황칠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황금색 액이 나오는데, 이를 도료로 사용하고 색상이 황금색이기 때문에 황칠이라 한다. | 요즘 농가에서 쓰는 삿갓은 모두 갈대를 쪼개 엮어서 만드니, 재료가 성글고 물러 쉽게 썩으므로 1년에 1번씩 바꿔야 한다. 호남 사람들이 대껍질을 깎아 가로세로로 가늘게 엮은 삿갓이 좋다. 일반 갓에 비해 배나 크고 양태의 끝이 말려 올라가서 멀리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삿갓에 옻칠을 하거나 황칠(黃漆) <ref>황칠(黃漆):황칠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황금색 액이 나오는데, 이를 도료로 사용하고 색상이 황금색이기 때문에 황칠이라 한다. | ||
</ref>을 하면 10년은 쓸 수 있다.<br/> | </ref>을 하면 10년은 쓸 수 있다.<br/> | ||
− | 【안. 《왕정농서(王禎農書)》를 살펴보니 “요즘 갓을 만들 때는 대를 엮어 몸체를 만들고 대껍질로 싸서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만드는데, 모두 꼭대기가 솟아 있고, 주둥이(밑)는 둥글다.” <ref>《王禎農書》 卷15 〈農器圖譜〉 7 “蓑笠門”, 258쪽.</ref>라 했다. 그 제도가 우리나라 호남에서 대나무로 만든 삿갓과 비슷하다. 다만 대껍질로 싸는 일은 쓸데없는 듯하다.】《금화경독기》<br/><br/> | + | 【안. 《왕정농서(王禎農書)》를 살펴보니 “요즘 갓을 만들 때는 대를 엮어 몸체를 만들고 대껍질로 싸서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만드는데, 모두 꼭대기가 솟아 있고, 주둥이(밑)는 둥글다.” <ref>《王禎農書》 卷15 〈農器圖譜〉 7 “蓑笠門”, 258쪽.</ref>라 했다. 그 제도가 우리나라 호남에서 대나무로 만든 삿갓과 비슷하다. 다만 대껍질로 싸는 일은 쓸데없는 듯하다.】《금화경독기》<ref>《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2,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6), 35~38쪽. </ref><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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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3일 (월) 16:43 기준 최신판
내용
3) 삿갓[蓑笠][1]
삿갓은 농사를 짓거나 나무하는 사람들이 비를 막거나 햇빛을 가리는 갓이다. 옛날에는 띠풀[莎草][2]로 만들었다. 육기(陸璣)[3]의 《모시초목충어소(毛詩草木蟲魚疏)》에서 “대(臺)는 부수(夫須)이다. 옛 설에 부수는 띠풀[莎草]인데, 삿갓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4]고 한 말이 이것이다. 그러나 〈도인사(都人士)〉라는 시 [5]에 “립(笠)을 쓰고 검은끈으로 묶었네.”라는 구절이 ‘여우갖옷[狐裘]’ [6]이나 ‘귀막이[充耳]’ [7]와 함께 열거되었으니 립을 쓰는 것이 농부가 비를 피하기 위한 복장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왕안석(王安石) [8]은 “립을 쓰고 검은끈으로 묶었네.”를 풀이하여, “벼슬하지 않는 사대부와 서민들이 함께 입는 복장” [9]이라 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산이나 들에 거처하는 사람들이 꼭 갖추어야 하는 쓰개이다.
요즘 농가에서 쓰는 삿갓은 모두 갈대를 쪼개 엮어서 만드니, 재료가 성글고 물러 쉽게 썩으므로 1년에 1번씩 바꿔야 한다. 호남 사람들이 대껍질을 깎아 가로세로로 가늘게 엮은 삿갓이 좋다. 일반 갓에 비해 배나 크고 양태의 끝이 말려 올라가서 멀리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삿갓에 옻칠을 하거나 황칠(黃漆) [10]을 하면 10년은 쓸 수 있다.
【안. 《왕정농서(王禎農書)》를 살펴보니 “요즘 갓을 만들 때는 대를 엮어 몸체를 만들고 대껍질로 싸서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만드는데, 모두 꼭대기가 솟아 있고, 주둥이(밑)는 둥글다.” [11]라 했다. 그 제도가 우리나라 호남에서 대나무로 만든 삿갓과 비슷하다. 다만 대껍질로 싸는 일은 쓸데없는 듯하다.】《금화경독기》[12]
- ↑ 삿갓[蓑笠]:갈대나 대오리로 만들어 노동할 때 햇빛을 가리거나 비를 막는 쓰개의 일종.
- ↑ 띠풀[莎草]:볏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볕이 잘 드는 풀밭이나 강가에 무리 지어 자란다. 잎으로 지붕을 덮거나 문발, 도롱이 등 여러 용품을 만든다.
- ↑ 육기(陸璣):260~303. 중국 서진(西晋)의 문인.
- ↑ 대(臺)는……했다:《毛詩草木鳥獸蟲魚疏》 卷上 〈南山有臺〉.
- ↑ 《毛詩正義》 卷15 〈小雅〉 “都人士”(《十三經注疏整理本》 5, 1070~1073쪽).
- ↑ 여우갖옷[狐裘]:고대에 갖옷[裘衣]은 방한용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특정 예복을 입을 때 함께 갖춰 입는 옷이었다. 예복에 쓰는 갖옷에 관한 기록은 《예기(禮記)》 〈옥조(玉藻)〉가 대표적이다. 갖옷의 종류는 대구(大裘), 호백구(狐白裘), 보구(黼裘), 호청구(狐青裘), 미구(麛裘), 고구(羔裘), 호구(狐裘), 견구(犬裘), 양구(羊裘), 호구(虎裘), 낭구(狼裘) 등 다양하다. 대구는 천자가 면복(冕服) 중에서 최고 등급인 대구면(大裘冕)을 입을 때 쓰고 다른 신분이나 다른 옷에는 함께 쓸 수 없었다. 호백구는 천자, 제후, 경(卿), 대부(大夫)가 입고 사(士)는 쓸 수 없었으며, 호청구, 미구, 고구, 호구(狐裘)는 사(士) 이상의 신분이 모두 착용했다. 또 견구와 양구는 서민도 사용할 수 있었다.(崔圭順,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東華大學出版社, 2007, 29~31쪽).
- ↑ 귀막이[充耳]:고대 최고 등급의 관모인 면관(冕冠)의 부속품이다. 면관에 달린 끈의 끝에 솜을 동그랗게 말아 매달다가 후에 그 재료가 옥 등으로 바뀐다. 면관의 양옆에 늘어뜨려 둥근 부분이 귓가에 이르게 하고, 이를 통해 ‘귀를 막는다[充耳]’는 뜻을 형상화한다. 귀막이는 면관을 쓴 사람이 바르지 못한 말을 듣지 않도록[止聽] 하는 것을 상징하고, 나아가 지도자가 아랫사람의 잘못을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덕(德)을 함양해야 함을 상징한다.(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36~39쪽) 즉 호구(狐裘)나 귀막이가 달린 면관은 농부 등의 평민이 착용할 수 있는 복식이 아니기 때문에 본문에서 이들 물품과 동등하게 나열되는 립이 단지 농부의 복장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 ↑ 왕안석(王安石):1021~1086. 당송팔대가의 한 명이자 정치인으로 자는 개보(介甫)이다.
- ↑ 벼슬하지……복장:원래 왕안석의 《모시의(毛詩義)》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시의》는 왕안석의 신법(新法) 폐지 후 망실되었으나, 송대의 여러 문헌에 인용된 구절들이 종종 남아 있다. 이 구절은 여조겸(呂祖謙)의 《여씨가숙독시기(呂氏家塾讀詩記)》 卷24에도 인용되어 있다
- ↑ 황칠(黃漆):황칠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황금색 액이 나오는데, 이를 도료로 사용하고 색상이 황금색이기 때문에 황칠이라 한다.
- ↑ 《王禎農書》 卷15 〈農器圖譜〉 7 “蓑笠門”, 258쪽.
- ↑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2,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6), 35~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