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지:절식:유두의 절식:수단 만들기
수단
1) 수단(水團) 만들기(수단방)
6월 15일을 민간에서는 ‘유두절(流頭節)’이라 부른다 【 《고려사(高麗史)[1]》 희종(煕宗) 즉위년(1204)[2]에 “6월 병인(丙寅, 15일)에 시어사(侍御史)[3] 두 사람이 환관 최동수(崔東秀)와 함께 광진사(廣眞寺)[4]에 모여 유두음(流頭飮) 놀이를 하였다. 당시에 나라의 풍속에는 이달 15일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서 머리를 감고,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푸닥거리하여 없애고, 이를 계기로 모여서 술을 마셨다. 이것을 ‘유두음(流頭飮)’이라고 하였다.”[5]라 했다 】. 이날은 분단(粉團)[6]을 만들고 여기에 꿀물을 끼얹어 먹는데, 이를 ‘수단(水團)’이라고 불렀다. 《한양세시기》[7]
수단 만드는 방법 : 멥쌀가루를 푹 쪄서 떡판 위에 놓고, 떡국떡을 만드는 방법대로 흐물흐물하게 쳐서 손으로 작은 가닥으로 주물러 만든다. 이를 다시 가로로 잘라 얇은 편으로 만든다. 여기에 쌀가루를 묻혀서 끓는 물속에 넣고 잠시 데친 뒤 바로 건진다. 여기에 꿀물을 끼얹어 적시고, 작은 얼음덩어리를 넣어 상에 올리면 매우 차고 부드럽다.
《세시잡기(歲時雜記)》[8] 를 살펴보면 “단오에 수단을 만든다. ‘백단(白團)’이라고도 부른다. 혹 5가지 색의 사람과 짐승, 꽃과 과일의 모양을 섞는다. 그 중 가장 잘 된 것을 ‘적분단(滴粉團)’이라 한다.”[9]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날짜를 옮겨서 6월 보름의 절식으로 만들었고, 만드는 방법 또한 같지 않다. 《옹치잡지》 [10]
각주
- ↑ 고려사(高麗史) : 1449년(세종 31)에 편찬하기 시작해 1451년(문종 1)에 완성된 기전체 고려시대 역사. 총 139권 75책으로, 세가(世家) 46권, 열전(列傳) 50권, 지(志) 39권, 연표(年表) 2권, 목록(目錄) 2권으로 되어 있다. 고려는 황제국이었으나 본기(本紀)를 두지 않았으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지 않고 유교적 사대주의에 근거하여 고려시대에 쓰던 용어를 개변하고 자료를 취사선택했다.
- ↑ 고려사……즉위년(1204) : 이 기록은 고려 명종(明宗) 15년(1185)에 나온다. 착오인 듯하다.
- ↑ 시어사(侍御史) : 고려시대 어사대(御史臺)의 종5품 관직. 대관(臺官)으로서, 시정의 논집(論執), 풍속의 교정(矯正), 규찰과 탄핵의 임무를 맡았다.
- ↑ 광진사(廣眞寺) : 고려시대 개성 장작감(將作監, 토목이나 영선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 동쪽에 있던 절.
- ↑ 《高麗史》 卷20 〈世家〉 20 “明宗”2 ‘乙巳十五年’(《국역고려사》 6, 557쪽).
- ↑ 분단(粉團) : 쌀가루로 작은 덩이를 만든 뒤 물에 삶아낸 떡.
- ↑ 출전 확인 안 됨 ; 《京都雜誌》 卷2 〈歲時〉 “六月十五日”(《조선대세시기》3, 89쪽).
- ↑ 세시잡기(歲時雜記) : 중국 북송의 여희철(呂希哲, 1039~1116)이 지은 세시서이다. 여희철은 자는 원명(原明)이고, 정자(程子)와 장횡거(張橫渠)에게 사사하였다.
- ↑ 단오에……한다 :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9 〈天時部〉 “五月” ‘端午’(《文淵閣四庫全書》 925, 150쪽).
- ↑ 출전 확인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