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각 절기의 구경거리와 즐거운 놀이:절일의 세부 내용: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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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22) 복날[伏日][1]의 개장국[狗醬][2]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6월 복날에는 탕병(湯餠, 떡국)[3]을 만들어 먹는데, 이것을 ‘벽악(辟惡)’[4]이라 부른다. 《위씨춘추(魏氏春秋)[5]》를 살펴보면, 하안(何晏)[6]이 복날에 탕병을 먹으면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 얼굴빛이 환해진다.”[7]라 했으니, 그렇다면 복날 탕병을 먹는 풍속은 위·진(魏·晉)시대부터 이미 그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탕병을 먹는 풍습이 설날로 옮겨갔고, 개장국이 복날에 먹는 절기음식이 되었다. 유득공(柳得恭)[8]의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에 “옛날에 복날이면 4대문에서 ‘책구(磔狗)’[9]의 의식을 하여, 벌레들의 재해를 막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풍습에도 마침내 이를 따라 개를 잡아 의식을 행하고 먹게 되었다.”[10]라 했다. 근거 없는 이 설은 비판할 만하지만 복날과 섣달 그믐에 개를 삶아먹는 풍습은 한(漢)나라 때부터 그러했다고 하니, 그렇다면 탕병과 함께 차려도 무방하다. 《금화경독기》[11][12]

이암, 모견도(국립중앙박물관)


각주

  1. 복날[伏日]:복날은 장차 일어나고자 하는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려 있다는 말로,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제압하여 굴복시켰다는 뜻이다. 하지(夏至) 후의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 하지 후의 네 번째 경일이 중복, 입추 뒤의 첫 경일이 말복이다.
  2. 개장국[狗醬]:《정조지(鼎俎志)》 권7 〈절식지류(節食之類)〉 “삼복절식(三伏節食)” ‘구장방(狗醬方)’에 만드는 방법이 있다.
  3. 탕병(湯餠):여기는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보다 더 넓은 의미로, 복날의 개장국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여 ‘떡국’으로 번역하지 않고 ‘탕병’으로 두었다.
  4. 벽악(辟惡):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5. 위씨춘추(魏氏春秋):중국 동진(東晉)의 역사가 손성(孫盛, ?~?)이 지은 책. 삼국시대(三國時代) 조위(曹魏)의 정치권력에 대해 기록했다.
  6. 하안(何晏):193?~249.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학자로 자는 평숙(平叔). 조조(曹操)의 양자. 왕필(王弼)과 주고받은 청담(淸談)은 일세를 풍미했고, 그 뒤 ‘정시지음(正始之音)’으로 일컬어지며 청담의 모범이 되었다. 저서로 《논어집해(論語集解)》가 있다.
  7. 6월……환해진다:《荊楚歲時記》 “六月”(《文淵閣四庫全書》589, 23쪽).
  8. 유득공(柳得恭):1749~1807. 조선 후기의 실학자. 자는 혜풍(惠風)·혜보(惠甫). 호는 영재(泠齋)·고운당(古芸堂). 20세를 지나 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와 같은 북학파 인사들과 교유하기 시작했다. 학문·사상·세계관에서도 매우 진보적 시각을 보여준 실학자였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와 민속에 관심이 많아 《발해고(渤海考)》·《사군지(四郡志)》및 한국 최초의 세시풍속기인 《경도잡지(京都雜志)》를 지었다.
  9. 책구(磔狗):고대부터 복날에 개를 잡아 도읍의 4대문에서 제사하여 흉액을 물리치고 역병을 막는 의식.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에 “진덕공(秦德公) 2년, 초복날에 개를 잡아 충해를 막았다.(二年, 初伏, 以狗御蠱)”라는 기록이 보인다.
  10. 옛날에……되었다:《京都雜志》 卷2 〈歲時〉 “伏”(《조선대세시기》3, 89쪽).
  11. 출전 확인 안 됨.
  12.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4,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543~5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