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수송 기구:배: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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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5) 윤선(輪船)[1]

《단연총록(丹鉛總錄)》에서 “장지화(張志和)[2]의 <어부곡(漁夫曲)>에 ‘얼레로 낚시하며 궐두선 (橛頭船)[3] 타고 있네. 즐거움 강호에 있으니 신선될 필요 없지.’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당나라 담용지(譚用之)[4]의 시에는, ‘벽옥 같은 부의주[蜉蝣][5]는 손님맞이용 술, 황금빛 도르래는 고기 잡는 얼레.’라 했고, 또 ‘출렁이는 술잔 날 갠포구에 향기 피우고, 도르래 같은 얼레 고깃배에 소리 울리네.’”라 했다.《송사(宋史)》에서 “동 정호(洞庭湖)의 도적 양요(楊么)가 네 바퀴로 물을 치게 하자 배가 나는 듯이 가서 관군들이 잡을 수가 없었다.”[6]라 하고, 또 “우윤문(虞允文)[7]이 병사들에게 거선(車船)을 밟게 하자, 중류(中流)에서 나는 듯이 나아갔다.”[8]라 했다. 이강(李綱)[9]의 소(疏)에 “형호(荊湖)[10] 지역의 거선은 당나라 조왕(曹王) 이고(李皐)가 전한 제도인데, 크기가 수레 30~40대에 맞먹는 배는 쌍으로 된바퀴를 끼고 있으니, 발로 굴려 나가면 전투마보다 빠릅니다.”[11]라 했다. 그러니 대개 윤선 제도는 그 오래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후조(鄭厚祚)[12]와 성호(星湖) 이익(李瀷)[13]이 모두 기록한 내용이 있는데, 정후 조의《사예고(四裔考)》[14]에 그 제도를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기록했다.

윤선 제조법:배의 크기에 관계없이 배 전후와 좌우에 각각 기둥 두개를 설치하고, 그 기둥 윗끝은 ‘요(凹)’ 자 모양으로 파서 바퀴축을 받친다. 축의 길이는 배의 너비를 가늠해서 그보다 조금더 길게 만들어 바퀴가 축과 결합할 때 배 밖에서 바퀴를 돌릴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바퀴통을 축에 결합시켜 바퀴를 만든다. 그 바퀴살을 길게 하여 물을 젓는 물부채를 만드는데, 물부채 길이는 배의 크기와 관계없이 바퀴축에서 배 밑바닥 까지를 기준으로 한다. 물부채 뿌리 부분 중 바퀴 통에 끼우는 곳은 반드시 두껍게 만들되, 부채의 너비와 비교하여 반드시 그보다 1/3을 줄인다. 부채의 끝 부분 중 물에 들어가는 곳은 노의 끝처럼 점점 얇으면서 뾰족하고 둥글게 만든다. 그뒤 반드시 큰 밧줄이나 쇠밧줄을 이용해 물부채중 물에 들어가지 않는 곳들을 단단히 묶어 바퀴 테두리를 대신하게 한다. 이때 반드시 흔들려서 빠지는 우려가 없게 해야 한다. 만약 둘레를 단단히 묶은 밧줄이 물에 들어가면 반드시 물을 젖는 물부채가 물 치는 데 방해를 한다.
또 기둥머리의 바퀴축을 받치는 곳과 바퀴축 중에서 기둥에 걸치는 곳은 모두 쇠로 싼다. 여기에 쇠를 쓰지 않으면 두 나무 사이가 반드시 마찰이 일면서 불이 난다. 또 바퀴축의 중간에 십 (十)자를 설치하여 도르래를 만듦으로써 손으로 돌리거나 발로 밟기에 편하게 한다. 빨리 가려면 빨리 돌리고, 천천히 가려면 천천히 돌린다. 왼쪽 으로 돌려면 왼쪽 바퀴를 들고서 오른쪽 바퀴만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려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 반드시 앞 기둥은 높고 뒷기둥은 낮게 만들고, 앞바퀴는 크고 뒷바퀴는 작게 만들어야 한다.《국사소지》[15][16]

각주

  1. 윤선(輪船):물레바퀴의 힘으로 운항하는 배.
  2. 장지화(張志和):730~810. 당나라 때 문장가. 처음 이름은 구령(龜齡). 자(字)는 자동(子同).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뒤로 강호에 은거하며, 어부사(漁父詞)를 지었다.
  3. 궐두선(橛頭船):뱃머리가 뾰족한 작은 배.
  4. 담용지(譚用之):932~?. 오대십국~송나라 초기 사람. 시를 잘 지어,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가 1 권으로 실려 있다.
  5. 부의주[蜉蝣]:찹쌀과 누룩가루로 만든 술. 모양이 개미가 떠다니는 듯하여 부의주라고 한다. 《정조지》 권7 <술> “이류” 참조.
  6. 《丹鉛總録》 卷8 <物用類> “車子釣”. 洞庭湖賊楊么四輪激水船行如飛今失其制.
  7. 우윤문(虞允文):1110~1174. 송(宋)나라 장수 사람. 금(金)나라가 쳐들어오자 강회(江淮)에서 수군을 이끌고 채석대첩을 이끌었다. 효종(孝宗) 때에 재상이 되어 옹국공(雍國公)에 봉해졌다.
  8. 《宋史》 卷383 <列傳> 第142 “虞允文”.
  9. 이강(李綱):1083~1140. 1126년에 금(金)나라 군대가 경성(京城)을 포위하여 공격하려고 할 때 천도를 반대하고 성에 올라서 적군을 격퇴했다.
  10. 형호(荊湖):형주와 호주 사이에 있는 양자강 유역의 오호(五湖) 일대.
  11. 《梁谿集》 卷103 <劄子> 1 “與宰相論捍賊劄子”.
  12. 정후조(鄭厚祚):1758~1793. 지지서(地誌書)인《사예고(四裔考)》의 제작자.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의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자기 형인 정철조(鄭喆祚, 1730~1781)와 함께 수정 편집해 해주본을 만들기도 했다.
  13. 이익(李瀷):1681~1763. 성호는 그의 호이다. 조선 후기 학자로 저서 중에 《성호사설》이 유명하다.
  14. 출전 확인 안 됨.
  15. 출전 확인 안 됨.
  16.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3,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7), 147~1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