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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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일제강점기의 수원 우시장(수원신문(http://www.suwon.com))


수원 우시장의 명성

수원의 우시장은 조선 후기 이래 전국에서 이름난 곳이었다. 장날이면 각지에서 소장수와 농민들이 모여들어 언제나 성시를 이루었고, 1년 동안 소의 거래량이 2만 두 이상이었다.

수원은 지방으로부터 한양으로 들어가는 물산이 모이던 곳이다. 특히 수원의 우시장은 일제 때부터 3대 우시장으로 꼽혀 장날이면 각지에서 모여든 소장수와 농민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정조의 새 도시 육성책

수원의 우시장이 이렇게 유명했던 까닭은 정조의 새 도시 육성책과 관계가 깊다. 정조는 화성(華城)을 축성하고 수원을 자립 기반을 갖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하여 둔전(屯田)을 경영하였다. 그리고 둔전에서 농사를 잘 짓도록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누어 주었다. 수확기가 되면 수확의 절반을 거둬들이고, 소는 잘 키워 3년에 한 마리씩 갚도록 했다. 이에 점차 늘어난 소를 팔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였고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1905년 경부철도가 부설되면서 철로변을 따라 장시의 재편이 있었다. 안성장의 몰락과 평택과 오산장의 부상이 그것이다. 수원장과 오산장은 기본적으로 서울에서 해남으로 가는 대로의 길목에 위치해 있었지만 철도의 부설로 그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수 있었다. 이러한 교통의 변화와 함께 수원장의 명성은 더욱 커져 갔다.

수원의 우시장은 일반 시장과 함께 섰다. 수원장은 성안장과 성밖장이 섰는데, 성안 시장은 10일 간격으로 9·19·29일 열렸고, 성밖 시장은 4·14·24일에 열려 전체적으로 보면 5일장이 서는 셈이었다. 수원장의 성황은 경기 남부 일대 패션을 이끌었던 포목상과 우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더욱 커졌다. 소의 거래는 다른 어떤 물품의 거래보다 많은 돈이 오고 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시장의 성황은 수원 지방에서 상품 교역이 늘어나는 한 요인이 되었고, 수원은 농업 도시뿐만 아니라 상업 도시로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수원의 우시장은 19세기 중반 이후 충청도 지역의 소가 값이 좋은 서울 쪽으로 올라오는 경향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소들은 남쪽 먼 곳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따라 서울로 북상하는 경향을 보였다. 경기남부의 경우 오산에서 소를 팔고 남으면 수원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산장이 수원장에 비해서 소 값이 싸서 오산장에서 소를 사다가 수원장에 파는 경우가 많았다..


수원 우시장의 변화

수원의 옛 모습을 증언을 통해 기록한 윤한흠 선생의 그림에 남수문 밖 수원천변에 가지런하게 박힌 소말뚝을 볼 수 있다. 이에 수원 우시장이 성밖 우시장과 성안 우시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성밖 우시장은 성안 우시장이 성황을 이루면서 소멸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소멸 시기는 불분명하다.

성안 우시장은 수원읍내 매향여중을 마주보는 수원천 서쪽 북수동 274번지 일대에 있었다. 전국적으로 대개의 우시장이 하천 천변을 끼고 형성되었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에게 먹일 물과 소를 깨끗이 닦을 수 있는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18년 총독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우시장이 655군데 있었는데, 경기 도내에 47개소가 있었다. 이를 도별로 살펴보면 경상북도가 91개로 가장 많았고 강원도 67, 황해도 63, 전라남도 58, 충남 52, 평남·경남 50, 경기 47군데였다. 가장 거래량이 많았던 우시장은 함경북도 명천군 명주장과 길주군 길주장으로 한해 2만5천마리가 거래되었다. 그 다음으로 큰 장이 수원군 읍내장으로 한해 2만여 마리가 거래되었다. 이와 비슷한 우시장으로 양주 한금면 삼패리와 용인 외서면 백광리가 있었다.

성안 우시장 부지는 1920년대 3,000평 규모였고, 화성 안에서도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해방 후 수원의 우시장은 수원읍내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우시장 이전의 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에 5·16군사쿠데타 직후 이백일(소령 예편) 시장의 이전을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1960년경 수원 우시장은 북쪽으로 성밖 수원천변 영화동으로 이전하였다. 지금의 1번 국도 옆 한조체육관이 위치한 380번지 일대였다.

1970년대가 되면서 수원 우시장의 명성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영화동 우시장 시절인 1976년 조사에 의하면 수원 일대의 우시장의 출장 소 두수는 수원 우시장이 500두로 더욱 증가하였다. 그 다음으로 오산장 400두, 평택장 250두, 시흥의 신천리 우시장 200두, 안중장 150두, 안양장 120두, 사강장 100두 등이었다. 즉 1970년대 수원 우시장의 한해 거래량은 2만4천마리 정도였던 셈이다.

그러나 농촌의 도시화와 기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이전의 우시장의 명성은 차츰 줄어들었다. 이에 수원 우시장은 1978년 수원의 최남단 곡반정동 신촌으로 다시 이전하게 되었다. 영화동 수원 우시장은 19년간 유지된 셈이다.

수원 우시장의 소멸

곡반정동 우시장은 곡반정동 381-1번지 일원의 30,167㎡에 대하여 1978년 6월 21일 시장시설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농업의 기계화에 따라 한우 수요의 급격한 감소와 비육우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우시장의 거래량과 내용이 급격하게 변모되었다. 이에 곡반정동 우시장은 1986년 시장규모가 13,668㎡이 감소되어 16,499㎡로 시설축소 결정이 되었다. 즉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수원 우시장 규모가 절반으로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서 1990년대 중반 수원 우시장이 폐쇄되었다. 즉 1996년 9월 23일 우시장의 폐지가 결정됨에 따라 곡반정동의 수원 우시장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약 19년간 곡반정동 수원 우시장이 존재했던 셈이다. 영화동 19년, 곡반정 19년의 수원 우시장의 40년간의 역사는 수원지역이 보여주는 급격한 농촌의 해체와 도시 팽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곡반정동 수원 우시장은 현재 곡반정동 현대아파트가 위치한 곳이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니다.

이로써 1795년 정조의 화성 축성 이래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던 수원 우시장은 1996년 소멸하면서, 수원 우시장 200년의 역사는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 1945년 영동시장에 개업, 60여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화춘옥' (수원신문(http://www.suwon.com))


수원갈비의 탄생

이러한 소의 집산과 거래는 동시에 수원을 갈비의 고장으로 이름나게 하였다. 수원갈비는 전국적으로 알려졌던 수원 우시장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재료로 쓸 한우갈비를구하기가 쉽다는 것이 수원갈비를 있게 한 최대요인이 될 것이다.

‘수원갈비’는 1940년대 팔달문 밖 장터인 지금의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화춘제과를 경영하던 이귀성씨가 8·15 광복이 되면서 영동에 ‘화춘옥’이란 간판을 걸고 음식점을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당시 이씨는 그 곳이 시장 안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는 데 착안, 음식장사의 경험도 없이 우선 해장국 장사를 시작하였다. 화춘옥 해장국은 소갈비를 푸짐하게 넣어 주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고 도처에서 손님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비싼 갈비를 넣어주다 보니 해장국의 질은 좋았지만 장기적으로 이익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갈비에다 양념을 넣고 무쳐서 재어 놓으면 맛있는 갈비의 맛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양념갈비를 구워 팔기 시작했다. 숯불에 구운 갈비는 맛이 일품이어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신문에 소개되고 박정희 대통령도 화춘옥에 와서 갈비를 먹고 갈 정도로 이름을 얻었다.

1979년쯤 화춘옥 간판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백화점을 세움으로써 화춘옥의 역사는 막을 내렸지만 ‘수원갈비’의 원조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수원갈비는 어느 특정한 집의 것이 아니고 수원의 어떤 갈비집을 가나 독특한 ‘수원갈비’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수원은 갈비의 고장으로 전국에 널리 이름이 알려져 1985년 4월 12일 수원갈비를 수원시 고유 향토음식으로 지정하고 맛과 질을 향상시켜 ‘수원갈비’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

작성자 : 수원박물관 한예연구사 한동민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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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수원신문 60여년 역사 ‘수원갈비’ 이렇게 탄생했구나 https://www.suwon.com/news/articleView.html?idxno=50933
해설 수원박물관 수원의 우시장 https://swmuseum.suwon.go.kr/board/board_viw.jsp?board_id=culture&seq=Ng==&page=2&block=1&search_key=&keyword=&user_article_count=
참고 경민시민일보 전국 3대 우시장 ‘수원 우시장’ 역사 한눈에 보는 전시회 열린다 http://www.kyonginsiminilbo.com/5332
참고 노컷뉴스 '도심 한가운데 한우가?' 수원 우시장 역사 전시회 개최 https://www.nocutnews.co.kr/news/5813445
참고 경기도메모리 수원 우시장 https://memory.library.kr/dext/file/view/resource/139025
참고 연합뉴스 수원갈비축제 [쉿! 우리동네] 수원은 어떻게 갈비의 본고장이 됐나 https://www.yna.co.kr/view/AKR20180518053800061
동영상 경기대첨단융합미디어센터 추억의 길 정조로 - 수원 우시장과 정조로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PEbzGl0Ym5w
참고 경기일보 수원 양념갈비축제 9일부터 24곳서 열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0310030128779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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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L:42936 논문 A catalog of the fishes known from the waters of Korea BHL https://www.biodiversitylibrary.org/item/93853#page/21/mode/1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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