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수도선교회
베네딕도회 조선 진출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교황청 포교성성에 요청하여 이뤄졌다. 베네딕도회 조선 진출은 1909년 2월 사우어(Bonifatius Sauer, 辛) 신부와 다른 한명의 수도 신부가 조선에 입국 서울 백동(栢洞, 현 혜화동)에 자리를 잡고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베네딕도회와 조선 근대 교육
베네딕도회는 1927년까지 숭공학교[1910년(개교)~1920년(폐교)], 숭신학교(1911년)를 설립 운영하며 목공, 철공, 원예 등 7개 작업장에서 유능한 기능공들을 배출하였다. 원산교구가 설정되고 이 지역 선교를 위촉받으면서 1920년부터 서울에서 철수를 시작해, 1927년까지 함경남도 덕원으로 이주를 마쳤다.1927년부터 1949년까지는 원산교구의 사목을 담당하면서 학교, 유치원 운영, 시약소 개설, 출판 활동 등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이전 당시 5개 본당, 7,500여 명이었던 신자는 12개 본당, 89개 공소, 11,004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1945년 분단과 함께 1946년 북한의 토지개혁, 1949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한 신부, 수사들의 체포로 수도원도 폐쇄되었다. 1928년부터 1946년까지는 만주 간도 지방이 원산교구에 편입됨으로써 만주 지방 선교에도 나서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본당 사목과 초등교육에 주력하였지만, 이곳도 중국의 공산화로 1946년부터 사실상 활동이 정지되었다.1952년부터 현재의 왜관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3년부터 대구교구로부터 위임받은 6개 군의 사목을 담당하기 시작했고, 순심 중고등학교 인수, 성 마오로 기숙사 운영, 분도출판사와 인쇄소 설립 운영, 철공소, 목공소와 같은 작업장 운영, 현대식 농장 경영, 피정집 운영 등을 해왔다. 2014년 현재 왜관수도원에 121명, 경기도 양주의 요셉수도원에 13명의 회원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聖─會倭館修道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