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디지털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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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28일 (금) 13:26 판 (디지털 역사학의 세 가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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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디지털 인문학적 연구 방법이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유럽에서의 디지털 인문학은 문학 분야와 역사학계를 필두로 점차 확산되었다. 유럽은 시공간적으로 공통되는 커다란 학문적 소스를 매개로 학문적 진화를 도모하고 있으므로 디지털 인문학이 맺어온 결과와 그 연구 집단의 분포를 유럽 속 국가별로 나누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유럽의 국가 집단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인문학이 이들 유럽 국가 집단에 끼치는 영향을 살피고 디지털 인문학을 움직이게 하는 역사 연구 힘을 파악하여 오늘날 역사학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학문의 자세를 재정립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찾아보는 것이 이번 발표의 핵심이다. 유럽의 디지털 역사학은 역사가 꽤 되었다. 그리고 이미 프로젝트가 상당히 많다. 이번 발표에서는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유럽에서의 디지털 인문학

디지털 인문학의 시작[1]을 연 사람들 중에 한 명은 이탈리아 예수회의 로베르토 부사(Roberto Busa) 신부다. 그로부터 인문전산학(Humanities Computing)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이 나타나게 되었다. 1998년 부사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중세 저자들의 라틴어 저작물을 IBM사의 기술지원을 받아 라틴어 전문 색인을 전자적인 방법으로 편찬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디지털인문학회연합(ADHO)은 로베르토 부사상을 제정했다.



1960, 70년대부터 많은 양의 사료들이 디지털화되었고, 양적 연구와 더불어 질적 연구에서도 언어학과 문학에서부터 점차 역사, 예술사, 음악, 필사본 연구 등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연구의 관심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History (76%) and Literature (59%) are (perhaps unsurprisingly) heavy users of digital collections as data but a broad spectrum of other research areas are also evident.[2]. 1973년에는 문학언어컴퓨팅협회(ALLC)가 설립되었는데 지금의 디지털인문학유럽협회의(EADH)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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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디지털 인문학을 이끌어가는 양대 축(infrastructure)은 CLARINDARIAH다. 그리고 europeana가 그 대열에 합류했다. 가장 최근 시작한 프로젝트는 Operas다.


디지털 역사학

유럽의 디지털 인문학은 역사학의 콘텐츠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디지털 인문학에서 역사학이 차지하는 자리의 확고부동함은 단지 유럽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이미 디지털 역사학에 대한 정의를 내놓은지 오래다. 디지털 역사학이라는 분야를 공식적으로 명명한 학술 기관이 점점 많아졌다. 영국의 IHR(Institute of History Research)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인문학의 한 분과로 디지털 역사학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역사학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디지털 인문학의 특징들을 찾기 위해 유럽 내 국가별 프로젝트를 정량적으로 분석해서 보여주는 방법은 서론에서 말한 바처럼 큰 의미가 없다. 하나의 프로젝트에도 유럽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그 공간 또한 국경선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젝트의 주제 역시 역사학으로만 한정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고대, 중세에 쓰인 글들은 역사학계에서도 문학계에서도 연구되는 사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인문학에서 수행하는 대개의 프로젝트는 대개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배경은 다름 아닌 역사적 삽화, 그림, 사진으로 대부분 구성된다. 간혹 역사적 음성 기록물이나 오래 전에 채집된 식물도 사용된다. 이로 인해 프로젝트는 실재감을 부여받고 사실성을 확보하게 된다. 최근 활발히 연구를 전개하고 있는 영국, 독일의 대학과 기타 유럽 대학, 연구 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는)한 디지털 역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동향을 살펴보면 유럽에서의 역사 디지털 역사 프로젝트들은 다음의 세 가지의 주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역사학의 세 가지 특징

동국대 진명관 앞 캠퍼스 수업

역사학 내에서 특이점 찾기

우선 디지털 역사 프로젝트는 주요 유적, 유물에 대한 아날로그 기록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단순히 기록의 디지털화에서 그치지 않고 개별적 유물 안 (혹은 유물 간) 기록에서 연관되는 사항들 중 (마치 추적하듯이) 특이점을 찾는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캠브리지 대학의 Casebooks다.[3] 일종의 고증 단계를 넘어 새로운 관점을 밝혀내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국 셰필드 대학교의 디지털 인문학 연구소의 Spaces of HOPE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를 찾는다'고 표방하는 프로젝트다.[4]

역사와 미술사, 역사와 문학사를 잇는 프로젝트에서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유럽에서 디지털 인문학이 시작했을 무렵 선보였던 형태의 디지털 역사학에서 많이 나타난다. [5] 영국의 IHR은 역사학 안에서 이런 종류의 디지털 프로젝트를 수행해오고 있다. 필사본을 이용한 연구가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DM2E다. 오스트리아의 Das travel!digital-Projekt 역시 이런 특징을 보여준다. 다음의 맨체스터 대학교의 프로젝트를 보자. 편지 속에 나타난 내용을 뜯어 보는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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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편지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새롭게 발견된 편지의 내용이 연구 초점이다. 오른쪽 위에 쓰여 있듯이 "This is not a love letter!" 기존의 생각을 뒤짚는 해석들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취리히 대학의 영문과 학생들이 맨체스터 대학이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 XML 주석달기 실습에 참여했다. 이 연구와 관련된 논문이다.

역사학 밖에서 연관점 잇기

두번째 특징은 역사학과 다른 학문 혹은 사건, 정신 간의 접합점을 찾아 연결하여 모종의 소통점을 찾는다는 데에 있다. 학문적으로는 지리의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역사 프로젝트에 지도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랭카스터 대학의 프로젝트를 보자. [6] 아래 독일 헤르더 연구소의 Historical-Topographical Atlas of Silesian Towns역시 역사학과 지리학이 연결된 프로젝트다.


엑서터 대학교의 Poly Olbio 프로젝트는 역사와 지리가 흥미롭게 연결된 콘텐츠를 보여준다. 디지털 역사 프로젝트는 비단 학문적 내용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회의 이슈, 역사의 문제적 흐름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연결망 구축을 지향한다. 2010년 시작해서 2019년에 종결된 프로젝트인 EHRI는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럽 국가 간의 연결망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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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셰필드 대학교의 디지털 인문학 연구소의 Linguistic DNA of Modern Western Thought 프로젝트는 1500년대부터 1800년대에 이르는 시간 속 텍스트를 분석하여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의 흐름을 분석했다.

교육에 이용하기

디지털 역사학은 단순히 '역사를 가르치는 데에 디지털 디바이스를 이용한다'는 관점(캠브리지 대학의 Visions of plague 프로젝트처럼)을 뛰어넘어 역사를 재료삼아 디지털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디지털 리터러시+데이터 리터러시)을 가르치는 학문적 위치를 갖는다. 디지털 역사학은 디지털 기술로 역사적 사건(사물)의 재현을 발생시키는 시청각적, 보조적 역할이 아니라 디지털 데이터 시대에 맞는 학문을 역사로 트레이닝하는 위상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쌓은 노하우와 데이터가 전달하는 프로젝트의 정신을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EHRI의 ehri online course in holocaust studiesCall for Papers for a Workshop on "Archives, Power, and Truth Telling: Catholic Archives and Holocaust Memory"가 그 좋은 예이다.

최근 유럽의 역사 프로젝트에서 눈에 띄는 점은 VR, AR을 이용한 프로젝트의 진행과 구현이다. 역사 자료를 영상으로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식의 방법은 도태되어가고 있다. 이 자리를 3D 기술과 AR기술이 채워가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역사학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데이터 리터러시를 가르치면서 제작 과정에서 메이커(maker) 교육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즉, 프로젝트 수행자는 직접 역사 데이터를 다루면서 그로부터 파생되는 교육적 영향의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해당 프로젝트가 또다른 관점을 불러일으켜 생각의 차이를 비집고 들어가 사고의 선순환을 일으킨다. 프로젝트 결과물에 창작자와 독자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가 단순히 영상으로만 내용이 전달되는 일방향적 다큐멘터리식 전개방식과는 차별되는 디지털 역사학의 성격을 규정하게 된다.

Covid-19 사태 이후 디지털 역사학 등의 디지털 인문학은 이렇게 오프라인 방식에서 통용되던 시청각 교육적 요소에서 탈피하여 온라인에서만 소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이때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이 직접 디지털 기술을 구사해서 역사 사료를 재단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에 대한 사례는 Viaggio al 221B Baker Street con la Realtà Aumentata e Virtuale를 들 수 있다. Digitale Erfahrungen und Strategien in der Kunstgeschichte nach einem Jahr Corona-Pandemie에서도 디지털 역사학이 당면한 시기적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엑서터 대학(Exeter University) 또한 Covid-19 시기에 적합한 학문의 방법으로 이러한 방법을 선보이고 있다.

에딘버그 대학은 대대적으로 또 전문적으로 데이터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디지털 데이터 교육을 게임에 접목한 사례를 볼 수 있다.[7]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역사적 사료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수반된다. 결과적으로 역사를 매개로 창작자와 사용자가 디지털이라는 통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로가 넓어질수록 역사적 사료는 디지털 리터러시와 데이터 리터러시를 넓혀주는 촉매제가 된다.

2013년 제작된 Pudding Lane: Recreating Seventeenth-Century Londond도 이처럼 역사적 유적을 이용한 '만들기' 대회가 새로운 생각의 결과를 낳게 한 디지털 역사학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8]



이런 식의 3D 영상 제작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보여주는 내용과 구성이 더 탄탄해졌다.

더 나아가 이런 식의 전개도 보여진다.

기타 최근 프로젝트

결론

일부이지만 유럽의 디지털 역사학의 동향을 살펴본 결과 (1)역사학 내에서의 특이점 찾기, (2)역사학 밖에서 연결점 잇기, (3)교육(적) 활용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더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유럽의 디지털 역사학이 수행한 세계적(확장적), 집단적(협업적), 참여적(민주적), 교육적(개발적) 프로젝트들은 결과를 보여주기에서 결과를 함께 만들기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디지털 역사학은 수행자에게 관찰자 겸 참여자로서의 역할을 이끌어 가는 힘을 제공한다. 동시에 유럽 학술 기관들이 추구하는 디지털 역사학은 학자와 학자 아닌 사람들 모두가 참여하는 플랫폼을 구성하고 서로의 기억과 창작이 맞물리는 교류의 장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EHRI의 홀로코스트 프로젝트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어떤 면에서 디지털 역사학은 재미(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내러티브의 (생성) 과정이다. 디지털의 힘을 빌어 수행하는 이런 식의 역사학 탐구 방법에 힘입어 프로젝트 참여자는 속도감있고 균형감있게 자신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역사를 보고 느끼는 맥락의 흐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우려했던 디지털 인문학의 결과물이 2차원적 맥락만을 보여준다는 한계점이 그사이 발달한 컴퓨터 기술로 3차원적 맥락 접근이 가능해짐에 따라 피상적 역사 연구에서 실재적 역사 연구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사료'만'에서 사료 주변부'까지'로 확대되는 지금의 역사 데이터베이스는 디지털 역사학보다는 히스토리 디지티제이션 페다고지(history digitisation pedagogy)을 지향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트레이닝(단기간 교육과정, 워크숍)을 함께 운영하는 이유다. 여기서 고민할 내용이 발생한다. 디지털 역사학은 새로운 도구관인가? 새로운 연구관인가? 디지털 역사학은 별도의 학문 분야일 수 있는가? 기존의 역사학에 포괄된 하나의 방법론이어야 하는가? 지금 유럽의 디지털 역사학 프로젝트들이 내놓는 결과는 새로운 연구관으로서 역사학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디지털 역사학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디지털 역사학은 인터넷 제국주의의 소지가 있다', '디지털화된 사료가 과잉 조명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역사학 공부방법이 꼼꼼히 읽기에서 일화적 읽기로 변하고 있다', '디지털 역사학자는 프로그래머여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훨씬 우선한다.


제언

유럽은 정치적으로 연합되기 한참 이전부터 동일-전체 문화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공유하는 역사의 총량이 방대합니다. 그만큼 연구 성과도 개인은 물론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의 역량에 의해서 증폭됩니다. 한 연구자가 여러 프로젝트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이전 연구에서 파생된 연구가 또 다른 연구의 자양분이 되어 계속 명맥을 잇는 경우도 많습니다. 독자적인 디지털 인문학 기구들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대학이나 학술기관이 주관하는 프로젝트가 유럽연합이 후원하는 europeana에 등록되고, 유럽의 디지털 인문학을 이끌어가는 양대 기구인 CLARIN과 DARIAH는 유럽의 디지털 인문학을 전체적으로 ‘관리’합니다. 그러므로 사장되는 프로젝트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유럽 내 많은 국가들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역사(적 사건)를 연구하고 이러한 연구들 또한 경계를 넘어 확산되고 축적됩니다. 언젠가 유럽 디지털 인문학의 콘트롤 타워가 하나의 연구 주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콘트롤 타워는 디지털 역사학에서 행해지는 모든 연구가 ‘한 번 하고 마는’ 프로젝트가 되지 않도록 연구 결과를 철저하게 다른 프로젝트로 이어갑니다.

흔히 오늘날을 디지털, 데이터 시대라고 합니다. 그만큼 디지털 리터러시와 데이터 리터러시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나 리터러시를 단순히 테크닉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감지됩니다. 리터러시는 기계적 테크닉을 뜻하지 않습니다. 디지털 역사학 역시 테크닉을 가르치는 학문이 아닙니다. 디지털로 역사 소재를 이용해 하나의 구현체로 생산하는 활동이 디지털 역사학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 소재 동영상 만들기, 역사적 사건(인물)의 관계망 시각화 등등의 활동은 중요한 것은 디지털과 역사학이 ‘각각’ 또 ‘함께’ 만들어 내는 사고력입니다. 역사학을 아날로그로 공부했을 때의 사고와 디지털이 매개된 역사학에서 변화되는 사고를 저 역시 경험했고 류인태 선생님도 겪었을 것으로 봅니다. 역사(적 사건) 데이터를 디지털로 조작할 때 문득문득 (난데없이) 떠오르는 직관을 어떻게 생각의 발전으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서부터 디지털 역사학은 비로소 하나의 독립적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컴퓨터 사고와 수학적 사고를 데이터 시대의 대표적 사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산(離散)적 사고만으로는 기계와의 원활한 소통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를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 사고는 데이터 과학의 근간이 됩니다. 역사학이 단순히 디지털 방법만을 차용한다고 해서 디지털 역사학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 디지털 사고, 데이터 사고, 역사적 사고를 연구의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어야 합니다. 디지털과 역사학이 만나면 학습 주체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역사학을 전면에 내세우는 곳은 없습니다. 계속 역사학이 디지털의 언저리를 돌고 있는 느낌만 듭니다. 디지털 데이터 시대에 큰 조류 속에서 디지털을 이용해서 무언가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아직 디지털이 주는 부담감 혹은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지 선뜻 나서서 주도하는 학교가 없어 보입니다. 유럽 디지털 역사학계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프로젝트의 자발적 생명력입니다. 그리고 연구 주제의 다양성과 결과의 공동체적 수렴입니다. 그러므로 프로젝트의 결과가 여러 산업의 기초와 바탕이 됩니다. 그러나 산업 자체가 되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일 수 있으니 디지털 역사학 전공자들이 디지털 사회에서 여러모로 유리할 수 있습니다만 디지털 역사학이 디지털 업계로의 취업을 보장해야 한다거나 디지털 사회에서 ‘돈 되는’ 결과를 즉각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하면 디지털 역사학은 출발점이 한계점이 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습니다.



틀:SemanticNetwork
  1. DH Timetable https://jajandthedigitalhumanities.com/2020/01/17/origins-of-humanities-computing/
  2. 출처: Europe’s Digital Humanities Landscape A Report from LIBER’s Digital Humanities & Digital Cultural Heritage Working Group
  3. A ten-year project to study and digitise some 80,000 cases recorded by two famous astrological physicians has opened a “wormhole” into the worries and desires of people who lived 400 years ago.
  4. The hidden history of community-led planning in the UK
  5. 2016년의 디지털 인문학의 동향을 보기 위해서는 https://2016.teemconference.eu/new-trends-in-digital-humanities를 참고하기 바람
  6. 유럽의 지도는 https://eurogeographics.org/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7. http://thetroubles.uk/
  8. https://www.bl.uk/press-releases/2013/october/british-library-maps-are-the-inspiration-for-a-winning-videogame-conce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