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필독 권4제30과 본조역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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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에는 동학이 관리의 포학을 감내하지 못하여 충청도에 모이니 사방에서 이에 응하는 자가 많았다.

어윤중으로 선유사를 삼아 해산하도록 하였더니 다음해인 갑오년에 전라도 전봉준이 난을 일으켰다.

이에 홍계훈으로 하여금 토벌하도록 하고 또 청나라에 병사를 청하여 청나라 장수 섭지초 등이 아산에 이르고, 일본 대사 대조규개는 경성에 들어오니 이윽고 청나라와 일본 양국이 우리나라 독립하는 일을 가지고 다툼을 하다가 마침내 양국이 크게 싸워 갑오전쟁이 있었다.

임금께서 독립과 정사의 개혁을 종묘에 고하고 연호를 만드시어 말씀하시기를 '건양'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