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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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過房村驛。是日少雨大風。自新安驛。過馬家淺,雙溝,豐,沛,蕭,碭四縣夫廠及房村集。又過金龍顯聖靈廟。至呂梁小洪。以竹索縴舟而上。過尼陀寺。西岸有關羽,蔚遲公趙昂之廟。又過房村驛。至呂梁大洪。洪在呂梁山之間。洪之兩傍。水底亂石。巉巖峭立。有起而高聳者。有伏而森列者。河流盤折。至此開岸。豁然奔放。怒氣噴風。聲如萬雷。過者心悸神怖。間有覆舟之患。東岸築石堤鑿齟齬。以決水勢。雖鼻居舠。必用竹綯。須十牛之力。然後可挽而上。臣等自靑山龍神祠前。逆洪水過形勝樓。夜過工部分司,王家橋,李家橋,老聃廟。至水首廟前。洪之湍急處可八九里。陳萱謂臣曰。此呂梁洪也。大禹疏鑿以後。有秦叔寶者管修此洪云云。臣曰。禹貢治梁及岐。注云。梁。呂梁山也。酈道元云。呂梁之石崇竦。河流激盪。震動天地。此洪無乃是乎。萱曰。果若然也。但禹貢。呂梁載在冀州。此洪轄徐州。爲可疑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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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비가 조금 내리고 큰바람이 불었습니다. | 이 날은 비가 조금 내리고 큰바람이 불었습니다. | ||
− | 신안역에서 마가천(馬家淺)·쌍구(雙溝)·풍현(豊縣)·패현(流縣)·소현(蕭縣)·탕현(陽縣) 등 4현의 부창( | + | 신안역에서 마가천(馬家淺)·쌍구(雙溝)·풍현(豊縣)·패현(流縣)·소현(蕭縣)·탕현(陽縣) 등 4현의 부창(夫廠)과 방촌집(房村集)을 지나고, 또 금룡현성령묘(金龍顯聖靈廟)를 거쳐 여량소홍(呂梁小洪)에 이르러 대로 만든 새끼로 배를 끌고 올라가서 이타사(尼陀寺)를 지나니, 서쪽 언덕에 관우(關羽)와 울지공(尉遲公)과 조앙(趙鬪)의 사당이 있었습니다. |
또 방촌역(房村驛)을 지나 여량대홍(呂梁大洪)에 이르니, 홍은 여량산(呂梁山)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 또 방촌역(房村驛)을 지나 여량대홍(呂梁大洪)에 이르니, 홍은 여량산(呂梁山)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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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훤이 말하기를, | 진훤이 말하기를, | ||
− | "과연 그럴 듯합니다. 다만 〈우공〉의 여량은 기주( | + | "과연 그럴 듯합니다. 다만 〈우공〉의 여량은 기주(冀州)에 기재되어 있는데, 이 홍은 서주(徐州)에 관할되어 있어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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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过房村驿。是日少雨,大风。自新安驿过马家浅、双沟、丰沛萧砀四县夫厂及房村集,又过金龙显圣灵庙,至吕梁小洪。以竹索牵舟而上,过尼陀寺,西岸有关羽、蔚迟公、赵昂之庙。又过房村驿至吕梁大洪。洪在吕梁山之间,洪之两旁水底乱石、巉岩峭立,有起而高耸者,有伏而森列者。河流盘折至此开岸,豁然奔放,怒气喷风,声如万雷,过者心悸神怖,间有覆舟之患。东岸筑石堤,凿龃龉以决水势。虽鼻居舠必用竹,须十牛之力,然后可挽而上。臣等自青山龙神祠前,逆洪水过形胜楼,夜过工部分司、王家桥、李家桥、老聃庙至水首庙前。洪之湍急处可八九里。陈萱谓臣曰:“此吕梁洪也。大禹疏凿以后,有秦叔宝者管修此洪”云云。臣曰:“《禹贡》‘治梁及岐’注云:‘梁,吕梁山也。’郦道元”云:‘吕梁之石崇竦,河流激荡,震动天地。’此洪无乃是乎?”萱曰:“果若然也。”但《禹贡》吕梁载在冀州,此洪辖徐州为可疑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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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1일 (금) 23:20 기준 최신판
過房村驛。是日少雨大風。自新安驛。過馬家淺,雙溝,豐,沛,蕭,碭四縣夫廠及房村集。又過金龍顯聖靈廟。至呂梁小洪。以竹索縴舟而上。過尼陀寺。西岸有關羽,蔚遲公趙昂之廟。又過房村驛。至呂梁大洪。洪在呂梁山之間。洪之兩傍。水底亂石。巉巖峭立。有起而高聳者。有伏而森列者。河流盤折。至此開岸。豁然奔放。怒氣噴風。聲如萬雷。過者心悸神怖。間有覆舟之患。東岸築石堤鑿齟齬。以決水勢。雖鼻居舠。必用竹綯。須十牛之力。然後可挽而上。臣等自靑山龍神祠前。逆洪水過形勝樓。夜過工部分司,王家橋,李家橋,老聃廟。至水首廟前。洪之湍急處可八九里。陳萱謂臣曰。此呂梁洪也。大禹疏鑿以後。有秦叔寶者管修此洪云云。臣曰。禹貢治梁及岐。注云。梁。呂梁山也。酈道元云。呂梁之石崇竦。河流激盪。震動天地。此洪無乃是乎。萱曰。果若然也。但禹貢。呂梁載在冀州。此洪轄徐州。爲可疑耳。
방촌역(房村驛)을 지났습니다.
이 날은 비가 조금 내리고 큰바람이 불었습니다.
신안역에서 마가천(馬家淺)·쌍구(雙溝)·풍현(豊縣)·패현(流縣)·소현(蕭縣)·탕현(陽縣) 등 4현의 부창(夫廠)과 방촌집(房村集)을 지나고, 또 금룡현성령묘(金龍顯聖靈廟)를 거쳐 여량소홍(呂梁小洪)에 이르러 대로 만든 새끼로 배를 끌고 올라가서 이타사(尼陀寺)를 지나니, 서쪽 언덕에 관우(關羽)와 울지공(尉遲公)과 조앙(趙鬪)의 사당이 있었습니다.
또 방촌역(房村驛)을 지나 여량대홍(呂梁大洪)에 이르니, 홍은 여량산(呂梁山)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홍(洪)의 양쪽 가의 물밑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돌과 가파른 바위가 높이 서 있었는데, 일어나서 높이 솟은 것도 있고 엎드려 죽 늘어선 것도 있었습니다.
강의 흐름이 꼬불꼬불하다가 이곳에 와서야 언덕이 탁 트여서 세차게 흐르는데, 세찬 기세는 바람을 뿜고 소리는 우레와 같아 지나가는 사람들은 두려워서 가슴이 두근거렸으며 간혹 배가 뒤집힐까 걱정했습니다.
동쪽 언덕에는 돌 제방을 쌓았는데 서로 어긋나게 파내어 물살을 터놓았습니다.
비록 작은 거룻배일지라도 반드시 대로 만든 새끼를 사용하여 소 열 마리라야만 배를 당겨서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신 등은 청산용신사(靑山龍神祠) 앞에서 홍수(洪水)를 거슬러 형승루(形勝樓)를 지나서 밤에 공부분사(工部分司)·왕가교(王家橋)·이가교(李家橋)·노담묘(老聃廟)를 지나 수수묘(水首廟) 앞에 이르렀습니다.
홍의 여울이 급한 곳은 8-9리나 되었습니다.
진훤은,
“이것이 여량홍입니다. 우왕이 땅을 뚫어 막힌 물을 통하게 한 이후에 진숙보(秦叔寶)란 사람이 이 홍을 맡아 수리하였습니다” 라고 운운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우공〉의 ‘양(梁)과 기(岐)를 다스린다'는 구절의 주에 양은 여량산이다'라 했으며, 역도원(鄭道元)은 '여량의 돌이 우뚝 솟았으므로, 강물이 이에 부딪쳐서 천지를 진동시킨다'고 했으니, 이 홍이 그게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진훤이 말하기를,
"과연 그럴 듯합니다. 다만 〈우공〉의 여량은 기주(冀州)에 기재되어 있는데, 이 홍은 서주(徐州)에 관할되어 있어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2nd Day. Passing Fang-ts’un Station. This day there were light rain and high winds.
From Hsin-an Station we (went past Fang-ts’un Station) and came to Lüliang Great Flood. The flood was in Lü-liang Mountains, and on both sides of it, scattered rocks jutted up sharply in the river bed. Some rose up high, and some were in low-lying clusters. The river twisted and turned, and when it came to those open banks it burst out free, angry and fuming, its voice like ten thousand claps of thunder. The hearts of those who passed pounded, and their spirits quaked. Boats occasionally met disaster. A stone levee that had been built on the east bank had been cut irregularly to check the force of the water, but even for tenders, it was necessary to use twisted bamboo rope and the power of ten oxen before they could be pulled up.
From in front of Ch’ing-shan-lung-shen Shrine, we went up the flood past [several places] and arrived in front of Shui-shou Shrine. The fastest part of the flood was eight or nine li long. Ch’en Hsüan said to me, “That was Lü-liang Flood. After the Great Yü did the dredging and channelling, there was a Ch'in Shu-pao who supervised the repairing of this flood.”
I said, “In Yü kung [after the passage], [He] took effective measures at Liang and Ch'i' [Legge, III: 94], a note says, ““Liang” is Lü-liang Mountain.' Li Tao-yüan says, “The rocks of Lü-liang rise up high. The flow of the river us turbulent and shakes heaven and earth.'71 This flood must be none other than that one.” Hsüan said, “So it seems, indeed, but in Yü kung [it says], 'Lü-liang lies in Chi-chou. '72 These rapids are in Hsü-chou, so it is somewhat puzzling.”
初二日
过房村驿。是日少雨,大风。自新安驿过马家浅、双沟、丰沛萧砀四县夫厂及房村集,又过金龙显圣灵庙,至吕梁小洪。以竹索牵舟而上,过尼陀寺,西岸有关羽、蔚迟公、赵昂之庙。又过房村驿至吕梁大洪。洪在吕梁山之间,洪之两旁水底乱石、巉岩峭立,有起而高耸者,有伏而森列者。河流盘折至此开岸,豁然奔放,怒气喷风,声如万雷,过者心悸神怖,间有覆舟之患。东岸筑石堤,凿龃龉以决水势。虽鼻居舠必用竹,须十牛之力,然后可挽而上。臣等自青山龙神祠前,逆洪水过形胜楼,夜过工部分司、王家桥、李家桥、老聃庙至水首庙前。洪之湍急处可八九里。陈萱谓臣曰:“此吕梁洪也。大禹疏凿以后,有秦叔宝者管修此洪”云云。臣曰:“《禹贡》‘治梁及岐’注云:‘梁,吕梁山也。’郦道元”云:‘吕梁之石崇竦,河流激荡,震动天地。’此洪无乃是乎?”萱曰:“果若然也。”但《禹贡》吕梁载在冀州,此洪辖徐州为可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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