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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晴而風。過高墩鋪。至新關門。有長土城。北附長城而南。關門正當其中。卽成化年間所新築也。又過大臺,三官廟,河灣鋪。至三汊河。河卽遼河也。源自開原。東北經鐵嶺。至此與渾河,泰子河合流爲一。故名三汊。蓋遼地瀕海而高亢。支河皆逆流。故泰子渾河皆自東而西。又有境外支河。皆自北而南。曲折縈廻。俱會于此。作浮橋橫截河流。又挽舟而渡。號爲遼河渡。有一官人坐于河岸小廳。以譏察往來行人。其南有聖母孃孃廟。又過臨河橋。到牛家莊驛。又過石井鋪,沙河在城鋪。至在城驛。驛在海州衛之城西門外。故名衛。亦巨鎭也。東有西牟城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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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돈포(高數鋪)를 지나서 신관문(新關門)에 이르니 장토성(長土城) | + | 고돈포(高數鋪)를 지나서 신관문(新關門)에 이르니 장토성(長土城)이 북쪽으로 장성(長城)에 붙어서 남쪽으로 뻗었고, 관문(關門)은 바로 그 복판에 있었으니 곧 성화(成化) 연간에 새로 쌓은 것이었습니다. |
− | 또 대대(大臺), 삼관묘(三官廟), 하만포(河灣鋪)를 지나서 삼차하( | + | 또 대대(大臺), 삼관묘(三官廟), 하만포(河灣鋪)를 지나서 삼차하(三汊河)에 이르니 삼차하가 곧 [https://www.google.com/maps/place/Liaohe+River/@42.0920547,120.1435467,6.57z/data=!4m5!3m4!1s0x5e2539355fda341b:0x7cd9156650cd0768!8m2!3d42.1330079!4d123.1860818 요하(遼河)]<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5ov9&articleno=13391502&_bloghome_menu=recenttext 요하문명(遼河文明)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우실하 교수]</ref><ref>[https://www.yna.co.kr/view/AKR20120223082800005 "고구려시대 압록강은 요하(遼河)였다", 연합뉴스, 2012,02.23]</ref><ref>[https://www.yna.co.kr/view/AKR20170322168700005 고조선의 서쪽 경계 '요하'는…"현재의 랴오닝강" vs "더 서쪽", 연합뉴스, 2017.03.22]</ref><ref>[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A%94%ED%95%98%EC%A7%80%EC%97%AD%EC%97%90%EC%84%9C-%EB%B0%9C%EA%B2%AC%EB%90%9C-%EC%8B%A0%EB%B9%84%EC%9D%98-%EC%99%95%EA%B5%AD 요하지역에서 발견된 ‘신비의 왕국’한국인의 고향,‘신비의 왕국’찾았다(8), the Science Times, 2007.11.06]</ref><ref>[http://contents.nahf.or.kr/iscdViewer/item.do?levelId=iscd.d_0003_0010_0010&page=010 요하문명론]</ref>였습니다. |
− | 그 원류는 개원(開原)의 동북으로부터 시작하여 철령(鐵嶺)<ref>[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13024002 | + | 그 원류는 개원(開原)의 동북으로부터 시작하여 철령(鐵嶺)<ref>[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13024002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압록강 서북쪽 ‘철령’은 요동… 일제때 함경남도 안변이라 우겼다, 서울신문, 2018.03.12]</ref><ref>[http://m.blog.daum.net/3002kumsukangsan/8450480?np_nil_b=2 윤여동설 - 고려는 “철령(鐵嶺)” 때문에 망했다]</ref><ref>[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104&levelId=tg_002_0920&ganada=&pageUnit=10 철령위, 우리역사넷]</ref>을 지나 이곳에 이르러서 혼하(渾河), 태자하(太子河)와 합류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삼차하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
대개 요동 지대는 바다에 가깝지만 지대가 높아서 지류가 모두 역류하기 때문에 태자하와 혼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습니다. | 대개 요동 지대는 바다에 가깝지만 지대가 높아서 지류가 모두 역류하기 때문에 태자하와 혼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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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위 또한 큰 진(鎭)이었습니다. 동쪽에 서모성산(西牟城山)이 있었습니다. | 해주위 또한 큰 진(鎭)이었습니다. 동쪽에 서모성산(西牟城山)이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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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2일 (토) 01:21 기준 최신판
晴而風。過高墩鋪。至新關門。有長土城。北附長城而南。關門正當其中。卽成化年間所新築也。又過大臺,三官廟,河灣鋪。至三汊河。河卽遼河也。源自開原。東北經鐵嶺。至此與渾河,泰子河合流爲一。故名三汊。蓋遼地瀕海而高亢。支河皆逆流。故泰子渾河皆自東而西。又有境外支河。皆自北而南。曲折縈廻。俱會于此。作浮橋橫截河流。又挽舟而渡。號爲遼河渡。有一官人坐于河岸小廳。以譏察往來行人。其南有聖母孃孃廟。又過臨河橋。到牛家莊驛。又過石井鋪,沙河在城鋪。至在城驛。驛在海州衛之城西門外。故名衛。亦巨鎭也。東有西牟城山。
맑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고돈포(高數鋪)를 지나서 신관문(新關門)에 이르니 장토성(長土城)이 북쪽으로 장성(長城)에 붙어서 남쪽으로 뻗었고, 관문(關門)은 바로 그 복판에 있었으니 곧 성화(成化) 연간에 새로 쌓은 것이었습니다.
또 대대(大臺), 삼관묘(三官廟), 하만포(河灣鋪)를 지나서 삼차하(三汊河)에 이르니 삼차하가 곧 요하(遼河)[1][2][3][4][5]였습니다.
그 원류는 개원(開原)의 동북으로부터 시작하여 철령(鐵嶺)[6][7][8]을 지나 이곳에 이르러서 혼하(渾河), 태자하(太子河)와 합류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삼차하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요동 지대는 바다에 가깝지만 지대가 높아서 지류가 모두 역류하기 때문에 태자하와 혼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습니다.
또 이 지역 밖의 지류는 모두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굽이지고 빙 둘러서 모두 이곳으로 모이니 부교(浮橋)를 만들어 하류(河流)를 가로막아 끊었으며, 또 배를 당겨 건너게 되므로 요하도(遼河渡)라고 불렀습니다.
한 관인이 강가의 작은 청사에 앉아서 왕래하는 행인들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 남쪽에는 성모양양묘(聖母壤壤廟)가 있었습니다.
또 임하교(臨河橋)를 지나서 우가장역(牛家莊)에 이르고, 다시 석정포(石井鋪)·사하재성포(沙河在城鋪)를 지나 재성역(在城驛)에 이르렀습니다.
재성역은 해주위(海州衛)의 성 서문 밖에 있었기 때문에 재성역이라 이름한 것이었습니다.
해주위 또한 큰 진(鎭)이었습니다. 동쪽에 서모성산(西牟城山)이 있었습니다.
22nd Day. Fair but windy.
[We went from Kao-tun Stop across the Liao River to Hai-chou Garrison, which was also a big market town.]
二十二日
晴而风。过高墩铺至新关门。有长土城,北附长城而南。关门正当其中,即成化年间所新筑也。又过大台、三官庙、河湾铺至三汊河。河即辽河也,源自开原东北,经铁岭至此与浑河、泰子河合流为一,故名三汊。盖辽地濒海而高亢,支河皆逆流,故泰子、浑河皆自东而西。又有境外支河,皆自北而南,曲折萦回,俱会于此。作浮桥横截河流,又挽舟而渡,号为辽河渡。有一官人坐于河岸小厅,以讥察往来行人。其南有圣母娘娘庙。又过临河桥到牛家庄驿。又过石井铺、沙河在城铺至在城驿。驿在海州卫之城西门外故名。卫亦巨镇也,东有西牟城山。
- ↑ 요하문명(遼河文明)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우실하 교수
- ↑ "고구려시대 압록강은 요하(遼河)였다", 연합뉴스, 2012,02.23
- ↑ 고조선의 서쪽 경계 '요하'는…"현재의 랴오닝강" vs "더 서쪽", 연합뉴스, 2017.03.22
- ↑ 요하지역에서 발견된 ‘신비의 왕국’한국인의 고향,‘신비의 왕국’찾았다(8), the Science Times, 2007.11.06
- ↑ 요하문명론
-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압록강 서북쪽 ‘철령’은 요동… 일제때 함경남도 안변이라 우겼다, 서울신문, 2018.03.12
- ↑ 윤여동설 - 고려는 “철령(鐵嶺)” 때문에 망했다
- ↑ 철령위, 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