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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二十七日,至漁陽驛, 遇謝恩使臣,是日陰,夜大雨,過白潤鋪、二十里铺、十里鋪,至漁陽睾,睾在蓟州城南五里許,驛之南有南關遞運所,驛丞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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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至漁陽驛。遇謝恩使臣。是日陰。夜大雨。過白澗鋪,二十里鋪,十里鋪。至漁陽驛。驛在薊州城南五里許。驛之南有南關遞運所。驛丞。乃曹鵬也。薊州。卽秦,漢漁陽郡。唐安祿山叛據之後。取古薊門關以名。盤龍山在西北。崆峒山在東北。城中有州治及薊州衛,鎭朔衛,營州右屯衛治所。治西北隅有張堪廟。堪爲漁陽太守時。敎民種植。童謠云麥秀兩歧云云。有去思。立廟如新。臣等欲起程時。有一人馳報云。朝鮮國使臣來。臣語諸張述祖曰。我本國使臣來在一刻間。若於路上相逢。則不過一揖而過。我姑留待。以認本國家山之事。述祖曰。諾。日晡。 謝恩使知中樞成健,書狀官尹璋及崔自俊,禹雄,成仲溫,金孟敬,張佑奇,韓忠常,韓謹,吳近位,金敬煕,權煕止,成後生,李義山,朴琁,鄭興祖等。來寓驛中。臣詣謁使臣于中庭。 使臣下階。亦俯伏語臣曰。 上體平安。國家無事。爾家鄕亦無恙。 上聞爾漂海無歸處。 啓下禮曹。令各道觀察使通諭沿海各官。不輕搜覓。急速啓聞。且於對馬島及日本諸島。使送人書契修答時。右辭緣幷錄通諭。右承旨慶俊次知啓依允。 聖恩何可量哉。臣拜伏退舍。謂金重等曰。我等。小民也。如蟪蛄蠛蠓之生死於天地中。生不爲天地之益。死不爲天地之損。豈意 聖念及於小民若此若此。 聖念若此。我等所以萬死得一生也。金重等亦感泣。少選。書狀官與崔自俊。偕到于臣所寓。備語鄕國邇來之事。因曰。初聞漂沒之報。人皆以汝死爲歎。成希顏獨大言曰。我心以爲崔溥不死海。早晩必生還云云。及今相遇。果驗其言。當昏。 使臣邀臣同坐。饋臣以晩飯。下及陪吏。臣謝曰。小人罪逆深重。不自死滅。禍延先人。未及擗踊于殯側。反爲颶母所驅。五內分崩。無復望生。幸到閩東。行過六千餘里間。亦顧眄無親。語音不曉。悲辛艱楚。欲訴誰因。今遇令公。如見父母。 使臣曰。我初於東入岾。遇安令公之行。聞爾生到浙江等處。喜氣欲顚。今日邂逅。顧非幸歟。又曰。我之此行。有養馬者中途斃死。跋涉萬里。俱生實難。爾帶去人亦有死者否。臣曰。凡我四十三人。幸得不死。與之偕來。 使臣曰。天實生之。天實生之。非徒生之。實由 上德。是可喜也。臣又承 使臣之問。畧陳漂寓之故。所過滄溟之險。山川之勝跡。風俗之有異。 使臣曰。我行過此等地。獨以爲壯觀。爾之眼界。難爲水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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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양역(漁陽驛)에 이르러 사은사신(謝恩使臣)을 만났습니다. | 어양역(漁陽驛)에 이르러 사은사신(謝恩使臣)을 만났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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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흐리고 밤에는 큰비가 내렸습니다. | 이 날은 흐리고 밤에는 큰비가 내렸습니다. | ||
− | 백간포(白潤鋪) | + | 백간포(白潤鋪). 이십리포(二十里鋪)·십리포(十里鋪)를 지나서 어양역에 이르니, 어양역은 계주성(薊州城) 남쪽 5리가량에 있었습니다. 어양역의 남쪽에 남관체운소(南關遞運所)가 있었는데 역승(驛丞)은 조붕(曹鵬)이었습니다. |
− | 계주<ref>[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mode=&page=&fcs=&fcsd=&cf=&cd=&gb=&aa10up=&aa10no=kh2_je_a_vsu_24518_006&aa15no=006&aa20no=24518_006_0004&gnd1=&gnd2=&keywords=&rowcount=10 무오기행문,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ref>는 곧 진한(秦漢)시대의 어양군(漁陽郡)인데 당나라 [http://kcm.kr/dic_view.php?nid=39555 안록산(安祿山)]<ref>[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1032499031 양귀비, 현종·안록산과 '양다리 사랑놀음'…唐을 파산시킨 그 치명적 유혹, 한국경제, 2011.03.25]</ref> | + | 계주<ref>[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mode=&page=&fcs=&fcsd=&cf=&cd=&gb=&aa10up=&aa10no=kh2_je_a_vsu_24518_006&aa15no=006&aa20no=24518_006_0004&gnd1=&gnd2=&keywords=&rowcount=10 무오기행문,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ref>는 곧 진한(秦漢)시대의 어양군(漁陽郡)인데 당나라 [http://kcm.kr/dic_view.php?nid=39555 안록산(安祿山)]<ref>[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1032499031 양귀비, 현종·안록산과 '양다리 사랑놀음'…唐을 파산시킨 그 치명적 유혹, 한국경제, 2011.03.25]</ref>이 반란을 일으켜 점거했던 곳으로 후에 옛 계문관(薊門關)을 따서 '계주(薊州)'라고 이름지었던 것입니다. |
− | 반룡산(盤龍山)은 서북방에 있고 공동산( | + | 반룡산(盤龍山)은 서북방에 있고 공동산(崆峒山)은 동북방에 있었습니다. |
− | 성안에 계주의 치소와 계주위( | + | 성안에 계주의 치소와 계주위(薊州衛), 진삭위(鎭朔衛), 영주우둔위(營州右屯衛)의 치소가 있었습니다. |
치소의 서북 모퉁이에 장감(張堪)의 사당이 있었습니다. | 치소의 서북 모퉁이에 장감(張堪)의 사당이 있었습니다. | ||
− | 장감이 어양태수(漁陽太守)였을 때 백성들에게 씨뿌리고 심는 법을 가르쳤더니 동요(童謠)에, 보리 이삭 두 가닥이 패었네 | + | <span style="color:red">장감이 어양태수(漁陽太守)였을 때 백성들에게 씨뿌리고 심는 법을 가르쳤더니 동요(童謠)에, 보리 이삭 두 가닥이 패었네 운운했다 하였습니다. 이임할 때 그의 선정(善政)을 기리어 세운 사당이 새 것 같았습니다.</span> |
신 등이 길을 떠나려고 할 때 한 사람이 달려와서 “조선국 사신이 오고 있습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 신 등이 길을 떠나려고 할 때 한 사람이 달려와서 “조선국 사신이 오고 있습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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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국 사신이 곧 도착할 터인데 만약 노상에서 만난다면 읍(駐) 한 번만 하고 지날 수밖에 없으니, 내 잠시 머물러 기다려서 고향 소식을 알고 싶습니다” 라고 하니 장술조가 “좋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 “우리 본국 사신이 곧 도착할 터인데 만약 노상에서 만난다면 읍(駐) 한 번만 하고 지날 수밖에 없으니, 내 잠시 머물러 기다려서 고향 소식을 알고 싶습니다” 라고 하니 장술조가 “좋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 ||
− | 해질 무렵 사은사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건(成健) | + | 해질 무렵 <span style="color:red">사은사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건(成健), 서장관(書狀官) 윤장(尹璋)과 최자준(崔自俊)·우웅(禹雄)·성중온(成仲溫)·김맹경(金孟敬)·장우기(張佑奇)·한충상(韓忠常)·한근(韓謹)·오근위(吳近位)·김경희(金敬熙)·권희지(權熙止)·성후생(成後生)·이의산(李義山)·박선(朴琁)·정흥조(鄭興祖)</span> 등이 와서 어양역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
신이 나아가서 사신을 중정(中庭)에서 뵈니 사신이 섬돌에서 내려와 역시 몸을 굽히면서 신에게 말하기를, | 신이 나아가서 사신을 중정(中庭)에서 뵈니 사신이 섬돌에서 내려와 역시 몸을 굽히면서 신에게 말하기를, | ||
− | “성상의 옥체도 평안하시고 나라도 무사하며 그대의 집이 있는 고향도 별 탈이 없소. 임금께서 그대가 표류되어 간 곳이 없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조(禮曹) | + | <span style="color:red">“성상의 옥체도 평안하시고 나라도 무사하며 그대의 집이 있는 고향도 별 탈이 없소. 임금께서 그대가 표류되어 간 곳이 없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조(禮曹)에 명을 내려 각 도(道)의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연해의 각 급 관원에게 널리 알려 수색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고 속히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셨소. 또 대마도와 일본 여러 섬의 사송인(使送人)에게 회답을 쓸 때 위의 '''사연을 함께 기록'''해서 널리 알릴 것을 우승지(右承旨) 경준(慶俊)이 아뢰자 이를 윤허하셨으니 성은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소?”라고 하였습니다. </span> |
신은 절하고 엎드렸다가 객관으로 물러 나와 김중 등에게 말하기를, | 신은 절하고 엎드렸다가 객관으로 물러 나와 김중 등에게 말하기를, | ||
− | “우리들은 미천한 백성이므로 마치 쓰르라미와 하루살이가 천지 간에 살다가 죽는 것과 같아 살아도 천지의 이로움이 되지 못하고 죽어도 천지의 손실됨이 없는데, 어찌 성상의 염려가 미천한 백성에게 미치심이 이와 같을 줄을 생각했겠는가? 성상의 염려하심이 이와 같았으므로 우리들이 거의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 | <span style="color:red">“우리들은 미천한 백성이므로 마치 쓰르라미와 하루살이가 천지 간에 살다가 죽는 것과 같아 살아도 천지의 이로움이 되지 못하고 죽어도 천지의 손실됨이 없는데, 어찌 성상의 염려가 미천한 백성에게 미치심이 이와 같을 줄을 생각했겠는가? 성상의 염려하심이 이와 같았으므로 우리들이 거의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span> |
김중 등도 또한 감격해 울었습니다. | 김중 등도 또한 감격해 울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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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후에 서장관이 최자준과 함께 신이 머물고 있는 곳에 와서 고국에서 요즘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 조금 후에 서장관이 최자준과 함께 신이 머물고 있는 곳에 와서 고국에서 요즘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 ||
− | “처음에 표류되어 실종되었다는 보고를 듣고는 사람들이 모두 그대의 죽음을 탄식하고 있었는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731 성희안(成希顔)] | + | <span style="color:red">“처음에 표류되어 실종되었다는 보고를 듣고는 사람들이 모두 그대의 죽음을 탄식하고 있었는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731 성희안(成希顔)]만은 혼자 큰 소리로, '내 생각에 최부는 바다에서 죽지 않고 조만간에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운운하였소. 지금 와서 서로 만나 보게 되니 과연 그의 말이 맞았소"라고 하였습니다. </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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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사신이 신을 맞이하여 같이 앉아 신에게 저녁밥을 대접하고 배리(陪吏)들에게까지도 먹였습니다. | 저녁에 사신이 신을 맞이하여 같이 앉아 신에게 저녁밥을 대접하고 배리(陪吏)들에게까지도 먹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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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 신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 ||
− | “소인은 죄지은 것이 매우 무거운데도 스스로 죽지 못하여 재앙이 선인(先人)에게 미치게 되었는데, 빈소 곁에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슬퍼하기도 전에 도리어 회오리바람에 몰린 바 되었으니, 오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다시 살아나기를 바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민동(圃東) | + | “소인은 죄지은 것이 매우 무거운데도 스스로 죽지 못하여 재앙이 선인(先人)에게 미치게 되었는데, 빈소 곁에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슬퍼하기도 전에 도리어 회오리바람에 몰린 바 되었으니, 오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다시 살아나기를 바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민동(圃東)에 도착하여 6천여 리를 지나는데 돌아보아도 의지할 데가 없었으며,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니 비참하고 고생한일 을 호소하려고 한들 누구에게 하겠습니까? 지금 영공(令公)을 만나니 마치 부모를 뵈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
사신이 말하기를, | 사신이 말하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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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43인은 다행히 죽지 않고 모두 함께 왔습니다.” | “우리 43인은 다행히 죽지 않고 모두 함께 왔습니다.” | ||
− | “실로 하늘이 살린 것이오! 실로 하늘이 살린 것이오! 그냥 살린 것이 아니라 실로 임금의 덕<ref>[https://korean.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092357&ctg= [우리말바루기] 승은/성은 | + | <span style="color:red">“실로 하늘이 살린 것이오! 실로 하늘이 살린 것이오! 그냥 살린 것이 아니라 실로 임금의 덕<ref>[https://korean.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092357&ctg= [우리말바루기] 승은/성은 |
− | 중앙일보, 2008.03.31]</ref><ref>[https://www.korean.go.kr/nkview/nknews/199908/13_1.htm 드라마 속의 동어 반복과 부적절한 어휘 선택, 김희진(金希珍), 국립국어연구원]</ref> 때문이니 이야말로 기쁜 일이오." | + | 중앙일보, 2008.03.31]</ref><ref>[https://www.korean.go.kr/nkview/nknews/199908/13_1.htm 드라마 속의 동어 반복과 부적절한 어휘 선택, 김희진(金希珍), 국립국어연구원]</ref> 때문이니 이야말로 기쁜 일이오." </span> |
신은 또 사신의 물음을 받고는 표류하고 기거(壽居)한 사유와 지나온 창해의 험한 물결과 산천의 뛰어난 유적과 풍속의 다른 점을 대략 진술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 신은 또 사신의 물음을 받고는 표류하고 기거(壽居)한 사유와 지나온 창해의 험한 물결과 산천의 뛰어난 유적과 풍속의 다른 점을 대략 진술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 ||
“나는 이런 지방을 지나면서도 혼자 장관이라 생각했는데 그대가 보기에는 별 것이 아니겠구료”라고 하였습니다. | “나는 이런 지방을 지나면서도 혼자 장관이라 생각했는데 그대가 보기에는 별 것이 아니겠구료”라고 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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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th Day. Arriving at Yü-yang Station and Meeting an Envoy of Thanksgiving. This day was cloudy; at night there was heavy rain. | 27th Day. Arriving at Yü-yang Station and Meeting an Envoy of Thanksgiving. This day was cloudy; at night there was heavy rain. | ||
[We went from Pai-chien Stop to Yü-yang Station, about five li south of Chi-chou.] | [We went from Pai-chien Stop to Yü-yang Station, about five li south of Chi-chou.] | ||
− | Chi-chou had been the Yü-yang-chün of Ch’in and Han. When An Lushan of T’ang rebelled [755-763], he occupied it. Later it took the name of the old Chi-men Pass. P’an-lung Mountain is in the northwest and K’ung-t’ung Mountain in the northeast. Inside the wall are the prefectural capital and the headquarters of Chi-chou Garrison, Chen-shuo Garrison, and Ying-chouyu-t’un Garrison. In the northwest corner of the headquarters is the shrine of Chang K’an. When K’an was Governor of Yü-yang, he taught the people to plant. A children's song says, “Two ears on each stalk of wheat ..." | + | |
+ | Chi-chou had been the Yü-yang-chün of Ch’in and Han. When An Lushan of T’ang rebelled [755-763], he occupied it. Later it took the name of the old Chi-men Pass. P’an-lung Mountain is in the northwest and K’ung-t’ung Mountain in the northeast. Inside the wall are the prefectural capital and the headquarters of Chi-chou Garrison, Chen-shuo Garrison, and Ying-chouyu-t’un Garrison. In the northwest corner of the headquarters is the shrine of Chang K’an. When K’an was Governor of Yü-yang, he taught the people to plant. A children's song says, “Two ears on each stalk of wheat ..." That is in memory of him. His shrine is kept like ne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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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we were about to set out, a man rushed up and reported that an ambassador from Korea was coming. I talked it over with Chang Shu-tsu: “An envoy from my country is coming shortly. If we meet on the road, we must pass with no more than a bow. I should like to stay here a little and hear things about my homeland.” | When we were about to set out, a man rushed up and reported that an ambassador from Korea was coming. I talked it over with Chang Shu-tsu: “An envoy from my country is coming shortly. If we meet on the road, we must pass with no more than a bow. I should like to stay here a little and hear things about my homeland.” | ||
Chang Shu-tsu said, “All right.” | Chang Shu-tsu said, “All right.” | ||
− | That afternoon, Song Kôn, Chief Secretary in the Privy Council and Envoy of Thanksgiving, | + | |
− | Kữn, | + | That afternoon, Song Kôn, Chief Secretary in the Privy Council and Envoy of Thanksgiving, First Secretary Yun Chang, Ch’oe Cha-jun, Wu Ung, Sống Chung-on, Kim Maeng-gyỏng, Chang U-gi, Han Chỉung-sang, Han Kữn, Kũn-wi, Kim Kyõng-hui, Kwồn Hui-ji, Sông Chun-saeng, Yi Ủi-san, Pak Son, and Chong Hùng-jo came and lodged at the station. When I called on the Envoy in the central garden, he came down the steps, returned my low bow, and said to me, “His Highness is well, the State is without incident. Your home district has also been spared misfortune. When His Highness heard that you had drifted to sea and not returned, he sent down instructions to the Board of Rites to order the governors of all the provinces to notify all officials along the coast to search thoroughly and report back quick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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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reover, copies of these instructions were sent to Tsushima Island and the islands of Japan by earliest envoys. Kyongjun, Right Receiver of the Royal Edicts, in turn made the instructions known accordingly. How impossible it is to measure His Highness's graciousnes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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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owed and left. I said to Kim Chung and others, “We are little people. Like the life and death of cicadas and flies, our life is no gain to Heaven or earth, and our death is no loss. How wonderful that His Highness's thoughts should go out like that to little people! It has been by such royal sympathy that our lives have been saved from certain death as they have.” Kim Chung and the others wept with emotion. | I bowed and left. I said to Kim Chung and others, “We are little people. Like the life and death of cicadas and flies, our life is no gain to Heaven or earth, and our death is no loss. How wonderful that His Highness's thoughts should go out like that to little people! It has been by such royal sympathy that our lives have been saved from certain death as they have.” Kim Chung and the others wept with emoti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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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short while, the First Secretary and Ch'oe Cha-jun came to the place where I was staying and talked more fully about recent affairs at home. They said, “When we first heard the report that you had drifted away and drowned, everyone lamented your death. Sơng Hi-an alone said loudly, 'I feel that Ch'oe Pu cannot die at sea. Sooner or later he must return alive. Now we meet and prove the truth of what he said.” | In a short while, the First Secretary and Ch'oe Cha-jun came to the place where I was staying and talked more fully about recent affairs at home. They said, “When we first heard the report that you had drifted away and drowned, everyone lamented your death. Sơng Hi-an alone said loudly, 'I feel that Ch'oe Pu cannot die at sea. Sooner or later he must return alive. Now we meet and prove the truth of what he sai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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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 dusk the Envoy invited me to sit with him. He offered me dinner and had some sent to my secondary officials, and I thanked him: “I am an unfilial son, my sins have been great: not having died myself, misfortune extended to my dead father. I have not yet beaten my breast or stamped my feet by the coffin; rather, I have been driven by a typhoon, my insides have collapsed, and I have thought I should not survive. I went east more than six thousand li and fortunately arrived at Min. Still, when I looked around me, I knew no one, and my speech was not understood. I have wanted to tell someone of my grief and suffering; meeting you now, therefore, is like seeing my father and mother.” | | At dusk the Envoy invited me to sit with him. He offered me dinner and had some sent to my secondary officials, and I thanked him: “I am an unfilial son, my sins have been great: not having died myself, misfortune extended to my dead father. I have not yet beaten my breast or stamped my feet by the coffin; rather, I have been driven by a typhoon, my insides have collapsed, and I have thought I should not survive. I went east more than six thousand li and fortunately arrived at Min. Still, when I looked around me, I knew no one, and my speech was not understood. I have wanted to tell someone of my grief and suffering; meeting you now, therefore, is like seeing my father and mother.” | ||
− | The Envoy said, “I first heard that you had reached Chekiang and other places alive when I met His Excellency An's party at Tung-pa [Stop?]. I was weak with joy. | + | |
+ | The Envoy said, “I first heard that you had reached Chekiang and other places alive when I met His Excellency An's party at Tung-pa [Stop?]. I was weak with joy.Is it not fortunate that I have met you unexpectedly today?” He then said, “A groom in this group of mine died on the way. It is certainly hard to keep everyone alive over thousands of li. Did some of the men who went with you also di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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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aid, “Fortunately, all forty-three of us survived. All of us have come here." | I said, “Fortunately, all forty-three of us survived. All of us have come he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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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voy said, “Heaven really saved you, really saved you. Not only saved you, but did it through His Highness's virtue. We can be happy for that.” | The Envoy said, “Heaven really saved you, really saved you. Not only saved you, but did it through His Highness's virtue. We can be happy for tha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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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then questioned by the Envoy and described in general the circumstances of my drifting and staying at places, the dangers of the ocean we crossed, the outstanding geographical sites, and the differences of custom. The Envoy said, “When my party passed some places, I thought we were doing great things. When I have seen what your eyes have beheld, there will be little left to impress me." | I was then questioned by the Envoy and described in general the circumstances of my drifting and staying at places, the dangers of the ocean we crossed, the outstanding geographical sites, and the differences of custom. The Envoy said, “When my party passed some places, I thought we were doing great things. When I have seen what your eyes have beheld, there will be little left to impress m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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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十七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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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至渔阳驿,遇谢恩使臣。是日阴,夜大雨。过白涧铺、二十里铺、十里铺至渔阳驿。驿在蓟州城南五里许。驿之南有南关递运所。驿丞乃曹鹏也。蓟州即秦汉渔阳郡,唐安禄山叛据之,后取古蓟门关以名。盘龙山在西北,崆峒山在东北。城中有州治及蓟州卫、镇朔卫、营州右屯卫治、所治。西北隅有张堪庙,堪为渔阳太守时教民种植,童谣云:“麦秀两歧”云云。有去思立庙如新。臣等欲起程时,有一人驰报云:朝鲜国使臣来。臣语诸张述祖曰:“我本国使臣来在一刻间,若于路上相逢,则不过一揖而过。我姑留,待以认本国家山之事。”述祖曰:“诺。”日晡,谢恩使知中枢成健、书状官尹璋及崔自俊、禹雄、成仲温、金孟敬、张佑奇、韩忠常、韩谨、吴近位、金敬熙、权熙止、成后生、李义山、朴璇、郑兴祖等来寓驿中。臣诣谒使臣于中庭。使臣下阶亦俯伏,语臣曰:“上体平安,国家无事,尔家乡亦无恙。上闻尔漂海无归处,启下礼曹,令各道观察使通谕沿海各官,不轻搜觅,急速启闻。且于对马岛及日本诸岛,使送人书契修答时,右词缘并录。通谕右承旨庆俊次知启依允。圣恩何可量哉!”臣拜伏,退舍谓金重等曰:“我等小民也,如蟪蛄、蚁蠓之生死于天地中,生不为天地之益,死不为天地之损,岂意圣念及于小民若此,若此!圣念若此,我等所以万死得一生也!”金重等亦感泣。少选,书状官与崔自俊偕到于臣所寓,备语乡国迩来之事。因曰:“初闻漂没之报,人皆以汝死为叹。成希颜独大言曰:‘我心以为崔溥不死海,早晚必生还’云云。及今相遇,果验其言。”当昏,使臣邀臣同坐,馈臣以晚饭,下及陪吏。臣谢曰:“小人罪逆深重,不自死灭,祸延先人。未及擗踊于殡侧,反为飓毋所驱,五内分崩,无复望生。幸到闽东,行过六千余里间,亦顾眄无亲,语音不晓,悲辛艰楚,欲诉谁因?今遇令公如见父母。”使臣曰:“我初于东八站遇安令公之行,闻尔生到浙江等处,喜气欲颠。今日邂逅,顾非幸欤?”又曰:“我之此行,有养马者中途毙死。跋涉万里俱生实难尔!带去人亦有死者否?”臣曰:“凡我四十三人幸得不死,与之偕来。”使臣曰:“天实生之,天实生之!非徒生之,实由上德,是可喜也!”臣又承使臣之问,略陈漂寓之故、所过沧溟之险、山川之胜迹、风俗之有异。使臣曰:“我行过此等地,独以为壮观,尔之眼界难为水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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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 | ||
+ | *제도(관직) | ||
*기후 | *기후 | ||
+ | *시간 | ||
*인명 | *인명 | ||
*지명 | *지명 | ||
*지리 | *지리 | ||
*역사 | *역사 | ||
− | * | + | *언어(어원) |
+ | *유학(사당,선정) | ||
*사회(노래) | *사회(노래) | ||
− | *외교 | + | *인명-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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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충의, 성은)-조선 | ||
*유학 | *유학 | ||
− | *행정 | + | *행정-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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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 | + | *심리(비유: 쓰르라미, 하루살이) |
− | *심리( | + | *의전-조선 |
− | *경천 | + | *유학(불효)-조선 |
+ | *심리(참담함) | ||
+ | *심리(비유: 오장이 무너지는 듯) | ||
+ | *심리(비유:부모를 뵈는 것과 같다) | ||
+ | *심리(긍지)-조선 | ||
+ | *경천-조선 | ||
+ | *심리(부러움)-조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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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3933 중종반정] | |
− | + | *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8667 반정3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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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3일 (일) 09:56 기준 최신판
至漁陽驛。遇謝恩使臣。是日陰。夜大雨。過白澗鋪,二十里鋪,十里鋪。至漁陽驛。驛在薊州城南五里許。驛之南有南關遞運所。驛丞。乃曹鵬也。薊州。卽秦,漢漁陽郡。唐安祿山叛據之後。取古薊門關以名。盤龍山在西北。崆峒山在東北。城中有州治及薊州衛,鎭朔衛,營州右屯衛治所。治西北隅有張堪廟。堪爲漁陽太守時。敎民種植。童謠云麥秀兩歧云云。有去思。立廟如新。臣等欲起程時。有一人馳報云。朝鮮國使臣來。臣語諸張述祖曰。我本國使臣來在一刻間。若於路上相逢。則不過一揖而過。我姑留待。以認本國家山之事。述祖曰。諾。日晡。 謝恩使知中樞成健,書狀官尹璋及崔自俊,禹雄,成仲溫,金孟敬,張佑奇,韓忠常,韓謹,吳近位,金敬煕,權煕止,成後生,李義山,朴琁,鄭興祖等。來寓驛中。臣詣謁使臣于中庭。 使臣下階。亦俯伏語臣曰。 上體平安。國家無事。爾家鄕亦無恙。 上聞爾漂海無歸處。 啓下禮曹。令各道觀察使通諭沿海各官。不輕搜覓。急速啓聞。且於對馬島及日本諸島。使送人書契修答時。右辭緣幷錄通諭。右承旨慶俊次知啓依允。 聖恩何可量哉。臣拜伏退舍。謂金重等曰。我等。小民也。如蟪蛄蠛蠓之生死於天地中。生不爲天地之益。死不爲天地之損。豈意 聖念及於小民若此若此。 聖念若此。我等所以萬死得一生也。金重等亦感泣。少選。書狀官與崔自俊。偕到于臣所寓。備語鄕國邇來之事。因曰。初聞漂沒之報。人皆以汝死爲歎。成希顏獨大言曰。我心以爲崔溥不死海。早晩必生還云云。及今相遇。果驗其言。當昏。 使臣邀臣同坐。饋臣以晩飯。下及陪吏。臣謝曰。小人罪逆深重。不自死滅。禍延先人。未及擗踊于殯側。反爲颶母所驅。五內分崩。無復望生。幸到閩東。行過六千餘里間。亦顧眄無親。語音不曉。悲辛艱楚。欲訴誰因。今遇令公。如見父母。 使臣曰。我初於東入岾。遇安令公之行。聞爾生到浙江等處。喜氣欲顚。今日邂逅。顧非幸歟。又曰。我之此行。有養馬者中途斃死。跋涉萬里。俱生實難。爾帶去人亦有死者否。臣曰。凡我四十三人。幸得不死。與之偕來。 使臣曰。天實生之。天實生之。非徒生之。實由 上德。是可喜也。臣又承 使臣之問。畧陳漂寓之故。所過滄溟之險。山川之勝跡。風俗之有異。 使臣曰。我行過此等地。獨以爲壯觀。爾之眼界。難爲水也。
어양역(漁陽驛)에 이르러 사은사신(謝恩使臣)을 만났습니다.
이 날은 흐리고 밤에는 큰비가 내렸습니다.
백간포(白潤鋪). 이십리포(二十里鋪)·십리포(十里鋪)를 지나서 어양역에 이르니, 어양역은 계주성(薊州城) 남쪽 5리가량에 있었습니다. 어양역의 남쪽에 남관체운소(南關遞運所)가 있었는데 역승(驛丞)은 조붕(曹鵬)이었습니다.
계주[1]는 곧 진한(秦漢)시대의 어양군(漁陽郡)인데 당나라 안록산(安祿山)[2]이 반란을 일으켜 점거했던 곳으로 후에 옛 계문관(薊門關)을 따서 '계주(薊州)'라고 이름지었던 것입니다.
반룡산(盤龍山)은 서북방에 있고 공동산(崆峒山)은 동북방에 있었습니다.
성안에 계주의 치소와 계주위(薊州衛), 진삭위(鎭朔衛), 영주우둔위(營州右屯衛)의 치소가 있었습니다.
치소의 서북 모퉁이에 장감(張堪)의 사당이 있었습니다.
장감이 어양태수(漁陽太守)였을 때 백성들에게 씨뿌리고 심는 법을 가르쳤더니 동요(童謠)에, 보리 이삭 두 가닥이 패었네 운운했다 하였습니다. 이임할 때 그의 선정(善政)을 기리어 세운 사당이 새 것 같았습니다.
신 등이 길을 떠나려고 할 때 한 사람이 달려와서 “조선국 사신이 오고 있습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신이 장술조에게 말하기를,
“우리 본국 사신이 곧 도착할 터인데 만약 노상에서 만난다면 읍(駐) 한 번만 하고 지날 수밖에 없으니, 내 잠시 머물러 기다려서 고향 소식을 알고 싶습니다” 라고 하니 장술조가 “좋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해질 무렵 사은사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건(成健), 서장관(書狀官) 윤장(尹璋)과 최자준(崔自俊)·우웅(禹雄)·성중온(成仲溫)·김맹경(金孟敬)·장우기(張佑奇)·한충상(韓忠常)·한근(韓謹)·오근위(吳近位)·김경희(金敬熙)·권희지(權熙止)·성후생(成後生)·이의산(李義山)·박선(朴琁)·정흥조(鄭興祖) 등이 와서 어양역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신이 나아가서 사신을 중정(中庭)에서 뵈니 사신이 섬돌에서 내려와 역시 몸을 굽히면서 신에게 말하기를,
“성상의 옥체도 평안하시고 나라도 무사하며 그대의 집이 있는 고향도 별 탈이 없소. 임금께서 그대가 표류되어 간 곳이 없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조(禮曹)에 명을 내려 각 도(道)의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연해의 각 급 관원에게 널리 알려 수색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고 속히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셨소. 또 대마도와 일본 여러 섬의 사송인(使送人)에게 회답을 쓸 때 위의 사연을 함께 기록해서 널리 알릴 것을 우승지(右承旨) 경준(慶俊)이 아뢰자 이를 윤허하셨으니 성은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소?”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절하고 엎드렸다가 객관으로 물러 나와 김중 등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미천한 백성이므로 마치 쓰르라미와 하루살이가 천지 간에 살다가 죽는 것과 같아 살아도 천지의 이로움이 되지 못하고 죽어도 천지의 손실됨이 없는데, 어찌 성상의 염려가 미천한 백성에게 미치심이 이와 같을 줄을 생각했겠는가? 성상의 염려하심이 이와 같았으므로 우리들이 거의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김중 등도 또한 감격해 울었습니다.
조금 후에 서장관이 최자준과 함께 신이 머물고 있는 곳에 와서 고국에서 요즘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처음에 표류되어 실종되었다는 보고를 듣고는 사람들이 모두 그대의 죽음을 탄식하고 있었는데, 성희안(成希顔)만은 혼자 큰 소리로, '내 생각에 최부는 바다에서 죽지 않고 조만간에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운운하였소. 지금 와서 서로 만나 보게 되니 과연 그의 말이 맞았소"라고 하였습니다.
저녁에 사신이 신을 맞이하여 같이 앉아 신에게 저녁밥을 대접하고 배리(陪吏)들에게까지도 먹였습니다.
신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소인은 죄지은 것이 매우 무거운데도 스스로 죽지 못하여 재앙이 선인(先人)에게 미치게 되었는데, 빈소 곁에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슬퍼하기도 전에 도리어 회오리바람에 몰린 바 되었으니, 오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다시 살아나기를 바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민동(圃東)에 도착하여 6천여 리를 지나는데 돌아보아도 의지할 데가 없었으며,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니 비참하고 고생한일 을 호소하려고 한들 누구에게 하겠습니까? 지금 영공(令公)을 만나니 마치 부모를 뵈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신이 말하기를,
“나도 처음 동팔참(東八站)에서 안(安) 영공의 행차를 만나 그대가 살아서 절강 등지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매우 기뻐했는데, 오늘 서로 만나게 되니 다행이 아니겠소?”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나의 이번 행차에 말을 돌보던 자(養馬]4가 중도에서 죽었소.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만 리 길을 가노라면 모두 다 살아남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오. 그대가 데리고 간 사람 중에도 죽은 사람이 있지 않겠소?"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43인은 다행히 죽지 않고 모두 함께 왔습니다.”
“실로 하늘이 살린 것이오! 실로 하늘이 살린 것이오! 그냥 살린 것이 아니라 실로 임금의 덕[3][4] 때문이니 이야말로 기쁜 일이오."
신은 또 사신의 물음을 받고는 표류하고 기거(壽居)한 사유와 지나온 창해의 험한 물결과 산천의 뛰어난 유적과 풍속의 다른 점을 대략 진술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 지방을 지나면서도 혼자 장관이라 생각했는데 그대가 보기에는 별 것이 아니겠구료”라고 하였습니다.
27th Day. Arriving at Yü-yang Station and Meeting an Envoy of Thanksgiving. This day was cloudy; at night there was heavy rain.
[We went from Pai-chien Stop to Yü-yang Station, about five li south of Chi-chou.]
Chi-chou had been the Yü-yang-chün of Ch’in and Han. When An Lushan of T’ang rebelled [755-763], he occupied it. Later it took the name of the old Chi-men Pass. P’an-lung Mountain is in the northwest and K’ung-t’ung Mountain in the northeast. Inside the wall are the prefectural capital and the headquarters of Chi-chou Garrison, Chen-shuo Garrison, and Ying-chouyu-t’un Garrison. In the northwest corner of the headquarters is the shrine of Chang K’an. When K’an was Governor of Yü-yang, he taught the people to plant. A children's song says, “Two ears on each stalk of wheat ..." That is in memory of him. His shrine is kept like new.
When we were about to set out, a man rushed up and reported that an ambassador from Korea was coming. I talked it over with Chang Shu-tsu: “An envoy from my country is coming shortly. If we meet on the road, we must pass with no more than a bow. I should like to stay here a little and hear things about my homeland.” Chang Shu-tsu said, “All right.”
That afternoon, Song Kôn, Chief Secretary in the Privy Council and Envoy of Thanksgiving, First Secretary Yun Chang, Ch’oe Cha-jun, Wu Ung, Sống Chung-on, Kim Maeng-gyỏng, Chang U-gi, Han Chỉung-sang, Han Kữn, Kũn-wi, Kim Kyõng-hui, Kwồn Hui-ji, Sông Chun-saeng, Yi Ủi-san, Pak Son, and Chong Hùng-jo came and lodged at the station. When I called on the Envoy in the central garden, he came down the steps, returned my low bow, and said to me, “His Highness is well, the State is without incident. Your home district has also been spared misfortune. When His Highness heard that you had drifted to sea and not returned, he sent down instructions to the Board of Rites to order the governors of all the provinces to notify all officials along the coast to search thoroughly and report back quickly.
Moreover, copies of these instructions were sent to Tsushima Island and the islands of Japan by earliest envoys. Kyongjun, Right Receiver of the Royal Edicts, in turn made the instructions known accordingly. How impossible it is to measure His Highness's graciousness!”
I bowed and left. I said to Kim Chung and others, “We are little people. Like the life and death of cicadas and flies, our life is no gain to Heaven or earth, and our death is no loss. How wonderful that His Highness's thoughts should go out like that to little people! It has been by such royal sympathy that our lives have been saved from certain death as they have.” Kim Chung and the others wept with emotion.
In a short while, the First Secretary and Ch'oe Cha-jun came to the place where I was staying and talked more fully about recent affairs at home. They said, “When we first heard the report that you had drifted away and drowned, everyone lamented your death. Sơng Hi-an alone said loudly, 'I feel that Ch'oe Pu cannot die at sea. Sooner or later he must return alive. Now we meet and prove the truth of what he said.”
| At dusk the Envoy invited me to sit with him. He offered me dinner and had some sent to my secondary officials, and I thanked him: “I am an unfilial son, my sins have been great: not having died myself, misfortune extended to my dead father. I have not yet beaten my breast or stamped my feet by the coffin; rather, I have been driven by a typhoon, my insides have collapsed, and I have thought I should not survive. I went east more than six thousand li and fortunately arrived at Min. Still, when I looked around me, I knew no one, and my speech was not understood. I have wanted to tell someone of my grief and suffering; meeting you now, therefore, is like seeing my father and mother.”
The Envoy said, “I first heard that you had reached Chekiang and other places alive when I met His Excellency An's party at Tung-pa [Stop?]. I was weak with joy.Is it not fortunate that I have met you unexpectedly today?” He then said, “A groom in this group of mine died on the way. It is certainly hard to keep everyone alive over thousands of li. Did some of the men who went with you also die?”
I said, “Fortunately, all forty-three of us survived. All of us have come here."
The Envoy said, “Heaven really saved you, really saved you. Not only saved you, but did it through His Highness's virtue. We can be happy for that.”
I was then questioned by the Envoy and described in general the circumstances of my drifting and staying at places, the dangers of the ocean we crossed, the outstanding geographical sites, and the differences of custom. The Envoy said, “When my party passed some places, I thought we were doing great things. When I have seen what your eyes have beheld, there will be little left to impress me."
二十七日
至渔阳驿,遇谢恩使臣。是日阴,夜大雨。过白涧铺、二十里铺、十里铺至渔阳驿。驿在蓟州城南五里许。驿之南有南关递运所。驿丞乃曹鹏也。蓟州即秦汉渔阳郡,唐安禄山叛据之,后取古蓟门关以名。盘龙山在西北,崆峒山在东北。城中有州治及蓟州卫、镇朔卫、营州右屯卫治、所治。西北隅有张堪庙,堪为渔阳太守时教民种植,童谣云:“麦秀两歧”云云。有去思立庙如新。臣等欲起程时,有一人驰报云:朝鲜国使臣来。臣语诸张述祖曰:“我本国使臣来在一刻间,若于路上相逢,则不过一揖而过。我姑留,待以认本国家山之事。”述祖曰:“诺。”日晡,谢恩使知中枢成健、书状官尹璋及崔自俊、禹雄、成仲温、金孟敬、张佑奇、韩忠常、韩谨、吴近位、金敬熙、权熙止、成后生、李义山、朴璇、郑兴祖等来寓驿中。臣诣谒使臣于中庭。使臣下阶亦俯伏,语臣曰:“上体平安,国家无事,尔家乡亦无恙。上闻尔漂海无归处,启下礼曹,令各道观察使通谕沿海各官,不轻搜觅,急速启闻。且于对马岛及日本诸岛,使送人书契修答时,右词缘并录。通谕右承旨庆俊次知启依允。圣恩何可量哉!”臣拜伏,退舍谓金重等曰:“我等小民也,如蟪蛄、蚁蠓之生死于天地中,生不为天地之益,死不为天地之损,岂意圣念及于小民若此,若此!圣念若此,我等所以万死得一生也!”金重等亦感泣。少选,书状官与崔自俊偕到于臣所寓,备语乡国迩来之事。因曰:“初闻漂没之报,人皆以汝死为叹。成希颜独大言曰:‘我心以为崔溥不死海,早晚必生还’云云。及今相遇,果验其言。”当昏,使臣邀臣同坐,馈臣以晚饭,下及陪吏。臣谢曰:“小人罪逆深重,不自死灭,祸延先人。未及擗踊于殡侧,反为飓毋所驱,五内分崩,无复望生。幸到闽东,行过六千余里间,亦顾眄无亲,语音不晓,悲辛艰楚,欲诉谁因?今遇令公如见父母。”使臣曰:“我初于东八站遇安令公之行,闻尔生到浙江等处,喜气欲颠。今日邂逅,顾非幸欤?”又曰:“我之此行,有养马者中途毙死。跋涉万里俱生实难尔!带去人亦有死者否?”臣曰:“凡我四十三人幸得不死,与之偕来。”使臣曰:“天实生之,天实生之!非徒生之,实由上德,是可喜也!”臣又承使臣之问,略陈漂寓之故、所过沧溟之险、山川之胜迹、风俗之有异。使臣曰:“我行过此等地,独以为壮观,尔之眼界难为水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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