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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十日,至開河驛,是日晴大風,曉發濟寧城,西過分水閘,至南旺湖,湖彌漫無際,但西望遠山而已,其東有青草茂塞之行,即《禹貢》大野既(滿)「豬」之澤,今為塞者湖中築石長堤,名官堰,臣等沿堤岸順風而北,過馬長坡、安民、牢正、曹井等鋪,至鉅野縣地方,過火頭灣、白嘴兒、黃沙灣、小長溝等鋪、大長滿集,又至嘉祥縣地方,過大長溝、十字河、寺前、孫村等鋪,又至上縣地方,過界首鋪、老坡閘,至分水龍王廟,有大水自東北來,至廟前分南·北派,南派即臣所已經,順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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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十日,至開河驛,是日晴大風,曉發濟寧城,西過分水閘,至南旺湖,湖彌漫無際,但西望遠山而已,其東有青草茂塞之行,即《禹貢》大野既(滿)「豬」之澤,今為塞者湖中築石長堤,名官堰,臣等沿堤岸順風而北,過馬長坡、安民、牢正、曹井等鋪,至鉅野縣地方,過火頭灣、白嘴兒、黃沙灣、小長溝等鋪、大長滿集,又至嘉祥縣地方,過大長溝、十字河、寺前、孫村等鋪,又至上縣地方,過界首鋪、老坡閘,至分水龍王廟,有大水自東北來,至廟前分南·北派,南派即臣所已經,順流南下,北派臣所將往,逆流北上,廟當其二水之分,故以分水名,問其東北來大水,則人口濟河之源也,未詳其實,楊旺與其徒入廟中,焚香禮神以祭,令臣等亦拜,臣曰:“祭山川,諸侯事,為士庶人者,特祭祖考耳,少驗其分,非禮也,非禮之祭,人為誼,神不享,故我在本國,不敢拜山川之神,況可拜異國之乎?”陳萱曰:“此洞,乃龍王祠也,有靈跡,故過此者,皆致恭拜祭,然後行,不然則必有風濤之險,”臣曰:“觀於海者難為水,我已經數萬里大海暴濤之險,若此中土中”江河之水,不足畏也.”語未畢,萱告于旺曰:“此人不要拜,亦不可屈其志”云云,又過嚴城鋪,至開河驛,夜已三更矣,所謂官堰,至嚴城鋪而絕,堰中有聞,相間或八九里、或 十餘里, 凡十有四,堰之長,亦過百餘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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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下,北派臣所將往,逆流北上,廟當其二水之分,故以分水名,問其東北來大水,則人口濟河之源也,未詳其實,楊旺與其徒入廟中,焚香禮神以祭,令臣等亦拜,臣曰:“祭山川,諸侯事,為士庶人者,特祭祖考耳,少驗其分,非禮也,非禮之祭,人為誼,神不享,故我在本國,不敢拜山川之神,況可拜異國之乎?”陳萱曰:“此洞,乃龍王祠也,有靈跡,故過此者,皆致恭拜祭,然後行,不然則必有風濤之險,”臣曰:“觀於海者難為水,我已經數萬里大海暴濤之險,若此中土中”江河之水,不足畏也.”語未畢,萱告于旺曰:“此人不要拜,亦不可屈其志”云云,又過嚴城鋪,至開河驛,夜已三更矣,所謂官堰,至嚴城鋪而絕,堰中有聞,相間或八九里、或 十餘里, 凡十有四,堰之長,亦過百餘里.
 
  
 
개하역(開河驛)에 도착하였습니다.
 
개하역(開河驛)에 도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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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제녕성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분수갑(分水間)을 지나서 남왕호(南旺湖)에 이르니, 남왕호는 물이 가득차 끝이 없고 다만 서쪽으로 먼 산만 바라보일 뿐이었습니다.  
 
새벽에 제녕성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분수갑(分水間)을 지나서 남왕호(南旺湖)에 이르니, 남왕호는 물이 가득차 끝이 없고 다만 서쪽으로 먼 산만 바라보일 뿐이었습니다.  
  
그 동쪽에는 푸른 풀이 우거진 평지가 있었으니, 곧 〈우공>의 '대야(大野)에 물이 고이니'라는 '''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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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쪽에는 푸른 풀이 우거진 평지가 있었으니, 곧 〈우공〉의 '대야(大野)에 물이 고이니'라는 '''못'''입니다.  
  
 
지금은 메워져 있었는데 호수 복판에 돌로 긴 제방을 쌓고 명칭을 '관언(官恨)'이라 하였습니다.  
 
지금은 메워져 있었는데 호수 복판에 돌로 긴 제방을 쌓고 명칭을 '관언(官恨)'이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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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만(火頭灣)·백취아(白嘴兒)·황사만(黃沙灣)·소장구(小長溝) 등 포와 대장만집(大長滿集)을 지나서 다시 가상현(嘉祥縣)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화두만(火頭灣)·백취아(白嘴兒)·황사만(黃沙灣)·소장구(小長溝) 등 포와 대장만집(大長滿集)을 지나서 다시 가상현(嘉祥縣)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대장구(大長溝)·십자하(十字河)·사전(寺前)·손촌(孫村) 등 포를 지나서 또 문상현(上縣)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계수포(界首鋪)416 · 노파갑(老坡間)을 지나서 분수용왕묘(分水龍王廟)에 이르니, 큰 강물이 동북쪽에서 용왕묘 앞에 이르러 남쪽 갈래와 북쪽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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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구(大長溝)·십자하(十字河)·사전(寺前)·손촌(孫村) 등 포를 지나서 또 문상현(上縣)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계수포(界首鋪) · 노파갑(老坡間)을 지나서 분수용왕묘(分水龍王廟)에 이르니, 큰 강물이 동북쪽에서 용왕묘 앞에 이르러 남쪽 갈래와 북쪽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남쪽 갈래는 곧 신이 이미 물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강이고, 북쪽 갈래는 곧 신이 장차 물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올라갈 강이었습니다.  
 
남쪽 갈래는 곧 신이 이미 물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강이고, 북쪽 갈래는 곧 신이 장차 물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올라갈 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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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묘는 그 두 갈래 물이 나뉜 곳에 있는 까닭에 분수(分水)라고 명명한 것이었습니다.  
 
용왕묘는 그 두 갈래 물이 나뉜 곳에 있는 까닭에 분수(分水)라고 명명한 것이었습니다.  
  
그 동북쪽에서 온 큰 강물을 물으니 사람들은 '제하(濟河)의 연원이다'라 하였지만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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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북쪽에서 온 큰 강물을 물으니 사람들은 '제하(濟河)의 연원이다'라 하였지만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양왕은 그 무리와 함께 용왕묘 안에 들어가서 향을 피우고 용신(龍神)에게 배례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신 등에게도 또한 절하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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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red">양왕은 그 무리와 함께 용왕묘 안에 들어가서 향을 피우고 용신(龍神)에게 배례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신 등에게도 또한 절하라 하였습니다. </span>
  
신이 말하기를, 산천에 제사하는 것은 제후의 일로서 사서인(士庶人)은 조고(祖考)에게만 제사를 올릴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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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red">신이 말하기를, 산천에 제사하는 것은 제후의 일로서 사서인(士庶人)은 조고(祖考)에게만 제사를 올릴 따름입니다. </span>
  
조금이라도 그 분수를 넘으면 예절에 어긋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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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red">조금이라도 그 분수를 넘으면 예절에 어긋난 일입니다. </span>
  
예절에 어긋난 제사는 사람들이 아첨으로 보고 귀신도 제물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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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red">예절에 어긋난 제사는 사람들이 아첨으로 보고 귀신도 제물을 받지 않습니다. </span>
  
그런 까닭에 내가 본국에 있을 때 산천의 신에게는 절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다른 나라의 사당에 절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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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red">그런 까닭에 내가 본국에 있을 때 산천의 신에게는 절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다른 나라의 사당에 절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span>
  
진훤이 말하기를, “이 사당은 곧 용왕사(龍王祠)로서 영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공경스럽게 절하고 제사지낸 뒤에야 길을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풍랑의 조난을 당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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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훤이 말하기를, <span style="color:red">“이 사당은 곧 용왕사(龍王祠)로서 영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공경스럽게 절하고 제사지낸 뒤에야 길을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풍랑의 조난을 당합니다”</span>라고 하였습니다.  
  
“바다를 구경한 사람 앞에선 강물은 물이라 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나는 이미 수만 리나 되는 큰 바다에서 거센 파도의 험난함을 겪었으니, 이와 같은 중원의 강물은 두려워할 것도 못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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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구경한 사람 앞에선 강물은 물이라 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span style="color:red">나는 이미 수만 리나 되는 큰 바다에서 거센 파도의 험난함을 겪었으니, 이와 같은 중원의 강물은 두려워할 것도 못 됩니다.</span>"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진훤은 양왕에게, “이 사람은 절하려 하지 않으며 또 그의 뜻을 굽힐 수도 없겠습니다" 운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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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진훤은 양왕에게, <span style="color:red">“이 사람은 절하려 하지 않으며 또 그의 뜻을 굽힐 수도 없겠습니다" </span>운운하였습니다.  
  
 
또 감성포(闕城鋪)를 지나서 개하역(開河驛)에 이르니 밤이 벌써 3경이 되었습니다.  
 
또 감성포(闕城鋪)를 지나서 개하역(開河驛)에 이르니 밤이 벌써 3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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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언 가운데 있는 갑문은 8-9리 혹은 10여 리 간격으로 모두 14개가 있었고, 관언의 길이 또한 100여 리가 넘었습니다.
 
관언 가운데 있는 갑문은 8-9리 혹은 10여 리 간격으로 모두 14개가 있었고, 관언의 길이 또한 100여 리가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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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th Day. Arrival at K’ai-ho Station. This day was fair, with high winds.
 
10th Day. Arrival at K’ai-ho Station. This day was fair, with high w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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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dawn we left the wall of Chi-ning, went west past Fen-shui Lock and came to Nan-wang Lake. The lake was an endless expanse of water; only in the west did we see distant mountains. In the east were dense barriers of green grasses, which were the marsh in Yü kung: “The lake of Ta-yeh was confined within its proper limits” [Legge, III: 105]. Now it has become silted up, and in the lake a long stone levee has been built and named Public Dam.
 
At dawn we left the wall of Chi-ning, went west past Fen-shui Lock and came to Nan-wang Lake. The lake was an endless expanse of water; only in the west did we see distant mountains. In the east were dense barriers of green grasses, which were the marsh in Yü kung: “The lake of Ta-yeh was confined within its proper limits” [Legge, III: 105]. Now it has become silted up, and in the lake a long stone levee has been built and named Public Dam.
 
[We went from Ma-chang-p'o to the Shrine of the Dragon King of the River Fork.]
 
[We went from Ma-chang-p'o to the Shrine of the Dragon King of the River Fork.]
A large river there came from the northeast, arrived in front of the shrine, and split into northern and southern branches. The southern branch was the one that we had come down, with the current. The northern branch was the one up which we were going to go, against the current. Because the shrine was at the fork of the two rivers, it had the name River Fork. I asked about the large river that came from the northeast, and someone said, “It is the source of the Chi River.” I do not know whether that was so.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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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rge river there came from the northeast, arrived in front of the shrine, and split into northern and southern branches. The southern branch was the one that we had come down, with the current. The northern branch was the one up which we were going to go, against the current. Because the shrine was at the fork of the two rivers, it had the name River Fork. I asked about the large river that came from the northeast, and someone said, “It is the source of the Chi River.” I do not know whether that was so.
 
Yang Wang and his staff entered the shrine, burned incense, and worshiped the god with sacrifices. They ordered us to pray, too. I said, “Sacrificing to mountains and rivers is a matter for the nobility; gentlemen and commoners sacrifice only to their ancestors. To overstep one's place is improper, and improper sacrifices make fawners of men and do not satisfy the gods. In my own country, therefore, I do not venture to pray to the gods of mountains and rivers. How could I possibly pray at the altars of foreign countries ?”
 
Yang Wang and his staff entered the shrine, burned incense, and worshiped the god with sacrifices. They ordered us to pray, too. I said, “Sacrificing to mountains and rivers is a matter for the nobility; gentlemen and commoners sacrifice only to their ancestors. To overstep one's place is improper, and improper sacrifices make fawners of men and do not satisfy the gods. In my own country, therefore, I do not venture to pray to the gods of mountains and rivers. How could I possibly pray at the altars of foreign countries ?”
 
Ch'en Hsüan said, “This is the altar of the Dragon King who once appeared here. For that reason, everyone who passes here sacrifices most respectfully before going on. Otherwise there would surely be trouble with the wind and waves.”
 
Ch'en Hsüan said, “This is the altar of the Dragon King who once appeared here. For that reason, everyone who passes here sacrifices most respectfully before going on. Otherwise there would surely be trouble with the wind and w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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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I had finished speaking, Ch'en Hsüan said to Yang Wang, “This man will not pray, and we should not bend his will."
 
Before I had finished speaking, Ch'en Hsüan said to Yang Wang, “This man will not pray, and we should not bend his will."
 
We passed K’an-ch'eng Stop and came to K’ai-ho Station. It was already the third watch of the night. What was called Public Dam went as far as K'anch'eng Stop and stopped. In it there were sluices, some eight or nine li apart, some over ten li apart, and fourteen in all. The dam itself was over one hundred li long.
 
We passed K’an-ch'eng Stop and came to K’ai-ho Station. It was already the third watch of the night. What was called Public Dam went as far as K'anch'eng Stop and stopped. In it there were sluices, some eight or nine li apart, some over ten li apart, and fourteen in all. The dam itself was over one hundred li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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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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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습(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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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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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역주p.416

2020년 12월 10일 (목) 13:47 판

初十日,至開河驛,是日晴大風,曉發濟寧城,西過分水閘,至南旺湖,湖彌漫無際,但西望遠山而已,其東有青草茂塞之行,即《禹貢》大野既(滿)「豬」之澤,今為塞者湖中築石長堤,名官堰,臣等沿堤岸順風而北,過馬長坡、安民、牢正、曹井等鋪,至鉅野縣地方,過火頭灣、白嘴兒、黃沙灣、小長溝等鋪、大長滿集,又至嘉祥縣地方,過大長溝、十字河、寺前、孫村等鋪,又至上縣地方,過界首鋪、老坡閘,至分水龍王廟,有大水自東北來,至廟前分南·北派,南派即臣所已經,順流南下,北派臣所將往,逆流北上,廟當其二水之分,故以分水名,問其東北來大水,則人口濟河之源也,未詳其實,楊旺與其徒入廟中,焚香禮神以祭,令臣等亦拜,臣曰:“祭山川,諸侯事,為士庶人者,特祭祖考耳,少驗其分,非禮也,非禮之祭,人為誼,神不享,故我在本國,不敢拜山川之神,況可拜異國之乎?”陳萱曰:“此洞,乃龍王祠也,有靈跡,故過此者,皆致恭拜祭,然後行,不然則必有風濤之險,”臣曰:“觀於海者難為水,我已經數萬里大海暴濤之險,若此中土中”江河之水,不足畏也.”語未畢,萱告于旺曰:“此人不要拜,亦不可屈其志”云云,又過嚴城鋪,至開河驛,夜已三更矣,所謂官堰,至嚴城鋪而絕,堰中有聞,相間或八九里、或 十餘里, 凡十有四,堰之長,亦過百餘里.



개하역(開河驛)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맑았으나 큰바람이 불었습니다.

새벽에 제녕성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분수갑(分水間)을 지나서 남왕호(南旺湖)에 이르니, 남왕호는 물이 가득차 끝이 없고 다만 서쪽으로 먼 산만 바라보일 뿐이었습니다.

그 동쪽에는 푸른 풀이 우거진 평지가 있었으니, 곧 〈우공〉의 '대야(大野)에 물이 고이니'라는 입니다.

지금은 메워져 있었는데 호수 복판에 돌로 긴 제방을 쌓고 명칭을 '관언(官恨)'이라 하였습니다.

신 등은 제방의 언덕을 따라 바람이 부는 대로 북쪽으로 가서 마장파(馬長坡)·안민(安民)·뇌정(牢正) ·조정(曹井) 등 포를 지나서 거야현(鍾野縣)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화두만(火頭灣)·백취아(白嘴兒)·황사만(黃沙灣)·소장구(小長溝) 등 포와 대장만집(大長滿集)을 지나서 다시 가상현(嘉祥縣)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대장구(大長溝)·십자하(十字河)·사전(寺前)·손촌(孫村) 등 포를 지나서 또 문상현(上縣)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계수포(界首鋪) · 노파갑(老坡間)을 지나서 분수용왕묘(分水龍王廟)에 이르니, 큰 강물이 동북쪽에서 용왕묘 앞에 이르러 남쪽 갈래와 북쪽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남쪽 갈래는 곧 신이 이미 물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강이고, 북쪽 갈래는 곧 신이 장차 물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올라갈 강이었습니다.

용왕묘는 그 두 갈래 물이 나뉜 곳에 있는 까닭에 분수(分水)라고 명명한 것이었습니다.

그 동북쪽에서 온 큰 강물을 물으니 사람들은 '제하(濟河)의 연원이다'라 하였지만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양왕은 그 무리와 함께 용왕묘 안에 들어가서 향을 피우고 용신(龍神)에게 배례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신 등에게도 또한 절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산천에 제사하는 것은 제후의 일로서 사서인(士庶人)은 조고(祖考)에게만 제사를 올릴 따름입니다.

조금이라도 그 분수를 넘으면 예절에 어긋난 일입니다.

예절에 어긋난 제사는 사람들이 아첨으로 보고 귀신도 제물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본국에 있을 때 산천의 신에게는 절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다른 나라의 사당에 절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진훤이 말하기를, “이 사당은 곧 용왕사(龍王祠)로서 영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공경스럽게 절하고 제사지낸 뒤에야 길을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풍랑의 조난을 당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다를 구경한 사람 앞에선 강물은 물이라 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나는 이미 수만 리나 되는 큰 바다에서 거센 파도의 험난함을 겪었으니, 이와 같은 중원의 강물은 두려워할 것도 못 됩니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진훤은 양왕에게, “이 사람은 절하려 하지 않으며 또 그의 뜻을 굽힐 수도 없겠습니다" 운운하였습니다.

또 감성포(闕城鋪)를 지나서 개하역(開河驛)에 이르니 밤이 벌써 3경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관언(官倭)'이란 것도 감성포에 이르러 끊어졌습니다.

관언 가운데 있는 갑문은 8-9리 혹은 10여 리 간격으로 모두 14개가 있었고, 관언의 길이 또한 100여 리가 넘었습니다.




10th Day. Arrival at K’ai-ho Station. This day was fair, with high winds.

At dawn we left the wall of Chi-ning, went west past Fen-shui Lock and came to Nan-wang Lake. The lake was an endless expanse of water; only in the west did we see distant mountains. In the east were dense barriers of green grasses, which were the marsh in Yü kung: “The lake of Ta-yeh was confined within its proper limits” [Legge, III: 105]. Now it has become silted up, and in the lake a long stone levee has been built and named Public Dam. [We went from Ma-chang-p'o to the Shrine of the Dragon King of the River Fork.] A large river there came from the northeast, arrived in front of the shrine, and split into northern and southern branches. The southern branch was the one that we had come down, with the current. The northern branch was the one up which we were going to go, against the current. Because the shrine was at the fork of the two rivers, it had the name River Fork. I asked about the large river that came from the northeast, and someone said, “It is the source of the Chi River.” I do not know whether that was so. Yang Wang and his staff entered the shrine, burned incense, and worshiped the god with sacrifices. They ordered us to pray, too. I said, “Sacrificing to mountains and rivers is a matter for the nobility; gentlemen and commoners sacrifice only to their ancestors. To overstep one's place is improper, and improper sacrifices make fawners of men and do not satisfy the gods. In my own country, therefore, I do not venture to pray to the gods of mountains and rivers. How could I possibly pray at the altars of foreign countries ?” Ch'en Hsüan said, “This is the altar of the Dragon King who once appeared here. For that reason, everyone who passes here sacrifices most respectfully before going on. Otherwise there would surely be trouble with the wind and waves.” I said, “One who has looked at the sea is not easily impressed by other waters. I have passed through an ocean of tens of thousands of li and violent waves. The water of rivers like these, here in the land, is not enough to scare me.” Before I had finished speaking, Ch'en Hsüan said to Yang Wang, “This man will not pray, and we should not bend his will." We passed K’an-ch'eng Stop and came to K’ai-ho Station. It was already the third watch of the night. What was called Public Dam went as far as K'anch'eng Stop and stopped. In it there were sluices, some eight or nine li apart, some over ten li apart, and fourteen in all. The dam itself was over one hundred li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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