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

North Korea Humanities

강단비(CB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7일 (일) 20:07 판 (작품활동)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강단비(CBNU2025)])이 작성했습니다.




장세정(張世貞)
출처 :
 
한글명 장세정 한자명 張世貞 영문명 Jang Se-jeong 가나명 이칭
성별 여성 생년 1921년 몰년 2003년 출신지 평안남도 평양 전공 대중가요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1936년 평양방송국 개국 기념 공연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1937년 「연락선은 떠난다」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1]

이후 오케레코드기관와 조선악극단단체의 간판급 가수로 부상했다.[1]

광복 이후에도 1950년대 초까지 악극 무대에 꾸준히 서며 「울어라 은방울」,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표곡을 발표해 인기를 이어갔다.[1]

1970년대 초까지도 공연과 방송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였다.[1]


생애


① 초기 생애와 데뷔 과정

평안남도 평양(平壤: 현 평양직할시)에서 출생하여 생후 두 달 만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만주에서 독립단에 들어가서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2]

평양 화신백화점의 악기점에서 근무하던 중, 만 15세 무렵이던 1936년에 평양방송국 개국 기념 가요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을 계기로 오케레코드기관의 이철인물에게 발탁되어 가수가 되었다.[2]

오케레코드기관에서는 '평양이 낳은 가희(歌姬)'로 홍보하며 장세정을 데뷔시켰는데,

1937년 초에 발표한 〈연락선은 떠난다〉가 대히트를 기록하였다.[2]


② 전성기와 조선악극단 활동

오케레코드기관의 적극적 지원 속에서 조선악극단단체의 프리마돈나로 활약했으며,

공연과 악극 무대를 통해 대중적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였다.[1]

가볍지 않고 중후한 듯하면서도 시원한 창법에는 ‘청초한 색기’로 불리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최고 인기 가수로 자리매김했다.[3]

대표곡으로는 데뷔곡 〈연락선은 떠난다〉 외에도 〈아시나요〉, 〈처녀야곡〉, 〈불망의 글자〉, 〈토라진 눈물〉, 〈잘 있거라 단발령〉, 〈역마차〉 등이 있다.[3]

특히 〈연락선은 떠난다〉는 항구에서의 이별을 다룬 노래로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한을 드러내어 큰 사랑을 받았다는 평가가 있다.[3]


③ 전후 활동·해외 이주와 생애 후반기

광복 이후 장세정은 김해송인물이 조직한 KPK악극단단체에서 악극 배우로 활동했으며,

1948년 봄에는 조명암·김해송인물 콤비가 해방의 기쁨을 표현해 만든 〈울어라 은방울〉을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3] 이 노래는 장세정의 대표적 명곡으로 평가되며, 그녀의 전후 활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3]

한국 전쟁 발발 후 장세정은 대구로 피난하여 오리엔트레코드기관에서 〈고향초〉, 〈즐거운 목장〉, 〈샨프란시스코〉 등의 노래가 수록된 음반을 발매하였다.[3] 특히 〈고향초〉는 본래 송민도의 작품이었으나 장세정이 재취입하여 널리 알려졌다.[3]

그러나 작사가 조명암과 박영호의 월북 문제, 김해송인물의 전쟁 중 실종 등으로 인해 장세정의 활동은 점차 위축되었고 많은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거나 편법으로 불러야 했다.[3]

1960년대에는 한일 국교 정상화 시기와 맞물려 여러 차례 일본 공연에 참가했으며, 이후 1970년대 무렵 미국으로 이민하여 활동을 이어갔다.[1]

197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은퇴 공연을 가진 뒤 현지에 정착해 지내다가, 오랜 투병 끝에 2003년에 사망했다.[1]

묘소는 할리우드 포레스트 론(Hollywood Forest Lawn)에 위치한다.[3]





연구


작품활동

1936년 평양방송국기관 개국 기념 공연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1]

1937년 「연락선은 떠난다」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1]

항구에서의 이별을 다룬 이 노래에는 일제 강점기의 민족적 한이 표출되어 크게 사랑받았다는 평이 있다.[2]

대표곡으로는 데뷔곡인 〈연락선은 떠난다〉 외에 김정구인물와 함께 부른 만요 〈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을 비롯하여, 〈아시나요〉, 〈처녀야곡〉, 〈불망의 글자〉, 〈토라진 눈물〉, 〈항구의 무명초〉, 〈잘 있거라 단발령〉, 〈역마차〉 등이 있다.[2]

〈역마차〉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장세정도 번안곡인 〈지원병의 어머니〉, 동명의 군국영화 주제곡인 〈그대와 나〉를 포함해 여러 편의 친일가요를 오케레코드기관사를 통해 발표했다.[2]

「지원병의 어머니」는 일본의 군국가요를 번안한 작품이다.[1]

광복 후에는 김해송인물이 조직한 KPK악극단단체에서 악극 배우로 활동했고, 1948년 봄에 조명암과 김해송인물 콤비가 해방의 기쁨을 표현해 만든 〈울어라 은방울〉을 불러 히트시켰다.[2]

이 노래는 장세정 불후의 명곡이라는 평이 있을 만큼 높이 평가받는다.[2]

한국 전쟁 때는 대구로 피난을 내려와 오리엔트레코드기관에서 〈고향초〉, 〈즐거운 목장〉, 〈샨프란시스코〉 등의 노래가 담긴 음반을 발매했다.[2]

〈고향초〉는 본래 송민도의 노래였으나 장세정이 재취입해 널리 알려졌다.[2]

1970년대 초까지도 공연과 방송을 통해 꾸준히 활동했다.[1]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장세정 Institution: 오케레코드 A affiliatedWith B
Person: 장세정 Institution: 오리엔트레코드 A affiliatedWith B
Person: 장세정 Institution: 평양방송국 A affiliatedWith B
Person: 장세정 Group: 조선악극단 A isMemberOf B
Person: 장세정 Group: KPK악극단 A isMemberOf B
Person: 장세정 Person: 이철 A collaboratedWith B
Person: 장세정 Person: 김정구 A collaboratedWith B
Person: 장세정 Person: 김해송 A collaboratedWith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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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1.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세정".
  2.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위키원더』, "장세정".
  3. 3.0 3.1 3.2 3.3 3.4 3.5 3.6 3.7 3.8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ency2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