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목포항쟁(五一八木浦抗爭)은 신군부에 저항해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목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1979년 12·12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끝까지 저항하던 광주 시민들을 무력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21일 광주 시민들에게 발포했으며, 이 소식은 시민군들에 의해 목포까지 전해졌다. 오후부터 목포역 광장에서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22일 목포청년학생투쟁위원회, 수습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시위를 주도했으며, 이후 안철을 중심으로 한 수습대책위원회로 통합되었다. 목포시민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목포시민들은 ‘민주헌정 수립을 위한 시민궐기대회’를 네 차례 개최했으며, 최대 2만여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목포 시내를 행진하며 ‘계엄령을 철폐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등을 외쳤다. 27일 광주가 신군부에 의해 진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신군부의 총부리를 목포로 향했다. 시민들의 안전을 우려한 목포시민투쟁위원회는 시위 종료를 선언했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7일간 계속된 목포시민 항쟁은 약탈과 방화, 인명 피해 등이 없이 평화적으로 이어졌으며, “우리 겨레와 세계 자유민에 보내는 목포시민 결의문” 등 여러 차례의 결의문을 통해 평화를 염원하는 목포시민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이후 목포시민 항쟁을 주도한 27명이 신군부에 의해 구속되었다. 한편 목포경찰서 이준규 서장은 신군부의 강제진압 명령을 거부하였고, 덕분에 목포에서는 유혈사태 없이 평화롭게 시위가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즌규 서장은 파면되었고, 혹독한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5년 후 사망했으며, 최근에야 복권되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