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진 설치(木浦鎭 設置, 1397)의 정확한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6년(1397년)에 전라도의 4진(목포, 조양, 옥구, 흥덕) 및 전국 각진에 첨절제사를 두었다고 기록되었다. 세종 21년(1439년)에는 ‘목포가 왜적 침입의 요해처임으로 만호(萬戶)를 파견하여 병선을 주둔’하도록 재가했으며, 연산군 7년(1501년)에는 목포진에 성(城)이 조성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선상수어(船上守禦)’의 방침에 따라 수군 만호는 항상 병선을 이끌고 바다 위를 왕래하며 방어와 수색의 의무를 수행하였고, 해당된 수군진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 두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병선의 기항지 및 보급처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현실적으로 선상 방어만으로 해상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 인정되어 해당 지역에 성을 축조하게 된 것이다. 목포진의 우두머리는 수군 만호(萬戶)였다.목포진의 역할은 서남해의 바닷길을 지키고, 이곳을 통해 올라가는 조운선을 보호·관리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조선시대 계속 존재해온 목포진은 1895년(고종 32) 7월 15일 칙령 제141호에 의해 폐지되었고 목포개항으로 연결되었다. 목포진은 한반도 서남해 방어지이자 개항이전 목포 역사를 실증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옛 흔적은 사라졌으나 2014년 객사 건물이 복원되었고, 2015년 1월부터 ‘목포진역사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목포진이 있었던 곳은 현 목포시 만호동(萬戶洞)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