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사 창립(木浦詩社, 1920, 1961) 목포시사는 1920년 결사된 유산시사(儒山詩社)와 1939년 목포에서 결성된 호남보인시사(湖南輔仁詩社)가 통합하여 1961년 출범한 것이다. 무안감리를 지낸 초정 김성규는 목포시사의 전신인 유산시사와 유산정 건립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초대 시사장과 3대 시사장을 역임하였다. 유산정(儒山亭) 편액도 초정 김성규가 직접 쓴 글씨이다. 유산시사를 창립하고 10년 뒤 유산정을 지어 목포의 문풍을 세운데는 목포와 인근 지역 인사들의 역할과 노력이 매우 컸다. 현재 전국 유일의 시사로 알려져 있는 목포시사는 타지방의 향교나 서원처럼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목포시사는 시인들의 단순한 모임을 넘어 유림의 문학결사 단체이기도 했다. 지금도 매년 봄, 가을이면 한시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목포 유달산에 자리잡은 목포시사 건물은 규모는 앞면 4칸·옆면 1칸 반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21호이다. 무정문집과 구한말의 전적, 한시 현판, 『목포풍아집木浦風雅集』 등 문집, 창사 이래 개최된 백일장에서의 입선작, 문인들의 원고를 보존하고 있다. [1]